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운동의 정신이나 기풍(spirit/ethos)은 그 운동이 추구하는 정체성과 지향하는 비전과 방향성을 규정한다. 로잔의 정신은 과거 교회의 선교에서 자행된 잘못과 실패를 고백하는 겸손과 회개의 정신이었다. 복음을 전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좋은 소식으로 믿는 것이 마치 세상을 정복한 것처럼 하는 말이라든가 주제넘은 말로 들린다면, 비난을 달게 받겠다는 것이 로잔 운동의 정신에 드러난다. 왜냐하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사이며, 교회가 추구하는 나라는 세상의 제국이나 정치적인 이념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마 6:33)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과거의 실패를 깨닫고 하나님이 현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 모든 열방 가운데서 일하심을 감지할 때,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품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 복음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과 새 창조를 아우르는 통합적이고 총체적 성격을 드러낸다. 깨어지고 분열된 세상에 들려줄 수 있는 기쁜 소식인 복음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이야기이다.
복음은 오늘날 수많은 OTT(over-the-top)를 통해 판매되는 ‘스토리셀링’(storyselling) 현상에서 나오는 허구적이고 신화적인 ‘사이다 서사’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이야기이다. 성경적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았던 빌리 그래함(Billy Graham)과 존 스토트(John Stott), 50년 전 로잔 운동을 시작한 두 사람이 마음에 품었던 비전은 무엇이었을까? 복음 전도자이며 목회자인 그들이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울부짖는 신음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며 시작한 로잔 운동은 본질적으로 복음의 본질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복음을 이해하고 일상의 삶에서 구현하려는 몸부림 없이는, 복음의 전함이란 사건은 일어날 수 없다.
빌리 그래함이 이해한 복음은 잃어버린 영혼에 관한 안타까움이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파토스’를 상기시키며,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한 사도적 과업을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겼다. 즉, 빌리 그래함의 복음 전도와 세계 복음화에 대한 열정은 로잔 운동을 일으키고 지속시킨 핵심요소였다. 이와 더불어 1950년 런던의 올소울즈 교회의 교구사제로 임명된 존 스토트는 로잔 운동에 복음 전도와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통합하므로 글로벌 운동으로 이끈 인물이었다. 목회뿐 아니라 ‘복음주의 학생운동’(IFES)을 이끌며 줄곧 강조한 성경과 세상에 관한 존 스토트의 ‘이중 경청’(double listening)은 로잔 운동의 신학적 틀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복음과 문화에 대한 그의 균형 잡힌 시각은 복음과 문화 사이에서 발생하는 창조적 긴장을 총체적으로 다루며, 특히 십자가 중심의 복음을 통한 창조세계의 회복이라는 중대한 유산을 남겼다. 빌리 그래함과 존 스토트는 여러 신학적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세계 복음화에 대한 헌신이라는 공통분모와 우정과 상호 존중을 통해 로잔 운동을 확산하고 지속한 촉매제였다.
지난 50년 동안 세 차례의 로잔대회(congress)를 통해 세계 복음화를 위해 함께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누며, 기도하고 교제하며 선교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정신과 분위기(ethos)를 반영했다. 로잔 운동의 정신과 비전 그리고 성경적·신학적 원리를 담고 있는 변화하는 세상에서 불변하는 “온전한 복음을 온 교회가 온 세상에 전하자”라는 표어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위임령’(사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위임령을 포괄하는)과 연관된 종말론적 완성을 의미한다. ‘대위임령’이라는 과제의 완수를 위해 교회에 필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삶의 방식인 ‘겸손, 정직, 단순함’(Humilty, Integrity, Simplicity)이다. “교회여, 함께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나타내자”(Let the Church Declare and Display Christ Together)라는 주제로 열리는 제4차 로잔대회는 로잔 운동이 지난 50년간 지탱한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원리를 급속하게 변화하는 세상에 적용하는 과제를 제시한다. 오늘날 세계 교회 앞에는 세상이 제시하는 도전적 의제들을 받아들고 교회가 직면한 장애물과 도전을 숙고하고 행동해야 할 과제가 제시되었다. 제4차 로잔대회는 모든 사람을 위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고, 모든 사람과 지역을 제자 삼는 교회와 하나님 백성을 형성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또한, 이번 대회에 다루어질 복음과 교회와 세상에 관련된 이슈들을 통해 그리스도를 닮은 새로운 세대를 준비하므로 모든 공적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을 확산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접어든 지구촌은 생태계 위기, 전쟁, 지진, 기근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서구교회의 쇠퇴와 함께 한국 교회도 가나안 성도와 이중직 목회자의 증가, 절대 인구 감소와 노령화, 젊은 세대의 탈교회화와 탈종교화 현상의 심화, 동성애와 낙태 같은 윤리적 상대주의가 사회문화 전반에 만연하다. 한국 교회가 직면한 이러한 교회 내·외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올해 9월 열리는 제4차 로잔대회는 개신교 한국 전래 140년이라는 매우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급속한 성장과 침체를 경험하는 한국 교회에 매우 중대한 도전을 제기하며 새로운 개혁과 갱신의 활력을 불어넣고 복음의 능력을 회복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