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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한장애인승마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카페지기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
세계 최대의 인구대국(人口大國)이다
중국(中國, China, 중국인민공화국)은 유라시아 대륙의 동단,
태평양의 서안에 위치한 대국(大國)이다.
중국이 큰 나라인 것은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옛날부터 우리는 중국을 가리켜 '대국(大國)'이라고 했으니....
중국 사람들이 평생에 다 하지 못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평생에 자기 나라의 글, 즉 한자를 모두 익히지 못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에 있는 명소를 모두 보지 못하고 일생을 마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은 국민들이 일반적으로 상용하는 글자를 정하여 쉽게 익히게 하였고,
평생에 모두 둘러 볼 수 없는 주요 명소를 한 곳에 축소모형을 만들어 모아 두고
볼 수 있게 하고 있다(제주도의 소인국 테마파크나 미니미니 랜드 처럼).
선전(Shen-chen, 深圳) 민속촌내에 있는
중국 주요 명소의 축소모형 테마파크. 만리장성과 자금성.
중국은 과연 얼마나 큰 나라일까?
나라의 크기는 국토의 크기와 인구의 크기로 말한다.
중국의 국토 크기를 보면 959만 6,960㎢로
독립국가연합(러시아), 캐나다 다음가는 3대국 중의 하나로
우리나라(남한) 면적의 96배, 남북한 면적의 43배나 된다.
중국과 미국의 영토 비교(검정색이 미국)
중국의 영토는 동쪽으로 북한,
서쪽으로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인도, 네팔, 부탄 등과 접하고,
남쪽으로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
북쪽으로 몽골,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과
국경을 이루어 국경선의 길이가 약 22,800㎞에 달한다.
남쪽은 황해, 동중국해, 남중국해에 접하여 해안선길이가 약 1만 1,000㎞나 된다.
최북단인 헤이륭강(북위 53˚)과 최남단인 남사군도(북위 4˚)간의
위도차가 49˚(남북 직선거리 약 5,500㎞)에 달한다.
이 때문에 남쪽으로 부터 아열대, 온대, 냉대기후가 분포하고,
최동단인 헤이륭강과 우수리강의 합류지점(동경 135˚)과
최서단인 신강위구르자치구(동경 73˚)간의 경도차가
62˚(동서 직선거리 5,200㎞)로서 4시간의 시차(時差)를 보인다.
중국과 인접국가
귀성열차 속의 풍경.
며칠동안 열차를 다고 가야하기 때문에 귀성객들은 기차속에서
며칠동안 먹을 음식과 침구를 준비한다.
최근 고속열차가 운행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이러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중국의 기후 분포
현재의 중국 영토는 국력의 강약에 따라 확대되거나 축소된 결과이다.
중국의 국력이 강할 때는 영토가 넓어졌다가 국력이 쇠약할 때는 축소되었다.
그 결과 중국이 항상 지배하여 한족(漢族)이 주로 거주했던
중국 본토(China proper)와 이민족이 주로 거주했던 주변지역(Outer China)으로
크게 구별된다.
중국본토는 만리장성 남쪽과 티벳고원 동쪽에 해당하는
역사적인 핵심지역으로서 18개 성(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족이 주로 거주한다.
주변지역은 티벳, 신장(新藏), 몽고(蒙古), 만주(滿洲), 꽝시(廣西) 등으로
소수민족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으로 중국의 세력 확장으로
이민족의 거주지역을 흡수한 결과이다.
이 때문에 중국 본토와 주변지역은
정치, 인종, 문화 등의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중국을 여행할 때,
특히 서쪽으로 가다보면 동쪽의 한족과는 전혀 다른
중동인과 유사한 얼굴과 대조적인 생활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중국의 행정구역과 민족분포
중국의 인구수를 보면, 가장 최근 통계에 의하면
약 13억 3,500만 명(2009년 말)이다.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인구대국으로
세계인구의 약 20%가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피서지 인파
만리장성에 몰려든 인파
귀성 열차표를 구입하기 위해 모인 인파
고속도로의 귀성 차량
중국은 역사적으로 3단계의 인구성정과정을 거치면서 ‘배(倍)의 증가’를 보였다.
중국의 인구성장단계는
(1)진대-서한까지,
(2)청조 200년 간,
(3)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1949년-)로 구분할 수 있다.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기 전 2000여 년 동안 중국의 인구는
390만-1,370만 명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한 이후부터 명대 말기에 이르는 1,800여 년간
중국의 인구는 기본적으로 5,000만 명 전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한 왕조 400년 사이에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성장이 지속되었을 때
인구는 5,000-6,000만 명에 달하였다.
동한 말기에서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는 장기간 군벌의 혼전을 거듭하여
많은 백성들은 의지할 곳을 잃고 떠돌아다녔고 인구도 6백만으로 감소하였다.
진(晋)왕조 때 인구는 다시 1,000만 명으로 증가하였으며,
이후 남북조를 거쳐 수·당시대에 이르면서 다시 5,000만 명 이상으로 증가하였다.
당 이후 오대십국 시기에 다시 거듭된 전란으로 인구는 급격히 감소하였으나,
송왕조 때에 안정을 되찾음으로써 인구는 7,600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원왕조 때에도 빈번한 전쟁으로 인구는 점차 감소하였다가
명왕조에 이르러 다시 6,000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청조의 강희(康熙 1662-1722)부터 건륭(乾隆 1735-1796)에 이르는
'강건성세(康乾盛世 강희, 건륭 연간의 태평성세)'의 약 130여 년간은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안정되고 인구증가와 조세감면 조치를 정책적으로
시행하여 인구가 1억 명에서 2억 명으로 급속하게 증가하였으며,
이러한 정책의 지속으로 인구가 부단히 증가하였다.
건륭 29년(1764)부터 도광(道光) 27년(1847)간에는
인구가 2억 600만 명에서 4억 1,300만 명으로 약 2배나 증가하였다.
그러나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중국은 점차 반식민지 반봉건사회로 전락하였는데,
제국주의의 침략과 봉건세력의 착취로 인한 생산력의 저하와
군벌의 혼전으로 인구성장 속도가 저하되었다.
특히 1937-1945년간 일본 제국주의가 중국을 침략하여
수 1,000만 명의 중국인을 학살하였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당시
그 인구는 5억 4,167만 명이었으나 50년 후인 2000년에 이르러
12억 9,000만 명으로 2배 이상 증가하였다.
현재 중국의 인구는 약 13억 3500만 명(2009년말)으로
세계 최대 인구국이며 매년 약 1,200만 명이 증가한다.
