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섭 칼럼 <16> 링크의 힘 / 서영남 |
작성자: 사색의향기 / 작성일 : 2016-12-12 17:34
댓글 : 3 / 조회수 : 708 |
링크의 힘 / "너는 나의 존재 이유"
서영남 / 민들레 홀씨처럼 사랑을 퍼뜨리다
- 성경섭 방송인
링크의 힘 / "너는 나의 존재 이유"
우리 속담에 ‘한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이란 표현이 있다. 그렇다면 전 세계로 확대해서 몇 다리를 건너면 아는 사람이 될까?
미국 하버드대의 사회심리학교수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박사가 1967년에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캔자스 주와 네브래스카 주에 사는 주민 300명에게 연쇄 편지형식의 소포를 보냈는데 소포 안에는 보스턴에 있는 한 주식중개인에게 전달되도록 그 중개인을 알 만한 사람에게 부처 달라는 부탁과 함께 편지가 들어있었다. ‘여섯 단계 분리(six degrees of separation)' 이론을 검증하는 ‘좁은 세상 실험(small world experiment)’이었다. 소포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보다 중개인과 더 가까운 위치에 있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 계속 소포를 전달했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는 끝에 마침내 그 중개인 손에 들어간 소포 중 절반 정도는 여섯 단계를 거친 것으로 나타났다. 최대한 다섯 사람만 중간에 걸치면 미국 내 어떤 이들과도 연결될 수 있다는 가설이 성립된 것이다.
90년대엔 미국에서 할리우드 배우들을 역시 배우인 케빈 베이컨(Kevin Bacon)과 연결되도록 하는 ‘케빈 베이컨 게임’이란 게 유행했다. 케빈 베이컨은 아폴로13, 어퓨굿맨, JFK 등에 출연한 배우다. 조연급 배우지만 다양한 배역으로 많은 영화에 등장했기 때문에 그가 아는 영화배우들이 많았다. 이런 케빈 베이컨이 인기 토크쇼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대학생들과 함께였는데 이들은 케빈이 신(神)이라는 것을 증명하겠다면서 청중들이 영화배우 이름을 댈 때마다, 그 배우가 케빈 베이컨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척척 보여 줬다. 신기하게도 할리우드 영화배우들 대부분은 두 단계 또는 세 단계만 걸치면 케빈 베이컨과 연결됐다.
예를 들어 록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는 〈체인지 오브 해빗(Change of Habit)〉이라는 영화에서 에드워드 애스너(Edward Asner)라는 배우와 함께 출연한 적이 있는데, 애드워드 애스너는 〈JFK〉에 출연했고 케빈 베이컨 역시 이 영화에 출연해 엘비스 프레슬리와 두 단계 만에 연결됐다. 세상은 정말 넓고도 좁다는 것을 실감나게 한 이 토크쇼가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영화배우나 스타들의 연결 고리 찾기 게임이 인기를 끌었다.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가 발달하면서 70억 세계 인구도 알고 보면 몇 단계만 거치면 아는 사이로 연결되기 때문에 그리 먼 사이가 아니다. 페이스북은 최근 전체 7억 2,100만 명의 사용자 사이의 거리가 평균적으로 4.74단계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링크의 힘’으로 다섯 단계만 거치면 누구든 연결될 수가 있다니 ‘지구촌’이란 단어가 실감이 난다. ‘혈연, 지연, 학연’의 삼 단계 링크로 똘똘 뭉친 대한민국의 ‘관계 지형도’는 그 어느 나라 못지않게 촘촘하기 때문에 단계는 훨씬 압축될 수도 있다.
‘조밀한 링크’로 연결된 요즘 대한민국에서 ‘혼밥’이란 유행어가 시대적인 트렌드를 말해주는 코드로 자리 잡은 것은 일종의 역설이다. ‘혼밥’은 잘 알다시피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이미 익숙해진 ‘혼자 먹는 밥’이다. 1인 가구의 비중이 늘어나는 통계를 반영하듯 ‘혼밥족’들도 증가추세다. 최근 들어서는 젊은이들의 나 홀로 문화가 영역을 넓히면서 ‘혼밥’ 외에도 혼자 술을 마시는 ‘혼술’, 혼자만의 쇼핑을 즐기는 ‘혼쇼’ 같은 유행이 번지고 그런 나 홀로 족들을 겨냥한 마케팅도 뜨겁다.
