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테가 늘어나도 꿈은 늘 소년처럼 컸습니다.
이십여 년 전의 어느 토요일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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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꿈꾸어오던 일에 과감한 도전을 감행했다.
팍팍한 서울에 와서 살면서 자주 건너거나 지나치게 되는 한강.
수천 년의 세월을 품고 흐르는 역사의 강.
인심이 아무리 팍팍하더라도, 마주치는 수많은 이들 속에서 절절한 고독을 느끼더라도, 그 한강이 있음으로 서울은 제 모습을 갖추고 사람들이 살만한 곳이 되었지 않나 싶다.
그 한강을 자전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내가 꾼 꿈이었다.
봄날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고척교 아래의 안양천에서 출발하여 오목교, 양화교를 거치는 동안, 그리 깨끗해 보이지는 않는 안양천이 나와 함께 한강으로 다가가고, 이름 모르는 들꽃들이 천변 곳곳을 정돈되지 않은 아름다움으로 장식하고 있었다. 급속히 불어나 이제 비둘기들과의 영역 다툼에서도 승기를 잡은 반갑지 않은 까치들도 하얀 배를 드러내 보이며 깍깍 제 영역을 지키느라 경계가 유난했다.
드디어 한강.
건너편에 낮은 뜀틀 모양의 난지도, 그 인공의 터에도 봄은 공평하게 봄옷을 입히느라 분주했다. 무심한 물결을 거슬러 오르니 바람은 등 뒤에서 힘을 보탠다.
성산대교 못 미쳐, 낚시꾼들 저마다 꿈의 부피만큼의 낚싯대들을 한강에 담근 채 곧 보게 될 월척들 기대감에 소주잔 기울이고 있고, 철 이른 윈드서핑 즐기려는 사람들 분주함을 지나치니, 여의도에 이르기 전 넓디넓은 공원에는 상춘객들 하나 둘 몰려나온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을 돌다 보니 모형비행기 동호회 사람들 비행기 하늘 높이 띄워두고, 갖가지 묘기 부리기에 여념이 없다.
당신들도 모두 소년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군요. 반가워요 반가워~
반가운 마음에 잠시 땀을 식히며 그들의 꿈에 박수를 보냈다.
노량대교 아래에는 긴 노량대교 받쳐 드는 수많은 기둥들, 아... 사람들만 힘든 삶을 사는 건 아니구나. 왠지 분위기가 경건하여 으슥한 기둥들 사이를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지나쳤다.
한강철교를 지나고 반포, 한남대교를 지나니 시간이 벌써 출발한 지 세 시간가량 흘러버렸다. 미사리까지 가고 싶은데...
슬슬 다리에 힘도 빠지고, 좁은 안장 위에 얹힌 미안스레 큰 엉덩이는 아까 전부터 제 무게를 못 이겨 고통을 호소하기 시작했었다.
성수대교에 이르러 남아있는 체력을 점검해보니 더 이상 가는 것은 무리. 아쉽지만 그날의 도전은 그곳에서 접기로 마음먹었다. 역시 꿈이 너무 컸었던가 보다...
다음엔... 반드시 미사리, 널 보고 말리라. 기다려라 미사리.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서는 길. 자전거 방향을 돌리자마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심각한 문제에 봉착하고 말았다.
오는 동안 열심히 등을 밀어주던 고맙던 바람이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이젠 등이 아니라 가슴을 밀기 시작한 것이다. 몸의 기운은 거의 빠져 버렸고, 다리 근육들도 서서히 엉기며 피로를 호소하는데, 돌아갈 길은 까마득하고...
아... 이 일을 어찌해야 쓸거나...
더 심각한 건... 엉덩이였다. 마침내 뼛속까지 고통이 전해져서 안장에 엉덩이를 얹는 것 자체가 고통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놈이 받쳐줘야 어떻게든 갈 텐데... 난감 또 난감.
땀 닦으러 가져간 수건을 몇 겹으로 접어 안장 위에 얹고 살살 엉덩이를 얹었다. 여전히 찌르르 아팠지만 억지로 참아낼 만은 하다.
자... 가자 애마야. 니 힘듬도 알겠지만 내 힘듬이 더 크구나.
꿈을 꺾고 돌아가는 길이 꿈꾸던 길보다 더 힘듬을 내 이제야 알겠구나...
바람은 쉼 없이 가슴을 밀어내고, 거의 탈진한 다리는 마음이 내리는 명령에 보기 드문 반항을 해댄다. 마음이 아득하니 몸이 제 먼저 알아 살길을 찾는 것이겠지...
