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 산행기는 타(?)산악회서 백두산 종주을 다녀와서
적어올린 산행기 [ 작성자:- 길따라 마음따라]을 산님들께서 참고로
읽어 보시라고 옮겨서 올리는 글이니 참조을 하시길 바랍니다~!
※ 사진은 메아리朴팀장이 직접 촬영한것 썩어서 올림 ※
백두산 천지운해와 만병초꽃 화원 * 선명한 백두산 천지 주능선들
오래전에 다녀온 백두산 다녀온 산행기을 올립니다.
[작성자:- 길따라 마음따라]
◉ 제1일 ◉
1. 일시 : 2002년 7월 31일(수), 맑음
2. 장소 : 김해 → 중국심양 → 연길 상우호텔(1박)
【여행스케치】
누군가가 말했지 “통일에 대한 생각이 없는 사람도 백두산에 올라보면
통일을 염원하게된다”라고 그렇게 5천만 한민족의 수호의 상징이며,
신성시하는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백두산을 오르기 위해
우리는 힘찬 발걸음을 옮겼다.
언젠가는 한번 다녀와야지 하고 벼르고 별렀는데 드디어 올 여름 휴가기간을
통하여 백두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마치 진주에 있는 백두대간 산악회가 지난
봄부터 준비중이어서 더욱더 잘 되었다. 나이가 들어도 운동회와 소풍가는 날
받아놓은 어린애들처럼 기분이 들뜬다.
7월 31일 창원에서 8시경에 출발하여 진주에서 내려온 일행과 김해공항에서
합류를 했다. 대부분이 안면이 있고 같이 산행을 한 반가운 얼굴들이었으며,
총 인원은 지리산여행사 사장을 포함하여 19명이었다.
우리는 여행사에 납부한 경비와는 별도로 여러 가지 용도에 필요한 경비를
1인당 5만원씩 따로 각출했지만 누구한사람 불평불만 없이 일사천리다.
그리고 중국 현지에서 필요한 돈을 각자 20만원정도 환전을 했다.
다른 나라로 여행하는 것이 제한적인 김해공항에도 여행객들로 북새통이다.
대부분이 중국과 일본을 여행하는 단체 관광객들이었다. 경제사정이 나아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과소비인지 몰라도 휴가시즌이라 더욱더 외국여행이 성황을
이룬다. 공항 면세점에도 시골 재래시장을 방불케 할 만큼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백두산 천지가 바라보이는 순간,구름 오른쪽위가 백두산 최고봉=장군봉 입니다.
각자의 여권과 장비를 점검하고 11시 35분에 중국북방항공 666편으로 대망의 심양행
비행기에 올랐다. 김해공항에서 심양까지는 약 2시간이 소요된다는 안내 방송에
참으로 지척인데 이제야 민족의 靈山을 찾게 되었구나. 하고 만감이 교차되는지
모두가 희색이 만연하다. 비행기가 정상고도에 올라서니 점심이 기내식으로 닭고기
볶음밥과 빵이 함께 나왔는데 그런 대로 먹을만하다. 심양과 우리나라와는 1시간정도
의 시차가 있어 시계를 현지시간으로 맞추어 두었다.(우리보다 1시간 늦음)
비행기가 중국 땅으로 접어들어 밖을 내다보니 하얀 뭉개 구름이 솜사탕처럼
펼쳐져 있어 신비감을 주고 있다.
서파(5호경계비)에서 맞이한 백두산 일출여명
자연이 만든 예술작품을 한없이 감상을 하면서 좀 더 눈을 아래로 돌리니 옥수수
인지뭔지는 잘 몰라도 끝없이 펼쳐진 평원지대에 녹색의 향연이 벌어지고 있다.
과연 중국이 넓긴 넓구나 싶다. 그런데 언덕인지 산인지 몰라도 많이 훼손되어 공중
에서 보니 허연 속살을 드러내고 누운 처참한 모습이 자주 눈에 띄어 보기가 싫다.
또한 간간이 평원지대에 비포장도로가 용처럼 휘어져 끝없이 달리고 있다.
중국은 한창 개발중이라 자연보호니 환경문제는 별로 신경을 안 쓰는 모양이다.
저러다가 우리처럼 어느 시점이 되면 반드시 후회할 날이 올 테지만........
한참을 감상하고 있으니 벌써 심양 공항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들린다.
한국인이 많이 이용하는 관계로 우리말 방송으로도 안내를 한다.
국력이 이 만큼 신장된 것인지? 외국을 몇 번 다녀보았지만 그 중에서도 중국이
입국심사가 다소 쉬운 것 같다. 눈앞에 들어온 심양공항은 길림성에 있는 국제공항
으로 넓은 편인데 대한항공 1대와 전부가 북방항공 여객기만 공항에 서 있다.
공항 안내판에는 일본과 태국 등의 비행시간도 적혀 있었다. 공항에서 붐비는 사람은
대부분이 한국인으로 우리처럼 오는 사람과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교차
하고 있어 외국에 왔다는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여기서 조선족 자치주인
연길까지 다시 비행기로 이동해야하는데 비행기 연결시간이 맞지 않아
3시간정도 공항에서 체류를 하면서 면세점을 둘러보았다.
천지물가에 핀 두메양기비꽃 **** 바람불면 한들한들 흔들리며 반겨줌)
우리나라 면세점과는 달리 전부 중국산 일색으로 산삼과 약재, 술, 우황청심환 등
각종 약들을 판매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가격이 비싼 것 같다. 나이가 드신 몇 분은
공항 한가운데에서 술판(다음에는 절대로 이런 행동을 하지 맙시다)을 벌리고
큰소리로 떠드니 공항 직원이 다가와서 뭐라고 하는데 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중국어 기본은 해둘걸 하고 후회가 된다.
탑승시간이 되어 연길행 비행기에 배낭을 부치려고 하니 공항직원이 매우 불친절하다.
아까 우리가 마구 떠들어서 그런가 싶다. 모든 것을 제때 처리하고 정확히 하려면
뒷돈을 주어야 잘해 준다고 했는데 여기도 물로 쳐야 하나? 몹시 기분이 나쁘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외국인에게 그래도 친절한 편이다. 다 앞서 다녀간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중국시간으로 오후 6시에 연길행 비행기에 올랐다. 정확히 1시간만에 심양에
도착했는데 배낭을 찾아 공항 밖을 나서니 공항 표지판과 상점 간판, 기업체의
대형 간판들이 한글과 한문을 병행해서 표기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반드시 한글이
우선적으로 표기해야한다니 조선족의 위상을 알 수가 있을 것 같다.
그시절 백두산 산문모습
중국에는 55개 다민족이 어울려 살고 있는데 그 중에서 한족이 95%을 차지하고
나머지 54개 소수민족이 5%을 차지하고 있단다. 조선족은 소수민족 중에서는
제일 소득수준과 학력이 높고 생활이 나은 편이라고 현지 가이드가 설명해 준다.
공항을 나서니 심양에서는 날씨가 좋았는데 이곳에는 비가 와서 땅이 젖어 있고
후덥지근한 바람이 분다. 연길 시내는 전기가 부족한지 벌써 상점과 시내가로등
불이 꺼져서 도시 전체가 침울하고 어두운 느낌을 준다.
저녁은 조선족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한식을 먹었는데, 한식이라도 중국식으로 많이
변하여 맵고 짜기만 할 뿐 우리 고유의 깊은 맛을 내는 음식은 전혀 없이 그저 손님맞이
겉치레를 보일 뿐이어서 다소 실망스럽다. 옛날 할머니의 손맛을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가 묵을 호텔은 이곳에서 별 네개 정도의 호텔이라고 했는데 시설은
그런 대로 괜찮은 편이나 냉장고 돌아가지 않는다. 호텔이름이 “상우대통술” 집
이라고 표현되어 있어 재미가 있다. 이곳에서는 그렇게들 표현한단다.
