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barnabak
축복의 땅에 거할 때에
신명기 8:1-10
1.
이번 휴가 때에 암살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이 영화는 다 아시는 대로 일제 식민지 시대 독립운동을 주제로 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우리를 잊지 마라’는 것입니다.
하와이 피스톨의 동료로 알려진 영감, 오달수를 통하여 던져진 ‘우리를 잊지 마라’는 메시지는 오늘의 대한민국에는 수많은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의 공로가 있었고 오늘의 한국인들은 그들의 공로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화제작자가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은 광복70주년 기념예배로 드리는 광복기념주일입니다.
광복기념 주일을 맞이하여 이 영화의 감독이 말하고 있는 대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수고와 피와 땀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줄 압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은 우리에게 해방을 가져다준 하나님의 은혜인줄 압니다.
2.
오늘 본문 말씀은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모세가 설교한 내용입니다.
40년의 기나긴 광야생활을 마치고 이제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이 목전에 있습니다.
그 땅은 너무나 소중한 땅이었습니다.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땅을 이제 실제로 받게 되는 찰나에 있습니다.
그 소중한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살 수 있는가? 를 가르치는 모세의 설교가 신명기서이며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 설교에서 모세는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2절에서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고 했고 18절에서도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설교의 핵심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잊으면 좋은 것들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기억들, 아픈 기억들, 고통스런 기억들은 빨리 잊을수록 좋습니다.
그런 점에서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은 하늘이 내린 축복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들도 있습니다.
잊고 살아갈 때 그 잊음으로 야기되는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마땅한 도리를 잃어버리는 사람들, 마땅히 기억해야 할 은혜를 잊어버림으로 생겨지는 비극들이 있습니다.
3.
몇 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 할리우드에서는 부모의 재산을 탐내서 부모를 쏴 죽인 형제가 검거된 적이 있습니다.
그 형제는 부모를 살해한 후 강도의 소행으로 위장합니다.
그들은 2년 동안 부모가 생전에 피 땀 흘려 모아놓은 재산을 탕진하며 보디가드까지 두고 행세하다가 결국 끈질기게 추적한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자식들이 부모를 살해한 것도 놀랄 일이지만 더 놀라운 일은 재판을 받으면서 부모가 그들을 학대했기 때문이라며 태연스럽게 재판정에 앉아 정당방위를 주장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이렇게 잊어버리며 그것도 모자라 부모님들을 악한 사람들로 몰아세울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비극은 서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도 사실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마땅히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을 잊어버림으로 생겨난 일들입니다.
성경에도 보면 잊음으로 인해 야기된 비극들이 수없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에덴에 있던 인류의 조상들은 하나님을 잊었다가 결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시날 평지에 있던 그 후예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지혜로 하나님의 영역에 도전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이 피조물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욥의 고백대로 ‘하나님께서 불어버리시면 흩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벨탑이고 결국 그들은 혼란을 맛보면서 흩어집니다.
그 이후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늘 잊음의 비극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것이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해야 했던 애굽이었고, 그것이 광야였으며, 바벨론 포로생활이었습니다.
4.
여러분, 우리가 광복 70주년을 맞이하였습니다만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약속의 땅에 거할 때에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잊지 말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먼저, 애굽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극심한 가뭄 때문에 고향땅에 살수 없어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국무총리였던 요셉덕분에 나일강 삼각주의 비옥한 땅 고센에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새로운 왕이 등장하게 되고 그들은 졸지에 자유인의 신분을 잃고 노예로 전락합니다.
거대한 공사에 동원되어 짐승과 같이 일해야 했고 아기를 낳아 기르는 기본자유 마저 빼앗기는 슬픔의 자리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비극과 절망의 자리에 서 있었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나 이제 그 아픔과 고통의 기억을 떨쳐 버릴 만도 한데 하나님은 다시 그 사실을 상기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종 되었던 너희의 삶을 기억하라.”
이것은 너희를 괴롭혔던 이집트 나라를 원수로 살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너희가 어떠한 처지에 있었는가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에게도 애굽이 있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아시아 정복이라는 야망을 가지고 칼을 갈고 있었을 때 우리 조상들은 당쟁을 일삼았고 우상 앞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일본이 무력으로 국권과 강토을 빼앗고 우리의 고유문화를 짓밟으면서 민족의 혼 자체를 말살하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조선의 젊은이들은 그들이 일으킨 전쟁의 총알받이와 위안부로 끌려가 동남아와 중국에서 죽어갔습니다.
