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을 돌아보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한국영화와 외국영화의 베스트 5를 선정했다. 선저 기준은 필름2.0 기자들의 시선이다.
2007 한국영화 베스트 5
생의 비밀을 비추다 <밀양> 제작사 파인하우스필름 | 감독 이창동 | 주연 전도연, 송강호
‘억장 무너지다’는 관용구가 생생한 영상으로 펼쳐졌다. 삶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들을 속절없이 잃은 신애가 낯선 교회 의자에 앉아 가슴을 쥐어뜯으며 통곡하는 순간. 슬픔, 절망, 분노 등의 단어를 다 합쳐도 설명될 수 없는 폭발적인 감정이 스크린을 뚫고 나왔다. 흘릴 눈물도, 토해낼 울음도 남지 않은 신애가 애벌레처럼 웅크리고 앉은 모습은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 무의미해 보였다. 이창동 감독은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인간의 고통스런 감정을 극한까지 몰고 가더니 희망의 빛 한 줌 떨구며 ‘구원이 가능한가?’를 묻는다. 절망의 끝에서 기독교에 감화돼 신에게 의지하게 된 신애가 용서를 통해 구원받는 듯싶었다. 그러나 용기를 내 찾아간 교도소에서 살인자가 “신이 날 용서했다”고 선수친 순간, 신애는 또 다시 무너진다. 가녀린 몸으로 고통을 감내하고 표현해야 했던 전도연은 <밀양>을 통해 재발견됐고,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이라는 값진 수확도 얻었다. 전도연은 누구나 인정할 눈부신 연기를 펼치지만, 비현실적이리만치 비극적인 여자의 주위를 맴돌며 현실적인 공기로 숨구멍을 터줬던 남자 종찬, 송강호도 잊지 말자. 보잘 것 없는 속물의 전형을 그처럼 자연스럽게 표현할 줄 아는 배우는 드물다. <밀양>은 올해 가장 할 말이 많았던 영화였다. (정미래 기자)

진실의 힘을 증명한 다큐멘터리 <우리학교> 제작사 스튜디오 느림보 ㅣ 감독 김명준 ㅣ 주연 ‘우리학교’ 친구들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 일본 홋카이도의 조선학교인 ‘우리학교’ 아이들이 목이 쉬도록 외치던 한마디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요약해준다. 그들의 진심 어린 호소는 엄청 힘이 셌다. 극장 상영은 물론 공동체 상영으로 9만 관객을 모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한국 다큐멘터리의 흥행기록을 갈아치웠다는 것 외에도, 우리에게 그저 스쳐가는 뉴스에 불과했던 재일동포들의 삶을 가장 근접하게 조명했다는 성취를 남겼다. 일본 땅에서 ‘조선인’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일본 우익단체들의 살해협박과 탄압은 다반사다. 하지만 '우리는 북한 사람도 일본 사람도 아닌 조선 사람’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은 여느 10대들과 다를 바 없다. ‘함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은 올해 최고의 미소로 손색이 없었다. 무엇보다 뭉클했던 건 사비를 털어 카메라 한 대 달랑 들고 3년간 우리학교를 누볐던 김명준 감독과 아이들의 교감. 경계 짓는 것을 모르는 아이들의 살가운 태도와 순박하고 착한 마음에 눈시울이 불거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체제와 이념, 조총련 등의 무게를 ‘우리는 하나’라는 믿음으로 덜어낸 <우리학교>는 올해 한국영화에서 단연 머리에 남는 기억 중 하나다. (유지영 기자)