백두산 입구에 눈사람 여신이 웃어며 반겨준다(3월말 장우회 18명 인송떄 촬영)
이번 여행에서 반가운 친구를 한 명 만났다. 김해공항에서부터 안면이 있는 사람이
있어 인사를 나누어 보니 나이도 같은 친구였다. 뜻이 맞고 해서 같은 방을 사용하기로
하고 짐을 정리한 후에 희망자 몇 명과 어울려 시내 구경도 할 겸해서 한잔하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시내에는 티코 같은 차가 택시로 영업을 하고 있으며, 자전거를 많이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이 다니는 보도는 포장이 되지 않고 비가 와서 질퍽거려
엉망이다. 여기도 스탠드바도 있고 노래방도 있고, 다방도 있고 해서 우리나라 시골
의 읍 정도를 연상케 한다. 다방이라고 쓰여진 곳에 들어가서 맥주를 시키니
주인은 완전히 배짱장사다.
무뚝뚝하고 살갑지 못한 것이 먹고 싶으면 먹고 싫으면 가라는 투로 손님을 대한다.
그러나 술값이 싸서 기분이 나아진다. 이렇게 하여 중국에서의 첫 날을 마무리했다.
내일은 백두산 아래까지 가는데 많은 기대가 된다.
백두산 50번 가이드 종주때면 늘 백두산 산신들께 절하며 좋은날씨 기원함
◉ 제2일 ◉
1. 일시 : 2002년 8월 1일(목), 맑음
장소 : 연길 → 이도백하 → 금강대협곡 → 고산화원 → 여유산장(2박)
【여행스케치】
어제는 기분 좋게 맥주를 한잔하고 잤더니 아침이 상쾌하다.
새벽 4시에 모닝콜소리에 잠이 깨어 밖을 내다보니 이른 시간인데도 대낮처럼
환하게 밝다. 아침은 밥과 빵 그리고 우리에게는 딘섬으로 알려진 만두종류의
다양한 식사가 준비되어 입맛에 따라 선택하게 되어있다.
별로 배는 고프지 않아도 하루종일 차를 타야 하는 관계로 모두들 억지로 배를 채웠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도 다행히 나이가 드신 분들도 식사를 잘 하신다.
천지신령께 술한잔 올리며 "안전산행"을 기원함
식사를 마치고 호텔을 빠져 나와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보니
도무지 밝은 표정은 찾을 수가 없다. 모두가 깡마른 검은 얼굴에 웃음을 잃어버린
무덤덤한 사람들이다. 여자들은 대부분 걸어가고, 남자들은 자전거로 직장으로
출근을 하고 있다. 개인 자가용의 거의 없고 택시는 아주 소형차들이며 연길 시내에서
는 보통 5원에서 조금 원거리는 10원이면 이용이 가능하다. 시내에 차들이 안 다니다
보니 신호등이 거의 없어 우리와는 아주 대조를 보이고 주요도로변에 삼성전자,
LG전자의 홍보용 간판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아주 특색이다.
연길은 연변자치주의 수도이지만 아직은 생활수준이나 문화수준은
우리나라 70년대 초반을 연상케 한다.
먼 장거리을 운전하는 우라차 기사님(딱크)
차를 타고 연길 시내를 벗어나서 이제부터는 백두산의 품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차창에 스치는 만주벌판의 모습은 풍요롭고 조용하기 그지없다. 넓은 논과 밭에는
벼와 옥수수, 콩, 해바라기, 고랭지 채소들이 한창 잘 자라고 있으며, 백두산이 속한
안도현으로 접어드니 전형적인 농촌인데 넓은 땅과는 대조적으로 민(농)가는 보이지
않고 논밭만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저 넓은 벌판의 곡식을 과연 누구 가꾸고 수확을
하는지 엄청 궁금하다. 계속 이어지는 농촌풍경에 눈길을 주어도 전혀 피곤하지 않다.
저 넓은 땅이 우리의 영토였으면, 아니 잃어버린 우리의 땅이었는데 언젠가는 되찾아야
할텐데 과연 그 날이 올 수 있을까하는 상념에 젖어 본다.
2008년도 그때 촬영한 북파 천문봉 모습과 천지모습
이도백하를 지나면 본격적인 백두의 품속이라 민가가 없고 점심식사를 할 곳이 없다고
해서 아침 9시 10분경에 점심을 먹었다. 조선족이 운영하는 제법 그럴싸한 한식집에서
메기매운탕(실제로 메기는 10명이 먹는데도 5토막밖에 안 담겨져 있음)을 곁들인
점심이었다. 아침을 먹은지 얼마 되지 않아 배가 고프지 않아도 꾸역꾸역 먹어 두었다.
밥을 먹고 배가 살살 아파 화장실을 찾으니 아연 실색이다. 우와!!! 완전히 우리나라
60년대의 전형적인 푸세식 화장실에다가 남자용과 여자용이 구분은 되어있지만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옆 사람(3~4인용)과 같이 앉아서 이야기를 하면서 볼일을
보아야하는 아주 개방적인 화장실이라서 제대로 볼일을 볼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구색을 갖춘다고 밑에서 올라오는 향기로운 냄새 또한 엄청나서 기절초풍
일보직전, 중국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맑은 날씨속에 천지을 보기가 힘던데,메아리朴 팀은 50번 모두다 천지을 조망함
머리위가 백두산 최고봉 "장군봉" = 오른쪽 짤룩한 부분이 5호 경계비
점심을 먹고 5분 정도 이동을 하니 면소재지 만한 크기의 마을이 나타나는데 마치
시장이 서는 날이라서 사람들이 제법 붐 빈다. 소를 매매하는 우시장도 있고 과일과
채소를 사고 파는 사람, 뻥튀기아저씨 등등 우리의 재래시장과 흡사하다.
사람들 때문에 차가 진행이 더디니 언제 왔는지 꼬마들 몇이서 손을 벌리고
도와 달라고 차 꽁무니를 졸졸 따라온다.
얼굴에 핏기가 없는 아줌마는 손수건과 옥수수를 사라고 차창을 두드리며 애걸복걸이다. 이렇게 순박한 사람들에게도 돈의 마력이 뻗쳐서 돈에 눈을 멀게 하는구나 싶은 것이
영 기분이 좋지 않다. 시골사람들 역시 연길 시내와 마찬가지로 작은 키에 얼굴은 까무
잡잡하고 살이 찌지 않으며, 얼굴에는 화색이 없고 표정이 무덤덤하다.
삶에 많이 찌든 전형적인 모습이다.
천문봉+천지을 내려다 보고있는 "두메양귀비꽃"
시장통을 벗어나 버스는 계속 달리니 높은 산은 전혀 없고 평원지대가 끝없이 이어지고
농작물의 종류도 대개가 비슷비슷하다. 군데군데 늪지가 있고 논농사보다는 밭농사가
잘 될 것 같다. 이렇게 한적한 시골에도 가끔씩 “公安”이라는 표시를 한 차량이 지나
치면서 수시 순찰을 실시하고 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10분 이상을 달려도 마주
오는 차나 따라오는 차가 한 대도 없어 정말 좋다.
차에 대한 스트레스가 전혀 없으니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공기도 맑고, 날씨도 쾌청하고, 미루나무 가로수 사이로 간간이 떠다니는 흰 구름만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다.
