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악한 화장실·침대와 비좁은 공간
수십일간 수십 명 수중서 공동 생활
여성은…글쎄? 하지만 이제는 가능해졌다
3000톤급 도산안창호함 등장 계기
덩치 2~3배 커져 거주 구역 분리
올해 사상 최초 여군 승조원 선발
노르웨이 시초 13개국선 이미 실시
미국은 2011년 SSBN에 처음 배치
미 해군 최초 여 잠수함 부장도 탄생
최근 여군 잠수함 승조원 탄생이 임박했다는 기사가 일제히 보도됐습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올해 잠수함 승조원 모집을 통해 여군 장교·부사관 9명을 선발했고, 이르면 내년 초부터 3000톤급 중형 잠수함에 배치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사가 이목을 끈 이유는 이번 선발이 우리나라 ‘최초’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해군은 1993년 첫 잠수함 장보고함(1200톤급)을 작전 배치한 뒤 30년간 오로지 남군만을 잠수함에 투입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여군 잠수함 승조원은 왜 이제야 탄생한 걸까요? 답변을 위해선 잠수함의 특성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잠수함은 수중에서 자신의 위치를 노출하지 않고 임무를 수행하는 무기체계입니다. 다른 무기체계와 비교하면 은밀성이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힙니다. 적에게 들키지 않고 은밀하게 움직이기 위해 잠수함은 반대급부로 ‘편리함’을 포기합니다.
잠수함 승조원들은 햇빛이 들지 않는 깊은 물속에서 수십일간 임무를 수행해야 하죠. 잠수함 내부 공간은 각종 장비로 가득 차 매우 비좁습니다. 개인 공간이 없다시피 하다 보니 생활에 불편함이 많습니다. 화장실부터 침대까지 대부분의 공간을 공용으로 사용해야 하죠. 그래서 잠수함은 오랜 기간 ‘금녀(禁女)’의 영역이었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수십 명이 함께 생활해야 하는 임무 특성상 잠수함 승조원에겐 성별이 중요했던 것이죠.
그렇다면 이번 여군 승조원 선발은 어떤 배경에서 이뤄졌을까요? 사실 우리 해군은 오랜 기간 여군을 잠수함에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해 왔습니다. 뛰어난 역량을 가진 여군을 잠수함에서도 활용하고, 남녀 평등 목소리가 높아진 시대적 환경을 고려한 움직임이었습니다. 실제로 수상함에선 최일선에서 활약하는 여군 함장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공간이 협소하다는 게 여군 배치의 걸림돌로 작용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2021년 첫 번째 3000톤급 잠수함인 도산안창호함이 취역하면서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3000톤급 잠수함은 기존 장보고급(1200톤급)·손원일급(1800톤급)에 비해 덩치가 2~3배 가까이 커져 승조원 생활여건이 개선됐습니다. 해군은 지난해 7월 22-3차 정책회의에서 여군의 잠수함 승조를 허용하기로 하고, 올해 잠수함 승조원 모집에 여군을 추가했습니다. 아울러 후속 조치로 3000톤급 잠수함 1·2번함인 도산안창호함과 안무함의 승조원 거주구역을 나눠 여군 승조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세계 여군 승조원 활약상은
계획대로 내년 초 여군 잠수함 승조원이 탄생한다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14번째로 잠수함을 여군에게 개방한 국가가 됩니다. 해군에 따르면 여군의 잠수함 승조는 현재 미국·호주·캐나다 등 13개국이 시행 중입니다. 대부분 중형급 이상 잠수함을 운용하는 국가입니다.
여군에게 가장 먼저 잠수함 문을 연 국가는 어디일까요? 그 시작은 1985년 노르웨이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혹독한 전투를 경험한 노르웨이 여성들은 일찍이 군에서 활약해 왔습니다. 노르웨이 의회는 1977년부터 진보적인 법안을 통과시키며 군 내 여성의 역할을 확대했고, 1985년에는 잠수함을 포함한 전투부대까지 배치가 가능하게 했습니다. 전투부대 배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 가운데 최초였다고 합니다.
최초의 여군 잠수함 지휘관을 배출한 나라도 노르웨이였습니다. 1995년 노르웨이 해군 장교 솔베이그 크레이가 코벤급 잠수함 함장으로 부임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죠.
잠수함을 놓고 이야기할 때 ‘천조국’ 미국을 빼놓을 순 없겠죠? 배수량 1만톤급이 넘는 원자력추진 잠수함을 다수 보유한 미국은 2010년 여군의 잠수함 승조를 가로막아 온 금지령을 해제하고, 1년 뒤인 2011년부터 잠수함에 여군을 배치했습니다. 최초의 여군은 오하이오급 원자력추진 탄도미사일 탑재 잠수함(SSBN)에 승조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여군 잠수함 승조원의 활동 폭은 넓어져 가고 있습니다.
미 해군에서는 지난해 11월 최초의 여군 잠수함 부장(Executive Officer)이 탄생해 주목받았습니다. 주인공은 오하이오급 켄터키함(SSBN)의 앰버 코완 중령입니다. 코완 중령은 잠수함에선 협동과 협업의 가치를 배울 수 있다고 강조했는데요. 그는 한 인터뷰에서 “교육 수료 후 잠수함에 처음 배치됐을 때 동료들과 팀으로서 일하는 방법을 배웠다”며 “만약 개인이 아닌 팀 성과 달성에 관심이 많다면 잠수함은 최고의 근무지일 것”이라고 추천했습니다.
미 해군은 현재 건조 중이거나 건조를 앞둔 버지니아급 원자력추진 잠수함(SSN), 오하이오급을 대체할 차세대 원자력추진 탄도미사일 탑재 잠수함인 컬럼비아급 잠수함 내부를 성(性) 중립적으로 건조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앞으로 더 많은 여군 승조원이 잠수함에서 활약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잠수함 승조원을 넘어
우리 해군 여군의 역사는 6·25전쟁 발발 1년 전인 1949년 4월 9일 간호장교 20명이 임관하는 것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간호장교 외에 깨지지 않던 ‘금녀의 벽’은 1999년 해군사관학교에 21명의 여생도가 입교하면서 조금씩 허물어졌습니다. 최초의 여군 고속정장이 탄생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입니다. 이미 많은 여군이 조국수호 최일선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았던 잠수함까지 문을 열면서 성별에 따른 장애물이 무너졌지만, 아직 여군이 활약하지 못하는 분야도 있습니다. 해군특수전전단 특전대원(UDT/SEAL)과 심해잠수사(SSU)가 대표적입니다.
머지않은 미래, 우리 해군에 여군 특전대원과 심해잠수사가 탄생할 것으로 믿습니다. 그때는 여군·남군이라는 호칭이 어색할 정도로, 모두가 뛰어난 활약상을 보여 줬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