UN의 추계에 의하면 2050년에
중국 인구가 약 16억 명으로 증가한 후 점차 감소될 것이라고 한다.
중국의 장래 인구추이
연도 |
인구(만명) |
2000 |
127,000 |
2005 |
133,000 |
2010 |
138,000 |
2015 |
143,000 |
2020 |
148,000 |
2025 |
151,000 |
2030 |
154,000 |
2035 |
156,000 |
2040 |
157,000 |
2045 |
157,000 |
2050 |
156,000 |
심각한 인구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중국 정부는 1979년부터
‘1 자녀 낳기’ 정책을 실시하고, 1자녀 가정에 장려금,
학교 우선입학 등의 우대조치를 하는 반면
위반한 가정에는 벌금을 부과하였다.
중국 산아제한 정책의 기본 내용은 '만혼만육(晩婚晩育)'과
'소생우생(少生優生)'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농촌의 경우 미작사회에 만연해 있는 사고방식인
‘다자녀(多子女) 다복(多福)’에 대한 전통가치관이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관계로 ‘1자녀 낳기’ 정책이
큰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남존여비사상'으로 1명의 남아(男兒)만
출생신고를 하고 나머지 자녀는 출생신고를 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을 여행할 때 길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노점상이나
맛사지를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미등록인구로 보면 맞을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인구통계는
등록된 인구수이므로 실제로 중국의 인구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중국도 2040년대 경에는 65세 이상의 노령인구가 20%를 차지하는
고령화 사회가 올 것을 예측하고 2002년 9월 1일에 ‘인구와 계획출산법’을 시행하여
'조건부로 1자녀 낳기 정책'을 완화하고 있다.
中華思想 때문에 몰락한 문명국가
중국이 세계 4대 문명 중의 하나인 황허문명이
발생한 국가라는 것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더구나 중국은 다른 문명발상지와는 달리 동일한 정치적,
문화적 영향하에서 장기간 지속된 세계적인 문명국으로 BC 2,500년 경에
황허와 그 지류인 위수(渭水)에서 발달한 고대문명이
그 인접국가에 큰 영향을 미친 나라이다.
세계 문명과 종교 발상지
중국의 국가적 발전은 북쪽에서 시작하여 점차 남쪽으로,
나중에는 서쪽과 북쪽으로 확대되었다.
중국의 고대문명은 초기에는 중국의 북서지역에만 확산되었으나,
BC 3세기경 진(秦)과 한(漢) 시대에 이르러 중앙집권적 통일국가가 성립됨에 따라
중국 전체로 확산되었다.
진왕조의 시황제(始皇帝)는 중국 북부에서 최초로 통일국가를 형성하고,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진출하여 영토를 확장하였으며,
만리장성을 축조하여 그 북쪽 스텝지역의 유목민의 침략을 저지하였다.
한 왕조는 위수의 황토지대에 근거를 두고 중국을 정복하여
중부와 남부에 문화의 확산시켰으며,
그 영향이 양쯔강 이남의 해안지방과 안남(安南)산지까지 미쳤다.
한 왕조의 멸망 후, 중국은 삼국시대와 그 후의 진(晉)에 이어,
양쯔강 유역의 한족 왕조와 화북의 유목민족이 대립하는 남북조시대에는
유목민족과 접촉을 통해 그 문화를 수입하였다.
그러나 남북조를 통일한 수나라는 강력한 왕국을 건설하였으나
과도한 토목공사와 대외원정의 실패로 당에게 패망하였다.
중국 영토의 역사적 변천
당나라는 제도를 정비하고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전제국가를 이루어
중국문화를 발전시켜 인접국가에 많은 영향을 주어 동부아시아문화권을 형성하였다.
당대에는 오랜 평화와 개방정책을 통하여
동서교류가 활발하여 문화가 크게 발달하였다.
당의 문화는 통일신라, 일본, 베트남 등 인근 민족에게 영향을 주어
한자, 유교, 불교, 율령 등을 공통적 특색으로 하는 동부아시아 문화권을 형성하였다.
중국문화는 주변국가에 대한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의 확대에 따라
동쪽으로는 일본, 서쪽으로는 동유럽, 남쪽으로는 인도차이나반도,
북쪽으로는 러시아까지 확산되었다.
특히, 한왕조부터 개척된 비단길(silkroad)을 통하여 중국문화가
아시아는 물론 유럽까지 확산되었을 뿐만 아니라 타 문화와의 교류를 통하여 융합되었다.
비단길(Silk Road)
중국문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지역은 동부아시아의 한국과 일본이고,
베트남, 타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의 동남아시아국가들도
중국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중국문화의 영행을 받은 이들 인접국가에서는 주민의 대부분이 불교를 신봉하고,
유교적인 가치관을 가지며 한자를 사용한다.
또 미작이 중심을 이루어 쌀을 주식으로 하는 미작문화를 지니고 있으며
젓가락 사용하고 있다.
또 중국을 여행하는 관광객에게 인기있는 역사적인 주요 명소로서 꼽히는
샨시(陜西)성의 시안(西安)에 중국고대의 가치있는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것도
이들 고대국가들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시안(西安)
인접국가에 미친 중국의 영향은 서구의 동양 진출이 시작된
15세기 말엽부터 약화되기 시작하여,
서구의 중국 침략이 본격화된 19세기 중엽까지 지속되었다.
중국의 영향이 쇠퇴하게 된 것은 산업혁명으로 서구의 군사력과 경제력이
크게 성장한 반면 폐쇄적 미작사회속에서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中華思想)’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편전쟁(1839-42년)을 계기로 개항한 후 프랑스와 독일에게 조차지 부여,
일본의 대만 점령과 만주 및 본토 침략,
러시아의 만주 강점 등의 굴욕과 국공내전을 경험하였다.
17세기부터 일어난 만주족은 그 세력을 확대하여 청(淸)나라를 세우고
중국 전역을 지배하였으나 19세기에 이르러서 그 국력이 약화되면서
보수적이고 패쇄적인 성향을 띄게 되었다.
교역을 앞세워 밀려오는 서구의 압력에 견딜수가 없었다.
중국의 문호를 개방하기 위하여 영국이 일으킨 아편전쟁(1839-42년)에 패하여
5개 항구를 개항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계속된 서구열강의 압력으로 프랑스와 독일에게 조차지를 허락 했으다.
일본은 타이완을 점령하고, 러시아는 만주를 강점하여 철도부설권을 얻게 되었다.
