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4일 부수고 세우는 말씀 하느님은 말씀하시고 우리는 듣는다. 농부가 씨앗을 뿌리듯이 예수님은 하느님 말씀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신다. 지금은 밭을 잘 일구어 씨앗을 심지만, 그때는 그냥 땅에 씨앗을 뿌렸다고 한다. 어떤 건 길바닥에, 어떤 건 돌밭이나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다. 그리고 어떤 건 좋은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예수님은 제자들은 따로 부르셨지만 하느님 말씀을 전하실 때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이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과 그분의 나라는 비유로만 전해진다. 하느님은 사람이 아니고 그분의 나라는 사람의 다스림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 13,9).” 예수님은 사람들을 이해시키거나 설득하려고 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제자들이 비유의 뜻을 물으면 따로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마르 4,10). 예수님이 제자들을 편애하시는 걸까? 그것은 그들이 좋은 땅(마태 13,9)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을 더 알고 깨달음을 얻고 싶어 한다. 예수님 이야기나 복음이 누구에게는 길바닥에 떨어진 광고지 같고, 누구에게는 마른 땅에 단비 같다. 왜 이렇게 다른지, 그건 아마 예수님도 모르셨던 거 같다. “너희에게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마태 13,11).”
좋은 땅이란 하느님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어 놓은 사람이다. 좋은 향기를 내는 흙, 봄비를 흠뻑 맞은 땅, 그런 곳에 씨앗을 심으면 바로 싹이 터져 나올 것 같다. 그는 하느님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말 그대로 하느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바오로 사도는 그들을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에페 1,3-5).” 이 말에 누구는 기뻐하고 감사하고 누구는 말도 안 된다고 한다, 세상 창조 이전부터 하느님이 나를 선택하시다니. 문고리는 안쪽에 있다. 내가 열지 않으면 전능하신 하느님도 내 안으로 들어오실 수 없다.
하느님 말씀은 입에는 달고 배는 쓰리다(묵시 10,9-10). 내가 좋아한다고 하느님께도 좋게 보이는 게 아니다. 고쳐 쓰는 거보다 때론 새로 사는 게 낫고, 허물고 새로 짓는 게 좋을 때가 있다. 하느님 말씀은 ‘뽑고 허물고 없애고 부수며 새로 세우고 심는다(예레 1,10).’ 이스라엘 민족이 강대국에 의해 유배 생활을 하고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건 그들이 하느님 말씀을 듣지 않은 심판이나 벌이 아니다. 그들이 하느님께 다시 돌아오고 새로운 성전을 세우시기 위한 거였다. 이제는 영원히 부서지지 않는 성전을 세워주셨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그분이 바로 살아있는 하느님 말씀이고 그 성전이다.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하느님 말씀을 인간의 언어로 듣고, 그분을 믿고 친해져서 친구처럼 아버지 어머니처럼 하느님을 만난다. 내 안에서 무엇인가 무너지는 소리가 나거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감사한다. 하느님의 구원이 실제로 시작된 거다.
예수님, 가족과 성모님마저도 주님이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마르 3,21).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합니다. 이 낡은 부대를 버려야 새 부대를 마련해주시고, 끝까지 맛 좋은 새 포도주를 맛보게 해주십니다. 수십 년 익숙한 것을 버리는 게 쉽지 않지만, 주님이 주시는 것에 비하면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어머니처럼 하느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게 도와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