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 가사에 대한 어느 댓글을 보고 이것저것 찾아본 뒤에 작성한 글입니다. 얼마 전에 왕조실록게시판에 ‘온주귤’ 기록을 공유했었는데요, 온주밀감이 유자랑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은 품종이라면 온주(溫州)가 이동되었다는 증거도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은 좀 더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프랑스 보르도(Bordeaux) 지역은 세계 최고의 와인 생산지로 알려져 있다. 지롱드(Gironde)강을 끼고 있는 보르도는 대서양으로 흐르는 이 하천을 기준으로 좌안(左岸)과 우안(右岸)으로 나뉘며, 레드와인의 대명사이자 와인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최고급 까베르네 소비뇽(Carbernet Sauvignon)과 메를로(Merlot) 품종을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까베르네 소비뇽이 생산되는 좌안과 메를로가 생산되는 우안 지역은 일명 ‘떼루아’에서 차이를 보인다. 식물이 자생할 수 있는 ‘토양’의 성질 차이가 그것이다. 토양을 구성하는 입자의 크기가 굵고 배수가 잘되는 좌안(메독, 그라브 등등..) 지역에서는 물을 덜 좋아하는 까베르네 소비뇽이 잘 자라고, 반대로 토양 입자의 크기가 작고 점토질 성분이 높은 우안(생떼밀리옹, 포메롤 등등..) 지역에서 자라는 품종은 상대적으로 젖은 땅을 좋아하는 메를로가 자생한다. 이 토양의 성분 차이가 포도 품종의 ‘결’을 좌우하며, 역사가 오래된 만큼 지역에 따른 와인의 특성은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진 상식으로 통한다. 묵직하고 떫은 맛이 강해서 장기숙성형에 적합한 품종(까베르네 소비뇽)은 주로 메독 지역 와인의 특징이고, 부드럽고 섬세한 풍미를 지닌 와인(메를로)은 생떼밀리옹이나 포메롤 지역 와인의 성격인 것이다. 당연히 모든 와이너리에서는 자연을 거스르는 모험 따윈 하지 않는다. 사업체 규모를 확장한다는 명목, 혹은 여러 품종을 생산해 보겠다는 욕심으로 자기가 소유한 땅과 어울리지도 않는 포도나무를 강 건너에서 옮겨와 심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유자(柚子)나무의 전래에 관한 기록을 보면, 신라 문무왕 2년(840년)에 중국에 있는 유자가 한반도 남부지역으로 전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해상왕 장보고가 무역을 통해 그 역할을 했다고 전한다..
이게 어째서 허구인지를 따져본다!
..
세계 어느 곳을 가더라도 마찬가지지만, 위 기사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반도 토양의 산성도는 ‘태생적’인 것이다. 다만, 농토를 개간하거나 인공조림을 하는 과정에서 생육조건의 변화는 일부 있었겠지만 야생 식물이 진화하는 곳은 여타의 기후조건과 맞물려 정해져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유자의 원산지는 대륙 양자강 상류지역이라 하는데,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대륙에서는 ‘야생’하는 유자나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게 뭘 뜻하는가. 반도와 열도에서는 인위적으로 관리해 주지 않으면 유자나무가 상품성을 갖춘 과실을 맺지 못한다는 의미다. 통일신라 때에 전래되었다는 과실이 1000년이 지나도록 번성하지 못했다는 것은 적합한 환경이 아니라는 뜻이다! 환경을 극복한 지역 산물이라고는 해도, 그 시절 투입되는 기술이나 인력 등을 고려하면 경제성과 상품성은 감소한다..
백번 양보해서 여타의 환경적 요인(기온, 습도, 강수량, 태풍의 영향 등등)은 별론으로 하자.