어디서 날아 왔는지 고추잠자리가 떼를 지어 노니는 모습이 너무나 한가롭고 평화롭다.
서파(5호경계비)에서 천지을 배경으로 기념촬영
천지 물속에 비친 천문봉과 오른쪽 장군봉이 아름답게 비칩니다.
오전 10시 조금 지나서 드디어 이도백하에 도착했다.
언론을 통해서 이 많이들은 지명이라 전혀 낯설지가 않고 친근감이 간다.
이곳은 백두산 지역에서 유일하게 “美人松”이라는 소나무(적송)가 군락을 이루며
자라는 곳으로 키가 크고 날씬한 소나무를 바라보니 이름 그대로 쭉 빠진 미인을
연상케 한다. 우리나라 경북 봉화의 춘양지방에서 자라는 春陽木과 비슷하지만
춘양목 보다는 키가 더 큰 것이 특징이다.
이도백하진은 백두산 아래에 있는 첫 동네로서 다른 지역보다는 그래도 깨끗한 편이다.
시골 읍 정도 크기인데 소형 세발자동차가 택시간판을 달고 영업을 한다.
시내 곳곳에는 자전거 수리점이란 팻말만 붙이고 노상에서 손님을 맞고 있고, 또한
옛날 영화에서 본 인력거가 아직도 이곳에서는 영업을 하고 있다. 도로공사와 집을
짓는 곳이 여럿이 있는데 일하는 모습이 완전히 세월아 네월아다. 도무지 바쁜 것이
없고 의욕이 없이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니 능률이 오를 턱이 없지.
천지물가에서 맑고맑은 천지물을 먹어보는 메아리朴 팀장
그런데도 그 놈의 돈 때문에 차를 쉬는 곳마다 물건을 팔려는 사람이 우르르 몰려든다.
처음에는 한국말로 사달라고 하다가 아무도 안 사니 중국말로 떠드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도로변에 설치한 휴게소란 곳이 있어 화장실도 이용할 겸해서
내려보니 좌판 서너 개에 조잡한 중국물품 몇 가지와 백두산 장뇌산삼을 진열해 놓고
싸게 팔테니 사라고 유혹을 한다.
처음에 십만원 한다더니 떠나갈려니 오만원까지 내려온다. 이곳의 화장실도 다른 곳
과 똑 같다. 몇 명은 장뇌산삼을 사기도 했고, 단체로 옥수수를 사서 먹어보니
우리나라 강원도 찰옥수수와 비슷하게 쫄깃하고 맛이 있다.
천지물가에 허벌지게 핀 만병초와 하늘에 구름
白頭山!
얼마나 기대하고 고대하고 와 보고싶은 곳이었던가? 정말 넓다. 끝없이 펼쳐진
자락은 산이 아니고 완전히 평원지대로 지평선이 보인다. 이도백하에서는 비포장도로
인데도 아주 잘 다져져 있어 포장도로와 비슷하다. 길옆 숲에는 당귀와 가시오가피 등
한약재와 산나물이 지천이며, 온갖 꽃들이 만발하여 우리를 환영해 주니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여기서 잠시 백두산의 식물분포도를 살펴보면
- 900고지까지는 낙엽활엽수림대를 이루고있으며
- 1100고지까지는 침엽수활엽수 혼성림대를 이루고
- 1400고지까지는 하부침엽수림대
- 1600고지까지는 중부침엽수림대이며
- 1800고지까지는 상부침엽수림대
- 2000고지까지는 아한대침엽수림대를 이루며
- 2300고지까지는 아고산저임목대를
- 그 이상은 고산식물대와 관목대를 이루고 있다.
서부지구 산문(백두산 관리사무소)에서 입장료를 내고, 2시간 가량 차로 올라가니
숲 속에 주차장이 있었다. 차를 주차장에 두고 10분 정도 숲을 걸어서 금강대협곡을
찾으니 정말 가관인 풍경이 펼쳐진다. 천지가 폭발할 때 마그마가 흘러내리면서
만들어 진 것인지 아니면 그 이후 지각변동에 의해서 생긴 것인지 몰라도 협곡의
폭이 거의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
6월초에는 천지에 얼음 뭉치가 둥둥떠 다닌다.
협곡의 폭은 50미터 정도이고 비가 와서 그런지 물이 제법 흘렀다.
계곡에 내려서서 물에 손을 담가보니 차가웠지만 색깔은 그다지 맑지 못하다.
기념이라고 사진을 몇 장 찍어 두었다. 협곡을 올라서서 숲 속을 걸어보니 미역취,
떡취, 곰취, 참취, 개발딱주 등등 산나물이 지천이다.
아직 부드러운 것은 따서 나물을 무쳐 먹어도 될 것 같다.
금강대협곡에는 중국 관광객도 제법 보인다. 중국인들은 힘들게 산에는 잘
오르지 않는단다. 천성적으로 우리보다는 게으른 민족인 모양이다.
관광지의 화장실도 예외 없이 똑 같다. 이제는 화장실 가기가 정말로 겁이 난다.
그렇다고 굶을 수도 없고 어쩌지.........
흰구름아래 노랗게핀 두매 양귀비꽃= 바람에 한들한들
협곡을 구경하고 다시 버스로 활엽수림대를 지나니 이제는 키가 30미터 이상 되는
침엽수림대가 펼쳐진다. 어른 몇 아름이나 되는 수명을 다한 나무들이 도태되어
자연적으로 썩어가고 있고, 그것이 거름이 되어 어린 나무들이 잘도 자라고 있다.
지나오다가 계곡의 물이 부연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제 비가 온데다가
토질이 마사토라서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10분정도 내려서니 고산화원이 나타났다. 처음으로 단체 사진촬영도 하고 서로가
모르는 사람을 위해 간단히 자기 소개를 갖는 시간을 가졌다.
웃으면서 각자 소개를 하고 아울러 백두산 정상을 바라보면서 마시는 소주 맛이
끝내 준다. 모두들 두어 잔하고 웃고 나니 허물이 없어진다.
날씨가 맑아 정상 쪽을 바라보니 멀리 백두산 영봉들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지고 허연 백두의 모습을 잠시 보여 주었다가 사라지곤 한다. 아무래도 정상은 일기변화가 심한 모양이다.
다시 서부 산문으로 내려와 우리가 예약한 백운산장으로 가려는데 현지 가이드가 낭패
스러운 얼굴을 한다. 어딘가 전화를 하더니 이미 다른 팀을 받아서 우리가 그곳에서 잠을 잘 수가 없단다. 우리 팀보다 숫자가 많은 팀을 먼저 받았다는 것이다. 우리와는 사전에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이래도 되는 것인가? 우리도 명색이 외국인인데. 기분이야 엄청 상하지만 어쩔 것인가, 계속 고집을 부리면 밤이슬을 맞아야 할 판인데
(에-라-이 00들아! 잘 먹고 잘 살아라)
각종 야생화꽃들이 만발한 백두산 주변에 아름다움을 촬영
요즈음 중국인은 돈이 된다고 생각하면 물불을 안 가리고 안면을 바꾸어 버린단다.
2시간정도 다투다가 시간이 너무 흘렀고 배가 고파서 일단 산장을 바꾸어 여유
산장을 이용하기로 했다. 화장실 가기가 겁이 나서 참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못 참아서
끓은 담배를 한 대 물고 볼일을 보았다. 산장은 엉망진창이다. 산속이라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눅눅한 습기 때문에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어 소주를 한잔씩하고 잠을 청했다.
내일은 드디어 본격적인 백두산에 올라 천지도 구경하고 백두산의 진실을 알게되는
날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처럼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대해본다.
