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갑니다
태백에서 출발, 영주를 거쳐 신경주로 갑니다
생전 들어보지 못한 역에 머물다 갑니다
뒤에 보이는 바위섬은 문무대왕이 주무시고 계신 대왕암입니다
미추왕릉입니다 관광객이 오래 머물러 할 수없이 사진에 담았습니다
낮에는 녹색, 밤에는 총천연색 . 감탄이 저절로 납니다
대릉원은 동부사적지와 원도심을 잇는 신라 왕족고분 유적지로 지난해 방문객만 132만 9114명으로 집계되는가 하면, 코로나19 확산세가 정점이었던 2021년에도 108만 1410명이 입장할 만큼, 경주를 대표하는 사적지다. 출처: 연간 133만명 찾는 경주 대릉원, 무료입장입니다
[동지]부터 [하지]까지 태양의 높이 변화곡선을 표현한 것이 첨성대의 옆면 곡선이라는 것입니다.
국보 31호 첨성대
첨성대는 백제 기술자를 초빙하여 만들었다
백제와 신라가 협력하여 만들었다 봐야겠죠.
첨성대 곡선을 저러한 모양으로 만든 것이 괜히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음은 어떤 분이 재미있게 적은 글입니다
우리 함께 기도해요
역사의 유물의 보물이 많은 경주를 위해서요.
지진으로 부터 자유 하기를요
우리 함께 기도해요
첨성대가 많이 허물어지지 않았기를요
2센티가 기울어 졌다니요
우리 함께 기도해요.
5.8 강진으로 놀라고 아픈 가슴들을요
여진에 다시 두려웁고
지진이 오면 재빨리 피할거라고
보따리를 싸 놓고 밤을 새우는 사람들을요.
이제는 우리나라도
지진에서 자유로울수 없다고
경상도 전체가 술렁이잖아요
우리 함께 기도 해요.
이것도 어서 속히 지나가라고요.
2센티 기운 것이 지진때문인지 이 학생들 때문인지...
휘문고등학생들 힘이 넘칩니다. 휘문동문들 한번 보시요 사다리도 없이 어떻게 올라갔는지
보문호수를 걷다보니 한 여인이 반겨줍니다
소노벨 호텔 로비입니다. 초가집, 기와집들을 돌아보다 돌아와 호텔에서 문명의 화려함을 느껴봅니다
동궁과 월지(안압지)가 사람들을 불러 모읍니다. 나이를 불문하고 연인들의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경주 최부자 마을에 들렀습니다.
경주 최부자집 이야기 최염 주손편 [오래된 약속
신라 신문왕2년(682)에 설립한 신라 최초의 국립대학인 ‘국학’이 있던 곳으로
교육기관인 국학의 변화는 고려시대에는 향학, 조선시대에는 향교로 이어졌습니다.
마을의 이름이 ‘교동’, ‘교촌’, ‘교리’ 등으로 불린 것은 모두 향교가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교촌리라 하여 교촌치킨도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쁜 정원들이 여기저기 있어 눈이 즐거웠습니다
교촌마을이란 쉽게 학교가 있는 마을이란 뜻입니다. 처음에는 교촌치킨이 떠올라 웃었습니다
골목길을 지나가면서 양쪽의 품위있는 기와깁과 정원수를 보니 양반들의 고고한 기품을 보는 듯 합니다
교촌리의 기와지붕 수리장면
이 곳은 경주시에서 외곽으로 좀 나가면 나오는 양동마을입니다
금개국이 멋진 배경이 되고 있는
경주 양동마을(慶州 良洞마을)은 양동리 북쪽 설창산에 둘러싸여 있는 유서 깊은 양반 집성촌입니다
안동 하회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규모가 크며,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조선시대 양반 씨족마을
재상이자 성리학자요 영남학파의 선구자가 되신 회재 이언적 선생을 배출한 6대 국반(國班) 여주이씨와
이조판서와 우참찬을 지내고 청백리에 녹선된 우재 손중돈 선생을 배출한 명문 도반(道班) 경주손씨가
서로 협동하고 경쟁하며 600여년의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영남 남인의 구심점 역할을 하면서 문과 31명 포함 과거 급제자가 총 116명에 달했으며,
이밖에도 수많은 학자와 충절대의 명장, 독립운동가를 배출하면서 그 명성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문무대왕께서 파도소리 시끄러워서 편히 주무실라나. 왜구를 물리치시느라 바빠서 파도소리가
들리지 않겠죠. 대왕님 이제 편히 주무시죠. 일본은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동창님들 함께 가는 날이 오겠지요?
첫댓글 덕분에 좋은 구경 잘했습니다
학창시절 경주 수학여행 때와는 완전 신판 경주네요ㅡ경주 최부자는존경 받을만한 분이시죠. 대단하지요ㅡ
역사공부 잘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