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말부터 입주를 시작한 전주시 서신동 모 아파트 단지. 입주 반 년이 넘어가지만 전체 650여세대 가운데 아직도 20% 가까이 불이 꺼져있다.
국내 1군 업체가 야심차게 지은 아파트로 전주천과 삼천이 만나면서 조망권 또한 최고라고 선전했지만 아직껏 집주인을 찾지 못한 세대수가 적지 않다.
38∼60평형 등 대형 평수 위주로 구성돼 있어 실수요층이 얇은 전주권 주민들의 구미를 끌어당기지 못했다.
실제 주변 공인중개사무소 등에서 거래되는 가격은 분양가격보다 최고 2천만원선까지 떨어진 가격에 거래되고 있으며 로열층 역시 프리미엄은 고사하고 500만~1,000만원가량 싼 가격에 거래가 형성되고 있지만 매수자 찾기가 쉽지 않다.
위, 아랫집이 듬성듬성 비어있다보니 아직까지 초기 입주때의 어수선한 분위기도 남아있다.
도내 미분양 물량이 5천여세대에 달할만큼 만성적인 공급 과잉 상태가 계속되면서 회사마다 미분양 물량이 산적, 건설업계가 부도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입주 1년이 다되도록 분양이 안된 아파트는 비단 이 곳뿐 만이 아니다. 최근 1∼2년 사이 분양했던 지역업체들 상당수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21일 전북도에 따르면 5월 말 현재 도내 미분양 주택은 5천여세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2배 증가했다.
미분양 물량 가운데는 전용면적 85㎡초과가 절반을 차지, 지역내 엷은 수요층을 반영하듯 중대형 평수의 미분양이 상대적으로 많다.
도내 건설업계와 부동산업계 등에 따르면 미분양 물량으로 인해 5천억원 이상의 자금이 묶이면서 건설사의 숨통을 옥죄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 수치는 전국 미분양 주택 5만1천여 가구 가운데 무려 10%를 차지하는 것으로 전국 2% 경제를 감안하면 녹록치 않은 현실이다.
이로 인해 각종 내·외장재및 마감재, 레미콘, 아스콘업계 등 제때 공사비를 받지 못한 협력 업체들이 체감하는 후폭풍은 오히려 시행, 시공사보다 더하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한 하도급업체 관계자는 “미분양으로 인해 협력업체들은 현물로 공사비를 대신 받을 수 밖에 없어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며 “현재 전북지역 건설경기는 사실상 제로상태다”고 푸념했다.
건설업체간 불황이 장기화되자 원청자와 하청자간에 장기어음, 현물지급, 대물 등이 공공연히 거래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지역 주택업계의 현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중앙 유명업체의 잇따른 아파트 건설계획,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억제정책 등이 맞물리면서 도내 건설업계들이 부도 도미노 공포에 휩싸여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갈수록 이 바닥에서 해먹을 것이 없다. 때려치우고 싶어도 다른 대안이 없다”며 “이제 전북을 떠나 타지역 나아가 카자흐스탄, 베트남 등 신규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사들은 미분양 물량을 안고 있어도 드러내놓고 표출할 수 도 없어 ‘회사 보유분 특별분양’ 등으로 털어내기식 광고를 하며 속앓이를 하고 있다.
미분양 물량속에 기존 아파트 값도 하락세를 보이는 원인은 거의 분기별로 쏟아낸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 대책과 건설사들의 아파트 공급과잉이 빚어낸 결과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특히 중앙 건설사들이 실수요층과 소득수준, 인구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무조건 땅값만을 운운하며 지방에서 평당 1천만원에 육박하는 아파트를 분양, 고분양가 논란을 스스로 조장해 청약률을 떨어뜨리는 자충수를 뒀다.
전주시 서신동에 사는 박모(48·회사원)씨는 “누가 전주에서 2∼3억원씩 현금을 주고 아파트를 분양받겠느냐”며 “분양가를 대폭 낮추지 않는 한 미분양 물량은 당분간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장정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