참 보기가 힘던장면 **** 천지의 아름다운 운해 모습
◉ 제3일 ◉
1. 일시 : 2002년 8월 2일(금), 흐리고 비
2. 장소 : 산장 → 임도(짚차) → 마천루 → 청석봉 → 백운봉 → 녹명봉 →
차일봉 → 온천지역 → 운동원호텔(3박)
【여행스케치】
와! 드디어 백두산 가는 날이다. 오늘은 12시간 정도 산행을 해야 하고
천지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서 새벽 1시 30분에 일어나 도시락 2개씩을 배정받아
1시 45분에 짚차로 마천루 아래까지 이동했다. 한밤중이고 고지대라 날씨가 싸늘하다.
그런데다가 반팔과 반바지 차림이다 보니 제법 한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안개(가스)가 가득 차서 앞이 전혀 안 보이는데 아무래도 날씨가
심상치 않다. 길이 보이지 않아도 짚차기사는 운전을 잘한다. 차를 2시간정도 달려서
천지아래에 도착하니 3시 20분. 인원점검을 하고 곧바로 마천루(제5호 국경경계지역)를
향해 게단길을 따라 올랐다 올랐다.
길을 대리석으로 잘 포장되어 있고 우리보다 앞서온 사람들이 꾸역꾸역 올라가고 있다.
여기서 또 다시 백두산 종주를 안내할 현지 가이드가 별도로 한 명이 우리와 합류해 안내
하는데 모습과 차림새가 영 아니다. 초췌하고 가방도 한쪽 끈이 떨어져 반만 어깨에
걸쳐져 있고, 얼굴은 부시시한게 영 믿음이 가질 않는데다가 국경지역 마천루를
오르기까지 연신 줄담배를 피운다.
백두산 가이드종주때 서파(5호경계비) 마천루밑에서 산행 출발전...
잘 만들어 놓은 계단을 40여분 올라서니 드디어 마천루(서파경계비)인데
아아!!!!! 그런데 천지가 보이지 않는다. 천지뿐만 아니라 아예 10미터 전방이 안 보인다.
사방이 안개로 가득 차서 사물을 분간할 수가 없다. 북한과 중국과의 국경선인 제5호 경계표시판을 손으로 만져보고 여행사에서 준비한 빵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먹는둥 마는둥 하고 날씨가 좋으면 일출을 보기로 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그래도 한낮에는 날씨가 좋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1시간정도 오르니 청석봉 정상이다. 정상에서는 준비한 술과 음식으로 무사산행과 남북통일을
그리고 가정의 태평을 기원하면서 엄숙한 자세로 애국가도 불렀다.
최고 먼저 백두산종주 나설때 기념촬영용 현수막
(지금은 현수막,태극기 일절 들고 사진찍지못함, 빼어버리니 사용말것)
정상식을 마치고 우리처럼 부산에서 온 메아리산악회와 다른 몇몇의 종주대을 만났다.
앞서거니 뒷서거니를 하면서 등정을 계속하였다. 다행히 길을 푹신푹신한 양탄자 같아서 많이 걸어도 발에 피로는 덜할 것 같다. 청석봉부터는 안개가 날리면서 강한 바람이 부는데 몸을 제대로 가누기가 어렵다. 백두산 산신령이 우리를 거부하는 것일까?
날씨는 좋아지지 않고 바람만이 우리를 반기고 있다.
지척이 분간은 안가도 발 아래에 펼쳐진 평원에는 온갖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 비바람을
맞고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워낙 바람이 세차게 부니까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풀과 꽃이 10센티 정도 밖에 안되지만 꽃을 피우고 씨를 맺는 것이 신비할 따름이다.
동물이나 식물이나 자라는 환경이 좋지 않으면 후손을 위한 번식에 온 힘을 다한다고
하더니, 자연의 조화는 이처럼 오묘하다.
이곳이 신선이 사는 천상화원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맑은 날 천지의 푸른 물과 초원에 펼쳐진 화원이 조화를 이룬 천상의 화원을 거니는
사람은 신선이 안될 수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종주코스는 무척이나 힘이
들어서 인지 중국이나 다른 나라 사람은 없고 전부가 우리나라 사람들뿐이다.
서파서 출발후 바라본 마천루 능선과 천지모습
청석봉에서 1시간 정도 내리막이더니 백운봉을 오르는 오르막이 끝이 안 보인다.
안개 때문에 사방조망이 안되니 길을 제대로 찾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초원지대에
등산로가 나있는데 앞이 안보이니 아무리 많이 다닌 사람도 감각만으로 길을 찾을
수밖에 없다. 시간이 가도 해는 뜰 기미는 보이지 않고 안개는 더욱더 기승을
부리고 덩달아 바람은 한층 더 거세게 몰아치면서 발길을 잡는다.
가이드가 연신 담배를 물고 길을 찾고 있으나 자꾸만 길이 아닌 곳을 다니지만 믿고
맡길 수밖에 도리가 없다. 완전히 사면초가다. 이상한 것은 서너 시간을 걸어도
이정표가 전혀 없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는다. 이렇게 높고
신성한 산에 이정표가 없다니 오려면 오고 가려면 가라는 것인지.....
이제는 우박을 동반한 진눈깨비까지 간간이 내리고 바람은 더욱더 매몰차게 불고
현지 가이드는 길이 자꾸만 헷갈리는 모양이다.
힘빠지고 한기가 엄습해와서 오바트라우져를 입으니 한결 따뜻하다.
백두산 고산 야생화꽃밭화원
오늘은 하루종일 천지를 보여주지 않을 모양이다.
다들 반쯤 기고 더듬어서 백운봉을 오르는데 정상가까이에는 바람이 얼마나 거세게
부는지 한발 나가고 1분은 바위를 잡고 쉬어야 할 지경이다.
있는 힘을 다해 정상으로 올라서니 아뿔사!!!!! 큰일이다.
백두산 백운봉과 장군봉은 새들도 넘지 못하는 험한 고개인데 저건 또 무엇이란 말인가?
릿지구간이 나타나는데 엄청나게 위험해 보인다. 지척이 분간이 안되니 나이 드신
분들은 겁이 나는지 되돌아가잔다. 현지 가이드는 이곳을 넘자고 하는데 도무지
엄두가 나질 않는다. 잠시 쉬면서 다시 쉬운 길을 찾아 진행하기로 하고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서는데 이제는 올라온 길도 찾을 수가 없다. 진퇴양난으로 오도가도 못하고
백두산 귀신이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다들 조금씩의 공포감을 느끼는지 아무도
말이 없다) 장비가 부족하고 비를 흠뻑 맞은 사람들은 벌써 추위를 느끼고 날씨는
점점 더 험악해져가니 자칫 잘못 하면 실종될 위기다.
그렇다고 현지 가이드도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하니 5시간 이상 걸어온 길을
빽을 한다고 해도 어려운 일이다.
백운봉 아래 송강하 계곡을 지나 오름길,야생화꽃 화원길
올라온 길을 더듬어 한참을 내려서니 사람소리가 들린다. 여행사 사장이 달려가서
접촉을 해보니 다른 종주대원 중 뒤쳐진 사람 3명과 현지 가이드 2명(20대 젊은이들)이
백운봉을 넘기 위해 길을 찾고 있었다. 이 팀의 현지 가이드는 다행히 우리 가이드보다
길눈이 밝은 것 같다. 그 가이드 말로는 백운봉을 넘으려면 다른 길은 없고 정상 조금
못 미쳐 옆으로 돌아서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아이쿠 이게 무신 날벼락이란 말인가?
또다시 그 험한 백운봉을 올랐다.
