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본과 이타주의 ]
‘자본’이라는 단어는 라틴어로 머리를 뜻하는 ‘caput’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머리는 신체의 다른 부위보다 위에 있기 때문에 중세 영어에서도 ‘capital’은 가장 높은 곳을 의미하는 단어였습니다.
오늘날 자본은 “상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생산 수단이나 노동력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자본의 사전적 정의와는 달리 인류학에서는 자본을 자원 자본, 사회적 자본, 체화 자본 등으로 폭넓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자원 자본'은 한 개인이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부(富), 혹은 부를 가져올 잠재적 가치가 있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자본이라는 용어에 가장 가까운 것이 자원 자본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사회적 자본'은 내가 가진 관계적 부를 말합니다. 사회적 자본은 관계망이나 평판일 수도 있고, 작위처럼 세습되는 지위 혹은 카스트 제도처럼 문화적으로 정의된 집단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가진 사회적 자본을 통해 그 사람과의 협력 여부를 결정합니다. 그래서 평판이 좋은 사람은 함께 일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지만, 평판이 나쁜 사람은 어딜 가나 기피의 대상이 됩니다.
인류학자들이 중시하는 마지막 유형의 자본은 '체화 자본'입니다. 체화 자본은 유기체가 생존하고 천적을 피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말합니다. 체화 자본은 짝짓기에서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자질로 여겨져 왔습니다.
짝짓기 철이 되면 수컷들은 자신의 우월한 체화 자본을 보여주며 ‘구애’라는 과정을 거쳐 암컷을 유혹합니다. 하지만 체화 자본이 신체를 사용한 기술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닙니다. 농사, 사냥, 채집뿐만 아니라 문화적 정보 역시 체화 자본의 일종입니다.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 된 작업을 즉시 수행하는 흰개미와 비교했을 때 인간은 체화 자본을 획득하기 위해 최소한 10대 후반까지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인류학적 기준으로 자본이 자원 자본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인간이 모두 ‘자본주의자’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인간이 모두 자본주의자라는 말은 사람들이 하나 혹은 그 이상의 자본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인간 사회에서의 자본이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자원 자본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이 이타적인 척 행동하도록 만드는 유인이 됩니다.
세계적 갑부와 대기업들이 기부라는 형태로 자원 자본의 감소를 감수하면서 더 많은 사회적 자본을 획득하고자 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그들에게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자원 자본의 지출을 통해 결과적으로는 좋은 평판이나 이미지라는 사회적 자본을 확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태는 비단 부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일반인들도 자원 자본을 투입하여 자신의 연줄과 학위(사회적 자본)를 강화하고 개인적 지식과 매력(체화 자본)을 끌어올리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합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그 어떤 유기체보다도 복잡한 형태의 자본을 극대화하도록 진화해 왔습니다.
이타주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행위의 이면에는 의식적이든 아니든 다른 형태의 동기가 내재해 있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이타주의는 자신이 가진 하나의 자본을 내놓는 대신 그에 대한 보답으로 다른 형태의 자본을 받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수반되어야만 합니다.
생물학자들 역시 어떤 행동이 얼마나 큰 비용을 감수하는지를 기준으로 이타주의를 정의합니다.
진화생물학에 따르면 가족을 돌볼 돈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돈을 기부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 이타적인 사람입니다. 하지만 길거리의 거지에게 주머니 속 동전 몇 닢을 던져주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을 이타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인류학을 통해 우리는 자본의 극대화가 인간이 지닌 본성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따라서 타인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자본을 희생하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나의 자본을 다른 형태의 자본으로 바꾸는 형식적인 이타주의가 횡행하는 시대에 자신의 선행에 대한 대가를 바라지 않는 진정한 이타주의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사)지역산업입지연구원 원장 홍진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