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지금 대한민국은 좌, 우 이념 대립의 풍파 속에서 황천항해 (荒天航海)를 하고 있다!
1.
2000년 9월 내가 타던 배가 유서 깊은 보스포러스 해협을 통과하여 우크라이나 유제니라는 항구에 입항했다.
유제니 (yuzhny)는 오데사 근처에 있는 작은 항구로 철 제련소만 있을 뿐 지도에도 지명이 나오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붕괴로 소련 연방에서 1991년에 독립했다.
적재화물은 호떡만한 선철 (Pig iron 무쇠) 이었다. 우크라이나는 철강, 망간 등 지하자원도 있었으나 주 산업이 해바라기유
수출이었다. 국토의 태반이 해바라기 밭으로 유럽에서는 최 빈국에 속했다.
공산국가나 아프리카 가난한 나라의 관리들이 다 그렇듯이 우크리나 항만 관리들도 그 본색을 드러냈다.
발라스트 수 교환에 대한 기록 서류를 입항 시에 다 제출했는데도 암말하고 있다가 화물 적재를 시작하고
며칠이 지나서야 "왜 허가 없이 발라스트 수를 배출했느냐?"고 트집을 잡으며 벌금 2천 불을 내라고 했다.
경고장이나 현금 영수증도 발급해줄 수 없다면서 무조건 현금만 내라고 다그쳤다.
뻔히 아는 날강도 수법이지만 달라는 놈한테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대리점 말씀이 더 걸작이었다.
"관리들도 항만청장한테 바치지 않으면 모가지 날라가니 돈 많은 선장이 좀 양보하라!'고 사정을 했다.
벌금을 받았다는 영수증도 발급해줄 수 없다니 선장은 꼼짝없이 개인 돈으로 물어야 할 판이었다.
일본 선주 감독은 뻔히 놈들의 수법을 알면서도 용선주한테 받으라며 나 몰라라 했다.
상륙을 하니 일반 서민들은 친절하기 그지없었다. 부두에서 선원들이 상륙하기만 기다리는 태시 기사의 부추김으로 찾아간
호텔겸 주점에는 노래방 기기가 있었는데 '금보'인지 '금창'인지 기억이 아물아물하지만 전부 대한민국 제품이었다.
수록곡은 한국에사나 마찬가지로 한국가요 및 일본 엔카, 팝송 다 있었다.
와국 선원들을 기다리는 팔등신 미녀들은 한국노래도 곧잘 불렀다. 초코레트를 하나 사 주면 그날 파트너가 되었다.
객고를 풀 경우, 화대는 따로 주어야 했지만 돈에 인색히게 굴지는 않았다. 그건 상트페태르부그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다 나라의 경제가 무너진 탓이었다.
부두만 벗어나면 사방은 끝없는 해바라기 밭이었다. 우리나라 시장통처럼 길거리에는 할머니들이 좌판을 벌여놓고
야채를 팔고 있었다. 볶은 해바라기씨도 빠지지 않았다. 아이들의 주전부리가 볶은 해바라기 씨였다.
노천 가게에서 어느 할아버지가 예닐곱 살의 손녀를 데리고 작은 잔술로 생맥주를 한 잔 마시고 있었다. 손녀는
야쿠루트 하나를 가지고 아껴가며 핥아먹으면서 힐금힐금 나를 훔쳐보고 있었다.
초코우유를 하나 골라 손에 들고 '이거 손녀에게 사 줘도 되겠느냐?'고 할아버지에게 손짓으로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까레이스끼?" "고려인이냐?"고 묻는 것 같아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더니 악수를 청하며
자기와 같이 가자고 했다. 그래서 맥주를 몇 캔 사들고 가까운 곳에 있는 할아버지 집에 갔더니 할머니가 "까레이스끼"였다.
말은 안 통했지만 고려인을 만나서 반갑다고 바디랭귀지로 무람없이 떠들었다. 가난해서 대접할 게 그것밖에 없었는지 도가지에 식초를 넣고 담근 오이지를 내놓았다. 시큼하고 아삭한 맛이 우리나라 오이지나 마찬가지였다.
비록 가난할 망정 같은 핏줄이 흐른다고 그런 친절을 베풀어주었던 것이다.
말이 안 통하니 할머니의 본향이 어딘지, 언제 어떻게 우크라이나까지 왔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2.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세계가 요동치고 있다. 연일 외신을 통해 들어오는 전쟁의 참상은 처참하다. 무너진 건물과
희생된 사람들. 피난민들의 행열. 부모 잃은 아이들의 불안한 눈빛. 70년 전에 우리나라가 겪었던 참사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유엔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있을까? 아마 열흘 만에 한 반도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느 대통령 후보는 "초보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서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충돌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정치 초보 대통령은 일단 피신하라는 우호국의 권유에 이렇게 말했다.
"탈출을 도와줄 게 아니라 무기를 달라! 나는 끝까지 싸우겠다!"
대통령의 이 말에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환호하며 소셜미디어에 이렇게 결사항전을 외치고 있다.
"나라를 위해 목숨걸고 싸우려는 정치 초보 대통령이 부정부패를 일삼는 경력자보다 훨씬 낫다. 나는 너를 안 찍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어 너를 좋아한다. 나라를 위해 끝까지 싸워달라!"
우크라이나 유명 스포츠 선수들도 앞다투어 자원 입대해 싸우다 전사했다.
어느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러시아 놈들이 왜 여기 왔어? 너희는 파시스트 점령군이야! 주머니에 해바라기 씨나 가득 넣어둬라. 네가 이 땅에서 쓰러지면 해바라기가 무성하게 자랄 테니!"
무장한 러시아 군인에게 이렇게 호통치는 할머니의 동영상이 전 세계에 퍼져나가며 큰 반향을 얻고 있다.
우리나라 어느 영화감독은 "왜 러시아 말을 듣지 않았느냐고 말한 정치병 아재는 이제 그만 좀 입 다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루 아침에 우크라이나를 점령할 줄 알았던 푸틴은 위협으로 우크라이나 원전까지 공격히고 러시아 내 반전 시위자
7600여 명을 체포 구금했다고 한다. 포로로 잡힌 어느 나이 어린 러시아 병사는 어머니에게 "우리는 속았다. 훈련이라고 했는데
이건 침략전쟁이다. 우크라이나 친구들이 환영해줄 줄 알았는데 결사적으로 항전하고 있다."
첫댓글 나는 우크라이나는 가보진 않았지만 영국 있을 때 같은 연구실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과학자 한테서 이야길 많이 들었다. 겨울에 집안 난방으로 들어오는 스팀이 파이프가 노후돼 펑크가 나서 스팀이 도중에 다 새고 집까지 들어오지도 않는다고 했다. 수리할 돈도 없어 그냥 춥게 견딘다고 했다. 전쟁통에 그 친구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