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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을 에워 싼 親北-운동권 출신 참모들 |
말誌 편집위원 출신이 대변인 守舊세력 청산 주장한 사람들이 핵심 참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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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욱 프리랜서 기자 2007-11-11 오후 12:18: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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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선거캠프는 어떤 사람들이 이끌고 있을까? 이명박 선거캠프(MB캠프)의 『조종실』과 『관제탑』은 오전 7시, 오후 5시에 열리는 「전략홍보기획조정회의(전략기획회의)」로 알려져 있다.
이들 회의체 구성원 중 이방호 의원 등 당내 중진을 제외한 실무급들은 소위 당내 소장派·개혁派 및 「외부인사들」 그리고 「이명박 사람들」로 요약된다.
MB캠프 브레인에 해당하는 이들은 386운동권 출신들이 주축이다. 중앙일보 10월8일자 「이명박 대선준비팀 이끄는 젊은 실세들」 제하(題下) 기사 일부를 인용해보자.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선거 작전지도를 그리는 대선 준비팀 간사들은 보수색 짙은 당의 기존 이미지와 판이한 컬러다. 학생 운동권 출신의 40대 소장파가 주축이다. 이들이 곧 선보일 선거 구상이 과거 한나라당 방식과 차이가 클 것임을 예고한다.』
<이명박 후보의 「눈」과 「귀」>
386운동권 출신 참모들은 여론 동향 등을 실시간으로 체크, 선거의 기본전략을 마련하는 李후보의 「눈」과 「귀」에 해당한다.
구체적 멤버는 정두언 의원을 전략기획회의 총괄팀장으로 하여 김해수(48) 비서실 부실장, 김성식(48) 조직기획팀장, 이태규(43) 전략기획팀장, 은진수(45) 법률지원팀장 및 김인규(57) 방송전략팀장(전 KBS 이사), 이우찬(47) 홍보기획팀장(제일기획 출신), 진성호(45) 뉴미디어팀장(전 조선일보 기자) 등이다.
<제헌의회 그룹 사건 연루, 김성식 조직기획팀장>
김성식 조직기획팀장은 서울대 운동권 출신으로 1978년 「유신철폐시위」에 이어 1986년 「제헌의회 그룹(CA : Constituent Assembly)사건」으로 두 차례 구속됐다. CA그룹은 한국사회를 「제국주의의 新식민지」로 간주하면서 『파쇼 하의 개헌반대, 혁명으로 제헌의회』 소집을 주장한 左派혁명 단체였다.
金팀장은 출소 후 전국화학노조(勞組) 기획부장과 민주당 동대문乙지구당위원장을 거쳐 2000년 한나라당 서울관악甲지구당 위원장으로 한나라당에 들어왔다. 2004년 총선에 떨어진 후에는 손학규 前경기지사를 보필하는 경기도 정무부지사로 활동했고, 孫 前지사 탈당 후에는 MB캠프에 발탁됐다.
金팀장은 정무부지사 시절, 『손학규의 「복심」』으로 통했다. 그는 부시장 발탁 당시인 2004년 5월9일 <시민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孫 지사와는 과거 민주화 운동을 통한 개인적 인연이 있었고 한국사회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사이』라고 말했었다.
金팀장은 부시장 시절 평양을 왕래하며, 소위 「북한 농촌현대화 사업」 등 경기도의 對北지원 사업을 주도해왔다.
金팀장은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수석전문위원으로도 활동해왔다. KSOI 출신들은 左派대선후보 캠프에 대거 진출해있다. 각각 KSOI 소장·副소장·수석전문위원·기획위원 출신인 김헌태·정기남·정창교·문명학氏는 각각 문국현 후보 정무특보, 정동영 캠프 공보실장, 대통합민주신당 원내기획실장, 권영길 후보 정무특보를 맡고 있다.
KSOI 출신이 주요 후보 책사 노릇을 도맡고 있어서, 정치권에서는 『KSOI가 대선에 분산투자를 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美문화원 점거사건으로 복역한 정태근 유세단장>
전략기획회의 멤버는 아니지만, 이명박 후보의 측근 중 한 명인 정태근 중앙선대위 유세수행단장은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鄭단장은 「삼민투(三民鬪)」 활동을 벌이다 85년 「美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으로 복역했다.
