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가운데, 앓는 이들을 고쳐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해주고, 마귀들을 쫓아내는 일을 하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아무 것도 지니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마태 10,8-10) 가능한 일인가? 예수님은 무엇을 사도들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신 것일까요?
우리는 오늘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맡기신 일, 그래서 앞으로 사도들이 세상에 나가서 하게 될 일이 다름 아닌 ‘예수님 자신의 일’이라는 것을 새겨주고 계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도들에게 맡기신 직무를 통해서 바로 그 자리에 당신이 함께 하실 것임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곧 사도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을 통해서 예수님이 그 모든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도들이 맡겨진 직무를 수행하는 가운데 세상의 재물, 사람과의 이해관계, 생활환경에 마음과 정신을 빼앗겨 자신들의 직무 안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현존을 망각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고 단단히 분부하신 것입니다.
이보다 앞서 예수님의 일상의 시작과 마침은 언제나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 곧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하는 자리와 시간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어떤 일도, 그 어떤 급박한 상황에서도 기도하시는 것, 곧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와 권능 아래 머무는 것을 소홀히 하시거나 다른 일들로 인해 미루시거나 생략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앓는 이들을 고쳐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키고,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해주고, 마귀를 쫓아내는 일은 사실 사도들의 한 개인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들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도 주님 안에서 머물러 있게 될 때, 주님께 결합되어 있을 때, 곧 고요한 가운데 기도하며 주님과 친교를 맺으려할 때 가능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요한 1,3-5.7)”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 곧 주님의 은총과 축복을 받는다는 것, 주님의 계명에 따라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 서로 사랑하며 성실히 봉사하는 것,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과 확신을 갖고 매일을 충실히 살아간다는 것은 사실 우리의 능력과 지혜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독서에서 요셉이 형제들의 죄로 인해 온갖 고통과 수모를 겪었으면서도 오늘 그 형제들과 마주하며 '용서 화해'를 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하느님의 선하심과 능력 아래 언제나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창세 45,5)
그러므로 스승이며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먼저 모범을 보여주셨듯이, 하느님과 언제 어디서나 모든 일에 우선적으로 함께 머물러 의탁하는 우리의 마음과 노력이 있을 때 그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람으로서 엄청난 공포와 파멸을 예고하는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도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그 기도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이라는 새롭고 영원한 생명과 기쁨을 가져왔고, 모든 이에게 평화와 희망을 안겨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