서구 열강에 저항한 태평천국(太平天國)난(1850-65년),
의화단(義和團)사건(1899-1900년)이후 1911년 신해(辛亥)혁명으로
만주국이 패망하게 되었다.
1927년 공화국의 국민당 정부는 난징(南京)에 새로운 수도를 정하고
장개석(將介石)의 지도에 의하여 국가 재통일의 전망이 보이기 시작할 무렵
일본의 대륙침략 정책이 시작되었다.
1931년에 일본은 만주를 공격하여 합병한 후 이어서 중국본토 침략을 시작하였다.
서구열강의 침략과 지배로 얼룩진 이러한 중국의 근대역사 때문에
중국의 해안지역에 서구열강들이 이루어 놓은 상하이를 비롯한
당시의 도시들이 남아있으며 이것이 오늘 날 중국관광의 명소로 꼽히고 있다.
19세기 서구 열강의 중국 점령
일본과 중국공산당과의 전투에 직면하여 국민당 정부는 미국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패전하여 타이완으로 후퇴하였고 중국본토는 중국공산당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중국공산당은 중국본토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면서 주변지역으로 확대해 나갔으며
소련의 통치형태를 답습함에 따라 중국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변화가 가속화 되었다.
1950년대 이후 중국 공산당의 내륙지향적인 개발정책으로
정조우(鄭州), 시안(西安), 우한(武漢), 란조우(兰州拉) 등의
내륙도시가 급속한 성장을 보였으나 내륙개발정책이 큰 실효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딩사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정책에 따라 1970년 대 말부터
‘4대 근대화’에 의한 경제개혁을 단행하여 외자의 유치를 위해
해안지역에 5개 경제특구와 14개 경제개발구를 설정하여 개방정책을 폈다.
그 결과 선전(深玔), 주하이(珠海), 샨터우(汕頭), 샤먼(廈門), 하이난(海南) 등의
5개 경제특구와 다롄(大連), 친황다오(秦皇島), 톈진(天津), 옌타이(煙台),
칭다오(靑島), 롄윈(連雲), 난퉁(南通), 상하이(上海), 닝보(寧波), 원쪼우(溫州),
사먼(厦門), 광저우(廣州), 쭈하이(珠海), 웨이하이(北海) 등
14개 개방도시가 급속히 성장하였다.
개방정책의 성공으로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룬 중국은
다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아시아의 중심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을 여행하다보면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이후에 발전한 경제특구와
개방도시가 내륙에 있는 중국의 전통도시와는 전혀 다른 풍경과 분위기를 보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이들 경제특구와 개방도시는 기존의 사회주의체제 속에서
성장한 기존의 중국도시와는 달리 정책적으로 자본주의의 물결에 두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들 경제특구와 개방도시에 거주하기 위해서
중국인은 학력수준, 출신성분 등의 제한을 받는다고 한다.
중국을 여행할 때는 막연하게 여행지역을 정해서는 않된다.
이러한 중국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알고 여행지역을 결정해야할 것이다.
중국에는 유적은 남아 있으나 유물은 거의 볼 수 없다.
이것은 국공내전에서 패한 장개석이 타이완으로 철수하면서
중국의 유물을 모두 군함에 실어 가 버렸기 떄문이다.
중국의 역사적 유물은
타이완의 수도인 타이베이에 있는 궁정박물관에서 관람할 수 있다.
소장한 유물의 양이 엄청나기 떄문에 매월 전시유물의 종류를 바꾸고 있으며,
전시된 유물을 보는데 한나절이 걸린다.
유적을 보기 위해서는 중국, 유물을 보기 위해서는 타이완....
분단된 국가의 아픔이 아닐까?
중국의 경제특구와 개방도시
개방도시, 칭다오(靑島)
개방도시, 상하이(上海)
경제특구, 선전(深玔)
영토는 넓지만 인구는 많고 농토는 부족하여
'일생에세번 기아에 허덕인다'는 나라
중국의 영토는 넓지만 인간활동에 활용할 수 있는 토지, 특히 경지가 많지 않다.
이것은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나 사막이거나, 기후적으로 건조하거나 한냉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지비율은 11%에 불과하여
13억이 넘는 중국의 인구를 부양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중국을 지형의 특성에 따라 구분하면 대산지와 사막지역인 서부와 평야와
구릉지역인 동부로 구분할 수 있다.
이중 서부의 대산지와 사막이 차지하는 범위가 국토의 3/4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서부에 있는 칭하이·티베트고원과 몽고고원은 대산지이고
신쟝(新彊)분지는 사막을 이룬다.
중국의 지형
칭하이·티베트고원은
평균고도 3,500m에 달하며 주위에는 6,000m가 넘는 고산으로 둘러 쌓여 있는
세계 최대의 고원이다. 이 고원의 서쪽에 있는 파미르고원으로부터
대산맥들이 방사상으로 달리고 있다.
카라코람산맥과 히말라야산맥이 동남쪽으로 달리고,
그 북쪽에는 쿤륜산맥이 동쪽으로 달리며 그 사이에 티베트고원이 있다.
쿤륜산맥에서 분기하여 북동쪽으로 달리는 알틴산맥과 쿤륜산맥 사이에
차이다무분지(해발 3,000m)와 칭하이호(해발 3,500m)가 위치하고 있다.
알틴산맥은 동쪽으로 달리면서 중국본토의 북부와 남부의 자연적 경계를 이루는
친링(秦嶺)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이 고원에서 동부 및 동남아시아의 대하천인 황허, 양쯔강, 메콩강, 샐윈강,
브라하마프트라강 등 이 발원하여 깊은 협곡을 형성하면서
동쪽과 남쪽으로 흘러간다.
몽고고원 및 신쟝(新彊)분지는 타림분지, 중가리분지, 몽고고원 등으로 세분된다.
파미르고원에서 동북쪽으로 달리는 텐산(天山)산맥을 경계로
남쪽에 타림분지와 북쪽에 중가리분지로 구분된다.
몽고고원은 동쪽에 따싱안링(大興安嶺)산맥, 서쪽에 알타이산맥,
남쪽에 인산(陰山)과 허란(賀蘭)산맥에 둘러 쌓인 고원분지로
평균고도가 1,000-1,500m이고 내부에서는 소산맥과 분지가 발달해 있다.
기후가 건조하여 사막과 초원으로 되어 있으며
중남부에 있는 고비(gobi)사막을 경계로 북쪽에 외몽고(外蒙古)와
남쪽에 내몽고(內蒙古)로 구분된다.