三民鬪는 「민족통일·민주쟁취·민중해방을 위한 투쟁위원회」 약칭인 反韓·反美단체였다. 三民鬪는 386간첩단사건인 「일심회(一心會)」사건으로 다시 거론됐었다. 一心會 사건의 공범인 이정훈, 손정목氏는 각각 고려대, 연세대 三民鬪 출신이다.
민노당 주장에 따르면, 一心會 사건 주범인 장민호에게 이정훈을 소개시켜 준 인물 역시 고려대 三民鬪 출신인 허인회(前 열린당 청년위원장)氏였다. 이정훈, 손정목, 허인회氏 및 당시 三民鬪 멤버들인 김민석 前민주당의원, 고진화 現한나라당 의원 모두 85년 「美문화원 점거농성 사건」으로 구속됐었다.
<통일연대 소속 민가협 간사 지내>
鄭단장은 출소 후 친북단체인 통일연대 소속단체인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간사를 거쳐 99년 「한국의 미래, 제3의 힘」운영위원, (사)한민족평화통일연대 이사를 맡아 활동했다.
「한국의 미래, 제3의 힘」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386운동권 출신들이 조직한 단체로서 같은 해 1월24일 총선시민연대의 「공천반대인사」 명단공개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었다.
(사)한민족평화통일연대는 열린우리당 김성곤 최고위원을 이사장으로 하여 99년 『로버트 김 석방을 위한 전국회의』라는 수식어를 달고 시작됐다. 이후 이 단체는 6·15선언을 지지하는 단체로 변질(?)됐다.
한민족평화통일연대는 지난 해 7월29일 일본과 미국이 「카스라-테프트협정」을 맺은 지 101년이 되는 날을 맞아 소위 민족단체들과 함께 소위 『日本제국주의와 美제국주의』를 규탄하면서 『6.15선언의 기본정신을 확고히 고수·지지하고 <우리민족끼리>의 이념에 따라 남과 북의 민족적 공조에 나설 것』을 결의했다.
鄭단장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386들을 대거 영입할 때 원희룡, 고진화 의원 등과 함께 한나라당에 들어왔다. 2002년 4월 서울시장 선거 때 인터넷본부장을 맡아 이명박 후보를 도왔고, 2005년 9월 정무부시장으로 발탁돼 「이명박 사람」이 됐다. 부인 한신자(43·이즈피엠피 대표)氏도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노동운동가 출신 김해수 비서실 부실장>
김해수(49) 후보 비서실 부실장은 고려대 출신으로서 캠퍼스 커플인 부인 전현주氏와 함께 대학 졸업 후 공단에 들어간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부평공단에서 그는 악기 공장 도장공으로 2년 반 일했고, 부인은 미싱사로 취업했다.
감옥을 다녀온 그는 정치 광고회사를 거쳐 안상수 원내대표의 96년 총선을 도우며 정치권에 발을 딛는다. 이명박 후보와는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부터 본격적으로 교류했다. 캠프 합류는 이재오 前최고위원과의 친분이 직접적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태규(43)전략기획팀장 역시 한국항공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대학졸업 후 노동현장에서 일했던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1990년 민주당에서 정치활동을 시작한 뒤, 1997년 민주당과 신한국당이 통합하면서 한나라당 사람이 됐다.
그는 한나라당 윤여준 前의원의 보좌관을 지낸 후 여의도연구소 전략기획팀장 등을 지냈고, 지난 6월 정두언·박형준 의원 추천으로 캠프에 공식 합류했다.
<월간 「말」편집위원 출신의 박형준 의원>
현역의원 중 정두언·주호영 의원과 함께 이명박 후보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박형준 의원은 동아대 교수출신으로 소위 진보인사로 분류되던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 약력에서 『80년대 후반 「창작과 비평」, 「현실과 과학」등 진보적 학술지를 통해 일어났던 여러 사회과학 논쟁에도 참여해 비교적 일찍 소장 논객으로 이름이 알려졌다』고 적어놓았다.
朴의원은 91년 무렵부터 左派매체인 월간「말」지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는 8월14일 朴의원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젊은 진보 사회학자 박형준은 기자 오연호를 「지도」하던 사람이었다』며 「말」지에서의 인연에 대해 적고 있다.
