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꽃
- 이용악 -
- 긴 세월을 오랑캐와의 싸움에 살았다는 우리의 머언 조상들이 너를
불러 '오랑캐꽃'이라 했으니 어찌 보면 너의 뒷모양이 머리 태를 드리인 오랑캐의 뒷머리와도 같은 까닭이라 전한다 -
아낙도 우두머리도 돌볼 새 없이 갔단다
도래샘도 띳집도 버리고 강 건너로 쫓겨갔단다
고려 장군님 무지무지 쳐들어와
오랑캐는 가랑잎처럼 굴러갔단다 //
구름이 모여 골짝졸짝을 구름이 흘러
백 년이 몇 백 년이 뒤를 이어 흘러갔나 //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
오랑캐꽃
너는 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
두 팔로 햇빛을 막아 줄게
울어보렴 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
-오랑캐꽃
제비꽃, 병아리꽃, 봉기풀(함경도), 장수꽃(강원도), 씨름꽃 : 제비꽃과의 숙근초(宿根草). 각지 원야(原野)에 나는데, 잎과 줄기에 털이 있음(violet)
- '도래' : 함경도 방언, 도랑. '도래샘' : 도랑가에 샘이 솟아 흘러나가는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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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 서두 해설
시인 자신의 해설적 설명이 붙어 있는데, 먼 옛날 오랑캐(여진족)가 고려와의 싸움에서 무참히 패주해 간 역사적 사실이 드러나 있다. 윤관(尹瓘)의 여진정벌로 인해 장정들은 전쟁터에서 대부분 죽고, 남은
사람들은 머리를 깎인 채 종으로 전락하게 되며 후에 그들은 천민 집단으로 고립되어 자기들끼리만 결혼을 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머리를
깎은 탓에 세상사람들은 이들을 '재가승(在家僧)'이라 불렀다.
* 감상
망국민의 한 사람으로 괄시를 받으면서도 오랑캐족에 인간애를 느끼는 것은 3자 입장에서 그들의 한을 노래하면서도, 곧 우리의 한을 노래하는 것이며 시인의 깊은 인간미를 짐작할 수 있다.
* 구성
-프롤로그 : 오랑캐꽃의 어원을 역사적으로 설명(민족 승리의 감정)
-제1행~제4행 : 고려 군사에 쫓겨 간 오랑캐
: 과거 역사적 사실에 대한 서술(쫓겨가는 오랑캐의 뒷모습)
-제5~6행 : 세월의 흐름
-제7행~끝 : 오랑캐꽃에 대한 연민의 정
: 현재의 상황(유랑민의 이미지와 결부)
* 주제
망국민과 유랑민들의 비극적 삶
* 출전
시집 [오랑캐꽃](1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