돌아오는 길 중간에 컵라면 파는 천막집이 없었더라면, 상춘객들 봄나들이 끝나버렸더라면, 하늘을 꿈꾸며 나는 모형비행기 여전히 날고 있지 않았더라면, 돛 활짝 펼치고 바람 듬뿍 받아 물살 가르던 윈드서핑 보이지 않았더라면, 낚시꾼들 여전히 소주잔 기울이고 있지 않았더라면, 오고 가며 만난 것도 인연이라고 깍깍 반갑게 맞아주던 까치들 없었더라면...
그날 나는 이슥한 시간에 밤이슬 맞으며 한강 어느 언저리에 엉거주춤 쭈그리고 앉아 훌쩍훌쩍 울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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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길 위의 삶을 결정하고 큰 걱정 하나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 엉덩이에 대한 트라우마였지요.
하루 내내 운전만 하는 그 긴 시간을 엉덩이와 허리가 잘 버텨줄까?
한강 자전거의 아픈 추억처럼, 운전석에 앉기가 두려울 만큼 아프면 어떡하지?
걱정이 걱정을 불러 길 위에 나서기도 전에 걱정은 눈사람이 되어버렸는데...
기우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 길을 걸었고, 역마차부터 지금의 트럭까지 수많은 노하우와 기술이 합쳐져서, 운전석의 의자는 꿀렁꿀렁 부드러운 쿠션의 더 이상의 편안함이 있을 수 없는 의자였습니다.
승용차에 장착된 충격흡수장치, 쇼크 업쇼바가 트럭의 하중이 걸리는 곳에도 있고, 운전석에도 붙어있는 이중 충격흡수 시스템.
굴곡이 있거나 움푹 파진 곳이 있으면, 말 그대로 꿀렁꿀렁 내 몸을 춤추게 해 주니 엉덩이와 허리가 아플 틈이 없었습니다.
아... 이 정도면 미사리까지도 문제없이 잘 갔다 올 수 있겠는데...ㅎㅎ
둘째 주 길 위의 삶은 단풍이 주제가 되었습니다. 짙은 단풍이 아니라 엷게 물들기 시작하는 단풍들이 이른 봄에 돋아나는 연둣빛 새싹들처럼 오가는 길 내내 제 가슴을 두드리고 두근거리게 만들었습니다.
적어도 이젠 꿈꾸다 상처 입진 않겠구나... 염려를 내려놓는 한 주였습니다.
첫댓글 자전거 타기를 3시간 했다는거 이네요?
수고 많이 했습니다
나도 중고 자전거 를 구매 하는 날 김포 골드라인 전철 구례역에서 김포역까지 8 정거장을
전철을 안태워 주어서 3시간 이상에 걸쳐서 타고 온적이 있습니다
본의 아니게 차량 전문 도로로 오게 되다보니 위험하기도 했고 힘도 들었지만 무사히 집에 까지 잘 가져온 적이 있습니다
아마추어가 3시간 동안 일반 자전거 타는게 엄청 어렵다는거를 느꼈습니다
자전거 타기가 생각보다 힘듭니다
그래도 전문 자전거 타기 회원들 비싼 자전거로 여러 시간동안 자전거 타는거 보면 부럽기만 합니다
충성 우하하하하하
태평성대님도 저랑 비슷한 경험을 하셨네요. 그땐 사이클 동호회도 별로 없던 시절이라 아무 정보도 없이 꿈만 컸다가 ㅎㅎ 엉덩이만 아작내고 울고싶던 날이 었지요. 그후로 안장도 좀 편한 것으로 바꾸고 거리도 성산대교 정도까지로 줄여서 즐겁게 타고 다녔지요. 자전거 전용 길로...ㅎㅎ
늘 호쾌한 웃음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갈매기 조나단 같을 때도 있었습니다.
멀리 높이 가고 싶던 꿈을 펼쳐도 보고...
노인과 바다를 쓴 헤밍웨이도 되어 봅니다.
한강에 나가면,
바다와는 또 다른 풍치와 자연을 느끼게 하지요.
꿈을 펼치면서 도전하는 마음자리님의 의지를
공감하는 글입니다.
한강을 향해 가면서 스치는 이름이름이
제 귀에 하나하나 정답게 들어 옵니다.
이젠 적어도 꿈꾸다 상처입진 않겠구나~
연륜이란게 한계를 알게하고
자신을 지키고 사랑하는 보호막이 되어 있습니다.
가을이 오는 휴일 아침,
마음자리님의 만난 글에 흠뻑 젖었습니다.^^
콩꽃님의 댓글은 늘 한편의 새로운 수필을 대하는 기분입니다. 가람형과의 최근 통화에서도 콩꽃님이 참 대단하시다고 이야기 나누었지요. 감사하고 오래 건강하셔서 늘 함께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마음자리님 글을 읽으면 그 큰 차를 몰고 도로를 달리는 마음자리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한강변에서 자전거를 타시던 그 때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더군요.