‘혼밥’의 등장은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관계 변화를 의미한다. 밥은 전통사회에서 인간관계를 맺어주는 중요한 매개체였다. ‘식구(食口)’가 공동운명체를 의미하듯 밥은 끼니를 때우는 것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인사말 중 하나는 ‘언제 밥 한 번 먹자’는 말이다. “같이 밥 먹자”는 말 에는 ‘친해지고 싶다’ ‘대화하고 싶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밥을 먹는 행위는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행위와 다름 아닌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혼밥’은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결국은 건강에도 치명적이다. ‘혼밥’은 불균형한 영양섭취로 비만을 부르고, 역류성 식도염을 일으킨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혼밥족’이 건강에 취약한 것은 관계의 단절에서 비롯된 것이란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연구팀에 따르면 청년층이 항상 혼자서 밥을 먹는 등 고립된 생활을 하면 염증이나 조직손상 여부를 가늠하는 C-반응성 단백질(CRP) 수치가 높아진다고 했다. 관계의 단절이 건강을 해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화제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1988년 쌍문동 골목길로 들어 가보자.. 골목길 사람들은 이웃집에서 끼니를 거르는지 고기를 굽는지 숟가락 숫자까지 훤히 꿰고 있다. 한 밥상에 모여 앉아 온 가족이 달그락거리는 수저 소리는 사람냄새를 물씬 풍긴다. 이처럼 인간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얻는 행복은 사회를 지탱하는 힘이다. “국민의 10%가 인생에서 의지할 사람이 추가로 생겼다고 느낀다면, 전체 국민의 생활만족도는 모든 국민의 임금을 50% 인상할 때보다 더 크게 향상될 것이다.” 도시 생활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세계적인 경제학자 존 헬리웰(John Helliwell)의 분석이다. 이것이 바로 ‘링크의 힘’이다.
“쇠사슬의 강도는 가장 약한 고리에 의해 좌우된다.” 독일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Justus von Liebig)가 식물연구 과정에서 발견하고 ‘미니멈의 법칙’(law of minimum)이라고 이름 붙인 내용이다. 여러 개의 고리로 이뤄진 쇠사슬이 튼튼하게 쓰이려면 모든 고리가 강해야한다. 고리가 끊어지지 않을 확률이 99%라 하더라도 1%로 인해 사슬이 끊어질 확률은 60% 이상이 된다. 인간 간의 링크를 견고하게 하는 힘은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 신뢰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관계 맺기 좋아하는’ 국민이다. 혈연과 지연, 학연의 링크로 연결돼 있지만 실상은 내면을 신뢰를 가진 친구는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적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스위스 루체른에 가면 ‘빈사의 사자상’이란 관광명소가 있다. 절벽을 파내 돌사자 상을 만들었다. 상처를 입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의 돌사자는 프랑스혁명 당시 루이 16세를 지키다 장렬한 최후를 맞은 스위스 용병을 기리는 기념비다. 스위스 용병들은 다른 근위대원들이 다 달아난 상황에서도 한 번 신뢰를 잃으면 자식세대에는 영원히 용병을 할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죽음으로 계약을 지킨 것이다. 지금은 부국이지만 예전엔 척박한 자연환경 탓에 유럽의 최빈국이던 스위스는 먹고 살기위해 유럽의 용병을 자청했다. 죽음을 마다않는 신뢰 덕에 바티칸 교황청도 1506년부터 스위스 근위대가 지키고 있다.
인류의 문명도 크게 보면 링크에 의해 발전해 왔다. ‘실크로드’는 동아시아로부터 지중해에 이르기까지 3대륙을 잇는 세계의 문명교류를 아우른 애초의 ‘링크’였다. 교통과 통신수단이 발달하면서 세계가 ‘링크’되고 있다. 그러나 링크 기술이 아무리 발달한다 해도 본질은 역시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인터넷이나 매스컴도 결국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킬 때 가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링크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인류의 현재와 미래도 결정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모든 것에 잇닿아 있다.”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을 지낸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의 말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잇닿아 있듯이 나와 너와 우리는 서로 잇닿아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인터넷을 통해 “모든 것이 모든 것에 잇닿아 있는” 오늘날에는 더욱 실감이 나는 말이다.
서영남 / 민들레 홀씨처럼 사랑을 퍼뜨리다
인천의 대표적인 달동네 화수동에 있는 민들레 국수집에선 상호와 달리 국수를 팔지 않는다. 민들레 국수집은 서영남 전직 가톨릭 수사가 배고픈 노숙자들을 위해 2003년 만우절에 문을 연 무료급식소다. 개업 첫 날엔 공짜 밥을 준다고 내걸었지만 "만우절에 뻥치지 말라“며 오는 이가 없어 허탕을 쳤다. 만우절이 지나자 끼니를 때우지 못한 사람들이 몰려왔다. 3백만 원이 전부였던 밑천이 짧아 국수로 시작했지만 사나흘 굶은 이들이 국수로 허기를 채우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밥집으로 전업했다. 그래도 ‘주인장’이 국수집이란 간판을 바꿔달지 않는 이유는 ‘손님’들이 다이어트 해야 하니 밥 대신 국수를 달라고 할 때를 대비해서란다.
