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일생에 있어서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를 모든 것으로 취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에 의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상황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우리의 계속적인 구원으로 누리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분을 추구함으로 그분을 대치하는 모든 것을 다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결입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많은 세월을 배우고 나서야 좀 알게될 것입니다.
한 사람이 공장에서 일을 하는데 기계가 고장이 났습니다. 기계를 고치려고 분해하여 모든 부품들을 다 살펴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둘 잘 살펴본후에 할 수 없이 전문가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전문가는 망치를 가지고 와서 많은 부품의 하나를 보더니 내려쳤습니다. 그러자 기계가 돌아갔습니다. 그는 100불을 달라고 했습니다. "뭐라구요? 망치로 한번 두들기고는 100불이라고요?" 그가 말하기를 "때리는 것은 1불입니다. 하지만 어디를 때려야 하는지 아는 것은 99불입니다". 그 전문가는 비결이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초보자와 전문가의 차이입니다.
여러분, 도망가지 마십시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셔야 될일은 유일합니다. 여러분이 정말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또 배고픔과 궁핍에 처할줄도 알게됩니다.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항상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성숙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기 위해서는 많은 성숙이 필요합니다. 중국어권에 있는 어린 아이에 대해서 예시해보겠습니다. 한 아이를 앉혀놓으려고하면 다른 아이가 도망하고, 그렇게합니다. 하지만 성숙한 아이는 앉아서 계속 볼 수있습니다.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안에 머물고 도망가지 않는 것입니다. 빗나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여기 내가 너무 오래있었습니다. 주의를 좀 거닐다 오겠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비결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비결은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들이여, 결혼한 다음 일주일까지는 다 기뻐합니다. 그러나 3년이 지나서 보십시오. 그들은 "우린 서로 살수 없습니다. 문제가 많습니다. 서로 화목될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왜 문제가 생기게 됩니까? 그들이 도망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비결을 배운다면 결혼생활에서의 모든 폭풍전야를 다 통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결혼은 단지 좋은 가정을 꾸리겠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더 많이 얻기위한 것입니다. 제가 보장합니다. 그러한 결혼생활은 영원토록 지속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그러합니까? 그들이 비결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 비결은 아주 단순합니다.
바울은 충족의 비결, 만족의 비결, 자족의 비결을 배웠습니다. 이 비결은 사실상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그리스도가 있다면 여러분은 마음 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염려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마음상하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돈을 충분히 지불하지 않을 때, 충분한 존중을 표하지 않을 때, 여러분은 마음이 상합니다. 이런 것이 염려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자신이 있다면 여러분이 그리스도 자신을 산다면, 그분을 확대한다면, 그것이 여러분이 추구하는 그것이라면,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돈을 주든 주지않든, 합당한 존중을 표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에게 관용이 있기때문입니다. 관용은 공자의 미덕이 아닙니다. 관용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살아내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를 풍성하고 넘치게 체험한 바울은 어떤 환경이나 어떤 일에서든 항상 자족하고 기뻐하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인생은 환경에 환경이 몰려오는 것입니다. 환경에 환경이 거듭됩니다. Cruise 여행을 하면 배의 갑판 위에 서서 지나가는 광경을 그저 감상하듯이, 세상은 이런 저런 환경들을 그저 여행하면서 지나쳐가는 것과 같습니다. 이형제님은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과했습니다. 그 가운데서 경제공황기도 통과하였습니다. 바울도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내가 배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분들은 모든 환경가운데서 비천에 처할줄도 알고 풍부에 처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비결을 알고자 합니까? 그 비결은 그리스도를 모든 것으로 취하는 것입니다. 그분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이 형제님이 드신 예로 말하자면, "나는 차 안에서 글을 쓰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그것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냥 누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비결은 바로 입을 다물고 앉아서 누리면 되는 것입니다. 많은 때 우리는 운전석에 앉아서 입을 다물고 그저 누리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쾌청한 날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런 날동안 누리십시오. 쾌청한 날을 누리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입니다. 내일은 또 어떤 날이 올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 어떤 일이 일어날 때, 그것 역시 하나님이 주신 환경이라는 것을, 주권적인 안배라는 것을 믿으십시오.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공급을 받을 때, 아시아에있는 다른 그 누구에게도 공급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오직 한 교회만이 나를 공급했다'. 그런데 그가 감옥에 들어갔을 때, 그러한 공급이 끊어졌습니다. 전시간 봉사자의 생명줄이 끊긴 것입니다. 간혹 공급이 있을 수도 있지만, 또 공급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공급이 있을 때 주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빵을 상위에 올려놓고 '주여, 이것을 인해 감사합니다. 이것을 공급해주시고, 나를 목양해 주심을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 까마귀가 날아오지 않는다면, 공급이 끊어진다면 어찌하겠습니까? 어떤 때는 까마귀들이 오지 않습니다. 새들이 오지 않을 때도, 그럴때도 우리는 기뻐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취해야 합니다. 풍족한 환경은 틀림없이 하나님이 안배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부족한 환경역시 하나님이 안배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풍족함 가운데 맛볼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상위에 먹을 것이 없을 때,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아주 특별한 방식의 달콤함도 있습니다.
