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토산품 ‘거제도 유자와 귤’, 1편>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거제도 유자(柚子)는 해풍의 짠맛에 길들어져 그 향기가 매혹적이라, 노란 금빛의 유혹에 감히 고개를 돌릴 수 없다. 어린 시절, 유자나무 밑둥 주위 흙을 조금 파내고, 바닷가 썩은 생선과 각종 해초를 묻고 집안에 보관 중인 거름과 함께 흙을 듬뿍 덮으면, 해갈이도 없이 유자가 주렁주렁 열렸다. 특히 해초를 거름으로 많이 줄때면, 그 유자의 과즙이 얼마나 진한지.. 온 마을이 유자 향기로 새벽을 열수 있었다.
남구만(南九萬)이 1680년 남해도에서 이르길, 숙부께서 진도(珍島)로 유배 가셨을 때에 유자 껍질을 잘게 썰고 가늘게 썰은 배〔梨〕와 실처럼 썰은 전복과 합하여 김치를 담았는데, 풍미(風味)가 뛰어나서 연화(煙火) 가운데의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나도 이것을 본받아 김치를 만들었다고 기록했는데, 이는 옛날 남부해안지방에서 유자라는 토산품을 활용해, 담아먹었던 최고급 김치였다.
500년 전의 이행(李荇)과 한충(韓忠) 선생은 거제도에 유자나무가 우거졌고 귀한 과실로 대접을 받았다고 한시를 남겨 전하고 있으며, 또한 거제 유자는 조선시대말까지 각종 상납 물품과 특산물로서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다. 거제도와 오랜 역사적인 인연이라 그런지, 왠지 친숙하게 다가오는 늦가을 보배이다. 거제(巨濟)사람은 12월 유자의 공덕을 이렇게 칭송한다. “유자는 얽어도 제사상에 오르고 탱자는 고와도 똥밭에 구른다"
고려사에 따르면 감귤(재래감귤 품종은 유자, 산귤, 당유자, 홍귤, 탱자 등 5품종)은 고려 문종 6년(1052년) 이전 제주 특산품으로 임금님께 진상되는 귀한 과일이었으니 거제 유자도 이 당시부터 개경으로 진상되었으리라. 거제도 사람들은 육지 사람에게 선물할 때에는 말린 전복, 표고버섯과 더불어 가을에는 유자를 가장 많이 보냈다. 가을 추수가 끝난 후, 육지 먼 길 친척집에 갈 때도 유자를 반드시 챙겨 갔고, 1800년대 초 거제 선비 유한옥은 김해 이학규선생께 선물로 유자를 보냈다. 그 만큼 당시 육지에선 귀한 물품이었으리라.
유자(柚子)의 공덕은 첫째, 유자의 독특한 향기는 삶에 대한 낙관(樂觀)을 선사한다. 유자를 한 바구니 담아서 방안에 놓아두면 근심이 사라진다. 둘째, 유자를 잘게 썰어 꿀이나 설탕에 재어서 만든 유자차(柚子茶)의 맛은 입안을 향기롭게 만든다. 숙취에도 유자차가 좋다. 셋째, 유자는 비타민이 풍부해서 감기에 좋다. 유자는 씨도 약이 되고 껍질도 약이 된다. 버릴 것이 없다.
(1) 식유[食柚] 유자를 먹으며. / 1520년 가을 거제도 신현읍 수월리 배소에서 유자를 처음 먹어 본 한충(韓忠)선생은 그 맛에 감탄하여 다음 "식유(食柚)" 한시(漢詩)를 지었다.
南溟島嶼長 남쪽 큰 바다엔 도서(島嶼)가 줄 잇고
地暖秋無霜 따뜻한 땅이라 가을에도 서리가 없구나.
冬靑多橘柚 사철나무인 귤과 유자가 많아
佳實壓枝黃 맛좋은 과실이 가지마다 누렇게 처져 열린다.
昔分晉符左 예전엔 곁에다 증표를 끼어 구분하고는
異產稱此果 진귀하게 자라난 이 과일을 칭찬했다네.
包匭進中宸 상자에 싸서 대궐 장부에다 올리었고
賓盤分亦可 쟁반에 담아 손님을 대접해도 역시 좋다.
野人瀉筠籠 야인이 대바구니에 쏟아놓고
箇箇驪龍裹 낱낱이 검은 용 싸듯 한다네
津津齒生漿 푸짐하니 이빨 사이에 즙이 나오며
馥馥香滿坐 그윽한 향기가 자리에 온통 가득하다.
擘作黃金杯 손으로 쪼개 만든 황금술이
瀲灎中涵醅 가득 넘치는데도 질리지도 않구나.
邇來隔風調 근년에 시(詩)의 아취(雅趣)를 등한히 하니
抱病山中來 늘 지닌 병이 산중까지 따라왔도다.
何人遠致饋 멀리서 먹을거리 보낸 이 누구인가?
一見病眼開 한번 보아도 병든 눈이 낫는구나.
先嘗愧自佳 먼저 맛을 보니 너무 좋아 부끄러워지며
親遠不得懷 멀리 계신 어버이 부득이 생각난다.
物美豈異昔 유자가 아름다운데 어찌 전과 다르리.
但恨人事乖 다만 다정다감한 사람들이 일에 어그러져
風流念如掃 풍류를 거절할 것 같은 생각에
蕭蕭鬢雙皓 소소한 양쪽 귀밑털이 세는구나.
