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난 4월 17일에 제가 써 두었던 글입니다. 다음 '아고라' 카페 가입 기념으로 제가 2023년 정월부터 써 두었던 글들 중 10여편을 골라 올려 보고자 합니다. 저는 지난 72년간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향해왔습니다. 때로는 우편향 때로는 좌편향이었습니다. 역대 대선에서는 노태우ㆍ김영삼ㆍ김대중ㆍ노무현을 선택해서 모두 적중했습니다. 다만 박근혜 당선 때는 문재인에게 투표했고 문재인 당선 때는 홍준표에게 투표해서 두번 실패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윤석열에게 투표했습니다. 흑묘백묘론을 좋아했었고 한 때는 보수집권 십년 진보집권 십년을 희망하기도 했었습니다.
[1]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이 서울광장에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고집하는 것을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보통 참사가 발생하면 발생했던 그 장소에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설치하는 것이 상식인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과 시민단체 등 일부 정치세력들은 지난 2월 4일 참사 100일을 하루 앞두고 서울광장에 분향소를 기습 설치했던 것입니다. 이어 같은 달 14일 녹사평역 분향소를 서울광장으로 이전해 통합 운영을 시작했습니다.
[2] 이태원 압사사건이 발생한지 벌써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갔습니다만 더불어민주당 등 일부 정치세력들과 한겨레신문 등 일부 언론기관들이 바라는 바와는 반대로 민심은 전혀 동요하고 있지 않고 오히려 사고는 점점 잊혀 가는 것 같습니다. 사고의 원인을 축약해 보면 일차 책임은 토요일 밤 10시라는 늦은 시간에 인산인해의 할로윈 축제와 음주가무를 즐기려고 모여든 청춘남녀들의 안전 불감증이었고 이차 책임은 행정당국과 경찰의 안전 관리와 통제력 부족이었습니다.
[3] 세월호 사고의 사망자들은 수학여행을 떠났던 단원고 2학년 학생 250명을 포함해서 304명이었습니다만 이태원 압사사건의 사망자들은 축제를 즐기려던 젊은이 159명이었습니다. 사건의 진상이 언론에 상세하게 보도되면서 오히려 "그들은 왜 그 상황에서 집으로 발길을 돌리지 못했을까?" 하고 혀를 차는 국민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아진 것 같습니다.
[4] 2022년 10월 29일 밤 10시 15분. 이태원 해밀톤호텔 서측 골목 저지대 중간, 즉 입구에서 25m쯤 올라간 곳의 18.24m² 면적에서 병목 현상이 일어나 행인들끼리 우왕좌왕하는 과정에서 뒤엉켰고, 점차 밀집되는 상황에서 불편한 자세를 유지한 채 응급 구조를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5]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려하는 인산인해와 음주가무를 즐기려고 몰려든 인파가 충돌했던 것입니다. 막대한 인파가 빠르게 유입되는 바람에 서측 골목 중간 공간의 상황은 순식간에 심각해져만 갔습니다. 사고 초반 뒤쪽 인파였던 사람들도 앞쪽으로 누적되어 갔고, 뒤쪽 인파에서 세 차례 정도 밀치자 사람들이 우르르 넘어져 이른바 '연쇄 깔림'으로 인해 앞쪽 참변이 가중되었던 것입니다.
