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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요나서의 교훈 요나 1:1
(설교자: 마경훈 목사 비전교회)
요나는 철없는 선지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지만 불순종했습니다. 니느웨로 가라는 말씀에 불순종하고 다시스로 가다가 대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뱃사공들이 제비를 뽑으니 요나가 뽑혔고 요나는 사실대로 말하고 자기를 바다에 던지라고 말합니다. 뱃사공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지지 않고 대풍을 이겨보려고 했으나 바다가 점점 더 흉용하므로 요나를 바다에 던지니 바다가 잔잔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큰 물고기를 준비하셔서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으나 소화되지 않았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물고기에게 말씀하셔서 요나를 육지에 토해내게 하셨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말씀이 요나에게 임하였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로 갔습니다. 그 성은 사흘 동안 걸어야 할 만큼 큰 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요나가 하룻길을 가면서 심판에 대하여 외쳤습니다.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는 외침이었습니다.
요나의 외침을 들은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사람들 심지어 짐승까지도 금식을 하며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회개를 받으시고 니느웨를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셔서 니느웨에 재앙을 내리지 않는 것이 몹시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하나님께 자기를 죽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요나는 성읍에서 나가서 성읍 동쪽에서 니느웨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초막을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박넝쿨을 예비하셔서 요나를 가리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그 박넝쿨로 인하여 심히 기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벌레를 예비하셔서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또 해가 뜰 때에 뜨거운 동풍을 불게 하셨습니다. 해가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게 되었습니다. 요나는 다시 하나님께 죽기를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수고도 아니하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는데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별치 못하는 자가 12만 여명이고 가축도 심히 많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어찌 아끼지 아니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요나서의 내용입니다. 오늘 설교는 요나서를 통해서 주시는 교훈 몇 가지를 나누겠습니다.
1. 하나님은 모든 민족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만이 아니라 유대인을 괴롭히는 앗수르도 돌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그것이 싫어서 다시스로 도망을 가려고 배를 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큰 아들 같습니다. 큰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은 집 나간 탕자에게 있었습니다. 큰 아들이 집 안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하나님은 집 나간 동생을 찾으러 다니는 것을 더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큰 아들은 집 나간 동생에게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을 선택하셔서 모든 민족이 주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제사장 국가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기들만 잘 믿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구약시대에는 유대인을 통해서 모든 민족이 주께 돌아오는 것이고, 신약시대에는 믿는 우리를 통해서 모든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 28:19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열심히 믿고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봉사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사는 것도 좋은 것이지만 거기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전도하고 선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복음의 증인입니다. 행 1:8에 보면 성령이 임하시면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영적인 생활에 승리하려면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계 12:11입니다.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이 말씀은 성도들이 하늘에서 쫓겨난 사탄과 영적인 전쟁을 하는데 어떻게 승리하는 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승리의 비결은 세 가지입니다. ➀어린양의 피. ➁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 ➂일사각오의 신앙입니다. 이 중에 두 번째가 오늘 말씀과 관련이 있습니다.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말씀이신 주님을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이신 주님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반드시 말씀이신 주님을 증언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인 생활에 승리하는 것입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후에 니느웨로 가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쳤습니다. 요나의 말을 들은 니느웨 성 사람들이 충격을 받습니다. 그들은 금식을 선포하고 베옷을 입고 회개합니다. 요나의 전도에 능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 책임은 하나님이 지신다는 것입니다. 결과는 하나님이 만드시는 것입니다.
요나에게 능력이 나타난 것은 요나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요나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전도하니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가서 전했다는 것입니다.
개봉동에서 목회하시는 박영민 목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박목사님은 목사님의 아버님과 장모님의 전도 간증을 들려주셨습니다.