우리는 참으로 복도 많지. 남들은 한번도 오기 힘든 중국 쪽에서 제일 높은
백운봉을 두 번씩이나 오르다니 백두산 신령님께 무한한 감사인사를....
젊은 가이드도 길을 찾는데 애를 먹는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따라가는데
정말로 서글픈 마음이 든다. 얼마나 벼르고 별른 백두산 산행인데 그 아름다운
모습은 어찌하고 이렇게 길을 찾는데 급급해야하는지 정말로 신령님도 무심
하시지.(우리가 제사를 잘못 지냈나?)
백두산 마천루을 지나서 바라본 서파능선
모두가 말은 못하고 속으로 불안해 하는데 나는 발 아래에 평소에 못 보던 꽃들이
눈여겨보았다. 그림으로만 본 김일성이 차를 만들어 즐겨 마셨다는
백두산 만병초, 키가 10센티 되는 고산진달래, 쑥부쟁이, 산제비꽃, 오이풀꽃, 매발톱,
구름국화, 바위구절초, 산용담, 꽃창포, 두메양귀비가 노란 옷으로 단장하고 바람
부는 반대방향으로 얼굴을 돌리고 수줍게 웃는 자태가 우아하고 무척이나 곱다.
자식들 내가 돌보지 않아도 잘들 자라고 있는 것이 대견해 꽃밭에 몸을 맡기고 한숨
푹 잤으면 싶다. 점심 먹을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밥을 먹자고 않는걸 보니
모두가 긴장이 되긴 되는 모양이다. 순간적으로 잠시 주변이 밝아지니까 가이드가
고함을 지른다 길을 찾았다고, 다소 위험해 보였지만 우리 모두 무거운 발걸음으로
백운봉 정상아래 미끄러운 옆 능선을 타고 무사히 백운봉을 넘었다.
다들 봉우리를 넘고 나서, 잠깐 주변이 밝아져서 우리가 헤맨 정상을 뒤돌아보니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조금만 조심하면 쉽게 넘을 수 있는 그런 코스였다.
앞이 안보이고 긴장을 하고 공포감을 느끼니 다들 겁을 먹었던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하다는 것을 이곳에서 다시 한번 절실히 느꼈다.
“모두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유식한 말로 ‘일체유심조’ 라고 했던가)
이 얼마나 평범한 진리인가.
백운봉 아래로 흐르는 송강하 계곡 물줄기
백두산천지(수심깊이: 평균315m)에서 째여나온 물줄기가 흘러내리는곳.
백운봉을 넘고 나니, 나머지 구간도 길을 헤매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이제는 간식을
먹을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겼다. 천지와 백두산을 조망하기는 틀렸다고 마음을
돌려먹으니 오히려 편안하다. 내일을 기대할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녹명봉을 지나 차일봉으로 내려서는데 잠깐씩 안개가 걷히면서 백두의 속살을 보여
주는데 여자의 나신을 몰래 훔쳐보는 것처럼 흥분되고 떨리면서 가히 환상적이다.
파랗게 깔아 놓은 융단 위에 琪花瑤草가 만발하여 우리를 유혹하는데,
우린 그 유혹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 바람은 거세게 불고 비는 내리고
무슨 이런 조화가 다 있단 말인가?
하산을 하면서 고도가 낮아지니 안개가 조금씩 걷혀진다.
소천지로 내려서는 하산 길에서 장백폭포의 위용을 잠시 감상을 했다.
달문에서 떨어지는 폭포는 원래는 두 줄기인데 수량이 많아서인지 3줄기로
나뉘어져 하얀 물보라를 이루고 세차게 흘러 내리고있다.
백두산 장백폭포의 위용 **** 소천지 가는길에서 촬영
백두산은 일년에 200일 이상이 오늘과 같은 날씨라니 과히 3대를 적선해야만
천지와 일출과 보여준다는 말이 틀리지 않구나 싶다. (우리대원 중에서 평소에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이 있는가?) 차일봉 부근부터 친구가 무릎안쪽이 좋지 않아
뒤쳐져 걸으면서 그나마 잠시 잠깐씩 보여주는 백두산의 모습을 감상했다.
나이 드신 분들이 열서너시간 이상 걷다보니 하산코스를 바꾸자고해 소천지까지
안가고 중간에서 오른쪽, 온천 쪽으로 내려서는 코스로 바꾸었다.
(그당시 메아리朴이 개척 발굴한 "비상탈출로" 코스)
이 길은 급경사 지역이라 무릎이 안 좋은 친구가 애를 먹는데 고통을 덜어줄 수
없어 마음이 아프다. 이곳까지 와서 이게 무슨 고생이란 말인가.
내려서는 길 양옆에는 자작나무가 숲을 이루고 숲 속에는 산나물이 지천이다.
낫으로 벨 수 있을 만큼 군락을 이루고 살쪄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산나물을
먹지 않는 모양이다. 곰취 잎사귀가 내 얼굴보다 더 넓다.
우리가 맨 후미로 내려서니 시간이 벌써 오후 4시다.
오늘은 백두산과 천지는 보지 못하고 장장 13시간정도 걸은 셈이다.
긴장이 풀리니 배가 고파 맥주한잔과 컵 라면으로 허기를 때웠다.
운동원호텔에 방 배정을 받고 젖은 등산화와 옷을 말리고
우리나라 사람이 운영하는 백두온천♨에서 피로를 말끔히 풀었다.
각자가 가져온 밑반찬과 호텔에서 주는 반찬을 펼치니 임금님 수라상이 안 부럽다.
반주를 곁들인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방으로 돌아와 내일은 천지를 볼 수 있어야
할텐데 하고 중얼거리면서 창 밖을 내다보니 내 마음과는 달리 장대비가 주룩주룩
하염없이 내린다. 옆 침대에 친구는 몹시 피곤했는지 벌써 잠이 들었다.
오늘은 백두산은 못 봐도 다리품은 엄청 판 셈이다.
◉ 제4일 ◉
1. 일시 : 2002년 8월 3일(토), 맑음
2. 장소 : 호텔 → 소천지 → 차일봉 → 하구벽 → 달문 → 천지 → 천문봉 →
고래등 (짚차) → 온천지역 → 이도백하 신달호텔(4박)
【여행스케치】
어제는 태어나서 그처럼 심한 안개와 바람은 처음이었다.
안개 속 미로를 바람과 싸운 탓에 다들 저녁 9시 이전에 잠이 들었단다.
아침 5시에 기상을 하여 밖을 내다보니 어제 언제 비가 왔는지 모를 정도로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다.
다들 흥분이 되는지 어제와 같은 날씨이면 등산을 하지 않고 짚차로 천문봉에
오르겠다고 한사람들이 모두들 산에 오르겠다고 한다. 사람 마음은 변하게 마련이지.
날씨가 좋으니 백두산의 모습과 천지가 눈앞에 아른거리는데 엄청나게 기대가 된다.
아침6시 30분에 쌀죽(미음과 비슷)과 빵과 야채를 곁들인 아침 식사를 든든히 하고
산에 오를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보니, 친구가 같이 못 가서 마음이 개운치 못하다.
허리 아픈 사람과 둘이서 천문봉까지 짚차로 먼저 올라가서 천지를 구경하고
있다가 오후 3시경에 우리와 합류해서 하산키로 했다.
산에 와서 더욱 친하게 된 친구인데 평소에 산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아쉽다.
평생에 이런 기회가 두번 오기 어려운데 말이다. 산행을 막 시작하려고 하는데
우리가 타고 온 버스기사가 하는 말이 어제 저녁에 안개 때문에 한국사람 17명이
하산을 못하고 조난을 당했다고 하면서 아마 서울에서 온
‘알파인 클럽’ 회원들 같다고 했다.
