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이불루, 화이부치 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이불루 화이부치,
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입니다.
제가 전에 섬기던 교회를 건축할 때 마음에 늘 새기던 말이었습니다.
다시 교회 건축을 앞두고 다시금 이 문구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이 말을 교우들과 함께 다시 새기는 시간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교회를 짓는 다는 것이 사람의 힘과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좀 더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맡겨진 일을 수행하겠다는 고백과 다짐으로 오늘 이 말을 새겨봅니다.
검이불루, 화이부치라는 말은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삼국사기에 나오는 말입니다. 더 정확히는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조 15년 기록에 나오는 말이라고 합니다.
“춘정월(春正月)에 작신궁실(作新宮室), 즉 궁실을 새로 지었는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라는 뜻으로 김부식이 기록한 내용입니다.
이는 후대로 내려와 조선 경국전에도 비슷한 내용이 실립니다.
잠시 소개해 드리면요,
“궁궐의 제도는 사치하면 반드시 백성을 수고롭게 하고 재정을 손상하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고, 누추하면 조정에 대한 존엄을 보여줄 수가 없게 될 것이다.
검소하면서도 누추한 데 이르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러운 데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어떻습니까?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하지 않는다....
이렇게 정돈되면서 자존감 있게 겸양하지만 멋진 말이 또 있을까요?
원래부터 우리나라는 예절을 중시했습니다.
다른 이에 대한 예의를 지킴으로써 서로 더불어 존중하며 살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이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에 대해 바른 마음을 갖도록 했습니다. 이른바 수신(修身)인 것이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자기를 갈고닦아 내면의 실제적 양심을 기르는 것이 우선이고 대인관계를 원만하게 영위하여 공동생활을 조화롭게 하는 예절이 우리의 풍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우리나라의 예절은 철저한 자기성찰을 요구했습니다.
마음보다 밖으로 드러난 행위 즉 격식이 너무 요란한 것을 허례허식이라 했고요.
반대로 밖으로 드러난 행위가 너무 부족하면 실례라 한 것이죠.
그리고 이도 저도 아니면 아예 예의가 없다 하여 무례라고 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예로부터 겸손을 미덕으로 삼곤 했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는 속담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즉 과유불급이라는 사자성어를 아실 것입니다. 과공비례 즉 과한 공경은 사실은 예의가 아니라고도 했습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우리의 깊은 믿음을 표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자칫 예수님 당시 유대교의 율법의 지침처럼 형식만을 강조하지 않도록 자신을 살피고 또 살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주님보다 자신을 더 앞세우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 돌아보는 가운데 서로 존중하며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예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서로 사랑일 것입니다.
검소하지만 결코 누추하지 않고, 아름답지만 사치스럽지 않음...
교회의 외형은 물론 우리 신앙의 마음 가짐에도 이 말을 새기며 사는 오늘이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