박목사님의 아버님은 배우지 못한 분이시고 술을 즐기시던 분인데 늦게 예수님을 믿게 되셨습니다. 그분이 비록 늦게 믿으셨지만 전도를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그분의 전도 방법 중에 희한한 방법도 있습니다. 한번은 새벽기도를 하다가 주님이 감동을 주시는 분이 있어서 그 집에 찾아갔답니다. 그리고 대문을 붙잡고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습니다. 주인은 이른 아침에 남의 집 대문을 붙자고 울고 있는 사람을 보고는 얼마나 놀라겠습니까? 집 주인이 큰일 난 줄 알고 나와서 “왜 그렇게 우십니까?”라고 물어보니 박목사님 아버님은 눈물을 흘리며 “내가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당신 집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전도하라는 말씀인데, 내가 배운 것도 없고 말도 잘 못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이렇게 울고만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집 주인이 “알았습니다. 내가 교회 나가겠습니다”라고 하고는 교회에 나왔는데 그 가정이 다 구원을 받았고, 아들은 목사님이 되어서 목회를 하고 있답니다. 배운 것도 없고 말 주변도 없는 분이 전도의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에 순종하니 하나님께서 능력이 나타나게 하신 것입니다.
박목사님의 장모님은 권사님인데 전도의 열정이 대단하신 분입니다. 시골 동네에 이사 오는 사람이 드문데 한 가정이 이사를 왔답니다. 권사님은 동네에 이사 온 집에 이사 온 첫날부터 선물을 들고 찾아갔습니다. 전도는 해야겠는데 어떻게 말할지 몰라서 선물만 주고 왔습니다. 그 다음 날도 선물을 들고 찾아갔습니다.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선물만 주고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1주일째 이사 온 집 아저씨가 권사님에게 “혹시 교회 다니시는 분이세요”라고 하더랍니다. 그렇다고 했더니 “내가 이번 주부터 교회 나갈테니 더 이상 오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하더니 그 주일부터 교회에 나오더랍니다.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을 주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면 하겠다”고 하지만 사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순종하면 능력을 주시는 분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이 주 앞으로 돌아오는 것만큼 하나님께 큰 기쁨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전도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충청도 어느 마을 가난한 가정에 칠득이라는 모자라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칠득이가 강가에서 놀다가 강물에 빠져서 죽어가는 방앗간을 하는 큰 부자집 외아들을 살려주었습니다. 칠득이는 모자라는 아이었지만 방앗간집 주인은 늘 칠득이에게 감사를 표했고, 가끔 식 쌀가마니를 가져다주었다고 합니다. 방앗간 주인이 칠득이를 왜 그렇게 대우했을까요? 다른 것이 아닙니다. 자기 외아들을 살려주었기 때문입니다.
물가에심기운교회를 담임하는 윤성호 목사님이 전도사 시절에 [나는 이렇게 전도했다]라는 책을 쓰셨습니다. 윤전도사님은 그 책을 쓰기 위해서 전국에 전도왕 50명을 찾아가서 그분들의 전도 간증을 들었습니다. 윤전도사님은 전도왕들의 공통점 몇 가지를 발견했습니다. 첫째는 경제적인 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병고침을 받았다는 것이고, 셋째는 별 볼일 없는 무능한 자 같으나 유능한 자가 되었습니다. 넷째는 자신이 엄청난 변화를 체험했다는 것입니다. 전도왕을 인터뷰한 윤전도사님이 내린 결론은 전도보다 빠른 축복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 일을 위하여 헌신하는 사람에게 은혜와 능력과 축복을 더하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2;1에 보면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물고기에게 명하셔서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하셨습니다.