이명세의 감각의 제국 <M> 제작사 프로덕션M | 감독 이명세 | 주연 강동원, 이연희, 공효진
<M>을 보고 나오는 관객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뱉은 외마디 불평. “내가 머리가 나쁜 거야? 아님 영화가 이상한 거야?” 그들은 빈정거리고 있었다. 대중들과의 행복한 만남에 실패했지만, <M>은 새로운 방식으로 말을 거는 영화다. 누구나 떠올리고 싶어하지만 잊고 있었던 첫사랑을 환기하면서. 이야기 중심의 관람에 익숙한 이들이 혼란에 빠진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현실과 과거를 오가는 무정형적 구성, 허구와 진실의 모호한 경계, 사물과 소리로 연결되는 감성의 고리, 시청각적 이미지의 나열로 기억을 맞춰가는 화법, 빛과 어둠의 대비, 반복적인 공간 구성 등 이명세는 총체적인 감각에 호소한다. <M>은 사실 단순한 이야기다. 영화를 보는 이들이 모든 장면, 모든 대사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면서 첫사랑에 대한 아련함이 무엇인가로 해석돼야만 하는 중압감으로 변질된 것이다. <M>은 꿈을 통해 첫사랑을 떠올린다. 우리 모두 갖고 있는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 판타지가 아니라 스스로도 가물거리는 시간 너머의 기억임을 확인시켜준다. (김도형 기자)

아버지의 진짜 얼굴 <우아한 세계> 제작사 루씨필름 ㅣ 감독 한재림 ㅣ 출연 송강호, 박지영, 오달수
한국영화 속 조폭의 모습이란 우리네 아버지의 그것과 같았는지도 모른다. 능력 있는 후배들에게 쫓기고, 위에는 만만치 않은 보스가 버티고 있고. 모든 걸 다 바친 가족들에게 외면 받는 존재가 조폭 아버지의 모습이다. 조폭 가장 인구의 삶은 그가 종사하는 비즈니스 세계처럼 폭력으로 점철돼 있다. 그렇지만 그의 삶은 “정말 아름답다, 아름다워”라는 자조와 비아냥거림이 말하듯 절대로 우아하거나 멋지지 않다. 칼부림이나 다름없는 세상에서 치고받는 아버지가 아니라, 정말로 칼부림 당하는 세계에서 끝내 가족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 인구는 조폭 위에 팍팍한 삶에 찌든 아버지를 더하며 폭력의 세계에 손 뗄 수 없는 쓸쓸한 가장을 조명한다. 주먹의 세계가 싫고, 딸에게 경멸 받는 것은 더 싫은 인구의 굴레는 우리 시대의 서글픈 초상이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러고 사는데”라는 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가장 만만한 변명이나 딜레마, 아이러니로 치부할 수 있는 이 말을 <우아한 세계>는 가장 진실하게 전달한다. (강상준 기자)

가족의 인류학 <좋지아니한가> 무사이 필름 ㅣ감독: 정윤철 ㅣ출연: 천호진, 문희경, 김혜수, 유아인, 황보라
<좋지아니한가>는 이상한 가족영화였다. 권위를 상실한 아버지, 삶의 권태를 느끼는 어머니, 한 소녀를 짝사랑하는 아들, 적당히 반항할 줄 아는 딸, 여기에 무협작가를 꿈꾸는 백수 이모. 좌충우돌 소란극으로 한 차례 홍역을 겪은 이들 가족의 오늘은 어제와 비슷하지만 조금은 변했다.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가족 구성원을 이해하고 대하는 방식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정윤철 감독은 평범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가족 개념과 일상에 담긴 풍부한 의미를 발견한다. 카메라에 담기는 순간부터 조금씩 우스꽝스럽고 해괴하게 보이는 사람과 관계들. 아버지가 원조교제 사건에 휘말리자 이들 가족은 평소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었던 가족애를 발휘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갈등을 통한 화해’라는 진부하면서도 일시적인 해결책을 넘어, 삶과 가족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좋지아니한가>는 사건 해결보다 생생하게 캐릭터를 묘사하고 그들의 일상을 판타지로 확장시키면서 상상의 지평을 넓혔다. 대박 흥행작 <말아톤>에 이어 정윤철 감독은 자신의 진짜 개성을 한껏 펼쳐냈다. (안효원 기자)
2007 외국영화 베스트 5