교회의 압박은 더 심하여 종탑의 종들을 다 수거해갔고, 모세오경과 요한계시록은 삭제를 당하였고, 예배 전에 일본국가에 배례를 하게 했고, 1943년 9월부터는 주일 밤 예배와 수요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신사참배를 강요했고 민족과 교회의 지도자들을 모조리 잡아가두고 45년 8월 18일에는 그들을 모조리 학살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습니다.
이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해방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영적인 애굽이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들인 우리를 하나님은 한없으신 긍휼과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용납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우리는 이 은혜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왜 중요합니까?
이스라엘이 애굽을 잊어버렸을 때 그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렸고 감사를 잊어버렸고 감격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힘든 광야 길을 걸어갈 때도 애굽을 생각하면 새로운 힘이 났습니다.
애굽을 기억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감격하며 믿음으로 말씀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5.
두 번째는 하나님을 잊지 말라 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이 해방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고 절대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바로의 압제에서 해방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모세는 ‘너희를 택하신 하나님, 애굽에서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 광야 길을 걸어갈 때 너희들을 돌보아주셨던 그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하늘 문을 열어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여주신 그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늘날까지도 유월절 다시 말해 민족 해방절을 지키면서 4,000여 년 전에 그들을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있었을 때 그들은 건강했습니다. 싱싱했습니다. 복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렸을 때 그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개인도 나라도 민족도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할 때 우리는 건강할 수 있고 하나님의 축복을 계속 받을 수 있습니다.
6.
그러면 말씀이 권고해주는 잊어버림의 때는 언제입니까?
어느 때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은 이 ‘때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너희가 풍요롭게 될 때, 그리고 아름다운 땅에 거하게 될 때에 하나님을 잊지 말라 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어려울 때, 문제가 있을 때, 고통과 아픔이 있을 때는 하나님을 잊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잘 될 때, 근심걱정이 없을 때 흔히 이 질병에 걸리게 됩니다.
헷셀 포오드 목사님의 책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청년이 목사님을 찾아와 기도부탁을 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새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사업이 잘되게 기도해주십시오, 그 사업이 잘되게 해 주시면 하나님께 십일조도 드리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많이 하겠습니다.”
목사님은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고 그 응답 때문인지 그 청년의 사업도 놀라울 만큼 번창했습니다.
사업이 계속 커지자 청년은 바빠지기 시작했고 약속했던 것도 까마득하게 잊었습니다.
예배출석도 등한히 했고, 잘하던 헌금생활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회사로 심방을 갔습니다.
“요즘 예배도 잘 안 나오고 십일조도 안하시고 신앙생활을 등한히 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업시작 할 때 하나님께 했던 약속을 잊었습니까?”
“목사님 사업이 여간 바빠야지요. 여러 군데 사업장을 벌이다보니까 교회에 가고 싶어도 시간이 나지 않습니다.
또 돈의 액수가 커지니까 회사 경영상 수입의 10분의 일을 떼어 헌금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 목사님은 청년사업가의 손을 붙잡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 형제의 수입이 너무 많아서 십일조 헌금하기가 어렵다고 하니 수입의 규모를 예전과 같이 훨씬 줄여주시옵소서.
또 교회에 출석하고 싶어도 사업이 너무 잘되어 바빠서 예배에 잘 나오지 못한답니다.
사업장을 작게 줄여주시고 사업도 잘 안 되게 해 주셔서 하나님을 인정하며 살게 하시고 예배출석도 잘 할 수 있게 하옵소서.”
그 기도를 받고 청년사업가는 믿음생활을 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가난한 때는 문제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고 모든 일이 잘 되어갈 때, 풍요로 울 때가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를 걸어가신 이스라엘을 걱정하신 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을 걱정하신다는 사실을 깊이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풍족해 질 때 교만하여 그것들을 잊지 않도록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소유가 다 풍성하게 될 때”에 삼가 조심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누구나 풍족해지고 걱정이 없으면 영적생활이 등한하게 되고 하나님을 찾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아셨기에 바로 그 때에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7.
그러면 잊고 살면 어떤 비극이 나타나게 됩니까?
영적 교만가운데 빠져 자기를 신뢰하게 되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고 다른 신을 숭배하며 섬기며 예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귀한 것들을 세우고 그것을 신으로 삼고 살아가게 됩니다.