요나의 기도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➀고난 중의 기도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음부의 고통을 당하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 중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시 50:15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난 중에 기도하면 그 고난에서 우리를 건져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 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인도네시아 선교지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 따나롱설이라는 동네에 한국 선교사가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동네는 이슬람교도가 많은 동네라 원주민들은 돌을 던져 교회당 유리창을 깨뜨렸습니다. 그 교회당은 계곡 가운데 세워졌는데 교회당 옆에는 큰 나무가 하나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비가 많이 와서 큰 나무 밑의 흙을 다 쓸어갔습니다. 나무는 교회당을 향해서 기울어졌고, 만약에 나무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교회당은 박살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안팎으로 위기를 당한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선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어느 날, 비가 몹시 오는 날 번개가 큰 천둥소리와 함께 한번 번쩍하더니 교회를 향해 기울어져 있던 나무를 내리쳤습니다. 그 큰 나무는 쾅하는 소리와 함께 넘어졌습니다. 그런데 교회당 쪽으로 넘어진 것이 아니라 반대쪽으로 넘어졌습니다. 반대쪽에는 판자 집이 하나 있었는데 큰 나무가 쓰러지는 바람에 박살이 났습니다. 그 바람에 집주인이 죽었는데, 그 사람은 교회를 반대하고 핍박하던 사람 중에서도 주동자였습니다. 그 놀라운 사건을 보고 동네 사람들은 다시는 교회를 핍박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선교사가 믿고 전하는 하나님이 참 신이라면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지금 따나롱설 교회는 1000명의 성도가 모이는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환난 날에 기기도하던 선교사님을 도와주셨습니다. 그를 영화롭게 해주셨습니다. 요나의 기도는 고난 중의 기도입니다.
➁믿음의 기도(6절)
요나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다고 고백합니다. 아직 물고기 뱃속에 있지만 거기서 나갈 것을 믿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정필도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중학교 때 축농증으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워낙 증세가 심하다보니 어머니께서 세브란스 병원으로 데려 가셨습니다. 그런데 진찰하던 의사 선생님께서 “어떻게 이렇게 심해지도록 내버려두었느냐?”고 하면서 어머니를 몹시 나무라셨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수술비를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정필도 학생은 하나님 앞에 이 문제를 놓고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습니다. 기독병원이나 혹은 선교사가 운영하는 병원과 연결되어 무료수술을 할 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목사님께서 도와주시기는커녕 “너는 밤낮 기도를 많이 하면서 무슨 기도를 했느냐?”고 되레 호통을 치셨습니다. 정필도 학생은 그 야단을 맞는 순간 믿음의 오기가 생겼습니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자신도 몹시 화가 났습니다. ‘나같이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의 기도를 안 들어주시면 누구 기도하겠는가’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필도 학생은 축농증을 위한 기도는 사흘만 더 하고 다시는 이 문제로 기도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그 후 정필도 학생은 누가 묻든지 나았다고 말했습니다. 아파 죽겠지만 기도해서 나았다고 선포했습니다. 믿음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안 아픈 것 같기도 하고 축농증 증세가 없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 후 확실한 것을 알아보기 위해 다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본 결과 축농증을 앓았던 흔적도 발견할 수 없다는 의사 선생님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환갑이 넘도록 한 번도 축농증이 재발한 적이 없습니다. 중학생인 정필도 학생의 믿음의 기도와 믿음의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신 것입니다.
➂감사의 기도(9절)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 있어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기도에 능력이 있습니다. 요나는 아직 물고기 뱃속에 있었지만 감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쥐를 독안에 잡아넣고 빛 한 점 안 들어가게 막았더니 18시간 만에 죽어 버렸답니다. 아직 산소도 충분하고 죽을 이유가 없었는데 죽었습니다. 절망 때문입니다. 고래뱃속은 깜깜한 독안 보다 더 지옥입니다. 소화제가 뱃속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위가 계속 움직이고 있습니다. 물고기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지 못 하는 곳입니다. 그런 속에서도 요나는 감사의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제가 어느 목사님의 [백만 번 감사]라는 제목의 설교를 읽었습니다. 궁금했습니다. 누가 백만 번 감사했나? 백만 번 감사했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래서 그 설교를 열심히 읽었는데 제목과 관련된 내용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뭐 이런 경우가 있나’라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있었습니다. ‘백만 번 감사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백만 번 감사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지 않겠느냐’ 여러분! 범사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하니 하나님은 거기서도 살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완전한 절망 속에서도 기도하니 하나님은 사명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간증거리가 생깁니다. 왜요?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최고 타월 회사의 경영주이신 J장로님 이야기입니다. 그분이 6.25전쟁 때 이북에서 넘어오셔서 가진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장사는 하고 싶어서 수건 가게 옆에 앉아 매일 수건을 쳐다보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도 수건을 좀 팔게 해 주세요.” 하루는 가게 주인이 물었습니다. “얘야, 너 왜 남의 가게 옆에 계속 앉아 있냐?”, “아저씨, 저 수건 좀 팔고 싶어요. 열 개만 빌려 주시면 팔아서 갚을 게요.”, 사장님이 쉽게 대답했습니다. “그래라” 사장님이 수건 열 개를 주더랍니다. 장로님은 그것을 금방 팔고 와서 또 가지고 가서 또 팔고, 그래서 그 가게보다 수건을 더 많이 팔았습니다. 그런 그가 결국 우리나라의 타월 왕이 된 것입니다. 기도로 이루어진 기적입니다.
