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바람 소리
이은봉
때 되어 숲 빠져나가는 솔바람 소리
굴참나무 마른 잎사귀, 떨어져 뒹구는 보리똥나무 마른 잎사귀, 부드럽게 손가락 뻗어
살짝 건드려 보기도 하지 엉덩이 만져 보기도 하고
뺨 쓰다듬어 보기도 하지
숲 빠져나가는 솔바람 소리
장난기 가득한 낯빛, 실실 눈웃음치기도 하고, 아랫마을 홍이네 집 앞마당
휘이, 내달려 보기도 하지 솔바람 소리
그러면 어디로 가나 산버찌 까만 열매도 없고, 보리똥 붉은 열매도 없고, 숲 빠져나가면 어디로 가나
후두둑, 한 줄금 소낙비라도
쏟아질 것 같지 거기 하늘 밑, 다섯 곳의 우물가, 다섯 그루의 오동나무 아래, 잠시 머뭇대기도 하지
어울려 한바탕 세상 욕하기도 하고
해찰도 하지 해찰이 싱거워지면 그대 솔바람 소리, 흔들리며 휘청대며 어디로 가나
걱정할 것 없지 세상은 넓고 크지
벌판을 내달리다 보면, 철조망도 있지 더러는 콘크리트 담벼락도 있고, 첩첩 절벽도 있지
빡빡 기어오르다 보면, 튀어오르다 보면
뼛속 깊이 파고드는 한기, 그대 시린 솔바람 소리, 송이눈이 되어 내리고……, 퍼뜩 겨울이 오지 너무 추워 으시시 몸 떨기도 하지
솔바람 소리, 넓고 큰 세상 향해 치달리다 보면
한 바퀴 돌아 민들레꽃이 피고, 진달래꽃이 피고, 오동꽃이 피고
봄이 오지 다섯 곳의 우물가에 누워
콧노래 부를 때가 오지 솔숲에 들어, 다시 또 송홧가루 흩날리며 뛰어놀 때가 오지 옛 노래 부르며 파하하 웃을 때가.
―이은봉, 『걸레옷을 입은 구름』, 실천문학사,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