식물이 생장하는 기본은 뿌리가 접하는 토양이다. 토양의 성질 중에서도 산성도[酸度]는 무시할 수 없는 팩터다. 이것은 ‘pH’라는 단위로 측정을 한다. 잘 알려진 대로 ‘수소이온농도’라고도 하며, 농도가 몇 배인지를 따져서 수치화 하는 것이므로 수소 이온의 역수 값에 대해 상용로그를 취한 결과로 산인지 염기인지를 판별한다. pH가 1.0만큼 낮아질수록 농도는 10배 증가한다. 이를테면, pH6.0인 물질 속의 수소이온은 pH7.0인 물질이 함유하고 있는 수소이온의 농도의 10배다. pH5.0인 물질은 pH7.0인 물질이 함유하고 있는 수소이온의 농도의 100배다.
논밭을 일구어 농사를 짓는다고 할 때, 일반적인 농작물의 경우 토양의 pH값은 대략 6.0에서 6.5 사이일 때 작물이 잘 자란다고 알려져 있고, 과실수의 경우에는 보통 5.5에서 6.5 사이일 때가 적합하다고 한다. 특히 감귤나무는 pH5.0~6.0인 지역, 오렌지의 경우 pH6.0~7.5 정도의 토양이면 재배하기 용이하다.
그런데 한반도 땅은 어떠한가.
좁아터진 반도에,
그것도 산간지대가 70%나 되고 쌀도 넉넉하지 않아서 배고픈 땅에,
더군다나 토양의 산성도를 측정할 도구조차 없었던 문무왕 시절에,
반도 남해안 끄트머리에 사는 사람들이,
대륙 동남부 지역도 아닌 수 천 km 떨어진 내륙에서 생산되는 과실을,
그것도 유자 열매를 수입한 것도 아니고,
유자나무를 통째로 옮겨서,
남해안 지역에다가 탄산칼슘을 뿌리고 거기에 묘목을 심었다?????
...
이쯤 되면 가히 ‘판타지 공상과학소설’이다! 가야의 철기문명이 장강 유역에서 발생했다는 증거가 나오니까 “반도에 있던 가야인들이 장강 인근 지역으로 이주해서 철기를 만들고 그곳 원주민들한테 쫓겨나서 다시 반도로 되돌아왔다.”라는 주장 만큼이나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억설이다! 삼국시대 사람들이 이차방정식 해법을 알고 있었다는 얘긴 들었어도, pH값을 측정할 줄 알았다는 얘긴 들어보지 못했다! 그 시절에 칼슘과 마그네슘이 포함된 고토석회 수백 kg을 구해서 뿌렸다는 기록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반도의 농업은 어찌되었건 ‘노동 집약적’ 산업이고 ‘기술 집약적’ 산업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한국사람이라면 일제 강점기 때에 반도에 이주해온 사람들이 어떻게 터를 잡고, 어떻게 땅을 일구고, 어떻게 먹을 것을 구했는지는 굳이 역사를 몰라도 어깨너머로 들어서라도 알고 있지 않은가! 한반도는 토양의 ‘산성도’ 때문에 다채로운 식물들이 자생하기 어렵고, 무엇보다 농토를 확보하기 쉽지 않았다..
..
보르도 와인이라고 다 똑같은 보르도인가.
(뭐, 요즘은 블렌딩 전용 품종도 많이 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까베르네 소비뇽을 ‘이웃 마을’ 상떼밀리옹에 옮겨 심으면 곪아 터져서 술 못 담근다..
메를로를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지롱드 좌안에 옮겨 심으면 수확하기도 전에 말라 죽는다..
그러니까 사천성, 운남성에 있는 유자나무를 반도에 옮겨 심었다는 얘기는 새빨간 거짓말인 것이다!
기술이 현대화 되고 노동력을 절감하는 단계에 이르렀을 때에 상품작물의 생산이 활성화 되고 경제성을 갖추면서 시장에 유통되기 시작한다. 원산지라는 것이 밝혀지지 않은 다음에야, 한반도의 토양이 어떤 성질을 지니고 어떤 기후 조건에서 특정 작물이 생육할 수 있는지를 알았을 때 외래종이 전래되고 재배가 가능한 것이다.. 대구 사과가 되었든, 제주 감귤이 되었든, 보성 녹차가 되었든, 다 마찬가지다.
