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LA 폭동 1년
무엇이 문제인가 속시원회 말하자.
이정(4.29 폭동 피해자협의회 회장)
4.29 폭동이 일어난지 1년이 되는 지금 한인 피해업소 가운데 다시 문을 연 곳은 겨우 25%선에 불과하고 반이상이 아직도 금융지원이나 영업허가, 건물복구등을 기다리는 중이고, 나머지 4분의1가량은 아예 사업 재개를 포기한 상태에 있다. 폭동의 상처는 이처럼 아물지 않은 채 정부의 지원과 관심은 날이 갈수록 흐려져 간다. 더구나 가해자의편이라고 해야 할 흑인들은 집단적으로 피해업소의 주류 판매허가 재발급을 반대하고 나서 한인 리커, 마켓의 영업재개 자체를 방해하고 있다. 부수고, 불태우고 다 망쳐 놓고는 다시 일어서려는 것 조차 짓누르는 꼴이어서 피해자들을 더욱 슬프게한다. 조속한 피해 복구를 다짐하고 원상회복을 외치던 연방정부와 주정부와 L.A.시 당국의 약속은 어디서도 찾아 볼 길이 없다. 더우기 일부 정치인들은 흑인들의 편에 서서 피해업소의 영업재개를 규제하는데 급급하고 있다.
불황의 긴 터널과 폭동의 엄청난 피해 뒤끝에서 과연 영업재개를 규제하는것이 그렇게 급한 일인가? 한인들은 계속 2중 3중의 피해를 당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총기가 범람해 학교에 까지 금속탐지기를 설치하는 마당에 총기류 판매는 제대로 규제하지 못하면서 소상인들이 운영하는 리커마켓은 그렇게 규제를 해야만 하는가?
어느 미국의 언론도 이런 점에 포커스를 맞춰 여론을 환기시켜 주지 않는다. 대다수의 미국언론들은 흑인들이 공청회장이나 시위현장에서 떠드는 소리만을 선동적이고 자극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이런 보도만 보고 듣노라면 마치 흑인촌의 우범지역화가 리커. 마켓의 탓 인듯이 보인다. 사실상 미국의 흑인 빈민가와 우범지역의 범람은 오랫동안 누적되온 인종차별과 마약, 부도덕한 생활, 낮은교육열에서 빚어진 산물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런데도 만만한 한인들만 동네 북처럼 두두려 대려는 저의는 어디에 있는가?
폭동 직후 많은 한인 단체들과 소위 지도급 인사들이 우리의 피해를 모두 보상받고 이를 계기로한인들의 권익을 신장시키자고 저마다 목소리를높였다. 그러나 피해보상은 커녕 재해 복구를 위한 융자금마저 아직 제대로 받지 못하고 권익신장은 커녕 오히려 흑인 갱단의 눈치까지 보는 처지가 되었으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부끄럽게도 피해자를위한 일 쳐놓고 소위 지도급 인사들이 나서서 제대로 해놓은 일은 하나도 없다. 영사관까지 끼어들어이런일 저런일이 더욱 불쌍사납게만 되었다.
사실 폭동 피해자협의회는 너무 억울하고 너무 엄청난 피해를 당하고는 혼자서는 어쩔 수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 공동으로 대응하자는 단순한 취지로 출발했지만 이 모임이 유지되어 오는 동안 두 가지 일로 큰 곤욕을 치렀다.
우선,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이 사회에 바로 알리고, 우리의 권익을 제대로 주장하기 위해서는 정부기관을 상대로 피해보상 소송을 제기하자는 것이었는데 피해자협의회가 소송제기안을 내놓자 여기저기서 그까짓 실효없는 소송은 해서 뭘하냐. 그게 전체 회원의 뜻일 수 있느냐 하고 힐난을 해서 결국은 몇 차례나 공개토론회와 공청회 까지 열어 회원 다수의 뜻임을 공개적으로 입증해야만 했다. 그러고도 못마땅해서 이기지도 못할 소송에 왜 많은 돈을 허비하려느냐는 비난이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반대하고 비난을 하던 사람들이 이제와서는 오히려 집단소송을 하자면서 왜 피해자 협의회가 협조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대답할 말이 없다. 그래 우리 한인들이 얌전하게 가만히 앉아만 있어서는 미국정부도 미국의 언론도 우리를 옹호하고 보살펴주지 않는다는걸 이제야 알았더란 말인가.
피해자협의회가 힘겹게 소송준비를 하고 소송비를 마련해 진행을 하니까 이제와서 또 따로 소송만을 벌이려는 저의는 도대체 무엇인지 묻고 싶다.