사람 좋아 보이는 서영남 대표는 사장이란 직함이 돈 냄새가 난다며 굳이 ‘주인장’을 자칭한다. 그리고 무료급식을 먹으러 오는 노숙인들을 ‘손님’이라 부르며 깍듯이 대한다. 민들레 국수집은 다른 무료급식소처럼 줄을 서는 일이 없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한 그릇의 밥이 아니라 사람대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인장은 찾아오는 노숙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식성을 파악하고 이름을 외워 일일이 불러준다. 배고픈 이에게 눈칫밥은 살로 가지 않는다며 인정머리 없는 밥은 절대 안 된다는 게 주인장의 기특한 생각이다.
“배고픈 사람이, 약한 사람이 먼저 먹어야죠.. 경쟁사회에서 줄서기 하다 밥도 못 먹게 됐는데 여기에서 까지 줄을 서서야 되겠느냐고 설득합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 하던 노숙인들도 차츰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오히려 줄을 서는 것보다 빨리 급식을 할 수 있게 됐다. 다른 무료급식소들이 문을 열기 두세 시간 전부터 줄을 서는 건 급식이 모자라면 굶게 될까 걱정 때문인데 민들레 국수집은 언제든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서영남 주인장은 인정머리 있는 밥상을 마련하기 위해 후원도 골라 받는다. 특히 정부지원금은 정해진 규율이 있기 때문에 배고픈 사람들에게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 사양한다. 그 대신 알음알음으로 들어오는 후원금으로 충당한다. 쌀이 떨어질까 가슴을 졸이던 때도 많았지만, 신기하게도 나누면 나눌수록 쌀독은 더욱 가득 채워졌다. 2005년 민들레 국수집이 텔레비전에 방영되면서 성원이 답지해 오히려 주면 복지시설에 퍼주는 일도 있었다. 민들레 국수집은 ‘비울수록 채워진다’는 나눔의 원리를 실감하게 하는 공간이다.
뷔페식으로 운영되는 민들레 국수집의 음식은 모자라거나 떨어지는 법이 없다. 남보다 더 먹으려는 이도 없을 뿐 아니라, 모자란다 싶으면 서로 양보하고 조금씩 나눠 먹을 줄 알기 때문이다. 민들레 국수집 벽엔 ‘사과 하나 둘로 쪼개 나눠 가질 줄 아는 것’이란 김남주 시인의 글귀가 붙어 있다. 자기만 중요하다고 생각해 자기만 살기에 아등바등 하지 않고 남도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라는 걸 알아야 한다는 주인장의 생각이 담겨 있다.
‘밥은 먹었느냐’는 얘기를 입에 달고 사는 주인장은 오는 손님에게 매 끼니 마다 꼭 오라고 챙기지만 자신보다 더 배고픈 사람을 주라며 사양하는 이들이 많다. 개중에는 끼니가 해결되니까 막노동 벌이에 나가서 번 돈으로 산 쌀 포대를 짊어지고 와 식당에 건네는 이들도 많다. 민들레 국수집 주인장이 퍼뜨린 ‘섬김과 배려’의 바이러스에 하나 둘 감염돼 가는 셈이다.
“개인의 이기심에 그리고 욕심에 조금씩만 가지치기를 할 줄 알면 아주 멋지게 살 수 있어요. 저는 이런 교훈을 매일 노숙인 분들에게 배웁니다. 자신이 더 급박한 처지에 있으면서도 남에게 베풀고 나누는 모습을 보면 그 속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많이 봐요.”
민들레 국수집에서 퍼져나간 홀씨들은 내려앉은 곳마다 새로운 꽃봉오리를 피워냈다. 노숙인을 위한 ‘민들레 쉼터’가 노숙인의 문화센터인 ‘민들레 희망지원센터’로 발전하고, 어린이들을 위한 ‘민들레 꿈 공부방’과 어린이를 위한 무료식당 ‘민들레 꿈 어린이 밥집’ 노숙인들에게 옷을 팔지 않고 나눠주는 '민들레 가게'도 문을 열었다.
이익을 남기지 않고도 급성장하고 있는 ‘민들레 계열사’의 서영남 대표는 의외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들이 계획하기는 어려워요. 하루하루 주어진 대로 선물 받은 것처럼 살면 자유롭고 재미있게 살 수 있죠..”
2014년 5월엔 필리핀 빈민지역에서 천막 민들레 국수집이 문을 열었다 인천의 작은 달동네에 있는 민들레 국수집에서 날아간 홀씨는 동네 어귀를 넘어 멀리 바다 건너까지 꽃망울을 틔워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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