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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이씨익재공후판윤공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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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거? C 선생과의 논지
이이록(우) 추천 0 조회 98 10.10.03 12:31 댓글 2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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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0.10.03 13:11

    첫댓글 야후 백과사전은 믿을것이못됩니다 윗글에서도 뫼에 십자로 긋고 45도로꼽고 밥3숫가락을 등 현제예법과 동떨어진 해석을 하고 있으며 또한 누구나 백과사전을 수정할수도있으며 글을 올릴수도있습니다 저도 초암선생의 의견에 동의하며 보통 절사로 부르고있으나 현제 대부분이 차례로 부르고있으니 시류에 따르고있습니다 또하나 우리나라에서 정월초하루 절사를 지내는것은 100년정도밖에 안된전통입니다 옛날 4시제에도 들어가지않았으며 고종황제의 칭제시기에 建陽연호를 쓰며 음력을 폐기할때 그에대한 반발로 음력을 지키기위한 방편으로 설날절사를 시작한걸로 알고있습니다

  • 10.10.03 15:37

    민희 종친님! 우리나라에서 정월초하루에 절사를 지내는것은 100년 정도 밖에 안된 전통입니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윗글의 내용을 보시면서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개화기를 자꾸 강조하시는데 이는 아주 잘못된 역사의 왜곡된 부분입니다......그리고 일제시대 운운하는 것도 아주 잘못된 역사관이십니다......우리 동이족 계열의 조상숭배뿐만 아니라 자연신과 천신을 모시는 고유 풍습들이 하/상/은/주나라까지 수천년을 망라합니다..... 개인적인 측면보다는 문헌을 근거해서 올려주세요^^ 차례가 100년 전부터 지내왔다는 말이 경주이씨가문에서 나온다는 말씀이 참 안타깝습니다......

  • 10.10.03 16:23

    제사는 벌써 그 원시적인 의의를 떠나서도 숭고한 도덕적 의의를 가지게 된다. 이말은 <禮記> 제통편에서 볼수 있는데 "祭者所以追養繼孝也孝者畜也順於道不逆於倫" 이라 했다. 이 내용을 종합하면 공양을 생존중에 다한 효도의 연장이라고 본 것이다. 곧 제사는 그 敬愛謝恩의 정을 표기하는 형식에 不外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조상숭배는 父祖에 대한 효심의 연장선상에 있다.

  • 10.10.03 16:29

    그냥일반적인 제사가아니라 정월초하루날 제사지내는것을 말합니다 정월초하루날 제사모심이 100년밖에 안되었다고 제가주장을합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반론자가 오랜전통을이어온 풍습인것을 근거를 제시하셔야지 어찌 주장자에게 근거제시를 요구하시는지요?

  • 10.10.03 16:43

    종친님 차근차근 올리겠습니다. 길제와 흉제를 말하는데 상중의 제사는 흉제라고 말한다. 3년상을 마치고도 해마다 삭망에 전하고 오곡백과가 숙하면 곧 천신전하고 시식에는 언제나 상식함을 예로 한다고 했다. 그래서 조선조 숙종때에서는 박세당이 이러한 번거로움에 대해 상소를 올리자 불경하다고 삭탈관직은 물론 仕版을 削去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文公家禮>에서도 사시제에 관한 기록에는 춘하추동에 당에 삼가 봉사된 祖靈을 위해 동지에는 始祖를 제사하고 입춘에는 先祖를 제사하고, 계추에는 示+爾/이를 祭祀한다고 했다. 그 또한 시제와 다르지 않는데 간혹은 이제/示+爾祭를 행함에 先考의 生辰까지도 茶禮에 代한다고 했다.