그 팀은 우리가 어제 백운봉에서 만난 일행들과 한팀인데 앞에 간 사람들이 길을 잃고
실종이 되었나 보다. 제발 아무 일이 없어야 할텐데 걱정스럽다.
잘못되었으면 우리도 같은 신세가 될 뻔했다고 생각하니 몸서리가 쳐진다.
모두가 그들이 아무 일 없게 백두산 신령님께 도와 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 그날 메아리는 그간의 산행경험이 있어서 회원들 평원에 스톱시킨후에
배낭 벗어 던지고 현지가이드,산악가이드,흩어져서 등산로을 찾아는데
메아리朴팀장이 순간적으로 살짝 보여준 건너편 고래등을 보고 방향잡고 가보니
하구벽으로 내려 서기전에 봐둔 큰바위 확인후 회원들 불러서 화구벽을 타고 천지로
내려서, 천지서 잡아둔 산청어회에 이화주한잔후 장백폭포옆 계단길로 하산
하여 장백폭포을 구경후 온천에 삶은계란 맛보고 호텔투숙 했습니다.
오늘은 어제 하산하기로 했다가 중간에 코스를 바꾼 소천지를 출발하여 산행을
시작했다. 아침 8시에 소천지를 향하여 10분정도 오르니 자작나무와 벚꽃나무
숲속에 조용히 자리잡은 소천지가 나타났다. 물은 아주 맑고 깨끗하다.
[소천지는 물이 들어오는곳은 있는데, 물이 나가는곳은 없다는 전설이 있다]
못에는 누군가가 복을 빌면서 던진 동전이 반짝거리고 관리인이 이제야
아침 준비 한다고 칼을 갈고 있다. 등산로 입구에 소천지를 지키는 수호신인지
몰라도 길손을 쳐다보고 꼭 돈을 달라는 표정을 하고 있어 나도 모르게 웃었다.
이제부터는 차일봉 아래 달문으로 가는데 까지는 계속되는 오르막이다.
숨은 차지만 아침공기라서 그런지 아직 시원하다.
**** 장백폭포의 웅장한 모습 ****
하늘에는 점점이 하얀 뭉게구름이 떠있고 파란하늘이 쪽빛보다 더 푸르고 날씨가 좋으니 모두들 발걸음이 아주 가볍다. 그래도 나이 드신 분들은 힘이 드시는지 천천히 가잔다.
빨리 올라가서 천지를 종일 구경하고 싶은데 단체 산행이니 그럴 수도 없고 주변을
조망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장백폭포를 구경하고 건너편 천문봉 오르는 능선을 쳐다
보니 차들이 꼬리를 물고 오르내리고 있다. 그곳능선에는 고래등과 흑풍구가 있다.
온천지역에서 천문봉 정상까지 짚차가 운행되는데 1인당 20달러의 요금을
내면 왕복이 가능하고, 정상에서는 30분 정도의 구경할 시간을 준다고 한다.
중국 사람들과 일반관광객은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어제 하산 길에서 잠시 본 얼음 덩어리가 완연한 모습을 들어내는데
지난해 쌓인 눈이 아직 녹지 않고 신비하게도 고드름처럼 얼어 있었다.
천지가 보이는 차일봉 아래에 전 대원이 모여서 드넓은 초원을 감상하면서
소주를 한잔씩 했다. 술맛도 기분에 따라 좌우되어 맛이 기가 찬다.
이곳에는 야생화는 별로 없이 풀들만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반갑다고 연신 인사를 한다.
바람이 코끝을 간질이는데 냄새를 맡아보니 상큼하고 부드러운 맛이 난다.
다시 잠깐 걷다보니 어느 순간 새파란 물결이 눈에 들어오는가 싶더니 천지가 있는
그대로 나신을 드러내는게 아닌가. 우리가 이 장관을 보려고 어제는 그렇게 안개와
씨름을 한 모양이다. 찐한 감동 때문에 달리 말로서 표현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밀려왔다. 몸이 찌릿찌릿해진다. 모두가 마음 속으로 천지신명에게
나름대로의 소원을 빌었으리라. 나도 우리가족 모두 건강하고
애들 공부 잘하기를 가슴속으로 빌었다.
장군봉옆으로 솟아 오르는 장엄한 백두산 일출장면
천지도 보이고, 차일봉이 보이고 달문으로 내려서는 길옆, 전망이 아주 좋은 곳에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구름은 한가로이 떠다니고 바람은 산들거리며 코끝을
스치고, 날씨는 좋고 주변 사방천지를 보게되니 사나이 대장부 기개가 오늘처럼만
했으면 하는 생각을 가져본다. 달문으로 내려서기 전에 우리가 지나 온 이도백하쪽
밀림지대를 바라보니 끝없이 펼쳐진 평원에 구름이 만든 그늘이 점점이 깔려있다.
이처럼 넓은 평원이 세상천지에 여기 말고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눈을 돌려 발아래 달문으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쳐다보니 분명히 장백폭포 쪽으로
흐르는데 눈으로 볼 때는 천지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은 착시현상이 나타난다.
달문으로 내려서는 길은 급경사에다가 너덜지대에 잔돌들이 많아서 낙석을 특히 조심
해야 했다. 자칫하면 돌이 굴러 사람이 다치기 쉬운 길이다. 중국인 몇 명이 구두를
신고 내려서다가 길이 미끄러워 오도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다.
오전 11시에 드디어 천지에 도착했다. 물 속에 손을 담가 보니 엄청 차갑다
백두산 가이드 종주=서파~북파 10번째 인솔때 현지 관리인들의 배려로
천지 백운봉 아래 통발 건지려 가면서, 뽀트을 태워 주어서 추억의 한폐지을 남겼다.
. 물맛을 보니 특별한 맛이 느껴지지 않는 무맛이다.
아!!!!! 드디어 우리민족의 발원지에 도착한 것이다.
얼마나 장하고 고귀하고 엄숙한 일인가? 천지물가에서 우리대원은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지리산에서 가져온 흙과 물을 한데섞는 合水式과 合土祭를
지내면서 평화통일과 산악회의 무궁한 발전과 무사산행과
참가대원 가정의 무사태평을 기원했다.
천지에서 북한쪽 봉우리를 바라보니 백두산의 최고봉인 장군봉이 위용을 자랑하고,
그 왼쪽으로 천지가에 있는 감시초소로 내려서는 계단이 만들어져 있고, 감시초소까지
전기를 연결해서 사용하는지 전봇대가 아주 가까이 보인다. 다시 조금왼쪽으로 북한의
기상관측소와 중국과의 국경지역인 자암봉에 제6호 국경경계선비가 설치되어 있고,
물가에는 관광객인지 아니면 감시를 하는 사람인지 몰라도 몇 명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하루 빨리 저곳을 마음대로 오고 갈 수 있는 날이 와야 할텐데. 그 날이오면 만사를
제쳐두고 장군봉에서부터 진부령까지 못다 확인한 백두대간을 걸으리라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해본다.
천지 수면의 해발은 2100미터 정도로 천지를 에워싸고 있는 봉우리들과는 500미터에서 700미터 정도의 고도 차가 있다. 또한 벽면에는 풀과 꽃이 자랄 수 없는 화산석으로 비가 많이 오면 곧 흘러내릴 것 같은 인상을 풍긴다. 한숨 돌리고 어제 올라온 길을 찾아보니
선명하게 보인다. 제5호 국경경계선 능선인 마천루에는 오늘도 사람이 많이 보이고
우리가 두 번이나 오른 백운봉에도 10여명의 산꾼들이 오르고 있다.