북부고원과 타림분지
타클라마칸사막
동부의 평야 및 구릉지역은
따싱안링(大興安嶺)산맥과 타이향(太行)산맥을 연결하는 일직선의 단층선을 경계로
서쪽에 구릉지대가 있고, 동쪽에 평야지대가 있다.
서쪽의 구릉지대는 서부산지가 동쪽으로 향하면서 깊은 협곡과 황투(黃土)고원,
친링(秦嶺)산맥, 윈꾸이(雲貴)고원을 형성하고
그사이에 위수(渭水)분지와 쓰촨(四川)분지가 있다.
동쪽의 평야지대는 만주평야와 쑹화(松花)강, 랴오허(遼河)강 유역,
황허의 화북평야, 장강의 화중평야, 주쟝강(珠江)의 화남평야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도 2,000m 이상인 친링산맥이 동계에 북쪽으로부터 내습하는 한냉한 바람을
차단하여 쓰촨분지를 온난하게 하고,
하계에는 습윤한 남동몬순의 북진을 막아주기 때문에
그 동쪽의 화이허(淮河)강과 함께 중국 북부의 건조한 냉량기후와
중국 남부의 고온습윤한 기후의 자연적인 경계가 되고 있다.
중국의 경지율이 높지 않는 또 다른 요인은 기후이다.
중국은 위도에 따라 기온 차이가 크다.
최북단의 헤이륭강(북위 53˚)과 최남단의 남사군도(북위 4˚)간의
위도차가 49˚에 달하여 기온의 남북차가 현저하다.
화중지방의 아열대 기후에서 화북지방의 냉대기후까지 걸쳐 있으나
중앙부의 대부분은 온대기후이다.
기온의 연교차 크며 고위도지역으로 갈수록 대륙성기후의 특성이 강하다.
또 강수량도 해안지방에서 내륙지방으로 갈수록 감소한다.
신쟝성의 띠화를 제외한 모든 도시는 계절풍의 영향을 받아
수개월 동안 건조기간이 지속되고 반대로 여름동안은 최대의 강수량을 보인다.
해안도시인 홍콩(2,291mm)과 상하이(1,121mm)는 다우지역이지만
서부내륙에 있는 띠화( 252mm)와 몽고의 울란바토르(217mm)는 소우지역이다.
중국의 강수량 분포
그 결과 중국의 대부분 지역이 계절풍(monsoon)에 속하지만
중국 본토(Proper China)의 남쪽에 아열대기후와 온대기후가 분포하고,
북쪽으로 갈수록 온대기후와 냉대기후의 차례로 분포하고 있다.
서쪽은 북부에 사막기후가 분포하고 남쪽에 고산기후가 분포하고 있어
농업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농업이 안정적으로 이루어 질수 있는 지역은
동부의 온대기후지역의 평야지대와 구릉지대에 국한된다.
중국의 기후 분포
이러한 자연환경의 차이 때문에 중국의 인구분포가 지역적으로
매우 불균등하여 대부분 동부의 평야지대에 집중해 있다.
중국 북부의 평야와 양쯔강 하류의 충적평야지역은
국토 면적의 10%에 불과하지만 중국인구의 약 40%가 집중해 있다.
특히 인구집중이 현저한 지역은 허뻬이성, 산뚱성, 허난성 중심의 북부평야,
양쯔강 중류 및 하류분지, 쓰촨분지, 시강과 주강의 델타 등으로
대부분 비옥한 충적평야이거나 항해가 가능한 하계망이 발달한 발달된 곳이다.
반면에 인구가 희소한 지역은 헤이룽장성의 국경지대, 네이멍구자치구,
닝샤후이족자치구, 간쑤성, 칭하이성, 신장웨이우얼자치구,
시짱자치구, 윈난성 등은 국토 면적의 약 ⅔를 차지하지만
대부분 산지이거나 건조하거나 한랭한 지역이기 때문에
중국인구의 약 13%에 불과하다.
중국의 인구 분포
중국은 전통적으로 농업국이다.
최근 산업화와 도시화로 국가경제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점차 저하하고 있지만
주민의 반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는 세계적인 농산물 생산국이다.
그러난 국토의 대부분이 기후적으로 건조하거나 한냉하고,
산지가 많기 때문에 경지율이 11%에 불과하고,
13억이 넘는 대규모의 인구를 감안하면 농가의 경영규모는 극히 영세적일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빈번한 홍수와 한발로 중국인은
’일생동안 세번 기아에 직면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식량사정이 넉넉하지 않다.
먹는 것이 항상 모자라는 중국인에게는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떄문에
'의,식,주'라고 말하는 우리와는 대조적으로 '식,의,주'라고 말하고 있다.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한 중국에서는 어느 지방을 가더라도 가장 잘 되고
번성하는 장사는 바로 '음식 장사'이다. 낮뿐만 아니라 밤에도
모든 음식점이 거의 만원이다. 어느 음식점에 가도 사람들로 흥청거린다.
또 중국의 속담에 '나는 것은 비행기만 빼고,
다리 있는 것은 책상만 빼고 다 먹는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 요리 중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요리재료가 있는 것도
바로 열악한 식량사정 때문이라 하겠다.
중국에서 유명하다는 광동요리(관뚱차이), 사천요리(쓰추안차이)만이 아니다.
어디를 가나 흥청거리는 음식점에서 그들은 별 희한한 음식을 즐긴다.
비교적 비위가 좋은 사람도 중국인들이 먹어보라고 권하는
몬도가네식 음식 앞에선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맛을 느낄 겨를도 없다.
그저 두 눈 딱 감고 '이것도 경험이다'는 생각으로 꿀꺽 넘겨버려야 한다.
뱀고기나 뱀수프, 뱀피, 뱀쓸개즙 등 뱀 요리정도는 이상하거나
눈살 찌푸려지는 축에도 끼지 못한다. 원숭이의 골 요리나 골 수프가 있고,
거북이 요리, 개구리 내장 요리, 하다 못해 전갈 요리까지 있다.
음식의 양도 그렇다.
이름을 외우기가 어려울 정도로 음식점의 요리 종류는 웬만한 곳에가도
보통 50 내지 60종이 넘는다.
음식을 주문하면 보통 여러가지를 시키는데 십중팔구는 남게 시킨다.
중간쯤 가면 상에 접시 놓을 자리가 없어 두세 개를 포개 놓거나,
남은 음식을 다른 접시에 함께 담아 놓고 새 접시를 놓기까지 한다.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될 당시 중국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대지주와 부농이 경작지의 70%를 차지하고 있었다.
중국공산당은 지주제를 폐지하고 자영농을 육성하기 위한 토지개혁을 단행하였다.