  • 10.10.03 16:37

    제가 원조절사가 100년정도라고 주장한근거는 이미 읽어보셨으라라고생각합니다 아니면 지금이라도 검색해보시면 인터넷에 내용이 있을것입니다 제가주장하는근거는 老石 呂九淵[1865-1938] 老石集입니다

  • 10.10.03 22:18

    제례에서 가장 중요시 했던 것이 기제였다. 기제는 선고비는 말할 것도 없고 조고비의 기일에 행하는 제사였다. <가례>에서는 기일에만 행하는 것이 기제사였으나 인정에 이끌려서 매월 正朔/ 상원/한식/삼진/단오/유두/추석/중양/의 절사를 빠짐없이 행하여 졌다고 하고 있다. 회재 또한 사계와 마찬가지로 이를 취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특히 묘제까지 겸하는 수가 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묘제는 그 연원이 매우 오랜데 왕실에 한하여 종묘라고 일렀고, 사유에 있어서는 가묘라 칭하였다. 특히 여기에서 논의되고 있는 문제가 바로 서인의 입묘를 借禮라 하여 금지한 것은 없었지만 사당을 갖는것은 사유계급에 국한되었고..

  • 10.10.03 21:15

    .....일반인들은 住家內의 사당방 또는 대청으로써 대행함을 통례로 한다고 적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당의 규묘를 <문공가례>에서 보면 삼간오가로서 同堂異室의 제를 취하였다. 더하여 상세한 가옥구조까지를 겸하여 밝히고 있다. 문헌 자료와 참고 자료가 이렇게 많고 관련서적들이 일관성있게 간단명료하게 있어도..... 단지 예서를 펼쳐보지도 않고 개인적으로 일관된 잣대로 말씀하시면 안될것 같아 댓글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는 개인의 자료정리이기도 하지만 많게는 경리 120 여만명의 지식의 수단으로 여기신다면 충분한 사료가 뒷받침 되어야 함을 다시 밝혀 둡니다.

  • 작성자 10.10.04 10:28

    다른 것은 몰라도 설날과 추석에 조상님께 올리는 제사를 옛적부터 차례라고 합니다. 한식과 중구절에도 차례라고 하는 줄로 압니다. 추석을 차례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추석의 禮를 차례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추석은 추석절. 한가위. 가배. 팔월대보름이지요. 이때 조상님께 올리는 단헌무축의 제사를 차례라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절사라는 말로도 쓰입니다.

  • 작성자 10.10.04 10:39

    민희 종친님. 한 부분을 두고 전체같이 말씀하시면 안되지요. 그래도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야후나 위키나 네이브 사전인데 이것을 믿을 것이 못된다라고 하시면 곤란하지요. 이를 참고로 하는 사람은 모두 엉터리라는 뜻이 아닙니까? 추석의 예는 차례가 아니다라는 주장에 반론을 펼친 것입니다. 논지는 각자의 주장이 있으니 거기에 따르면 됩니다. 백과 사전이 잘못 된 것이 많으면 두번째 올린 정동주 선생의 '차례의 역사'는 어떠하지요? '추석의 예는 차례가 맞다.'는 것을 근거로 올린 것입니다.

  • 10.10.03 13:21

    茶禮의 역사가 오래되고 옛전통이라면 茶나무가또한 많아야합니다 왕실에서나 민가에서 차례를 지내기 위해서는 어디에서 차를 구해서 올렸을까요 지금현제 구례 함평 익산 변산 금산등에 일부존재하며 멸종위기입니다 신라때부터라면 2000년동안 애용해왔는데 제배는없고 모두 야생종입다 재배는 일제시기이후입니다

  • 10.10.03 19:35

    고유의 풍습은 꼭 한시적으로 보시면 안될것 같습니다. 예를들면 지금 우리나라는 석유 한빵울 안나도 석유 수출국입니다..... 물론 동해안 울산 앞바다에 GAS 층의 시추로 경남과 울산지방에서 가정용으로 쓰여지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십수년 전부터는 산유국들과 통상하며 석유를 공동시추하여 일정량의 지분을 동해바다를 통해 들여와 정제를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를 상대적 비교를 하는것이 아니라 문화는 큰시류를 따를 수 밖에 없는것이 문화의 이동경로이자 인류의 역사입니다. 예를 포함한 관혼상제들도 또한 마찬가지 문제라고 여겨집니다.