전시간자들이여! 나는 주님을 전시간으로 섬기는 모든 분들에게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주권적인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분은 모든 환경을 안배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우리로 하여금 풍족에 거하게도 하시고, 비천에 처하게도 하십니다. 비천에 처하게하신다는 것은 궁핍이 있는 상황가운데 거하게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난이란 아주 어려운 상황을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기회가 됩니다. 우리가 모든 환경 가운데에 그리스도를 모든 것으로 취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로마의 감옥에 갇혔다면 종이와 연필을 달라고 하여 사람들에게 나를 구하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조치를 해주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생명을 통해서든지 죽음을 통해서든지 그리스도가 그의 몸 안에서 확대되고 그가 부끄러움을 당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비밀한 방면을 가지고 있음으로 어떤 기본적인 원칙들을 배움으로 입문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생활을 모른다면 우리는 그저 교회생활의 주변에만 머물러있는 것입니다. 교리, 진리, 지식, 이런 것들만 만질 뿐 그 체험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이 체험이 있을때만 염려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우리의 모든 것으로 살아 낼 수 있게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사는 비결은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으로 취하고, 그리스도를 살고, 그리스도를 추구하고,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를 확대하고,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2절은 '...in everything and in all things I have learned the secret...'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각각의 일들(everything)은 환경 하나 하나 안에서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사례별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가 배우자나 자녀 등등을 대함에 있어서, 매 상황마다 사례별로 하나 하나 주님을 체험한다면, 그것이 합쳐져서 모든 일(all things)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야곱이 말년에 '하나님께서 일생토록 나를 목양하셨다'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특별한 경우에나 모든 경우에, 어떤 때나 그의 생애 전체에 걸쳐서, 비결을 배웠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높은 때나 낮은 때에, 모든 경우에 그랬습니다. 그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저는 아직 그런 지점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틀림없이 빛을 보고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향해 추구하고 달립니다. 나는 틀림없이 비결을 얻기 원합니다. 나의 인생의 비결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비결이 되기를 원합니다.
전시간자의 삶은 이 세상에서 가장 색채가 뚜렷한 삶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그런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권면합니다. 여러분이 직장을 잡는다면 아주 큰 회사에서 여러분이 죽을 때 까지 일해야 합니다. 얼마나 단조로운 삶입니까? 하지만 전시간자로 사는 것은 아주 흥분되는 일입니다. 어떤 때는 하늘은 푸른 색입니다. 어떤 때는 아주 검정색입니다. 어떤 때는 왕처럼 살수 있지만 어떤 때는 아주 문제덩어리로 살 수 있습니다. 거지처럼 살게됩니다. 나는 전시간자들은 염려가 없는 삶을 살 수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 전적으로 살 수 있다고 믿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내가 직장을 내려놓고 전적으로 살수 있다면...'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새들도 염려할 필요가 없고, 땅에 있는 꽃도 그러하다. 염려하지 말라'. 전시간자라는 것은 전적을 주님을 신뢰하는 자들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주님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전시간자가 되지 마십시오. 전시간자가 되는 첫째 자격은 주님께서 모든 환경 가운데서 여러분을 공급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자는 반드시 돈에 있어서 아주 독립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강하지 못하다면 가서 직장을 잡는게 낫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자는 결코 자신의 필요를 사람들에게 말해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에게 여러분이 얼마나 부요한지를 말해야 합니다. 주님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가 어디에서 말하든지 위엄을 가지고 말해야 하며, 그가 말하지 않을 때는 입을 다물 수 있는 그런 위엄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공급을 받은 후에, '나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확신있게 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받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빌립보 성도들에게 간청한 것이 아니라, 아주 위엄있게 반응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럴 수 없다면 전시간자가 되지 마십시오. 물론 여러분이 많은 것을 가질 수가 있고, 여러분이 굶을 수가 있고, 여러분이 자유로울 수가 있겠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자긍심을 잃지 마십시오.