1950-1952년간에 중·일전쟁과 국공내전으로 황폐한 농토를 회복시켜
농업의 생산량을 크게 증대시켰다.
1958년에 인민공사(人民公司 commune: 구 소련과 북한의 집단농장과 같이
지역단위로 인민들을 집단으로 공동주택에 수용하여 취사, 식사, 보육,
교육, 농사 등 모든 활동을 공동으로 하게하여
생산량의 일부를 공동으로 분배하는 제도)를 설립하여
5억의 농민을 약 25,000개의 인민공사에 배치하였다.
1965년에 중국 농촌은 지난 3년간의 식량위기에서 겨우 벗어났으나
1966-1976년간에 ‘문화대혁명’으로 도시와 농촌이 대혼란에 빠졌다.
1976년에 극좌파의 타도와 1978년에 '딩샤오핑'의 정책 전환으로
농촌이 활기를 되찾았고, 가격과 세금, 금융, 정부의 농산물매입 등이 개선되고
농가에 자영지가 부활되어 다각경영이 인정되어 농촌에 자유시장이 출현하게 되었다.
중국은 지역에 따라 농업활동의 형태가 다르고 주민들의 주식이 차이가 있다.
중국 농업활동의 지역적 분포를 보면 동쪽의 중국본토에서는
맥작과 미작이 이루어지는 반면 서쪽의 주면부에서는 목축과 오아시스농업이 이루어고 있다.
중국 본토는 북부에 맥작지대가 분포하고 남부에 미작사지대가 분포한다.
북부의 맥작지대에서는 봄밀, 봄밀-콩, 겨울밀-기장, 겨울밀-고량 등
4개 농업형태가 이루어 지고, 남부의 미작지대에서는 쓰촨 벼, 벼-밀, 벼-차,
고지대 벼, 벼 2기작 등 5개 농업형태가 이루어 지고 있다.
서쪽 주변부에서는 내몽고 목축, 시짱 목축, 오아시스농업, 봄밀 등
4개 농업형태가 이루어 지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을 여행하다 보면 중국 본토에 해당하는 동부의 화북지방
주민들이 밀을 주식으로 하는 반면 화중 및 화남지방의 주민들은
쌀을 주식으로 하는 것을 보게 된다.
또 서쪽 주변지역의 경우 동쪽의 중국본토와는 전혀 다른 유목생활을 하는
주민생활을 볼 수 있다.
중국의 농업지대
자연, 문화의 영향을 받는 농업의 지역적인 차이 떄문에
중국의 요리는 크게 북부요리, 동부요리, 서부요리, 남부요리 등으로 구분된다.
북부 요리
북부 지방에서는 전통적으로 주식이 쌀보다 밀이나 기장이다.
가장 보편적인 요리로는 자오쯔(찐만두), 춘쥐안(스프링롤)이 있다.
유명한 중국 요리인 북경 오리 요리에도 전형적인 북부 요리의 재료들이 들어간다.
밀전병, 파, 중국 된장 등이다.
북부는 반찬이 한정되어 있어 보통 담수어나 닭고기 요리에 치우쳐 있다.
양배추는 어디서나 볼 수 있고 겨울이면 기차, 버스, 트럭의 한 귀퉁이에 항상 양배추가 있다.
한때 다른 지방에서는 구워 먹는 것을 야만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북부 지방에서는 흔한 조리법이다.
북부 요리는 주로 찌고, 굽고, 불꽃을 일으키며 볶는데 볶는 조리법이 가장 흔하다.
동부요리
재료와 양념들이 다양해 매우 많은 요리들이 있다.
동부에서도 불꽃을 내며 튀기는 조리법을 사용한다.
그러나 전세계에 알려진 전형적인 중국의 튀김이 아니라
중국식 팬에 살짝 볶는 방법을 더 많이 쓴다.
또 다른 조리법 중 하나는 고기를 간장, 설탕, 양념들을 넣고 천천히 끓이는 것으로
푸졘(福建)에서 대만을 거쳐 여러 나라로 퍼져나갔다.
실제로 푸졘의 음식들은 주로 기름지고 육류가 많으며 독특한 풍미가 있다.
채식요리도 매우 발달했다. 동부 지역은 중국 간장과 술로도 매우 유명하다.
서부 요리
서부요리는 고추를 사용하는 것으로 매우 유명하다.
고추는 청대 초기에 스페인 무역상을 통해 들어왔다.
쓰촨 요리는 땀을 발산시켜 몸을 건조하게 만들기 때문에
습기가 많은 지역에 어울린다.
돼지고기, 가금류, 채소, 대두가 반찬의 주재료이다.
여기에 여러 종류의 버섯,
죽순같이 산에서 구할 수 있는 채소들과 다양한 양념을 곁들인다.
양념은 많이 하는 편이다.
고추는 쓰촨 통후추(화자오花椒), 마늘, 생강, 양파와 함께 자주 쓰인다.
보통 육류를, 특히 후난 지역에서는 양념하거나 절이거나
다른 과정을 거친 후 살짝 볶거나 불꽃을 일으키며 볶는다.
남부 요리
남부요리는 보통 세계인들이 많이 알고 있는 중국 요리다.
해외에 나간 중국인들이 보통 광둥 출신이기 때문이다.
습한 기후와 많은 강수 때문에 중국인들이 한대에 이 지역에 처음으로
들어온 이후로 쌀이 주식이었다.
동부 요리와 마찬가지로, 남부 요리도 다양한 재료를 이용한다.
남부의 경우 이국적인 재료들이 더 많다.
가장 많이 쓰는 조리법은 살짝 볶는 것이고 다음이 찌는 것이다.
딤섬이 남부 요리다.
해외에 있는 중국인들은 여전히 주말이면 함께 모여 얌차를 즐긴다.
조리법도 그 다양함이 절정에 달했다.
절제된 북부 요리나 소박한 서부요리와 달리 세련되었다.
남부인들은 미식가이면서 개, 쥐, 너구리, 원숭이, 도마뱀,
고양이를 즐기는 이국적인 입맛으로 매우 유명하다.
자원이 풍부한 나라
중국은 세계최대의 인구를 가진 국가로 인적자원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국토가 방대하여 다양한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특히 광물자원은 충분한 지질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그 매장량을 정확히 평가할 수 없다.
최근 탐사결과 130여 종의 광물이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 중에 텅스텐, 주석, 안티몬, 아연, 리튬, 프랑슘, 티탄, 황철석 등은
세계 최대의 매장량을 가지고 있고, 석탄, 철광석, 구리, 알루미늄,
몰리브덴, 납, 수은, 인(燐), 붕산 등도 상당히 매장되어 있다.