여기서 안 보이는 봉우리들은 천문봉에 올라서면 잘 보인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점심을 맛있게 먹고 오후 1시경에 천문봉을 향했다. 천지에서 천문봉을 오르는 길도
급경사에 너덜지대 돌길이어서 낙석을 조심해야하는 매우 힘이 드는 코스이다.
천지에서 1시간20분 정도 힘겹게 올라서니 짚차로 올라 온 사람들이 사진 찍느라고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나도 그 틈에 끼여서 사진을 몇장 찍고 있는데 오전에 올라온
친구가 보여서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랐다. 같이 천지를 실컷 구경하고 눈과 마음속에
풍경을 담아 두었다. 맨 후미까지 올라와서 사진을 찍고 천지의 봉우리들을 감상하고
내려서니 백운봉 넘어 구름이 몰려오는가 싶더니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지고
가스가 차면서 어제처럼 바람이 세차게 분다.
그시절에는 장백포포(오른쪽 ) 낙석방지터널을 통하여 천지물가로 오르 내릴때였다
오늘도 우리에게 백두의 모습을 그만 보여주려고 산신령이 심술을 부리는가 보다.
우리야 볼 것 다 보았지만 지금 오는 사람은 제대로 구경할 지 걱정스럽다.
다행히 잠깐씩 천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짚차 타는데까지 내려서니 중국의 기상관측소
가 흉물처럼 자리를 잡고 있다. 이곳 화장실도 여전하고 안개와 바람 때문에 제법 한기가 느껴진다. 반팔과 반바지를 고집했는데 그래도 참을만하다. 대부분 중국사람들은
이곳으로 짚차로 올라와서 천지를 구경하고 간다.
깨끗한 천지물색상 **** 하늘에 구름에 따라 천지물 색상이 변한다
왼쪽아래가 달문/ 장백포포로 흘려가는 물줄기 입구
기상관측소에서 짚차와 연결시간이 엇갈려 모래바람을 맞으며 1시간이상 지체를
하다가 차를 탓는데 얼마나 우악스럽게 위험하게 차를 몰던지 모두가 오금을
저리면서 모두 어제저녁 숙소인 운동원호텔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건 또 웬 날벼락인지 우리가 내려오기 얼마 전에 중국의 흑룡강성 사람이
자가용으로 천문봉에서 내려오다가 운전 미숙으로 사고가 나서 차에 탄 5명이 모두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단다. 백두산은 이처럼 안전사고가 잦은 걸 보면 예사 산이 아님은
분명하다. 항상 경건하고 철저히 준비된 가운데 이 산을 찾아야겠다고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제 실종된 17명은 모두가 무사히 구조되어 하산을
했다니 정말로 다행이다.
이도백하로 내려오면서 저녁식사를 했는데 알코올도수가 38도나 되는
고량주를 반주를 곁들였다. 멋진 산행을 한 뒤라서 그런지 다들 잘들 먹는다.
얼큰하게 취해서 신달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오늘은 전체 참가자중 희망자가 모여서 단체로 한잔하기로 했는데 친구와 최00씨랑
셋이서 이도백하를 구경하면서 맥주를 실컷 마셨다. 도로변에 노래방 기계를 내어놓고
손님을 유혹한다. 북한과 같이 개고기를 “단고기”라고 부르면서 숯불에 구워먹는데
냄새가 진동을 한다. 개고기를 먹지 않는데 그 냄새가 별로 역겹지가 않다.
서파서 맞이한 백두산 아침일출 장면
이곳의 좋은 점은 세 명이 실컷 먹었는데도 술값은 싸다는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중국은 술값은 싼 편이다. 다른 팀이 걱정이 되어 맥주를 몇 병
더 사와서 호텔에서 먹었다. 우리가 빠졌다고 서00 전직회장이 화가 많이 났는지
방문을 차고 난리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미안하다고 인사를 해야지....
타국 땅에서도 술이 취하니 기분은 좋다.
오늘은 즐거운 하루였지만 이번 여행도 서서히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쉬운 생각에 술이 많이 취했지만 잠이 늦게 들었다.
안개가 왔다갔다 하는 도중에 나타난 백운봉(오른쪽)과 아름다운 천지모습
◉ 제5일 ◉
1. 일시 : 2002년 8월 4일(일), 흐리고 비
2. 장소 : 이도백하 → 용정(일송정, 용정중학교) → 도문(두만강) →
연길 반달곰사육장 → 심양 칠보산호텔(5박)
【여행스케치】
아침에 일어나 몸이 따가워 벌레가 물렸는지 자세히 살펴보니 물린데는 없었다.
어제 하루종일 반팔과 반바지를 입어서 햇빛에 노출된 부위(장딴지와 양팔부위)가
발갛게 익어서 따가운 것이다.(백두산이 세긴 센 모양이다)
SUN-크림을 발랐는데도 백두산은 나무가 없고 고도가 높으니 자외선이 그대로 피부에
침투된 모양으로 피부에 별 이상이 없어야 할텐데 걱정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뿐만 아니라 복장 불량자들은 다 그랬다.
구름한점 없이 깨끗한 백두산
오늘은 완전히 관광만 하는 일정이 잡혀 있어 마음의 부담은 덜한데 차를 너무오랜
시간 타면 지루할까 봐 걱정스럽다. 어제저녁에 다들 술을 많이 했는데도 전부가 예정
된 시간에 일어난다. 아침을 먹기 전에 호텔 주변을 둘러보니 호텔 바로 앞이 미인송
군락지로서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어제는 밤이라서 몰랐는데 호텔의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
대부분의 백두산을 찾는 관광객들이 이곳을 이용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식사 시간도 호텔에서 정해준 시간에 해야만 가능하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호텔 앞을 나서니 벌써부터 노점상과 장사꾼들이 몰려와서 물건을 사라고 생떼를 쓴다.
서파쪽의 고산평원의 야생화 벌판
이곳에도 자전거에 리어카를 부착하여 짐을 실거나 사람을 태우고 이동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오늘은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유독 사람들이 많이 붐빈다.
밤에 본 거리와는 달리 불결하기 짝이 없고 쓰레기가 마구 나뒹굴고 있다.
이도백하에서 용정 시내로 들어오는 길 주변에도 온갖 꽃들이 만발하고 들판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시내 들어오기 직전에 언덕에 있는 一松停을 차창으로만 바라보았다.
저곳에서 “先驅者”란 노래가 나왔단 말이지.
**** 백운봉산장의 추억 ****
백두산 오르기전날,숙박날 대한민국이 축구4강에 이겨서 그기쁨에 보관중인 돼지뒷다리
싸서 연병장서 고기구우며, 달밝은 이한밤 노래...도 부르며 놀다 잠을 청하였습니다.
점심은 용정 시내에서 한식으로 했는데 대체로 우리 입맛에 맞다.
상추쌈과 김치, 콩나물이 참으로 맛있다. 점심을 먹고 식당아래에 있는 쇼핑코너에
들렀더니 참깨와 삼베, 옥으로 만든 목걸이 등을 팔고 있었다. 가격은 부르는 것이
값이라서 같은 제품이 100원 에 사는가하면 50원에 사는 경우가 흔히 있다.
그러니 처음에는 부르는 값에 삼분의 일만 준다고 해야 바가지를 덜 쓸 것 같다.
다들 가족에게 줄 선물을 사고 있건만 별로 마음에 안 든다. 그래도 집사람과 애들한테
뭔가를 하나씩 사야하는데 고르지 못했다. 참깨와 삼베 그리고 죽엽청주가 괜찮아
보이는데 부피가 있어 가져갈 수가 없어 아쉽다.