우리가 착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원칙을 지키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기도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3. 하나님은 요나의 표적으로 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 만에 나온 요나를 통해서 니느웨를 구원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들어가셨다가 사흘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십니다.
요나는 표적입니다. 마 12:39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예수님은 세상에 보일 표적이 요나의 표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의 표적은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사흘간 있다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난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셨는데 사실 성경을 보면 주님은 많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요 20:30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주님은 성경에 기록된 표적 외에도 많은 표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상하지요? 무슨 말이냐면 구원을 위한 표적은 요나의 표적 즉 십자가와 부활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고 병든 자가 고쳐지고 귀신이 떠나가고 바다를 잠잠케 하고 물이 변해서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 일어나도 그런 표적으로는 구원의 믿음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 12:37입니다.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으나 그를 믿지 아니하니” 사람들이 주님이 행하시는 많은 표적을 보았으나 주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많은 표적을 봐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믿음은 생기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은 십자가를 통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고전 1:18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십자가가 미련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구원 얻는 사람들에게는 십자가가 구원을 위한 표적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요나의 표적은 바로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요나를 통해서 우리가 봐야 하는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요나의 표적입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있다가 살아난 것처럼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을 봐야 요나서를 제대로 본 것입니다.
인도의 어느 선교사가 주님의 고난에 대한 설교를 하고 있는데 그 자리에 앉아있던 힌두교 소녀가 몹시 흐느껴 울고 있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 선교사는 그 하염없이 흐느끼는 소녀를 붙들고 무슨 사연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소녀의 대답은 “아닙니다. 주님이 나를 위하여 그토록 고난을 받았다는 사실이 나를 참지 못하게 하여 우는 것입니다” 하면서 대답을 했습니다.
우리는 이 소녀처럼 주님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습니까? 십자가의 감격을 누려본 적이 있습니까? 십자가는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구원의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표적입니다. 십자가는 구원의 표적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공로를 통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4.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배를 타고 도망가다가 폭풍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곧 바다에 던져져서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요나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이제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소화가 되어 죽는 것 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가 부르짖으며 회개합니다. 하나님은 요나의 회개기도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요나를 향한 심판을 돌이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고기에게 명령 하셨고 물고기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요나를 토해냈습니다.
니느웨성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 그 죄악이 가득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요나가 니느웨성을 향해서 설교하는 그날부터 40일이 지나면 니느웨는 멸망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나의 설교를 들은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합니다.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잘못을 구하고 살려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회개를 받으시고 뜻을 돌이키셔서 니느웨를 멸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회개가 하나님의 심판의 칼을 거두게 한 것입니다.
의인과 악인의 차이가 무엇인줄 아십니까? 죄를 짓고 안 짓고의 차이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도 예외 없이 죄인입니다. 차이점은 죄를 처리하는 것이 다른 것입니다. 의인은 회개하여 죄를 처리하여 없애지만 악인은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죄가 처리되지 않습니다.
두 집이 있다고 가정합시다. 한 집은 깨끗하고 한 집은 더럽습니다. 그런데 깨끗한 집이나 더러운 집이나 쓰레기가 생기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쓰레기를 어떻게 하느냐입니다. 깨끗한 집은 쓰레기를 잘 치워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배출시킵니다. 날마다 그렇게 하기 때문에 깨끗합니다. 더러운 집은 쓰레기를 처리하지 않습니다. 쓰레기가 많지 않을 때는 티가 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쓰레기의 양이 많아지면 그 집은 더럽고 냄새가 진동하는 집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죄의 처리도 이와 비슷합니다.