그러나 함유량이 낮은 빈광(貧鑛)이 많다.
석탄은 중국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자원 중의 하나이다.
세계 석탄 매장량의 10%가 매장되어 있으며,
석탄 생산량(2000년)이 9억 9,800t으로 최대 생산국을 이룬다.
석탄의 대부분이 만주를 포함하는 북부에서 생산되며 북서부에서도 많이 생산된다.
이중 허뻬이지역의 생산량이 가장 많다.
중국의 철광석 매장량은 80억-1,000億t으로 추정되며,
이는 21세기까지 개발할 수 있는 충분한 양이다.
그러나 함유율이 낮은 빈광(貧鑛)이 90% 이상이고 부광(富鑛)은 분산되어 있어
개발에 불리하다. 주요 철광산지는 라오닝성의 안산(鞍山), 번치(本溪),
내몽고의 빠오도우(包頭) 등으로 50년 이상 생산이 가능하다.
주석, 텅스텐, 안티몬 등이 남부의 난링(南嶺)산맥과
윈꾸이(雲貴)고원에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다.
이 중 텅스텐은 세계 최대의 매장량을 가지고 있으며 쟝시성(江西省)의
칸조우 지방에서 대부분이 생산된다. 안티몬은 후난성(湖南省)에 집중되어 있고,
주석은 대부분이 윈난성(雲南省)에서 생산된다.
중국은 세계적인 석유생산국이다.
1960년에 다칭유전에서 석유 생산을 이루어지기 전에는 위먼, 두산쯔,
쿠라마이, 렁후 등의 북서부 유전에서 공급되었으나
부족분을 구 소련으로부터 수입했다.
22개 성과 직할시, 자치구 등에서 새로운 유전과 가스전이 발견되고 있으나
그 매장량에 관해서는 이견이 많다.
1978년 이후에는 해양석유개발이 시작되어 보하이, 통킹만, 하이난섬 해역에서
석유층의 발견으로 서방의 석유회사와 합작이 진행되고 있다.
서부의 타림, 준가얼, 차이다무 등에도 유전이 있으나 동부공업지역으로 수송 비용이 많다.
주요 유전은 헤이룽성의 연산 5,00만톤을 생산하는 따칭(大慶),
산뚱성의 성리(勝利)을 중심으로한 보하이만(渤海灣), 허뻬이성(河北省)의 따깡,
후뻬이성(湖北省)의 창위안(淸苑), 라오닝성 보하이만 부근의 판셴,
지린성(吉林省) 창춘 북쪽의 푸위, 신쟝성의 코라마이, 깐수성의 위먼(玉門) 등이 있다.
최근에는 쓰촨지구와 칭하이성(靑海省)에서도 많은 량이 발견되고 있다.
천연가스도 세계적인 생산국으로 스촨지방이 독점적인 산지를 이룬다.
유혈암(oil shale)은 푸순(撫順)과 광뚱성의 마오밍(茂名)의 2대 산지가 있다.
중국의 광물자원과 공업의 분포
중국은 세계적인 포장수력를 가진 국가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력자원이 산업중심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남서지방에 집중해 있기 때문에 개발효과가 작다.
이 때문에 포장수력의 개발이 주로 동부연안지방,
양쯔강과 황허강 중류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중 2006년에 완공된 쌴샤댐은
세계 최대규모로 1일 발전량이 1,820만kwdp 달한다.
쌴샤댐
개혁과 개방으로 급속히 변하는 나라
194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의 공업은 외국자본에 의해 개발되었다.
동부해안지역과 양쯔강 저지에 집중한 방직, 제분, 담배 등의 경공업과
일본인들이 개발한 북동부 지린성(吉林省)과 랴오닝(遼寧省)에 중공업 정도였다.
더구나 장재스(蔣介石)가 이끄는 국민당과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끄는 공산당간의
국공내전(國共內戰)으로 국가가 혼란에 빠져 있었다.
1949-1957년간에 중국 본토를 장악한 공산당은 마오쩌둥(毛澤東)의
지도하에서 비교적 순조롭게 경제 성장을 이룩하였다.
마오쩌둥은 근대에 중국을 점령한 서구열강에 대한 반감으로
해안지역의 개발을 포기하고 서진정책을 수립하여
중국의 서부 내륙의 개발에 치중하였다.
1950년대부터 공업개발이 시작되어
내륙지역인 충칭(重慶), 청뚜(成都), 란조우(蘭州), 꾼밍(昆明) 등에
새로운 공업지역으로 부상하였다.
1953년부터 5개년 계획을 착수하여 중화학공업의 발전에 우선을 두었으나
자본 부족, 숙련노동자의 양성과 비효율적인 생산성문제,
과학적 기술적인 전문지식의 부족,
교통과 통신의 미비 등으로 공업화의 속도가 완만했다.
1953년부터 동력, 원자재, 노동력 등을 고려하여 수 차에 걸쳐
경제개발계획을 수행함으로서 6개 지역에 공업이 집적되어 있다.
6개 공업지역의 공업 생산량은 1957년에서 1974년까지 상대적인 변화는 없으나
동부공업지역에서 인구 1,000만명의 상하이가 단일 생산지역으로
가장 많아 중남부, 북서부, 남서부 등 3개 공업지역의 생산량을 능가한다.
뻬이징-텐진을 중심으로 하는 북부공업지역은
주요 공업지역으로 부상한 반면 남서부공업지역은 상대적으로 쇠퇴하였다.
1960-1962년간에 마오쩌둥(毛澤東)의
‘대약진’과 ‘인민공사(人民公社)’ 정책으로 인해
중국은 마이너스성장을 보이기 시작했다.
1959년부터 3년간 계속된 자연재해와 1960년에 소련의 원조단절로
중국 경제가 더욱 침체되었다. 비록 1963년부터 경제상황이 개선되기 시작했으나
사상을 우선하는 정치체질과 권력투쟁으로
1978년까지 평균경제성장률이 2% 정도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중국은 공산주의가
지닌 경제체제의 결함을 해결하기 위하여
1978년에 ‘4대 근대화’의 경제개혁에 착수하였다.
1978년에 제정된 신헌법의 전문에 소위 4개의 근대화 계획을 명기하고 있다.
금세기내에 농업, 공업, 국방, 과학기술을 근대ㅣ작하였하고
국민경제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 올리려고 하고 있다.
신헌법에 의거해서 1978년부터 경제개발 10개년 계획을 수립하였다.