對此感流年 이러한 감응을 매년 마주하니
回頭傷我抱 머리 돌려, 품은 마음 애태운다.
소동파의 식감시(食柑詩) “한 쌍의 비단 보자기로 진귀한 물건 나누어 주지 않았는데, 숲 아래에서 먼저 맛보니 쫓겨난 신하 부끄럽네(一雙羅帖未分珍 林下先嘗怪逐臣)”라고 하였다. 옛날 궁중에서 가까운 신하들에게 귤이나 밀감을 하사하게 되면 황색 비단 보자기(羅帖)에 싸서 주었는바, 아직 궁중에서 하사하기 전에 귀양 온 자신이 먼저 먹게 되어 부끄럽다고 말한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2) 남주유가[南州柚歌] 거제유자찬가 / 김진규(金鎭圭) 1694년 겨울.
南州炎德産柚樹 남녘 고을 더위 덕에 유자나무 자란다네
處處人家種園圃 인가(人家) 앞뒤 이곳저곳 울안밭에 심었구나
婆娑株榦閱歲月 세월 지나 나부끼는 유자나무 줄기와
沃若枝條含霧雨 가지에 윤기 바르르, 안개비 머금었다
猗嗟嘉木世所稀 아~ 멋있고 아름다워라, 이 세상에 희귀한 것,
燕棗秦栗非其伍 대추 밤 제수과실 그 다섯은 아니네.
歲暮嚴霜悴草木 세모의 된서리에 초목이 파리해도
滿林佳色獨盈矚 아름다운 빛깔 우거진 유자 숲, 어찌 그리 교만할까?
葉茂森森競翠竹 우거진 잎 삼삼하여 취죽(싱싱한 대나무)과 다투는데
子熟煌煌映黃菊 익은 열매 번쩍번쩍 노란국화 초라하다
望中村落張錦繡 촌락을 보노라니 비단 옷 그림이라,
摘來衣裳襲芬馥 유자 따 와서 보니 옷에 배인 향기 뿐,
乍破香霧爪甲濕 안개 향기 지나가니 손발톱이 축축하고
細嚼流霞膓肺沃 살짝 씹은 신선(神仙)의 술, 마음까지 부드럽다
南州吏民不敢甞 남쪽고을 백성들은 맛보지 아니하고
十襲題封獻君王 열 겹이나 귀히 싸서 군왕께 올린다네.
蓬萊殿上深秋日 깊어가는 가을날, 전각 위 축하 장식,
荊楚包開滿庭香 연회 위해 연 보따리, 궁궐에 향기 가득,
想見天笑一爲新 웃는 하늘 바라보니 온 누리 새로워
頓覺玉食增輝光 맛난 음식 나타나 찬란하게 빛나도다.
君餘仍復徧恩錫 임금의 은혜로 모두에게 나누어,
小臣亦甞霑聖澤 신하도 맛을 보니 두루 미친 성은이네.
豈知流落此相見 이렇게도 만나는데 귀양 간 나를 알아줄까?
臨風三嗅淚垂臆 바람 따라 맡은 내음, 가슴속 눈물이라.
聞說昨夜貢使發 어젯밤 소식으론 올린 공물 온다는데
幾時當到長安陌 서울 길거리에 언제 당도하려나?
羨爾遙生瘴海村 부러워라, 생산된 먼 장기 낀 어촌에서
猶得年年近至尊 해마다 지존(임금)께 가히 사랑받으니..
自憐懷中餘舊核 가엾다, 마음속에 예전 그 씨앗 남아
美人天末空嬋媛 거제도 미인의 아름다움 헛되는구나.
欲將丹心比珍果 진귀한 과실보다 참된 정성 으뜸인데
安得伴爾朝天閽 어찌 너와 벗되어 도성 문(門)서 배알할까?
嗚呼安得伴爾朝天閽 아~ 어찌 너와 벗되어 도성 문(門)에서 배알할까?
김진규(金鎭圭)선생이 거제면 동상리에서 귀양살이 할 때 유자 맛을 본 후, 유배가 끝난 1694년 초겨울, 서울로 올라온 선생은 대궐 앞에서 공물로 올라 온 '거제 유자'와 함께 임금을 배알하는 심정에, '거제유자찬가(南州柚歌)'를 지은 아름다운 한시이다.
(3) 말 위에서 석류꽃을 보고[馬上見榴花] / 이행(李荇) 1506년 作.
海榴高幾尺 석류가 몇 척 높이로 섰으니
籬落暮霞丹 울타리에 저녁노을이 붉어라
有客經時出 타향살이 오랜만에 밖으로 나가
斜陽立馬看 비낀 석양에 말을 세우고 보노라
應隨橘柚貢 유자와 함께 공물로 바쳐져야겠고
更恐斧斤殘 도끼에 무참히 베어질까 걱정일세
/고을현(縣) 사람 중에 유자나무를 벤 자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聞縣人有伐柚子樹者).
莫怪無佳句 좋은 시구가 없다 괴이쩍어 말라
衰年苦少歡 노년에 괴롭게도 기쁜 일이 적단다.
[주] 좋은 시구 없다 말라(莫怪無佳句) : 용재가 석류를 보고, “너를 읊을 좋은 시구가 없다고 이상하게 생각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다.
첫댓글 거제도 하면 유자 진짜 찐하고 맛나죠 지난달에 거제도 다녀왔는데 너무 좋았어요 점심은 장승포 싱싱게장 유명한 맛집에서 맛나게 먹고 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