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불천탑(千佛千塔)이 완성되면 미륵이 지배하는 참 민중의 세상이 오고 운주사가 서있는 땅은 새
나라의
수도가 된다고 했다. 이에 신라 말 도선대사는 천상에서 석공들을 데려와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
(千佛千塔)제작에
들어갔다. 미륵이 구현하는 참세상의 도래를 간절히 바라며... 하지만 고된 일을 참지
못하고 한 어린 석공이 방정 맞게도 새벽에
닭 울음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 소리에 아침이 밝은 것으로
착각한 천상의 석공들은 마지막 와불(臥佛)을 완성하지 못한 채 하늘로
올라가 버린다. 결국 천탑(千塔)은
세워졌지만 마지막 하나 남은 와불(臥佛)을 일으키지 못함으로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도 그만
도로
아미타불이 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운주사는 지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전해지는 이야기 일 뿐 누구도 그
진위에
대해 장담하지 못한다. 다만 옆 산등성이에 나란히 사이좋게 누워있는 와불(臥佛)이 한 쌍 있어 이야기를
극적으로 이끌어 주고 조선시대 “동국여승지람”에 운주사에 천불천탑이 있다는 기록이 있어 신빙성을
더해줄 뿐. 진실을
알고 있는 이는 바위에 기대 있거나 외로이 서 있는 불상과 탑들, 하지만 천년의
무게를 버티어 온 이들은 지금이라도 찾아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는 마음을 전해주려는 양, 어찌 보면
싱긋 웃고 있는 듯, 하고 어찌 보면 장난 한번 걸어볼 것 같은 그 앙증맞은
표정들이 정다울 따름이다.
운주사를 찾으면 먼저 대웅전을 지나 공사바위에 올랐다가 와불(臥佛)과 칠성바위를 둘러보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이다. 대웅전 뒤편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오르면 공사바위에 다다르는데 그곳은 도선대사가
앉아 공사를
감독했던 곳이라 하여 공사바위라 불린다.
바위위에 올라가 보면 대사가 앉았음직한 움푹한 홈이 파여 있는데 그곳이 운주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최적의 자리이다.
대웅전 왼편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와불과 칠성바위에 다다른다. 마치 다정한 부부 마냥 정답게
누워있는
와불 한 쌍, 비록 가장 편하다는 누운 자세로 천년의 세월을 견뎌왔다지만 누워있는 자의 흉리는 편하기만
했을까?
홀로 일어나지 못하고 땅에 등 기대고 있는 자의 애통함을 누구도 알아주는 이 없고 말없이 그저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그 얼굴에서 천년동안의 고독이 묻어난다. 황석영은 소설“장길산”에서 “와불이 일어나는 날
세상이
바뀐다.”라고 했는데 그 날은 언제인 것인가?
하지만 그 얼굴은 말한다. 천년의 세월도 견뎌왔는데 다급한 마음 가질 이유가
무엇이요?
애잔한 마음과 그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을 안고 터벅터벅 산길을 걸어가면 칠성바위에 다다른다.
모양도 크기도 북두칠성과 똑같은 칠성바위이다. 이를 보면 우리네 선조들의 과학기술이 얼마나 발달했
는가를 한눈에
짐작할 수 있다. 그 당시에 무슨 허불 망원경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이다지도 정확하게
별자리를 옮겨 놓았단
말인가?
이 또한 왜 여기에 있는지 무슨 이유로 만들었는지 그 정확한 속내를 알 수 없어 다른 불상과 석탑처럼
그저
머리 속 가득 상상력만 키워 줄 뿐이다.
들어왔던 길로 다시 나가는 길. 일주문 앞에 다다르면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석탑들과
석불
들에게 자꾸만 눈길이 가는 걸 멈출 수 없다. 마치 어린 자식을 놔두고 떠나는 것 마냥, 아니 뭔가 내 할
일을
다 마치지 못하고 허겁지겁 도망가는 것 마냥, 운주사를 더나오는 그림자에게 미증유의 슬픔이 가득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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