<수요모임 멤버로서 국보법 전면적 개정 주장>
朴의원은 2004년 국회 입성 후 원희룡·남경필 의원 등과 「수요모임」이라는 소위 소장파·개혁파 모임을 이끌며 당내의 소위 강경보수파에 맞서왔다. 국가보안법 폐지논란이 한창이던 2004년 11월에는 정부참칭 조항·찬양고무罪·불고지罪 폐지 등 국가보안법의 전면적 개정을 주장하며 보수적 의원들 모임인 「자유포럼」과 논쟁을 벌였다.
현재 대변인을 맡고 있는 朴의원은 10월22일 PBC라디오에서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중도 보수 세력이 단합한 정권교체』를 주장하면서 반공(反共)성향의 정통보수를 사실상 배제할 것을 주장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김성욱 프리랜서 기자 (gurkhan@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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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은 더 왼쪽으로 가야』】
<탄핵반대·對北현금지원·左클릭 수정 주장하는 MB참모들>
MB캠프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이전(以前)과 이후(以後), 선거 전략의 급격한 수정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경선 당시는 「당원」을 상대로 한 선거였으므로 보수적(保守的) 전략을 추진했지만, 경선 이후는 「중간층」을 잡기위한 중도적(中道的) 전략을 추진해왔다는 것이다.
<『친북좌파·보수우파』발언 철회한 MB>
이명박 후보가 8월29일 『이번 선거는 친북좌파 세력과 보수우파 세력의 대결』이라고 말했을 당시에도 캠프 내 반발과 우려가 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李후보는 9월12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당시 발언과 관련, 『꼭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보는 사람도 있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라며 『이번 대선은 과거에 집착하는 사람과 미래를 지향하는 사람의 대결로 봐야 한다』고 해명(?)했다.
MB캠프의 중도(中道) 선회에 대해 단순한 「득표(得票)전략」이기 이전에 캠프의 「이념(理念)성향」에서 기인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한나라당이 지칭해 온 소위 강경보수를 털고 가는 것이 당선에 도움이 된다고 믿을 뿐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털고 싶은 게 속내라는 지적이다.
<노무현 탄핵하자, 한나라당에 역공>
실제 MB캠프 참모들은 정통적인 보수우파와 거리가 있다. 이들은 대부분 2004년 총선에 출마했는데, 국회에서 「노무현 탄핵소추」가 결의된 후 반대여론이 거세지자 오히려 한나라당을 공격하고 나섰다.
MB캠프 김해수 비서실 부실장 등 소위 한나라당 소장파 공천자 27명은 2004년 3월21일 기자회견에서 『한나라당은 탄핵소추 과정은 물론 사후에도 국민의 이해를 충분히 구하지 못한 점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며 『탄핵소추에 대한 사후처리는 국민여론과 사회각계 원로의 의견 수렴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金부실장 외에도 현재 「이명박 대선후보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즉 MB캠프 핵심인사인 은진수 법률지원팀장, 정태근 유세수행단장 및 정두언 의원(전략회의 총괄팀장), 고진화 의원(사회약자보호분과위원장) 등이 참여했다.
MB캠프 김성식 조직기획팀장은 2004년 3월10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통해 『「국정을 망친' 대통령이 탄핵되기만 하면 진정 나라가 나아진다고 믿는 것인가』『국민 다수가 盧정권에 절망하면서도 탄핵에 동의하지 않는 근본이유가 바로 한나라에 있다는 것을 왜 보지 못 하는가』라며 『과연 한나라는 떳떳한가』라고 공격했다.
<『對北현금지원!』, 보수세력 냉전적 사고 비난>
김성식 조직기획팀장(당시 제2정조위원장)을 비롯해 권영세·남경필·원희룡 의원 등 소위 한나라당 소장파들은 전당대회를 앞 둔 2004년 3월1일, 對北현금지원을 골자로 한 소위 「뉴한나라를 위한 반성과 제언」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은 『(보수세력이) 남북 평화공존이 시대의 대세인데도 불구하고 과거 냉전 시대 일변도 사고를 갖고 있다』며 △북한정권이 합작기업 법인세를 현금(現金)으로 가져가는 방법을 통한 북한 국민소득 증가, △소위 「분배투명성 확보」를 전제로 對北지원확대, △주한미군 한강 이남(以南) 재배치 및 북한 방사포 후방배치의 연계, △대통령 중임제와 정·부통령제 개헌 등을 주장했다.