그러나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런 삶을 살 수있다고 해도, 바울은 인간적인 느낌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0절에서 'But I rejoiced in the Lord greatly because now at length you have caused your thinking for me to blossom anew;'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느낌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공급을 얻었을 때, 하나님과 빌립보성도들에게 감사했습니다. 그는 '새롭게 꽃이 피었구나'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전시간 봉사자들의 어떤 자녀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제 부모님은 나를 돌보지 않아요'. 그렇게 말해서는 안됩니다. 부모들에게는 느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존중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여러분이 부모님만큼 주님을 신뢰한다면 주님은 여러분에게 실제적인 분이 되실 것입니다.
웥취만 니는 한 번 사업을 하신 적이 있는데 왜 그랬는지 아십니까? 모든 동역자들에 대하여 강한 느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다니면서 '나는 믿음으로 삽니다. 믿음으로 삽니다'라고 할 때, 니 형제님은 '도대체 그것이 무슨 믿음이냐? 나는 그들이 아주 어렵고 궁핍한 가운데 있기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내가 가서 사업을 하여 그 형제들이 더 이상 그렇게 말하지 않도록 하겠다. 하지만 형제들이여, 내가 형제들을 위하여 사업을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싫다. 그래서 형제들은 다니면서 믿음에 의해서 산다고 말하면 안된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쨓든 니 형제님은 사업을 하셨고, 그럴때 많은 폭풍이 있었고, 많은 오해가 있었습니다. 1948년에 주의 회복 안에서 부흥이 있었는데 그때 자신을 여신 것입니다. '내가 왜 사업을 했는가? 나는 과부와 같았다. 나의 자녀들이 굶어죽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사업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그의 속내를 다 열어 보이셨습니다.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이 전시간자의 일생입니다. 여러분을 내가 무섭게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전시간자들이 타게되는 항해 여행입니다.
빌립보서 4장 12절은 'I know also how to be abased, and I know how to abound; in everything and in all things I have learned the secret both to be filled and to hunger, both to abound and to lack.'라고 말합니다. 먼저는 abased(비천)이고 다음이 abound(풍부)입니다. 이것은 에바브로디도가 빌립보인들의 물질을 가지고 오기 전에는, 바울이 정신적, 물질적으로 비천에 처했다가 이제는 풍부하게 되었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내일은 또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내일은 다시 비천가운데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abound(풍부)하고 lack(궁핍)하는 비결을 배웠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두가지가 동시에 진행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해주는 것은, 주님에 의해서 사는 사람은 모든 환경가운데서 주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오늘 무엇이 있든지 간에 내일은 없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사회의 보장은 없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오늘도 내일도 살아계십니다. 우리는 오늘 그분을 믿음으로 살고 내일도 그분을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신뢰하기를 배우십시오. 여러분이 주님을 신뢰하기를 배우지 못한다면 그분을 섬길 수 없습니다. 물론 진리는 양방면이 있습니다. 바울의 방면에서는 그의 궁핍은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있는 놀라운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는 바울이 그런 상태에 있다는 것은 큰 수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교통이 있습니다. 빌립보교회와 바울 사이에, 하나님께 너무도 달콤하고 위엄이 넘치는, 교통이 있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전시간으로 주님을 섬기는 분들, 전시간자들의 일생은 놀랍습니다. 하지만 전시간자들의 일생은 신뢰하는 생활이며 또한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생활입니다. 그분을 신뢰하는 문제에 있어서 우리는 위엄이 넘쳐야 합니다. 우리는 인간적이고 실행적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4장 13절은 'I am able to do all things in Him who empowers me'라고 말합니다. 여기서의 모든 것은 산을 움직이는 그런 역량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 미덕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t.d.r.p.l.w를 사는 것입니다. true(참되고), dignified(위엄있고), righteous(의롭고), pure(순수하고), lovely(사랑스럽고), wellspoken of(칭찬받을 만하고)의 인간미덕을 주님을 체험함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미덕들의 생활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서 크고 능력이 많은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지 않고, 날마다 't.d.r.p.l.w'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아멘 -빌립보서 cs msg 11 中 Br. Andrew -
첫댓글그리스도인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사는 전시간자들입니다. 아멘.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우리의 모든 것으로 취해야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 그리스도!! 그리스도!! 입니다. 육신의 생명이 호흡이 없이 살 수 없듯이 그리스도를 호흡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지금 그 영이고 몸이십니다.
