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자신만의 빛깔 찾기와 관계 맺기를 고민하는 성장의 문턱을 그리다!
MZ 세대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MBTI, 즉 성격 유형 검사에 진심이라는 점이다. 한국리서치에 따르면 젊은 세대일수록 MBTI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며, 그 결과를 신뢰한다고 한다. MZ 세대에게는 MBTI가 단순히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가벼운 테스트가 아니라 자기소개의 수단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러한 열풍은 타인과의 관계 맺기나 채용 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검사의 결과를 맹신하거나 특정 유형을 일반화해 배제하는 등의 문제점도 있지만, 그래도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수단으로서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는 게 사실이다. 이렇듯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방법은 달라도 자아를 탐구하고자 하는 열풍은 시들지 않고 있다. 우리는 자신과 타인이 언제나 궁금하며, 서로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한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리라.
《#구멍》으로 성장의 변곡점을 지나는 청소년들의 숨 가쁜 현실을 사려 깊은 문장으로 형상화한 바 있는 은이결 작가가 이번에는 단편 소설집 《잘 모르던 아이》로 돌아왔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한번 꽂히면 뜨겁고 집요하게 쫓는 것밖에 모르는 지애의 일방적인 애정 공세로 인해 벌어진 아슬아슬한 추격전과 반전 결말을 담은 [스토커], 가정불화로 모두가 떠나기만 하는 집에 남겨진 막막함과 불안함에 시달리던 유경에게 찾아온 환청의 정체를 밝히는 [한 소리가 있어], 짝사랑으로 끝난 첫사랑에 억울해할 새도 없이 절친 민규의 어마어마한 고백에 명치를 얻어맞은 자영의 험난한 성장통을 다룬 [너의 시작], 부모님의 이혼과 재혼으로 재편된 가계도에 한 발씩 걸쳐 둔 채 나쁜 딸이자 철없는 아이로 몰린 해진이 의붓 여동생의 뻔뻔한 계획에 휘말리는 과정을 그린 [동생년], 그리고 엄청난 무게가 실린 비밀을 덥석 안긴 중학교 동급생 K와 우연히 스치는 바람에 봉인된 자신의 비밀과 직면하게 된 이진의 이야기를 그린 표제작 [잘 모르던 아이]까지……. 작가는 나와 타인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과 ‘우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관계 맺기에 대한 고민을 다섯 편의 이야기 속에 담아냈다.
목차
스토커
한 소리가 있어
너의 시작
동생년
잘 모르던 아이
출판사 리뷰
“저 따라다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스토커]
지애는 ‘사람이든 물건이든 한번 꽂히면 그것밖에 모르’는 지나친 열정의 소유자다. 이번에는 동네에 막 이사 온 중학교 후배 ‘쏭’에게 꽂혔다. 처음엔 반짝반짝 윤이 나는 머릿결을 가졌으면서 과감하게 투 블록 커트를 한 겉모습에 눈길이 갔다. 그러다가 엄마 심부름으로 들른 쏭의 집에서 주고받은 잠깐의 대화를 통해 마음을 굳혔다. 등굣길을 함께하며 쏭의 취향과 SNS를 알아낸 뒤부터는 뜨거운 애정 공세를 퍼부었다. ‘좋은 징조’만이 가득한 나날이었다. 쏭의 일거수일투족과 친구 관계를 낱낱이 파악하고 틈만 나면 마주칠 기회를 만들었지만, 이상하게도 관계가 무르익기는커녕 삐거덕거리는 불협화음을 낸다. 급기야 쏭을 쫓던 지애 주변에 이상한 일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잃어버린 물건들이 담긴 상자가 한밤중에 배달되며 오싹한 충고가 날아든다. 상대방이 원치 않는 마음을 일방적으로 쏟아붓는 방식의 관계 맺기가 가진 폭력성을 섬뜩한 반전 속에 담아냈다.