저도 자전거를 탑니다만 등 뒤에서 부는 바람은 무척이나 고맙지만 가슴으로 향하는 바람은 참 난처하지요.
게다가 오르막길이면 차라리 걸어가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네 인생 역시 마찬가지란 생각이 듭니다.
등 뒤에서 부는 바람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살다 보니 그런 바람보다 역풍이 더 많은 게 세상이더군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강과 산을 다 끼고 있는 수도이자 대도시는 세계에서 참 드물지요. 이제 서울은 거의 세계 제일의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싶습니다. 강 따라 사이클링하는 것도 관강 서울의 일익을 담당하느누것 같습니다.
힘빠진 뒤의 맞바람은 아...생각만해도 참담합니다. ㅎㅎ
살아낸 일은 맞바람을 맞는 일이었지만 살아갈 날들은 등바람 타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대구에서 27년 서울에서 23년을 살았네요. 미국에선 14년을 살고 있고요. ㅎㅎ 다들 비슷한 경험을 해보셨던가 봅니다. 사이클 동호회 복장을 보니 엉덩이 쪽에 두툼한 패드가 들어있는 것 같더라구요.
마음자리님의 꿈을 향한 도전이 비록 상처를 입었다해도 그 꿈의 길위에 서 만난 인연이 없었다면 길위의 삶에 다시 도전할 수 없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 광활한 대륙을 밤낮으로 횡단하는 거대한 트럭의 운전석은 당연히 첨단기술의 진수가 다 집합되어 내거실 소파인냥 되어 있지 않을까 싶네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은 마음님의 글을 읽으니
그저 쉽게 수월하게만 살고 싶은 저의 나약함이 부끄러워집니다.
저도 성수대교에 한강을 보러 가끔 갑니다.
왕복34키로 정도.
전기 자전거로 편하게 ~
도전을 겁내고 쉬운길로만 가려는 저.
돌아보니 제 지난 인생도 그렇군요.
"바람은 언제나 당신의 등뒤에서 불고
당신의 얼굴에는 언제나 따사로운 햇살만 비추길"
스치듯 지나간 tv속 글귀를 마음자리님께 드립니다.
좋아하며 하는 일이다보니 사실 별로 힘들진 않습니다. 리진님도 한강 성수대교 부근으로 가끔 나가보시는군요. 거리가 왕복 34키로라면 어디쯤에서 출발하시는지 감이 안 잡히네요. 전기자전거라니 염려는 내려 놓습니다. ㅎㅎ
응원 글귀 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에 힘 입어 맞바람이 불어와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년 전의 추억을 불려 오셨는데 마치 어제 있었던 일인양 셰밀하게 묘사하셨군요. 참으로 탁월한 묘사력입니다
다행히 그때그때 일기처럼 써둔 글들이 있어 큰 참고가 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등바람이 맞바람이 됐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그 반대의 상황도 있듯이
세상 일이 한쪽으로만 100프로는 없는 것 같더라.
꿈이란 성취하면 가장 좋지만,
그것을 향해 노력하는 그 자체가 오히려 더 값진 경우도 많은 것 같아.
꿈을 향해 다가가는 그 과정이 좋아 힘든 일도 참고 이겨낼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꿈은 이루어졌고 꿈을 즐기는 일이라 더 행복합니다. 형이 지켜보고 있으니 더 힘이 납니다.
우~와 한강에도 그렇게나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었군요.
자전거 타고 한강 다시 보기
넘넘 재미있고 신바람 나지만 안장에 문제가
심각했나봐요.
자전거타고 한강 한번 달려보세요. 여러가지가 새롭게 보여질 겁니다.
마음자리님의 아름다운 도전은 지금도 계속
되는지요ㅎ 양양 낙산사 입구 이따만한 돌에
새겨진, 길에서 길을 묻다는 그래서 만만찮은
속세를 살아내는 우리의 화두가 아닐런지요..
한때 100대 명산 종주를 시도했으나 작심삼일
로 끝난 저올습니다ㅎ
사실 도전이라기보단 정리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길 위의 시긴 중에 헝클어져 있던 많은 것들을 정리해두려구요. ㅎ
정성과 공력이 많이 들어간 내 마음자리의 수필..
저도 오랜 시절 님의 라이딩 코스 근동에 살며 자전거도 사보고 했습니다만. 아니나 달러. 갈때 올때 다르고,엉덩이가 아파 둬번 타다 포기...그때 느낌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