피해자들에게 폭동피해 못지않게 가슴에 상처를 준 것이 구호 성금처리 문제이다. 고작 3천여불씩 지급된 구호성금 문제로 법원까지 들락거리고 한 여름 내내 무슨 강탈사건이라도 벌어진듯이 피해자협의회를 닦아세우는 바람에 일을 맡았던 임원들이나 회원 모두가 참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구호성금을 둘러싸고 그런 분란이 빚어진 까닭은 사실 이렇다. 폭동직후 성금관리위원회라는 것이 총영사관측의 주도로 구성이 되면서 14명의 위원 가운데 피해자측의 대표로는 본인 한 사람만이 끼여있었고 나머지는 폭동과 관련이 없는 각종 단체의 인사들로 채워졌다. 게다가 위원장직은 하기환 상공회의소 부회장(당시)이 맡아 이 사람과 성금관리위를 주도한 다수의 위원들은 피해자 구호보다 성금을 기금으로 해서 무슨 사업을 하려는데 골몰했다. 그 대표적인 사업안 중의 하나가 문화회관을 짓자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아파트를 지어 무주택자의 주택난을 덜어주자는 것이였다. 세번째는 학술적으로 이번 폭동의 원인을 규명해 한인들의 결백함을 입증하자는 것이었고, 넷째는 구호성금을 몽땅 융자회사에 맡기고 피해자들에게는 신청금액에 비례해 이잣돈 돈놀이를 하자는 것이였다. 공교롭게도 아파트 건축사업안은 건설회사를 갖고 있는 하 기환 위원장측의 제안이였고 융자회사에 돈을 맡겨 이잣 돈놀이를 하자는 것은 회계사회 측위원들의 제안이였다.
성금관리위원회의 회의는 이같은 제안을 둘러싸고 갑론을박하는 일로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했다. 사업안 하나 하나의 내용을 보면 결코 나쁜일은 아니지만 아무리 좋은 사업이라 할지라도 구호성금으로는 구호사업을 제치고 다른 일을 우선적으로 한다는게 적합하지 않다. 더구나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이민 1세로, 그들은 수재의연금이나 무슨 구호금이 으례히 피해자들에게 그대로 전달되는 것으로 믿고있었다. 도대체 구호금은 내주지 않고 사업계획안만 토의하는 성금관리위원회가 이해 될 수 없었다.
몇 달 동안 성금관리 위원회의 이같은 파행운영을 지켜보던 피해자들 사이에 불만과 분노가 높아 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간 피해자를 구호하라는 성금을 갖고 제멋대로 사업하는 꼴 보겠다는 소리마저 나돌았다. 그래서 결국은 피해자 농성이라는게 벌어지고 구호성금을 아예 피해자협의회로 넘기라는 요구가 나왔다.
그런데 농성 이틀만에 총영사관측의 종용으로 성금 일부를 피해자협의회에 넘겨 준 하 기환위원장이 무슨 변덕이 났는지 다음날로 법원에다 지불중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만약 이 문제가 재판에 회부 된다면 우리 얼굴에 먹칠을 하는것도 그렇지만 몇년동안 구호성금은 법원에 묶여 잠을 자야 할 판이다. 결국 법정 소송기금 90만 달러와 당시의 미수금 1백여만 달러를 떼놓고 일부 구호성금만 넘겨받아 서둘러 피해자들에게 배분했다. 그러다보니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도 어느 누구도 만족하게 여기게끔 되지 못했다. 이유가 어디에 있건 성금을 내준 동포들과 피해자들을 격려해준 분들에게 참으로 송구스럽고 부끄럽게 되었다.
부디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는 어떤 명목의 구호금이나 지원금이든 그 피해자나 당사자를 제치고 제 3자가 멋대로 가로왈 세로왈 하는 일은 없어졌으면 한다. 이번 폭동의 피해 복구여부는 단순히 L.A.에 살고 있는 일부 교민들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 겨우 미주 진출의 거점을 확보한 우리 한인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민족이 세계로 뻗어 뿌리내리는 분기점이 바로 지금이라 한다면 폭동 피해 복구는 그래서 단순히 몇사람 이민자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인이 해외에서 일궈놓은 최대의 거점을 유지하느냐 못하느냐는 문제로 귀결된다.
이같은 뜻에서 나는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에게 구호성금이외의 융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김 대중 민주당 대표(당시)는 우리 민족의 해외진출과 수출확대를 위해서도 1억불 정도의 융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고 이를 국회에 제안해 주었다. 비록 여당측의 반대로 이 안이 성사되진 못했지만 나는 김대표의 노력에 감사한다. 김 영삼 당시 민자당대표에게도 세 차례나 편지를 보내 지원을 호소했다. 러시아를 비롯한 구 공산권 국가들과 중국등에겐 국교수립과 해외진출의 폭을 넓힌다는 목적으로 수십억 달러의 차관과 원조자금을 제공하면서 내동포들이 부서진 거점을 복구하는데에는 그토록 인색해야 할 이유가 없다. 지금 여기 살고있는 몇몇 교민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후손들이 세계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우리 한인들의 긍지와 힘을 세계에 펼쳐나가기 위해서도 지금 이를지원해 줄 수 있는 용단이 필요하다.
나는 한국정부에 대해 거듭 건의하고자 한다. L.A.폭동 피해의 상처는 의외로 깊고 부서진 터전을 다시 일구기에는 이곳의 힘만으론 부족하다. 거리를 방황하는 사람과 비천한 생활을 해야할 한인들이 늘어날때 그것은 결코 모국에도 도움이 되지않는다. 나는 이곳 미주의 한인들이 그동안 해마다 10억달러 가까이 본국에 송금을 했으니 그만큼 지원해 달라고 수자 풀이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곳의 실정은 자못 절박하고, 낯설고 얼굴빛 다른 소수 민족으로서 우리 한인피해자들이 처한 위치가 정말 심각하다는 것을 고국의 동포들이 알아 주었으면 한다.
1993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