농기계의 보급을 통한 곡물생산 증대, 철강단지, 금속단지, 석탄단지,
유전 및 천연가스, 발전소 등의 건설, 간선철도, 항만 등의
운송망을 정비를 위한 대형 프로젝트 건설을 통한 공업생산의 획기적 증대 등 이었다.
또 자영농 육성, 농산물가격 인상, 중공업의 일방적인 발전 억제,
농업과 경공업에 대한 투자 증대,
생활필수품과 내구소비재의 생산 증대 등에 치중하였다.
지역격차를 해소하기 위하여
서남(西南), 서북(西北), 중남(中南), 화동(華東), 화북(華北), 동북(東北) 등
6개의 경제구로 나누어서 조화있는 경제발전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자금 부족과 미약한 전력 및 수송부분으로 인해 3년간 조정기간 후
계획을 수정하여 신 10개년 계획을 구상하여 추진하였다.
6대 경제특구(經濟特區)와 14대 개방도시(開放都市)를 설치하여
경제개방(經濟開放)을 서두른 결과 큰 효과를 얻었다.
특히 개혁개방정책을 시도한 덩샤오핑(鄧小平)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추진하여 경이적 성장을 지속해왔다.
국제통화기금은 ’세계경제전망보고서‘에서 현재의 경제성장율을 유지하면
중국이 10년 내에 미국과 유럽연합 수준에 달하며,
15년내에 세계경제의 20%를 점유하여 서구경제를 압도할 것으로 예측했다.
중국은 국민총생산목표를 2010년까지 2000년의 배로 늘리고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 현대화를 실현하고 민주적이며 문명화된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중국의 도시성장은 19세기 말-20세기 초의 개항에서 비롯된다.
서구의 기술과 자본이 개항장에 도입되면서 개항장의
거주자에게 새로운 직업의 기회가 주어졌다.
그 결과 중요한 개항장인 상하이(上海), 꽝조우(廣州), 행조우(杭州),
산토우, 난징(南京), 우한(武漢), 칭따오(靑島), 텐진(天津), 따렌(大蓮) 등을
비롯한 해안이나 대하천 유역의 100여개 도시가
농촌지역으로부터 유입된 인구로 급속히 성장하였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농업국가인 중국은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이나 공업을 천시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에
1950년대까지 도시화는 매우 저조하였다.
1953년에 중국의 도시지역 인구수는 전체 인구의 12-14%에 불과했다.
1950년대부터 급격한 인구증가와 농촌인구의 도시로 이동으로
급속한 도시화가 진행되었으며, 특히 1970년대 이후 그러하였다.
1981년에 도시화율이 20%,
1988년에는 36.6%, 2005년에는 40.4%로 크게 증가하였으나
여전히 세계 평균(48.7%)보다 낮았다.
1950년대 이후 중국 공산당 정부의 도시개발정책이 대도시 성장 억제,
중.소도시의 발달 촉진, 해안지역으로부터 원거리에 있거나 자원에
인접한 도시의 공업 중심지로 개발하는데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
내륙도시의 발달과 성장을 자극하여
정조우, 시안, 우한, 란조우, 등이 급속히 성장을 하였다.
최근 중국 정부가 홍콩과 마카오에 인접한 도시에
수출지향산업을 장려함으로서 이 지역의 해안도시가 급성장을 하게 되었다.
또 6대 경제특구와 14대 개방도시를 설치하여 경제개방을 서두르고 있어
선전(深玔), 주하이(珠海), 샨터우(汕頭), 샤먼(廈門), 하이난(海南) 등의
5개 경제특구와 다롄(大連), 친황다오(秦皇島), 톈진(天津), 옌타이(煙台),
칭다오(靑島), 롄윈(連雲), 난퉁(南通), 상하이(上海), 닝보(寧波), 원쪼우(溫州),
사먼(厦門), 광저우(廣州), 쭈하이(珠海), 웨이하이(北海) 등
14개 개방도시가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뻬이징을 포함하여 공업생산에 있어서 비교적 풍부한 자본과
기술 축적으로 국가경제에 크게 기여하는 도시는
경제기반과 활동이 변화하게 되면서 크게 성장하게 되었다.
따라서 수출지향적 공업도시가 소비지향적인 서비스도시나
역사도시 보다 급성장을 하였다.
따라서 중국의 해안지역에 있는 도시들은 과거 서구열강들이 만들어 놓은
지배흔적 위에 최근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으로 외국자본이 투자가 이루어져
근대와 현재의 모습이 혼합되어 있는 곳이다.
중국 경제의 경제특구와 개방도시
개방도시, 칭다오(靑島)
개방 도시, 상하이(上海)
경제특구, 선전(深玔)
다민족(多民族)국가
중국은 세계 최대의 인구대국으로 56개 민족이 살고 있는 다민족(多民簇)국가이다.
한족이 약 93%를 차지하고 55개 소수민족이 약 7%를 차지하고 있다.
소수민족의 인구 증가속도가 한족보다 빨라서
장래에는 소수 민족의 비율이 더 높아질 것이다.
한족은 주로 비옥한 동부의 평원을 중심으로 중국본토(Proper China)에 거주하면서
역사적으로 수 차에 걸쳐 강력한 왕조를 탄생시켰다.
비록 북쪽의 유목민이 남하하여 한족을 지배하기도 했으나
장기적으로 한족의 문화에 압도되어 동화되었다.
소수민족은 주로 중국의 북쪽, 서쪽, 남쪽 주변부에 거주하고 있다.
소수민족간의 인구수는 매우 차이가 크다.
이 중에서 장족(壯族), 후이(回族), 위구르족, 이족(彛族), 티벳족, 먀오족(描族),
몽고족, 푸이족(布依) 조선족 등의 비율이 큰 반면.
등인(僜人), 샬바인(夏爾巴人) 등과 같이
민족성분이 식별되지 않은 인구가 약 70여 만명이 있다.
소수민족은 그들의 고유한 풍속, 언어, 관습을 가지고 있다.
중국의 주요 민족 분포
중국내 소수민족의 구성과 지역적 분포를 자세히 보면
아래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더욱 복잡해 진다.
심지어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중심지 중의 하나인
남서부의 윈난성(雲南省, 云南省)에는 무려 52개 민족이 거주하고 있어
이들의 생활모습이 유적, 경승지, 풍경 등과 더불어
이 지역의 좋은 관광자원이 되고 있다.