그 영을 들이마시고 충만되어 몸의 생활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이론이요 교리입니다. 오 주 예수여!! 먹고 마시는 몸의 생활을 보게 하시고 회복하게 하소서. 주 예수여!! 이 시대에 당신으로 충만한 한 무리의 이기는 자들을 산출하소서. 당신의 몸을 속히 건축하소서. 다시 공급하심을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전시간자의 삶은 그리스도를 만유로 취하는 삶'이라는 말씀에 아멘입니다. 많은 환경을 통과하면서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던 바울의 삶이 우리 모두가 가야할 길임을 느낍니다. 시간을 드리든지 물질을 드리든지, 우리모두가 전시간자이라는것을 깨달을때 하나님의 정하신 길을 끝까지 갈수..
전시간자들의 삶은 黃黑靑白 이라고 들은 기억이 납니다. 환경 가운데 다양한 그리스도를 누림이 그들의 삶입니다. 어떨대는 하늘이 노랄 정도로 힘들고, 어떨때는 환경이 암흑과 같고, 어떨때는 쾌청함으로 기쁘며, 때론 평강의 연속이기도 합니다. 김재광형제님은 양주교회 최문자자매님댁에서 사진으로뵈었습니다.
첫댓글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사는 전시간자들입니다. 아멘.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우리의 모든 것으로 취해야 합니다. 오직 그리스도!! 그리스도!! 그리스도!! 입니다. 육신의 생명이 호흡이 없이 살 수 없듯이 그리스도를 호흡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지금 그 영이고 몸이십니다.
그 영을 들이마시고 충만되어 몸의 생활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이론이요 교리입니다. 오 주 예수여!! 먹고 마시는 몸의 생활을 보게 하시고 회복하게 하소서. 주 예수여!! 이 시대에 당신으로 충만한 한 무리의 이기는 자들을 산출하소서. 당신의 몸을 속히 건축하소서. 다시 공급하심을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전시간자의 삶은 그리스도를 만유로 취하는 삶'이라는 말씀에 아멘입니다. 많은 환경을 통과하면서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던 바울의 삶이 우리 모두가 가야할 길임을 느낍니다. 시간을 드리든지 물질을 드리든지, 우리모두가 전시간자이라는것을 깨달을때 하나님의 정하신 길을 끝까지 갈수..
형제님! 허락 없이 글 퍼갑니다.....아멘.아멘.아멘.
저에게도 보약이 되내요,,,
전시간자들의 삶은 黃黑靑白 이라고 들은 기억이 납니다. 환경 가운데 다양한 그리스도를 누림이 그들의 삶입니다. 어떨대는 하늘이 노랄 정도로 힘들고, 어떨때는 환경이 암흑과 같고, 어떨때는 쾌청함으로 기쁘며, 때론 평강의 연속이기도 합니다. 김재광형제님은 양주교회 최문자자매님댁에서 사진으로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