  • 10.10.03 19:13

    다시 이어가겠습니다. 수많은 茶에 관한 내용을 수록한 책이나 문헌에서는 하나같이 강조하기를 "차를 마시면 잠이 달아나고 온갖 정신이 맑아 진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를 유추해 보면 제례에서 술로서 산자와 죽은자가 서로를 교감하고 신기를 감응했다면 반면에 茶禮나 獻茶는 혼령들의 정신을 맑게 한다는 의미도 담겨져 있지나 않을까 생각듭니다. 그리고 <天台山記>에서는 차를 오랫동안 마시면 날개가 생긴다고 했으며, 그후에는 몸이 가벼워서 날아다닐 수 있게 하는 의미와 같이 혼령들의 영역을 편하게 하는 의미도 있지않을까 추측 해봅니다. 지금도 석전대제시 대성전에서는 종헌을 마치고 헌다례를 반드시 하고 있습니다.

  • 작성자 10.10.04 10:22

    민희 종친님이 알고 계시는 차의 역사와 인터넷과 책자에 의한 차의 역사는 차이가 납니다. 단편적인 이야기로 귀족층의 차의 수탈로 영조이 차대신 물로 바꾸어 제사에 올리도록했다는 기록이 있을만큼 한 때 차문화가 번성했음을 알 수 있고 그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니까 영조(?)께서 차대신 물이라는 특단의 조처를 강구한 것이 아닐까요?

  • 10.10.04 10:34

    녜 아직 제가 본 문헌이나 열람해 본 자료로는 그런 내용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다만 본문 내용아래 참고해 보세요 라는 글에 음운학적인 면에서 문제의 답이 있을것 같아서 중국의 음운학 자료를 찾아 보고 있습니다. 물론 동국정음도 마찬가지 입니다. 어차피 여기서 논의하고 있는 문제의 본질은 우리 종친님들과 함께 의견을 교환하고 수렴하고.... 차례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듯하여 여가나 짬이 나면 관련서적들을 읽고 찾아보고 있습니다.

  • 10.10.03 19:30

    차의 효용에 대해서는 <오흥기>에 차를 마시면 취기가 꺠고 졸립지 않게 된다, <광아>에서는 잠은 만병의 근원이다. <본초>에서도 수면을 적게하고 갈증을 없애고, <식론>에서는 차를 오랫동안 마시면 기력이 증진되고, <천부>차는 정신을 안정시키고 편안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이 차의 효용이라면... 술의 생리는 사람이 술을 마시면 반드시 목이 마르게 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혼백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를 유추해 본다면 제사나 많은 제례에서 음식과 술을 편하게 흠향하시고 종헌을 마친연후에 다례를 올린 것이 아니였을까!....종일도록 많은 예서를 보면서 느낀 저의 생각입니다.

  • 작성자 10.10.03 23:03

    그간 두 분이 의견을 많이 교환했네요. C 라고 가명을 섰는데 민희 종친님이 초암 선생이라고 알아버렸네요. 실은 성균관 홈페이지에서 초암 선생이 [추석의 禮는 茶禮가 아니다]라는 논지로 글을 올렸기에 5천만 민족이 차례라고 알고 있고 유명 한학자. 유명 학자 유명 교수. 유명 유학자도 이를 인정하고 추석 때 조상님께 단잔무축축으로 올리는 제사를 차례라고 하는데 이런 글을 올린다는 것은 잘못 알고 있다고 첫 번째. 두번째까지 성균관 홈피 답변자로서 존경을 받고 있기에 점잖게 말을 하면서 할 말은 있지만 그 다음은 댓글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 작성자 10.10.03 23:17

    그런데 네 번째 올라온 초암 선생의 처음 서두가 댓글을 기다렸다는 식으로 '반박문. 해명문. 그에 대한 전거문이 올라오지 않아 글을 올린다.'는 오만한 글을 보고 누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세 번째 반론을 폈습니다. 정동주님의 '차례의 역사'를 올려 드렸지요. 한글로 쓴 글이지만 고전. 역사서를 위주로 쓴 글입니다. 추석의 예는 옛날부터 차례라고 했다는 것이지요. 그랬더니 원형이정님께서 초암선생이 그토록 원하던 한문 전거 사례 하나를 찾아 올려 주셨네요. 결국 우리 선조 지식인들은 추석의 예를 차례라고 하엿고 우리들은 그것을 전래 받아 차례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 작성자 10.10.04 10:53

    글자를 처 올리니까 다른 내용밑에 가서 나타납니다. 올린 댓글에 답한 댓글이 내용이 다를 수가 있습니다.

