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는 관세음보살의 주처가 있다. 그 곳은 남인도 보타낙가이며, 중국은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 절강성 주산열도 보타도를 보타낙가라고 부른다. 보타낙가라 함은 관세음보살이 계신 곳을 말한다.
우리나라에도 관세음보살의 3대 주처는 강원도 양양 낙산사 홍련암, 남해 보리암, 강화 석모도 보문사다.
홍련암에는 ‘해수관음’, 보리암은 ‘백의관음’, 보문사는 ‘육관음(마두관음, 성관음, 천수천안관음, 준제관음, 십일면관음, 여의륜관음)’ 이 특징별로 모셔져 있다.
* 남해 보리암 관음 삼존상(선재동자, 용왕)과 설법전, 백의관음
* 낙산사 해수 관음 삼존상(선재동자, 용왕)
* 낙산사 보타전 관세음과 6관음
육관음이란 관세음보살이 육도를 순회하면서 중생을 교화한다고 하여 육도에 나타나는 관세음보살을 구분하여 부르면서 생긴 이름이다. 지옥을 교화하는 성관음, 아귀를 교화하는 천수관음, 축생을 교화하는 말머리를 하고 있는 마두관음, 아수라를 교화하는 얼굴이 11개인 십일면 관음, 인간세상을 교화하는 준제관음, 천상세계를 교화하는 여의륜관음의 여섯 관음이다.
* 보문사 석굴 나한전
신라 선덕여왕 때 강화도 석모도 어부가 앞바다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 그물에 괴상한 돌들이 걸려 올라왔기로, 바다 속에 버리고 돌아왔는데 그날 밤 노승이 꿈에 나타나서
“괴상한 돌은 천축(天竺)에서 건너온 불상이니 잘 받들면 크게 길하리라.”
말하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다음날 어부가 그물을 치자 어제와 같이 다시 동자불상(童子佛像)이 걸려 나오므로 이 불상들을 석실에 모시어 놓고 정성을 드렸더니 그 후부터 모든 소원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석실 안에는 23개의 감실(벽에 불상을 모신 공간)에 불상이 모셔져 있으며 삼세불이라 하는 석가모니(현재), 미륵보살(미래), 제화갈라보살(과거)과 자식을 낳게 해주는 송자관음보살, 그리고 관세음보살과 18나한상 등이다.
* 보문사 마애관음보살상
관세음보살은 인도 남부 바다 위의 섬 보타낙가산에 계시면서 해상용왕(海上龍王)과 남순동자(南巡童子)가 좌우보처로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다.
해상용왕은 팔부중의 하나인 용 중의 왕이다.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용은 선악의 양면을 보여주는데 선룡(善龍)은 모두 8용으로 난타․ 발난타․ 사가라․ 화수길․ 덕차가․ 아나바달다․ 마나사․ 우발라이다. 이들 중 바다 용왕인 사가라는 비를 기원하는 본존이고, 난타와 발난타는 석가가 탄생할 때 청정수를 토해 부처님의 몸을 씻었다고 한다.
관음도의 왼쪽에 서 있는 해상 용왕은 관세음보살의 자비심이 바다와 같이 깊고 넓음을 증명하고 있으며, 관음에게 여의주를 바치는 모습으로 표현돼 있다.
* 상원사 문수전 동자상 3구
상원사 문수전에 3구의 동자상이 있는데, 모두 목조로 제작되었다. 첫 번째 동자상은 화엄경 입법계품에 등장하는 선재동자를 표현하였다. 나무로 만든 바위 대좌를 밟고, 어린아이와 같은 체구의 몸을 앞으로 기울여 두 손을 합장하고 있다.
둥근 얼굴에는 살이 많이 올라 통통하며, 두 눈은 위쪽을 응시하고 있어 가르침을 얻고자 하는 모습이 잘 표현되었다. 섬세하게 조각된 귀에는 귀걸이를 달고 있으며, 어깨에는 천의(天衣)를 걸치고 있는데, 천의가 몸에 달라붙지 않고 목 뒤에서 살짝 공중에 떠 있어 시각적으로 입체감을 높여준다. 하체에는 치마[裙]를 입고 그 위에 요포(腰布)를 둘렀으며, 어린 아기의 짧은 다리와 작은 발이 섬세하게 조각되었다.
머리부와 신체의 비례, 얼굴의 표현 등에서 볼 때, 그 제작 시기는 왕실(王室)의 후원으로 오대산 사찰들에서 대대적인 불사(佛事)가 이루어지던 15세기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에 비해 나머지 두 동자상은 부처와 보살을 봉양하는 일반적인 형태이다. 두 동자상은 모두 팔각형의 낮은 대좌를 가지런히 두 발로 밟고, 어린 아이와 같은 체구에 무릎을 살짝 앞으로 구부리고 두 손에 연꽃을 들고 있다. 머리 양쪽 위에는 보계(寶髻)를 둥글게 말아 쌍계(雙髻)를 올리고, 이마가 넓고 턱이 짧은 동그란 얼굴에는 눈, 코, 입이 오밀조밀하게 표현되었는데, 특히 입가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있어 천진난만한 아이의 인상을 준다.
착의 형식은 두 동자상이 약간에 차이는 있지만, 모두 목이 훤히 보이는 상의를 입고, 그 위에 천의를 덧입었으며, 양쪽 팔목에서 천의가 발까지 길게 늘어졌다. 또 하의는 치마, 포의(胞衣), 요포를 중첩되게 나타내었다. 동자상은 조선 후기 명부전(冥府殿), 나한전(羅漢殿)에 존상을 협시하는 상으로 많이 제작된 것이며, 그 제작 시기는 18세기로 추정된다.
(계속)
첫댓글 잼나게 잘읽어습니다ㆍ
문수전 동자상의 기르침을 얻고자 하는 모습이 너무 인상깊네요
아미타불🙏🙏🙏
오늘도 명강의 감사합니다.
선재동자 처럼 공손하게 법을
구하는 자세를 하겠습니다.
나모관세음보살 🙏
선생님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
나무아미타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