‘흐느끼는 것의 정체를 알아 버렸다.’ + [한 소리가 있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경의 집에는 가족들이 싸우는 소리가 가득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지방 근무로, 언니는 대입 실패 후 가출로 집을 떠나 버렸다. 막다른 골목 끝집으로 돌아오는 건 유경뿐이다. 아니, 뜬금없이 유경의 귓가를 두드리는 정체 모를 소리도 함께였다. 당신 마음대로 해야 성에 차는 강압적인 아빠의 곁에서 막막함과 불안함에 짓눌려 있던 유경은 자신의 처지와 꼭 닮은 상자 속 강아지를 지나치지 못하고 집으로 데려온다. 개를 좋아하는 언니를 집으로 불러들일 유인책이라고 아빠에게 변명하면서. 유경의 짐작대로 돌아온 언니는 개에게 용구라는 이름을 붙이고 살뜰히 돌본다. 하지만 유경의 신경 줄을 팽팽하게 당기며 지속되던 잠깐의 평화는 결국 허무하게 무너지고 만다. 가정불화로 인한 정서적 학대로 인해 환청에 시달리는 아이의 불안한 내면을 정밀하게 그리는 동시에, 아이가 마침내 ‘골목을 벗어날 용기’를 내어 내딛는 발걸음을 안도하며 응원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큐규, 더 못 참겠어, 고백할까 봐.” + [너의 시작]
잠룡 태권도 관장님이 아빠인 자영은 친구들 사이에서 ‘상담사’로 통한다. 실상은 모태 솔로이고, 연애는 책이나 웹툰 그리고 각종 영상으로 배운 게 다라는 비밀을 아는 사람은 절친인 민규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자영에게도 ‘오빠’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 도장에 새로 온 스물일곱 살 막내 사범에게 자신은 고용주의 미성년 자녀일 뿐이지만, 자영은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감정에 푹 잠겨 로맨스 웹툰의 주인공인 양 속앓이를 하며 오빠의 주변을 맴돈다. 괜한 시기심 때문인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쪼잔한 민규의 도움 없이 고백을 감행한 디데이. 자영은 갑작스럽게 나타나 찬물을 확 끼얹는 민규 때문에 고백도 못해 보고 첫사랑에 종지부를 찍는다. 괘씸한 절친은 원수가 되더니 죽지도 않고 되돌아와 어마어마한 비밀까지 투척해 버리는데……. 각자의 빛깔을 찾는 청소년기의 방황과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 어른이 되는 길목에서 만나게 되는 삶의 의외성과 다양한 선택지를 경쾌한 필치로 그렸다.
“왜 나 때문이야?” + [동생년]
여름 방학을 하는 날, 우연에 우연이 거듭된 일로 지구대를 방문하게 된 해진은 결국 엄마에게 떠밀려 재혼한 아빠 집으로 간다. 그리고 그 집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엄청난 걸 목격’한다. 아줌마를 만나는 것까지는 각오했지만, 자신보다 키가 한 뼘이나 큰 의붓 여동생 지원과 아줌마 배 속 아기의 존재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가족에 관한 기대치가 사라진 지 오래지만, 아빠가 이룬 완벽한 가정을 본 순간 해진의 마음은 굳게 닫혀 버린다. 그 후 온몸으로 강렬한 거부감을 내뿜는데도, 지원은 ‘언니를 가져 보는 게 평생소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쩍쩍 달라붙’는다. 그것도 모자라 부모님 앞에선 내색도 하지 않던 내밀한 감정을 드러내며 다짜고짜 해진에게 의지하더니 뻔뻔한 제안을 하기에 이른다. 재편된 가계도 이쪽저쪽에 한 발씩 걸쳐 둔 채 죄책감과 그리움에 시달리는 아이들은 또다시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노곤하게 지쳐 버린다. 가족이 처한 중대한 문제에서 결정권을 박탈당하고 철없는 아이로 내몰리기 일쑤인 해진과 지원이 둘만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나누며 껄끄러운 상황을 돌파해 내는 성장의 문턱을 담았다.
“있잖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는데.” + [잘 모르던 아이]
고등학교 졸업식 날, 폭설이 내린 산을 보기 위해 짧은 여행길에 오른 이진은 터미널에서 중학교 때 동급생 K를 스치듯 본다.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아이를 다시 만난 순간, 이진의 시간은 빠르게 과거로 물러난다. 중학교 3학년 2학기 때 이사와 전학을 간 이진은 다시는 건물 옥상에 올라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뒤 상담 센터에 들러 청소로 시간을 때우며 지낸다. 그런 이진의 단조로운 일상 속으로 상담 센터에서 만난 K가 불쑥 뛰어든다. 친절하게 말을 걸고, 소소한 것을 나눠 주고, 등하굣길과 쉬는 시간을 함께 보내며 K의 친밀함에 스며들면서도 이진은 슬쩍 마음의 거리를 둔다. 마음의 깊이가 시간에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졸업식 예행연습이 있던 날, 이진을 불쑥 찾아온 K는 엄청난 무게가 실린 비밀을 털어놓고, 이진은 매몰차게 화를 내며 K를 뿌리친다. 그로부터 3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과연 이진은 K처럼 봉인된 비밀을 다시 펼쳐볼 수 있을까? 어떤 일들은 묵혀 둔 채 숙성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감당할 수 있을 때 다시 직면하는 것도 용기라는 것, 그 순간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자 선택이라는 메시지를 서정적인 필치로 그렸다.
《잘 모르던 아이》는 센 척하며 거친 말을 툭툭 내뱉어도 말랑말랑 여린 청소년들의 속마음에 주파수를 맞추고, 뭐든 될 수 있지만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을 때도 있는 이들의 혼란스럽고도 불투명한 마음을 다정하게 끌어안는 문장 속에 녹여낸 소설집이다. 프리즘을 통과한 햇빛이 여러 색깔로 나뉘는 것처럼, 청소년기를 통과하며 저마다 다른 빛깔을 갖게 되는 모든 성장의 순간을 적극 응원하며 따뜻한 지지를 보내는 마음을 담뿍 담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