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문트 시리즈>
영화 같은 게임
프리버드 게임즈는 캐나다의 쯔꾸르 기반 인디 게임 제작사이다. 첫 스팀 발매작인 <To the Moon>(2011)에 이어서 <Finding Paradise>(2017), <Impostor Factory>(2021) 등 일명 '지그문트 시리즈'를 이어오고 있다. 지그문트 시리즈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영화 같은 게임이라 불린다. 어떤 사람들은 스토리가 아주 큰 울림을 주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었지만 게임으로서는 매우 지루하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프리버드 게임즈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 나은 그래픽, 더 좋은 이야기, 더 아름다운 OST를 만들어냈다. 덕분에 게임 한 편을 만드는데 4년이 넘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말이다.
낭만적인 기술?
지그문트 사는 죽기 직전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억을 심어 그 기억 속에서 그 사람들의 꿈을 이뤄주는 회사이다. 이 회사의 기술은 겉보기에는 굉장히 낭만적여 보인다. 내가 이루지 못했던 일을 기억 속에서라도 이룰 수 있으니까 말이다. 실제로 <To the Moon>에서는 낭만적여 보이게 그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Finding Paradise>에서는 어떤가? 콜린은 지그문트 사의 모든 후회를 고쳐준다는 말을 듣고 삶의 후회가 생겼다. 그 전부터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그래도 만족하고 살았다. 그러나 그 후회를 없앨 수 있다고 하자 그것을 없애고 싶어졌고 만족하지 못하게 되었다. 콜린이 진정한 행복을 얻는 방법은 바로 지그문트 사를 잊는 것이었다. 지그문트 사는 후회를 없앤 것인가? 아니면 만들어낸 것인가?
아이 vs 나
린리는 이름모를 질병을 앓고 있었지만 좋은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임신을 하게 된다. 그와 함께 그녀의 병세가 심해지게 된다. 린리가 죽지 않기 위해서는 수술을 해야 했고 그러면 아이가 죽거나 장애가 생기게 된다. 아이를 살리기로 한다면 린리가 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조작된 기억 속에 퀸시(린리의 남편)는 아이에게 장애가 생기는 것보다 엄마가 없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일이라며 수술을 하기를 권한다. 과연 그럴까? 그건 알 수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예언자도 신도 아니니까. 그러니 한가지는 확실한 것 같다. 어떤 결말이 나더라도 그것이 전적으로 그들 책임은 아닐 것이라고...
라벤더와 별
"그럼 별들한테 고맙다고 해야겠네요. 별들이 없었으면, 라벤더 들판을 못 봤을 테니까요."
"그럼, 라벤더한테도 고맙다고 해야겠구나. 라벤더가 없었으면 볼만한 게 없었을 테니까, 그렇지?
...
그럼 만약 둘 중 하나가 된다면 어떤 게 되고 싶니?"
-린리와 린리의 아버지-
라벤더와 별은 무엇일까? 내가 처음으로 들었던 생각은 별은 자신을 희생함으로 라벤더를 비춰주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린리가 아이의 정상적인 삶을 위해 수술을 미루는 일은 별인 것 같다. 하지만 꼭 그런 의미는 아닌 것 같다.
학생이었던 린리는 학문에 열중한다. 졸업 후 린리는 각종 과학 기술을 연구하는 헤인즈 재단에 스카우트되어 세상을 바꾸는 일에 열중하게 된다. 하지만 이로 인해 남편과 만나는 시간이 줄어들고 동료가 사망하는 사건까지 일어나자 결국 헤인즈 재단에서 나오게 된다. 그 뒤로 린리는 세계여행을 다니고 임신도 하여 행복한 인생을 보내게 된다. 그 때 그녀의 병세가 심해진 것이었다.
여기서 별은 다른 이를 비춰주기 보다는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에 더 가깝다. 린리는 헤인즈 재단에서 세상을 바꾸는 일에 열중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라벤더, 즉 삶 속에 행복은 없었다. 그 후 연구원을 그만두었을 때는 현실을 즐겁게 보내는 인생을 살게 된다. 또한 린리가 수술을 미루기로 결정하는 것은 이번에는 라벤더이다. 별 없이는 보이지 않는 라벤더지만 그녀는 다른 이들에 인정이 아닌 행복을 얻었기 때문이다.
가상현실은 행복할까?
닐 와츠(린리의 아들이자 지그문트 시리즈의 주인공)는 남겨진 린리의 기억을 통해서 린리가 이름모를 질병없이 행복하게 사는 가상현실을 만든다. 닐이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기억을 바꾸었듯이 말이다. 물론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린리가 자신의 세계가 가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게임이 보여주는 린리의 행복한 일생은 더 이상 <To the Moon>처럼 낭만적이지 않고 아주 역겨워진다. 어떻게 주인공이 자신의 세계가 가상이라는 것을 아느냐 모르느냐만 바뀌었는데 이렇게 감상이 완전히 달라질까?
린리가 자신의 삶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네오가 빨간 약과 파란 약을 마주할 때나 트루먼이 실비아의 말을 들었을 때, 조너스가 기억전달자가 된 때를 떠올리게 한다. 네오, 트루먼 그리고 조너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들은 모두 그들이 갇혀있던 세계를 나갔다.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해피엔딩으로 여겨왔다. 그렇다면 <To the Moon>의 엔딩은 베드엔딩이 되야하는 것이 아닌가?
누군가는 매트릭스, 트루먼쇼, 기억전달자는 강제적으로 갇힌 것이지만 지그문트 시리즈에선 스스로 지그문트 사에 의뢰를 한다고 반박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페이는 말했다. "콜린이 마음을 바꿨어. ... 이젠 당신들이 그만 나가주길 바란다고." 페이의 이 말은 의뢰인이 의식이 없는 가운데에도 생각을 할 수 있는 가능성과 그것이 이 계약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렇다. 사람의 생각과 행복의 기준은 바뀌기 십상이다. 린리만 봐도 어떨 땐 세상에 흔적을 남기려 했다가 다른 땐 현실을 즐겼다. 그런데 지그문트 사가 기억을 조작해서 만들어낸 세상은 과연 강제적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이 설사 강제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행복할까?
가짜 행복
"게다가 저 여자의 세계도 진정한 최종 현실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퀸시-
퀸시의 말을 입증하듯 <Imporstor Factory>의 쿠키영상은 스스로 닫히는 문을 보여주며 지그문트 시리즈의 세계도 가상현실일 수 있다는 떡밥을 뿌렸다. 이 떡밥이 회수되기까지는 5년 가까이 기다려야 하겠지만 이 떡밥은 다른 궁금증도 떠오르게 만든다. 우리도 조작된 기억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닐까하고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행복이라 느꼈던 것도 사실 가짜 행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