리얼 액션의 비등점 <본 얼티메이텀> The Bourne Ultimatumㅣ감독 폴 그린그래스ㅣ출연 맷 데이먼, 줄리아 스타일스, 데이빗 스트라던
<본 얼티메이텀>을 2007년 최고 영화로 꼽는 데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없었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세계를 방랑하는 제이슨 본(맷 데이먼)은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긴장과 액션의 최대치를 보여줬다. 전편에서 기억을 일부 회복한 그는 <본 얼티메이텀>에서 CIA 비밀기관 ‘트레드스톤’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조직의 심장부로 뛰어든다. 본의 활약에 따라 밝혀지는 사건의 전말은 엄청난 긴장감으로 오금을 옥죈다. 본이 밝힌 만큼만 알 수 있는 관객의 눈은 완전히 그에게 붙들린다. 본이 트레드스톤의 비밀을 밝혔을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본 자신만의 것이 아니다. 맨몸으로 펼치는 ‘날것’ 그자체의 생동감 넘치는 액션은 지금까지 어떤 액션영화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다. CG나 과장은 없다. 밀폐된 공간을 가득 채우는 것은 거친 숨소리와 몸이 서로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뿐이다. 혹독한 훈련을 통해 얻어진 본의 생존본능과 장시간 계속되는 숨 막히는 액션은 보는 이의 심장을 조인다. 특히 영화 초반 15분가량 펼쳐진 워털루역 광장 추격 신은 2007년 최고 명장면. 화려한 변신로봇이 '혁명'을 일으키는 동안에도 본의 아날로그 보디 액션은 독야청청이었다. (안효원 기자)

관능을 깨운 색과 계의 변증법 <색, 계> 色, 戒 | 감독 이안 | 출연 양조위, 탕웨이, 왕리홍
100m 높이의 외줄 위를 아슬아슬 걸어가는 기분이 이러할까. 허공에 떠 있는 듯한 희열과 언제 떨어져 죽을지 모른다는 위협이 교차하는 순간. <색, 계>는 그러한 감정의 끈을 팽팽하게 조였다 풀면서 러닝타임 내내 긴장을 놓지 않는다. 친일파 정보부 대장과 그를 제거하려는 스파이 왕치아즈. 언제 어디서 저항군의 총알이 날아들지 모르는 상황에 늘 경계의 칼날을 꼿꼿이 세우고 있는 남자와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그를 무장해제시키고자 하는 여자.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비밀과 거짓말,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가 가혹한 시대 위로 펼쳐진다. 드디어 경계를 푼 남자가 여자를 벽에 패대기치고 옷을 갈기갈기 찢으며 욕망을 분출하는 순간은 숨이 턱 막힌다. 또 점점 서로의 ‘색’에 빠져든 두 사람의 몸이 기묘하게 어우러진 모습은 노출 빈도나 표현 수위의 논란 따위는 생각나지도 않을 만큼 아름답다. <색, 계>는 또한 젊음의 치기가 낳은 아마추어 스파이의 열정과 실패에 관한 영화다. 나라 걱정 없이 공부만 하고 있어도 누가 뭐라 할 사람 없건만, 왕치아즈는 알 수 없는 열망으로 목숨까지 걸어가며 애국의 길을 택한다. 순진한 학생에서 치명적인 스파이로 변신한 왕치아즈의 열정은 곧 히로인 탕웨이의 열정이기도 하다. (정미래 기자)

잊히기 힘든 숭고한 감동 <타인의 삶> Das Leben Der Anderenㅣ 감독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ㅣ 주연 울리쉬 뮤흐, 마티나 게덱
<타인의 삶>은 스스로 삶을 움켜쥐는 것의 가치를 웅변한다. 윤리와 규범, 이데올로기의 논리에 자신을 맡기는 것은 쉽다. 통일 전 동독의 비밀경찰이었던 비즐러가 바로 그런 존재다. 타인은 물론 자신도 관심의 대상이 아닌 중년의 남자. 사회의 신념이 곧 자신의 신념이었던 이 남자는 극작가와 여배우 부부를 도청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한다. 흔들림 없이 냉정했던 얼굴에 웃음이 번지고, 부부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도 한다. 변혁을 꿈꾸는 부부에게 동화되면서 욕망이라는 이름의 열정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살해야 할 부부를 살려주는 비즐리는 결국 경찰직을 박탈당하지만, 타인의 삶으로 인해 비로소 그는 사람의 체온을 얻는다. 또 비즐리에게 도청 당했던 극작가 역시 전혀 알지 못했던 타인에 의해 목숨을 건진다. 비즐리를 연기한 울리쉬 뮤흐의 존재는 자칫 전쟁의 폐허 속에서 피어난 휴머니즘 드라마 중 하나로 치부될 법한 영화를 살린 일등공신이다. 감정이 읽히지 않는 무표정 속에 격렬한 심리 변화를 담아내는 그의 연기는 탁월했다. 특히 사회 체제를 뛰어 넘어, 비로소 자신의 삶을 찾은 남자의 숭고한 모험담이 마무리되는 엔딩 신은 올해 가장 잊히지 않는 장면 중 하나였다. <타인의 삶>의 여운이 짙은 것은 그래서다. (유지영 기자)