아래 지도에서 파란색으로 칠한 부분은 ‘석회암 지대’라고 알려진 곳이다.
검색해 보면, ‘한반도 자생식물의 보고(寶庫)’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올라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량의 칼슘과 탄산이온을 포함하는 ‘알칼리 토양’에서 여러 종의 식물을 발견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평안남도, 함경남도 남부 지역, 강원도 남부와 경북, 충북 일부지역으로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이는 반도 전체가 전반적으로 산성도가 높고 pH값이 낮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근거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대지의 항구 > - 백년설
버들잎 외로운 이정표 밑에
말을 매는 나그네야 해가 졌느냐
쉬지말고 쉬지를말고
달빛에 길을물어
꿈에 어리는 꿈에 어리는
항구 찾아 가거라
흐르는 주마등 동서라 남북
피리부는 나그네야 봄이 왔느냐
쉬지말고 쉬지를말고
꽃잡고 길을물어
물에 비치는 물에 비치는
항구 찾아 가거라
구름도 낯설은 영을 넘어서
정처없는 단봇짐에 꽃비가 온다
쉬지말고 쉬지를 말고
바람을 앞세우고
유자꽃 피는 유자꽃 피는 항구
찾아가거라
1941년에 발표된 이 노래를 들어보면 가사에 ‘유자꽃’이 등장한다. 외래종 몇 그루 심어놓고 거기에 꽃 몇 송이 피었다고 그걸 노래 가사에 실었을까. 유자꽃이 스스로 피는 지역으로 가라는 말이지 유자꽃을 피운 곳으로 가라는 말로 해석하면 곤란하지 않은가. 남산 식물원에 삼나무 몇 그루 있으니까 거북선 판옥선은 반도에서 제작한 것이 맞다고 하면 그건 논리도 아니다.
신라 문무왕 때에 유자가 전래되었다 함은,
삼국을 통일하고 영토를 확장하고 행정구역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품종이 자생하는 곳을 발견한 것이고, 그걸 가까운 본토 지역에 이식하려 했던 것으로 해석함이 타당할 것이며, 그 지역은 바로 조선(朝鮮)과 청(淸)이 국경을 접하고 있었던 장강 중상류 지역이었다는 사실로 결론지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외에는 달리 해석할 길이 없으며, 이것이 이 노래 가사의 배경이 아닐까 한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언제나 변함 없는 응원 고맙습니다...^^
한반도가 옛날에 사람이 거의 살지 못하는 지역이었죠…기본적으로 농사가 되어야 사람이 많이 사는데 산성토양이라 그게 안되는 것이죠. 현대에 한반도에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이 된 이유가 아마 비료가 만들어진 이후 일거라고 생각이 됩니다. 즉, 한반도는 비료 없으면 농사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강이나 하천이 가까운 곳은 땅이 기본 베이스를 갖추지 못하고, 식물이 번성하는 곳은 산간지역이니까요.
매우 탁월한 분석입니다. 아주 좋습니다. 대지의 항구.....유자꽃이 피는 대륙의 항구를 찾아가자.....로 해석하면 위 글과 딱 맞아 떨어지는 명쾌한 논리입니다..... 좋은 글...현명한 분석...계속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미력하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결국 대지의 항구라는 가사도 대륙조선을 보고 작사한 것이군요.
탁월한 분석이십니다. 잘 활용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고맙습니다,
1930년대~1940년대 노래 가사들을 좀더 면밀히 살피면 충분히 의심할 만한 단서들이 있을 듯합니다~
물에 비치는 물에 비치는 항구라는 싯적인 표현을 볼 때 파도가 넘실거리는 항구가 아니라면 대륙의 항구가 정답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