중국 주요 소수민족의 구성과 분포지역
민족 |
인구(%) |
주요 분포 지역 |
좡족 |
17.5 |
광서, 운남, 광동 |
만주족 |
11.1 |
요녕, 길림, 흑룡강, 하북, 북경, 내몽고 |
후이족 |
9.7 |
영하,감숙,신강,청해,하남,하북,산동,운남,북경,천진,안휘, 강소, 사천, 귀주, 길림, 흑룡강, 요녕, 섬서, 내몽고 |
먀오족 |
8.3 |
귀주, 호남, 호북, 운남, 광서, 사천, 해남 |
위구르족 |
8.1 |
신강 |
이족 |
7.4 |
사천, 운남, 귀주 |
투쟈족 |
6.4 |
호남, 호북 |
몽고족 |
5.4 |
내몽고, 신강, 요녕, 길림, 흑룡강, 감숙, 청해, 하북 |
티벳족 |
5.2 |
티벳, 청해, 사천, 감숙, 운남 |
부이족 |
2.9 |
귀주, 운남 |
둥족 |
2.8 |
귀주, 호남, 광서 |
조선족 |
2.2 |
길림, 요녕, 흑룡강, 내몽고 |
바이족 |
1.8 |
운남, 귀주, 호남 |
야오족 |
1.6 |
광서, 호남, 운남, 광동, 귀주 |
하니족 |
1.4 |
운남 |
카자흐족 |
1.3 |
신강, 감숙 |
다이족 |
1.2 |
운남 |
서족 |
0.7 |
복건, 절강, 강서, 광동 |
리수족 |
0.6 |
운남, 사천 |
거라오족 |
0.5 |
귀주 |
라후족 |
0.5 |
운남 |
둥샹족 |
0.4 |
감숙, 신강 |
와족 |
0.4 |
운남 |
수이족 |
0.4 |
귀주, 광서 |
나시족 |
0.3 |
운남 |
챵족 |
0.2 |
사천 |
투족 |
0.2 |
청해, 감숙 |
시버족 |
0.2 |
신강, 요녕 |
무라오족 |
0.2 |
광서 |
키르기스족 |
0.2 |
신강 |
다우르족 |
0.1 |
내몽고, 흑룡강 |
징퍼족 |
0.1 |
운남 |
리족 |
0.1 |
광동 |
사라족 |
0.1 |
청해, 감숙 |
부랑족 |
0.1 |
운남 |
마오난족 |
0.1 |
광서 |
중국에 다양한 민족들이 거주하고 있는 데는 오랜 역사동안 이루어져 온
다양한 역사작인 사연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중국의 영토확장으로 이들 소수민족들의 생활터전이 중국 영토로 합병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한나라와 청나라 시대에
중국의 영토가 이들 소수민족이 살던 주변부까지 크게 확장되었다.
중국을 여행하다보면 한족들이 주로 거주하는 중국본토(Proper China)로 부터
북쪽, 서쪽, 남쪽 주변부로 갈 수록 한족과는 모습이 다른
소수 민족들의 생활모습을 만나는 것이 이때문이며,
최근 티벳트와 신장위구르자치구의 독립을 위한 움직임도
중국이 무력으로 이들 소수민족의 생활터전을
강제적으로 중국 영토로 합병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소수 민족들은 제2차 대전 이후 중국의 국권이 회복된 후
야만인으로 취급되어 한족으로 부터 많은 차별과 억압을 받았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 설립 후에는 소수민족과 한민족 간에
우호적인 공신체제(共信體制)에 힘을 기울여 소수민족의 언어,
풍습 등을 존중하였다.
비교적 인구가 많은 소수 민족에 대해서는 구역자치를 인정하고
성(省)과 동일한 일급 행정을 가진 내몽고, 티벳 등 5개의 자치구를 설정하였다.
이것은 다민족 국가인 중국에서 민족 간의 단결을 유지하는 것이
국가의 통일과 안정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첫댓글 대단히 방대한 자료입니다..
이처럼 중국은 대단한 나라입니다...
역시 대국입니다...
비교적 인구가 많은 소수 민족에 대해서는 구역자치를 인정하고
성(省)과 동일한 일급 행정을 가진 내몽고, 티벳 등 5개의 자치구를 설정하였다...
땅도 인구도 엄청납니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농업국이다.
최근 산업화와 도시화로 국가경제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율이 점차 저하하고 있지만 중국은 전통적으로 농업국이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농업국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관광국이 될 것이다...
중국 본토와 주변지역은 정치, 인종, 문화 등의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중국을 여행할 때, 특히 서쪽으로 가다보면 동쪽의 한족과는 전혀 다른 중동인과 유사한 얼굴과..
대조적인 생활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종족도 어마어마하지요...
중국스럽습니다..
정말로 중국은 특별합니다...
선택받은 나라이지요...
지역격차를 해소하기 위하여
서남(西南), 서북(西北), 중남(中南), 화동(華東), 화북(華北), 동북(東北) 등
6개의 경제구로 나누어서 조화있는 경제발전을 시도하였다...
어디를 ㅡ가나 환상입니다....
중국의 인구수를 보면, 가장 최근 통계에 의하면 약 13억 3,500만 명(2009년 말)이다.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인구대국으로 세계인구의 약 20%가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좌간 큰 나라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젼이 있는 나라이지요..
하지만 비리와 부정부패는 쉽게 막지 못할 그런 나라입니다...
부조리와 비리가 엄청난 나라입니다...
중국의 소수 민족들은 제2차 대전 이후 중국의 국권이 회복된 후
야만인으로 취급되어 한족으로 부터 많은 차별과 억압을 받았다. 아직도...
암튼지 대단한 중국입니다...
비교적 인구가 많은 소수 민족에 대해서는 구역자치를 인정하고
성(省)과 동일한 일급 행정을 가진 내몽고, 티벳 등 5개의 자치구를 설정하였다...
대단한 나라입니다...
중국은 언제 가도 색다르지요. 워낙 크니까요...
관광대국이니 그렇지요...
겁나는 중국입니다..
이런 중국을 우리는 무시치고 살지요...
중국사람은 그래 보이지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1949년-)로 구분할 수 있다.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기 전 2000여 년 동안 중국의 인구는 390만-1,370만 명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한 이후부터 명대 말기에 이르는 1,800여 년간 중국의 인구는 기본적으로 5,000만 명 전후를 유지하고 있었다....
중국의 인구는 정말로 대단합니다...
대단한 나라 중국입니다...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한 이후부터 명대 말기에 이르는..
1,800여 년간 중국의 인구는 기본적으로 5,000만 명 전후를 유지하고 있었다....
좋은 글과 역사적인 공부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