의인과 악인의 차이점은 죄를 어떻게 하느냐입니다. 죄를 그냥 가지고 사는 사람은 악인이고 죄를 처리할 줄 아는 사람은 의인입니다. 의인은 자신의 죄를 처리해주실 분이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십자가 아래 나아갑니다. 그러면 주님은 그 죄를 깨끗하게 처리해주십니다.
우리의 죄를 처리하는 하나님의 방법은 회개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악으로 슬퍼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땅도 고쳐주십니다.
대하 7:14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땅을 고치신다는 말은 환경을 바꾸어주신다는 뜻입니다. 회개하면 환경도 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악한 길로 들어서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막히게 됩니다. 창세기 16,17장을 보면 86세인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의 말을 듣고 하갈을 취합니다. 그리고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게 됩니다. 그 일은 믿음의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 앞에서 죄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후 13년 간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13년간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에서 생명 없는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죽은 종교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은 잘 믿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붙잡혀서 살던 사람들과 하나님께 버림받았던 사람들의 차이는 회개입니다. 의인은 회개하는 신앙생활을 했고 악인은 절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대는 회개가 약합니다. 아니 없습니다. 교회 와서 몇 마디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라고 하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형식적인 회개는 있지만 진정한 회개는 없습니다. 값싼 회개, 심하게 표현해서 미안한데 입으로 몇 마디 나불거리고 용서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용서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용서 받은 것입니까. 그렇게 믿는다고 용서 받은 것입니까? 가슴을 치는 회개, 눈물로 매달리는 간절함이 없습니다. 영혼 깊은 곳에서 용서 받았다는 확신이 올라와야 하는데 지나가는 말로 한 마디하고 너무 자유합니다. 뻔뻔한 종교생활입니다. 이런 신앙생활을 비유하면 큰 종기가 나서 살 속이 썩어 가는데 빨간약 바르고 반창고 붙여놓고 자유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성경에서 벗어난 생활을 회개합시다. 내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부분을 철저히 회개합시다. 인간적인 눈으로는 죄라고 여겨지지 않지만 내 영혼 깊은 곳에서 하나님 앞에 죄송스러운 것이 있다면 잘못했다고 고백합시다. 가슴을 치며 회개합시다. 눈물로 회개합시다. 살려달라고 용서해 달라고 부르짖읍시다.
하나님은 오늘 설교를 통해서 저와 여러분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엘리제사장을 죽이시기 전에 먼저 기회를 주셨습니다. 경고하셨습니다. 그는 자기 마음에 가책으로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였습니다. 돌이킬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셔서 경고하셨습니다. 엘리는 두 번째 경고를 받아드렸어야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살려달라고 기도하며 눈물로 회개를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두 번째 기회도 붙잡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사무엘을 통해서 엘리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엘리는 세 번째 주신 기회를 붙잡았어야 했습니다. 엘리는 이 때라도 “하나님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하나님 살려주세요”라고 울면서 매달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엘리는 그 마지막 기회도 붙잡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전쟁에서 두 아들을 잃고 자기도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회개하지 않는 엘리에게서 떠났습니다. 엘리는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주를 받았습니다.
아마 이 설교를 듣고 여러분의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생각날 것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조명하셔서 자신의 죄악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된 신앙생활에서 돌아서라고, 하나님 앞에서 악한 생활에서 회개하라고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입니다. 경고이며 동시에 기회입니다. 애통하십시오. 가슴을 치시며 회개하십시오. 악한 길에서 돌아서십시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돌아오십시오. 철저한 회개 그것만이 살길입니다.
오늘 설교는 요나서의 교훈입니다. 네 가지 말씀을 나눴습니다.
1. 하나님은 모든 민족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2.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➀고난 중의 기도
➁믿음의 기도(6절)
➂감사의 기도(9절)
3. 하나님은 요나의 표적으로 사람들을 구원하십니다.
4.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 기회를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