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연대기적 난제는
그 자체로 난맥의 난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경의 연대기를 고찰할 정도면
성경의 파워 유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성경을 이해하는 수준이 높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연대기는 난맥의 난망이며
깊이 고찰하면 할수록 오리무중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결과적으로 성경의 연대기적 이해는
성경 저자의 혼동을 그 절벽으로 느낄 것입니다.
그렇다고 성경의 연대기적 난제를 방치하면.......
성경의 그 모든 말씀은 "오류"와 "허상"이라는 비판을 방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저자의 연대기적 난제의 그 혼동이 무엇인지......
그 실체적 진실을 찾아 쾌도난마의 경지에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나라의 멸망은 전쟁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영토를 뻬앗기고 왕조가 끝나고 끝나고 주권을 잃게 됩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멸망도
그 참혹한 전쟁을 통해서 B.C 722년에 앗수르에게 패망하였습니다.
B.C 722년의 북 왕국 이스라엘 멸망에 대해서
이론의 여지가 없으며 모든 학자가 인정하는 정설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저자는
북 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해서 연대기적 난제를 보였습니다.
유다의 왕 아사랴 제 오십이 년에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이십 년간 다스리며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왕하15:27)
남 앙국 왕 요담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여루사요 사독의 딸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왕 르말랴의 아들 베가 제 이년 에 유다 왕 웃시야의 아들 요담이 왕이 되니 나이가 이십 오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 간 다스리니라고 하였습니다.(왕하15:32-33)
르말랴의 아들 베가 제 십칠 년에 유다의 왕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왕이 되니
아하스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간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왕하16:1-2)
유다의 왕 아하스 제 십이 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구 년간 다스리며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다만 그 전 이스라엘 여러 왕들과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왕하17:1)
웃시야의 아들 요담 제 이십 년에 엘라의 아들 호세아가 반역하여
르말랴의 아들 베가를 쳐서 죽이고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삼년에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 오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간 다스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왕하18:1-2)
남왕국 유다 왕 아사랴 오십 이 년이요 베가가 왕이 되었으며
북 왕국 이스라엘 왕 호세아가 왕이 된 것은 아하스 십이 년이 이라는 말씀이며 또한 요담 이십 년이며
삼 년 뒤 곧 호세아 삼 년에 히스기야가 왕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북왕국 베가 2년에 남왕국 요담이 왕이 되었으며 베가 17년에 남왕국 아하스가 왕이 되었으며
북왕국 베가 17년에 북왕국 호세아가 왕이 되었고 호세아 3년에 남왕국 히스가야가 왕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히스기야 왕 제 사 년 곧 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칠년에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삼 년 후에 그 성읍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 왕의 제육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제 구 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되었다고 하였습니다.(왕하18:9-10)
히스기야 왕 제 사 년에 아수르 왕 살만에셀이 쳐들어 와서 삼 년 동안 포위하였다가
히스기야 육 년 곧 호세아 구 년에 이스라멜이 멸망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위의 말씀을 정리하면
남왕국 유다는 아사랴 곧 웃시야 오십 이 년은 북왕국 베가 1년이며
베가 이 년에 요담이 이십 오세에 왕이 되었으며
요담 이십 년에 호세아 일 년이요, 아하스 십이 년이며, 호세아 삼 년은 히스기야 일 년이 됩니다.
다시 정리하면 남왕국의 요담이 이십 오세에 왕이 되었을 때는 베가 이 년이며
베가 십칠 년 곧 요담이 왕이 된 지 십 오년이 지난 다음이며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이십 세에 왕이 되어
십 육년 동안 다스렸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요담이 사십 세에 요담의 아들 아하스는 이십 세의 나이에 왕이 되었고
그리고 삼 년 뒤 곧 호세아 삼 년에는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이십 오 세에 왕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아하스의 나이 이십 삼 세에 이십 오세가 된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었고
히스기야 육 년 곧 삼십 일 세의 호세아 구 년에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하였다는 논리입니다.
참으로 성경 저자의 연대기적 난제는
쾌도난마의 절벽,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글자 번역상의 문제인지 성경 저자의 글인지 .....
도무지 난맥의 난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남 왕국은 요담에서 이스라엘 멸망 곧 히스기야 육 년까지
통치로는 요담 십육 년 아하스 십 육 년이요 히스기야 육 년을 합하면 삼십 구년입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베가에서 호세아까지
베가 십칠 년이요, 호세아 삼 년이요, 호세아 3년에 왕이 된 히스가야 육 년을 합하면 이십 육 년입니다.
통치 연수를 합하면 베가 이십 년이요, 호세아 구년을 합하면 이십 구년입니다.
결국 남 왕국의 삼십구 년과 북 왕국의 이십 육 년은
같은 연수가 되어야 합니다.
앗수르 왕의 계보를 보면
아하스를 공격하였던 디글랏빌레셀 3세는 B.C.745-727년이요
사마리아성을 포위하였던 살만에셀 5세는 B.C. 727-722년이요
북 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왕은 사르곤 2세는B.C. 722-705년이며
히스기야 십 사년에 침공한 산헤립은 B.C. 705-681년 동안 통치하였습니다.
히스기야 십 사년에 침공한 산헤립은 즉위 4년 후인 B.C. 701년이며
히스기야 왕의 즉위 연대를 계산하면 B.C. 715년이 됩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은 B.C. 722년에 멸망하였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이스라엘이 멸망한 호세아 9년 곧 히스기야 육 년은 B.C. 709년이 됩니다.
남왕국 유다의 멸망은 B.C.586년입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멸망 년도인 B.C 722년에서 B.C 586년의 136동안
남 왕국 유다의 왕조는 어떨까?
히스기야 29년, 므낫세 55년, 아몬 2년, 요시야 31년
여호아하스 3개월 여호야김 11년, 여호야긴 3개월, 시드기야 11년을 합하면 139년입니다.
남 왕국 히스기야 육 년을 북왕국 멸망의 B.C722 년으로 보면
139년에서 히스기야의 6년을 빼면 3년 정도 차이가 납니다.
연대기의 3년은 죽위년 계산법을 감안하면
거의 같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여호야김 삼 년 혹은 사 년은 B.C605년에 바벨론이 1차 침공으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원년이며
B.C 586년 바벨론 왕 18년이요, 시드기야 11년입니다.
남 왕국 유다도 북 왕국 이스라엘의 멸망 시기처럼
혼란한 시대의 연대기적 혼란을 보이고 있습니다.
성경의 연대기적 난제는 수치의 개념으로는 합리적인 이해로도 난맥의 난망이며
시대적 상황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의 연대는 수치가 아니라 사건이며 고고학적 기록이 아니라 역사의 과정이요, 그 정황으로 이해할 때
성경 저자의 눈 높이에 맞는 시선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남 왕국 유다의 종말적 상황은
바벨론의 침공으로 예루살렘 성과 왕궁과 성전이 불타고 그 모든 역사적 자료들이 소실되었습니다.
혼란한 시대 상황 가운데 얽히고 섥힌 복잡한 정황은
뉴스로 생중계를 해도 어느 위치, 어느 싯점, 어떤 관점으로 보도하느냐에 따라서
그 내용이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연대기적 난제는 고고학적 수치 개념이 아니라
역사적 정황에 대한 합리적 이해로 해석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