  • 작성자 10.10.04 19:53

    민희 종친님께서 야후 백과사전은 믿을 것이 못된다면서 예를 든 것이 [올린 메에 +자 모양의 자국을 낸 후 45도 각도로 꽂고 일동이 재배한다.국을 내리고 숭늉을 올린후에 숭늉에 밥 3숟가락을 만다.]의 예법을 말하는 것 같은데 숭늉을 갱과 바꾼 후 밥3숟가락을 물에 마는 예법은 종전까지 어느집안에서나 행사는 의식이고 숟가락을 45도로 각도로 메에 꽂는 것은 조상신이 숟가락을 잡기 편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직각으로 꽂으나 45도로 꽂는 집안도 있습니다. 이것이 가가례입니다. 단 메에 +자모양으로 자국을 내는 이유는 알지 못하겠네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자 자국을 내는 것도 분명히 이유가 있겠지요

  • 10.10.05 14:12

    종친님^^ 그 이유는? 아랫글을 참고 하세요^^

  • 10.10.10 06:45

    윗글은 추석차례에대한 내용입니다 추석차례에 떡국을 안올리고 밥을올리나요? 아니면 떡국에 삽시를 합니까?

    또 차남이 아헌을 하고등 백과사전내용 앞뒤가 서로맞지않습니다 무축단헌이라해놓고 다음에은 아헌운운하고 떡국을 올린다고해놓고 삽시운운등 여로곳이 오류투성이입니다

  • 10.10.13 13:26

    민희 종친님? 추석차례에 떡국 올린다는 얘기는 또 어디서 나온 얘기 입니까? <논어>에서 예를 사용함에는 조화가 가장 중요하다라고 했습니다. 곧 예는 생활양식에 맞게 조화로움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예란 인간들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지만 특히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예는 철저하게 역사적인 구습을 근본 바탕으로 합니다. 특히 관혼상제가운데 제레에 대해서는 기제와 묘제를 포함한 사시제에 관해서는 반드시 그 예의 참뜻과 홀기의 과정을 몰라 조상들을 모독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 10.10.09 15:13

    송나라 사람들이 노래하기를 역신은 수레에서 내려 차나무에 예의를 표한다라고 하였다. 그러한 까닭에 <본초습유>에서 목마름을 멈추고 역병을 없앤다. 라고 쓰여 있다. 차는 얼마나 귀한것인가?. 위로는 신령들과 여러 하늘의 신들의 경계와 통하고 아래로는 포식하여 침해된 사람들을 구한다 라고 적고 있다 . <本草拾遺> 에 이르기를 "宋人歌云 疫神捨駕 禮茶木 是故本草拾遺云 止渴除疫 云云 貴哉茶乎 上通神靈諸天界 下資飽食侵害之人倫矣..."이런 문헌을 볼때 "茶/차"는 이미 제례를 통해서 신들과 동기교감을 이루는 음식으로 오래전 부터 음용하고 또한 전해 옴을 알수 있는 자료이다.

  • 작성자 10.10.12 12:07

    오늘 날에는 떡국은 설날 차례에 올리고 추석에는 송편을 올립니다. 밥을 올려도 상관없습니다. 추석 차례는 속절에 속하니까 축문이 없고 한잔 술을 올리고 일동 재배로 끝난다고 하나 이에 제사 절차를 더하는 이유는 일부 사람들은 가가례로서 제사 절차를 더하거나 어떤 책에 보면 절사의 제사는 기제사에 준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에 준하다보니 기제사와 같이 초아종헌도 하고 술도 여러 잔 올리며 삽시정저도 하는 것입니다. 본래 추석 차례는 단헌무축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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