화란의 기독교 지성인인 하우츠 바르트는 “현대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우상숭배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나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지고 않는다고 자위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돌부처를 세워놓고 절하는 우상은 아닐지 모르지만 현대인들은 물질의 우상, 쾌락의 우상, 지식의 우상을 좇아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러시아의 문호이자 노벨상 작가인 솔제니친은 1983년 템플턴상 수상식에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자신은 50년 동안 러시아 혁명사를 연구하면서 수 백 권의 책을 읽었고 수 백 명의 개인적 증언을 수집했으며 그 결과 8권의 책을 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전 어릴 때에 어른들이 했던 말을 인용하며 러시아가 망했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지만 만일 오늘날 내게 6천 만 명의 백성들을 집어 삼킨 이 파괴적인 혁명의 주요원인을 정확히 표현하라고 요구한다면 나는 어른들이 했던 이 말을 반복하는 것 외에는 정확한 표현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잊은게야.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난게야.’”
러시아는 한때 정치 경제 종교 문학 예술에 있어서 단연 앞서가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잊어버렸을 때 망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하여 노력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애굽 생활을 잊어버리고 우리의 영적인 애굽을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내가 잘나고 내가 잘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요?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8.
파락호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지난날 행세하는 집의 자손으로서 허랑방탕하여 집안 살림을 털어먹은 난봉꾼을 이르는 말입니다.
일본에서 교수를 지낸 재일교포 작가 윤학준은 그의 책 ‘양반동네 소동기’라는 책에서 한국의 3대 파락호로 흥선 대원군 이하응, 1930년대 형평사 운동의 투사였던 김남수, 그리고 학봉 김성일의 증손인 김용환을 꼽았습니다.
학봉은 퇴계 이황의 수제자로 임진왜란 때 경남 지역에서 크게 공을 세운 인물입니다.
그의 13대손인 김용환은 대대로 내려오던 전답 18만평, 현재시가로 약 200억 원을 모두 거덜냈다고 하니 최고의 파락호인 셈입니다.
그는 아주 노름을 즐겨서 안동 일대의 노름판에는 그가 꼭 끼었다고 합니다.
증손이 노름행각으로 종갓집도 남의 손에 넘어가고 수 백 년 동안 종가의 재신으로 내려오던 전답도 다 팔아먹었습니다.
그렇게 팔아먹은 전답을 친척들이 돈을 걷어 다시 종가에 되사주곤 했는데 종가는 문종의 정신적 구심적으로 종가가 없어지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김용환의 외동딸이 신행 때 농을 사오라고 시댁에서 받은 돈이 있었는데 이 돈마저 훔쳐가서 노름으로 탕진했기 때문에 결국 딸은 빈손으로 시댁에 갈수 없어서 친정어머니가 쓰던 헌 농을 가지고 가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럴 정도이니 얼마나 욕을 먹었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파락호가 만주에 독립자금을 댄 독립투사였음이 사후에 밝혀졌습니다.
독립자금을 모으기 위하여 철저하게 노름꾼으로 위장한 삶을 살았던 것이지요.
그는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세상을 떠났는데 그간 탕진했다고 믿었던 돈은 모두 만주독립군에게 군자금으로 보냈음이 알려졌으며 파락호 행세는 왜경의 눈을 피하기 위한 철저한 위장술이었습니다.
거금을 아낌없이 희사한 것도 경탄할 일이었지만 주색잡기, 노름꾼 등 불명예스러운 비난 속에서도 식구들에게조차 절대 함구한 의지력 또한 놀라울 따름입니다.
광복 후에 죽음을 앞 둔 그에게 오랜 친구가 ‘이제 광복이 되었으니 자네가 전 재산을 바쳐 독립운동을 한 사실을 밝히면 어떤가?’ 라고 했더니 그는 ‘선비로써 당연한 일을 한 것이다.’라고 말하며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진 광복의 기쁨은 이렇게 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헌신과 죽음 속에서 주어진 것이 우리의 해방이며 오늘의 조국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은혜와 축복을 우리는 어떻게 간직할 것입니까?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도록 깨우치고 있으며 자녀들의 가슴에 그 놀라운 은혜를 심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라와 민족으로 세워가기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며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바로 세우고 복음으로 통일조국을 이루어가기 위해 함께 힘을 모아야 합니다.
이 민족을 다스리시고 인도하시는 하늘의 주권자를 잊지 않는 것이 나라 사랑의 기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광복의 축복, 이 땅, 이 은혜를 잘 지켜가는 것이 오늘 풍요의 땅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