또 소위 『수구적 보수에서 미래지향적 실용주의로의 변화』를 주장하고, 다가오는 3·18 전당대회를 통한 제2창당」을 위해 △당의 중심(中心)세력 교체, △낡은 보수의 기득권 포기와 정치행태의 혁신, △미래지향적 뉴비전의 창출 등을 강조했다.
당시 최병렬 대표는 소장파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코멘트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고, 보수중진들은 『당의 정체성에 의문을 주는 발상을 중단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근혜 의원은 『한나라당이 對北정책에서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소장파의 발상을 지지했다.
<『왼쪽으로 가서 중도를 포용해야』 오마이뉴스 인터뷰>
MB캠프에는 한나라당의 「좌」클릭 수정을 개혁(改革)으로 주장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태규 전략기획팀장은 2004년 1월8일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한나라당이 가야 할 총선 프로젝트에 대해 이렇게 주장했다.
『일단 물갈이를 해야 한다. 그 다음에 한나라당의 정체성과 노선을 재정립해야 한다. 보수(保守)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한나라당을 수구(守舊)라고 생각한다. 「왼쪽」으로 한참 가야 한다. 그렇게 해도 한나라당이 좌파(左派)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아무도 없다. 왼쪽으로 많이 가서 우리 사회의 중도적인 입장의 사람들을 포용해야 한다.』
한마디로 현재의 한나라당이 수구적이므로 더 왼쪽으로 가야한다는 주장이었다. 李팀장은 소위 수구적 인물을 공천해서 탈당이나 분당이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수구적인 공천이라면 (탈당, 분당 등이 문제될지) 모르지만, 만일 개혁공천의 결과로 인해 그 사람들이 탈당하고 분당을 한다면 감수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과반을 점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100석을 얻더라도 제대로 된 사람의 100석이 돼야 한다. 그래야 이 당이 4년 뒤에 다시 대통령 선거를 준비해 볼 수 있다. 2002년처럼 덩치만 엄청나게 커서, 「뇌 없는 공룡'을 다시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4년 뒤에 다시 가능성이 없다』
이 발언 역시 한나라당이 더 왼쪽으로 가야 『제대로 된 사람이 있는 정당』, 『뇌 있는 공룡이 된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한총련 수배해제 촉구 성명에 동참>
左派출신 정치인들은 과거인맥으로 인해 左派행사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통일뉴스 등 親北매체에 따르면, MB캠프 정태근 유세수행단장은 2003년 4월27일 「한총련 관련 학생들의 수배해제를 촉구한다」는 성명서에 같은 三民鬪 동지였던 허인회氏 등과 함께 서명한 것으로 나온다.
당시 성명은 『우리는 학생운동의 선배로서 한총련 문제에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며 『한총련 후배들이 수배 받고, 고통 받을 때 따뜻한 위로와 격려도 충분히 하지 못했다"고 자성했다.
또 『국민들의 성숙된 민주의식으로 「참여정부」를 탄생시켰고, 한총련 후배들 스스로가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며 『한총련 관련 학생들의 수배해제 문제에 대한 사법당국의 용단을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鄭단장은 2005년 11월1일 소위 『「6.15시대의 참언론' 통일뉴스 5주년 기념행사』에도 오종렬 전국연합 상임의장·한상렬 통일연대 상임의장·이종린 범민련 명예의장 등 親北인사 및 三民鬪 동지였던 고진화 한나라당 의원과 함께 참석했다(출처; 통일뉴스 2005년 11월1일 字)』
<『그들은 재교육을 받지 못했다』>
MB캠프는 경선 이후 대대적인 조직정비를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정통보수 심지어 뉴라이트 인사들까지 캠프에서 외곽으로 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좌파출신에서 전향해 뉴라이트 운동을 벌여 온 한 인사는 MB캠프 내 운동권출신들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우리도 좌파였지만 많은 후회와 반성 끝에 우파로 돌아섰다. 반면 캠프 내 많은 사람들은 우리처럼 再교육을 받지 못했다. 우리도 정통보수와 이념적, 정서적 차이를 드러내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 역시 우리와 적지 않은 이념적, 정서적 차이를 가지고 있다』
김성욱 프리랜서 기자 (gurkhan@empal.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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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거쳐죽일새끼들뿐이네 위장취업뒤 본색드러내는구나
그럼요, 그들은 '양의 탈을 쓴 이리' 였는데 이제 드러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