[6] 설상가상으로 스마트 폰을 꺼낼 상황이 아니었던 데다 트래픽 과잉으로 인해 전화와 데이터 통신까지 먹통인 상황 속에서 뒤쪽 인파는 이때까지도 상황의 심각성을 파악하기가 불가능했고 그저 멈출 줄 모르며 내려오고만 있었습니다. 앞쪽 인파에서 청색증 및 구토 현상이 눈에 띄게 증가하자 일제히 "뒤로! 뒤로!"를 외치며 뒤쪽 인파가 대부분 역행해 빠져나갔으나,
[7] 이미 300여 명의 사상자들끼리 의식을 잃고 몸이 끼어 서서 빼내기조차 힘든 상황으로 변해버렸던 것입니다. 일부에게는 이미 외상성 질식이 일어났고, 밑에 깔린 사람들은 장기 파손으로 인한 복부 팽창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18.24m²의 좁은 공간에서 150명의 사망자가 나오고 말았습니다. 18.24m²라면 5.5평 밖에 안 되는 좁은 공간입니다. 대략 가로 3m 세로 6m 정도의 좁은 공간입니다. 원룸 다세대주택의 방 한 칸 정도 밖에 안 되는 공간에 150명을 밀어 넣은 것입니다.
[8] 벌써 4월 중순입니다. 시간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 듯 여름을 닮아가는 햇살이 조금 무덥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섞으며, 봄비로 생기 없는 뿌리를 깨운다." 4월만 되면 인구에 회자되는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의 장편 서사시 '황무지'의 첫 구절입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은 제주 4ㆍ3사건, 4ㆍ19혁명, 4ㆍ16 세월호 참사 등 유독 4월에 수많은 생명의 상실을 경험한 대한민국 현대사와 맞물려 더욱 잔인하게 느껴지고 있습니다.
[9] 4월은 안전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린 사람들로 인해 잔인하게 기억되기도 하는 달입니다. 화물을 과적하고 이를 튼튼하게 제대로 결박하지 않은 어른들의 안전 불감증으로 인해 미래를 책임지고 나갈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을 포함해 304명의 소중한 생명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안겨주고 있는 세월호 사건이 있어서 더욱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10] 그러나, 안전 불감증으로 인한 대형 사고는 비단 세월호 참사만 존재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1970년 12월 14일, 건국 이래 최악의 해상사고로 불리는 남영호 침몰 사건이 있습니다. 남영호 침몰사건도 화물 적재량의 3배 정도를 과적한 상태로 인한 배의 복원력 감소가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승선 인원 338명 중 겨우 15명의 인원을 구조했고 나머지 323명 중 18구의 시신을 인양했을 뿐 305명에 대해서는 고인의 유골 확인조차도 없이 제사를 지내고 있는 형편이라고 합니다.
[11] "설마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는 안전 불감증으로 인한 대형 참사는 앞으로도 어김없이 반복될 것입니다. 저는 승용차를 운전하는 제 자녀들에게 가끔 반복 누적해서 이야기를 해 줍니다. 운전은 잘 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조심하는 사람과 조심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태원참사‘의 주된 원인은 청춘남녀들의 안전 불감증이었습니다.
첫댓글 이태원.
공무원의 안이한 대처
국민과 시민에게
책임을 지라고 ?
공무원 필요 없지요...
대텅.시장
책임지고 사퇴...
국민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바쁜 대텅과 시장...
개가 웃고
소가 하품할 일이지요.
정신 차리세요...
춘분님 같은 논리를 펴려고 들면, 우리 앞집에 사는 점쟁이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날이 일진이 안좋았어요. 그리고 천공 스님인가
또 누구는 윤정부에서 큰 재앙이 터진 뒤에 더욱 지위가 단단해져 큰 일을 해낸다. 이태원 참사는 큰 일을 하기 위한 시련이야. 이렇게 이야기한 기사도 보았져. 그 모두 말 장난일 뿐이고, 이태원 헬로윈 데이에 사람이 많이 몰려들었고, 그걸 사전 대비해야 할 공무원들이 손가락 빨고 있었다는 것이 팩트다. 손가락 빨고 있는 사이 대형 사고 터졌다면 그놈은 법의 정의에 의해 처리되어야 하는 데, 행안부 장관이 하는 소리가 '인력으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닌 거 같은 디...' 그래서 국민이 화난겨. 춘분은 뭘 똑 바로 알아라. 우리 앞집 점쟁이 같은 소리 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