이 센스쟁이 생쥐 같으니! <라따뚜이> Ratatouille | 감독 브래드 버드 | 목소리 출연 패튼 오스왈트, 루 로마노, 브래드 거렛, 피터 오툴
언젠가부터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은 말하는 동물들의 천국이 돼버렸다. 저마다 수다, 허풍, 소심, 유머를 캐릭터 삼아 특별할 것 없는 환경보호와 자유의 메시지를 설파했다. 이런 기류가 식상하다 싶을 때쯤 조용히 나타나 사람들의 마음을 후려잡은 애니메이션 <라따뚜이>. 절대미각을 가진 한 마리 생쥐가 프랑스의 유명 레스토랑 요리사가 된다는 꿈같은 이야기지만 <라따뚜이>의 매력은 보다 현실적인 설정에 있다. 먼저 섣불리 의인화 전략을 쓰지 않는다는 것. 말하지 못하는 생쥐와 재능 없는 요리사 지망생 링귀니가 교감을 나누는 과정을 슬랩스틱 코미디로 승화시키는 센스! 프랑스식 영어 발음으로 귀를 간질이던 요리의 장인 구스토의 한마디 한마디는 새겨들을 만하고, 역사 깊은 프랑스 레스토랑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재미도 끝내준다. <라따뚜이>의 화룡점정이라면 역시 마지막 시퀀스. 프랑스 전통요리 '라따뚜이'를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어린 시절의 추억 속으로 빨려 들어가던 꼬장꼬장한 요리비평가 안톤 이고처럼, 관객들 마음도 스르륵 녹아들어간다. (송순진 기자)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 嫌われ松子の一生 | 감독 나카시마 데츠야 | 출연 나카타니 미키
'비련의 여주인공' 같은 구시대적인 코드가 2007년에도 유효할 줄이야. 웬만한 눈물샘 자극법이라면 싸늘한 비웃음으로 일관하던 관객들이라도 나카시마 데츠야 감독의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하 <혐오스런 마츠코>)이 상영되던 극장에서는 어김없이 훌쩍였다. 올해 개봉한 신파영화 가운데 <혐오스런 마츠코>는 단연 최고였다(고 말하고 싶다!). 눈물과 감동을 무기로 삼는 것은 대부분 상업영화들의 뻔한 노림수지만, <혐오스런 마츠코>만은 특별한 신파를 보여줬다. 자기도취의 절정에 서 있는 청승의 여왕,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무구한 성격 탓에 팔자가 센 비련의 여인이라는 독창적인 캐릭터가 바로 당황하면 눈, 코, 입이 가운데로 모이는 마츠코다. 사람들의 콧등을 시큰하게 만드는 재주도 다양하다. 음악 교사에서 호스티스로, 살인자로, 결국엔 은둔형 폐인으로 살다 장렬하게 전사하는 그녀는, 마지막까지 누군가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을 버리지 못한다는, 그 평범하고도 어느 누구의 마음속에나 들어차 있는 욕망으로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낸다. (송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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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안 본 나머지 4개도 다 봐야 겠습니다,,, 갠적으로 밀양. M 넘 좋았슴다,,
색계 잼나다고 하던디...딱 말자 스탈일듯..ㅋㅋ
저도 그 무삭제 폴더형에 올인하고자 봤는데,,, 저의 감정 이입은 탕웨이가 아닌 본처한테 가서,,열받으면서 본 영화임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