송강하 계곡에서 만난 야생하꽃 촬영
쇼핑을 하면서 지금까지 본 만주의 넓은 벌판을 생각해 보니 농산물시장이 완전히
개방되어 중국과 경쟁을 하면 우리가 이길 수 있는 품목은 하나도 없을 것 같다.
최근에 부각되고 있는 마늘은 말 할 것도 없고, 모든 농산물이 게임이 안 될 지경이다.
점심을 먹고 용정중학교를 향하면서 시내구경을 하는데 용정에 맨 처음 발을 디딘
조선족이 개척한 우물을 “거룡우호공원”내에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면서 기념비를
따로 만들어 두고 있다. 이 또한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살려주는 부분이 아닌가 싶다.
윤동주 시인의 혼이 서려 있는 용정중학교에서 숙연한 마음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기념관에서 학교의 역사와 독립운동가들이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또한 독립운동가 이상설 선생의 기념비도 깨끗이 세워져 후손들을 맞이하고 있다.
만병초가 평원,안개속애서도, 즐겁게 등반하는 우리산님들~!
용정 시내를 구경하고 중국과 북한의 국경지역인 두만강 도문시를 향했다.
도문으로 가는 도로변에는 이곳에서만 자라는 사과·배나무 과수원이 잘 조성 되어있다.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용정시가지가 한눈에 보이고 세전 들판이 김해평야보다 몇 배는
넓어 보인다. 들판과 맞닿은 산은 산이 아니고 평원으로 경사도가 거의 없이
평평하다고 표현하면 될 것 같다.
도문시는 연길 시내를 거쳐서 가야하는데 용정과 연길까지는 4차선 도로로서
이곳에서 처음으로 4차선 지방도로를 본 것이다. 띄엄띄엄 있는 농가는 초가집들
도 많이 보인다. 연료는 대부분이 나무를 사용한다고 한다.
천지신령께 언제나 "천지을 보여 주셔서 감사하다"며 절 올리는 메아리朴 팀장
연길은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올해가 “시건설 50주년을 맞이하는 해”로서 대대적인 손님맞이를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도로를 재포장하고 넓히고, 집을 새로 짓는 공사 등으로 도시 전체가 어수선하다. 이곳의 또 다른 특이한 사항은 자전거가 생활의 필수품으로
고유번호가 부여되고 개인명의로 등기를 한다고 한다. 자전거가 재산목록 1호인 셈이다.
연길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부르하토강은 시내를 벗어나면서 점차 강폭이 넓어져
두만강과 합류하여 동해바다로 흘러간다고 한다. 계속되는 비로 인하여 강물은
많이 불어났는데 물은 완전 황토색이다.
연길에서 도문까지는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30분이면 가능하고 훈춘까지는 지금
한창 공사 중이었다. 도문시 못 가서 석유정제공장이 여러 곳이 있었으며
정제를 하느라고 낮에도 시뻘건 불길을 내 뿜고 있다.
옛시절에 백두산 서파산문 앞에서 기념촬영
오후 3시에 드디어 두만강 강가 국경지역에 도착했다.
강폭은 200여미터 정도 되어 보이고 북한쪽으로 하천부지가 많이 형성되어 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앵벌이 하는 녀석인지 몰라도 초등학교 3학년정도 되어 보이는
꼬마 둘이서 북한에서 탈북을 했는데 배가 고프니 도와달라고 사람을 귀찮게 한다.
벌써 돈맛을 안 것인지, 부모들이 시킨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씁쓸하기 그지없다.
강가를 공원처럼 만들어 놓아 사람들이 많이 붐비고 인력거꾼들도 10여명이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두만강에는 뗏목과 모터보트가 있고, 낚시꾼들도 여러 명이 보인다.
옛시절에 백두산 서파산문 앞에서 기념촬영 한 메아리朴
흐린 날이지만 북한의 남양이 아주 선명하게 보인다. 논과 밭이 이곳과 다름이 없어
보이고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과 하나도 다를 바 없건만 왜 우리는 그 먼길을 돌아
이곳까지 와서 한숨지어야 하는지 아쉽기만 하다. 언젠가는 정정당당하게
개마고원을 넘어 두만강에서 뱃놀이 할 날이 오겠지.
북한과 중국을 연결하는 다리가 놓여 있는데 국경표시를 이 다리중간에 색깔을
달리하여 표시를 하고 있다. 중국과 북한인은 여권과 여행증명서만 있으면 언제나
자유로이 오갈 수 있단다. 강 저쪽에는 북한쪽 병사 두 명이 교대로 강 쪽을
살피면서 경계를 하고있다.
겨울이나 밤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중국으로 넘어 올 수 있는 지척의 거리이다.
‘두-만강 푸른물에 노 젓는 뱃-사-아--공’.......... “눈물 젖은 두만강” 노래 가락을
흥얼거려 보지만 통일의 그 날은 언제나 올련지?
백두산 가이드 종주하며, 직접그린 백두산 개념도 **** 전국 여행사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두만강을 구경하고 다시 연길 시내로 들어와서 북한에서 운영하는 해당화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북한의 평양식 한식인데 우리 입맛에 그만이다.
명태 찜, 야채튀김, 버섯볶음, 김치, 된장국에다가 평양소주한잔과 삼지구엽초로
담근 약주를 곁들이니 배도 부르고 얼큰하다.
식사를 마치고 북한의 아가씨와 기념촬영을 했다. 시간이 있으면
공연을 한다고 했는데 비행기 시간이 급해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북한 아가씨들은 몸매도 늘씬하고 얼굴이 엄청 예쁘다.
오후 8시에 심양행 마지막 비행기에 올라 심양에 도착하니 9시30분, 버스로 숙소인
칠보산호텔까지 이동하니 밤 10시가 넘었다. 심양은 인구가 720만이나 되는 중국의
5대 도시중의 하나이며, 요령성의 수도이다. 이곳에는 조선족이 13만명 정도 살고 있단다. 심양은 옛 청나라 누루하치가 세운 도읍지이며, 만주벌판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칠보산호텔은 북한과 합작으로 건립한 제법 규모가 큰 호텔이지만 샤워시설이 엉망이다. 중국사람들은 목욕을 잘하지 않아서 인지 물이 짤짤거리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대충 짐을 정리하고 중국에서 마지막 밤을 멋있게 장식하기 위해 시내로 향했는데
우리네 포장마차와 비슷한 술집이 많이 있다. 지금까지 거쳐온 지역과는 달리
전혀 우리말이 통하지 않는다.
다행히 한글로 쓰여진 집으로 들어서니 조선족 여인이 우리말을 잘했다.
열 명이 두시간 정도 실컷 마셨는데도 안주와 술값을 합해도 중국 돈으로 200원이 안 된다.
술은 맥주로, 안주는 오징어 꼬치구이, 양고기 꼬치구이, 잡어꼬치구이를 수박은 서비스다. 맛은 그런 대로 먹을만했다. 일행 중 몇 명은 그래도 아쉬움이 남아 호텔 냉장고에
있는 냉장고에 캔 맥주를 꺼내서 마저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북한삭당에서 만찬하면서 우리모두 부라보~!!!!
◉ 제6일 ◉
1. 일시 : 2002년 8월 5일(월), 맑음
2. 장소 : 심양 → 인천 → 사천(김해)
【여행스케치】
좋은 여행을 하려면 반드시 사전에 충분한 지식을 습득하고 알찬 계획을 세워서
행하게 되면 그 효과는 배가가 되지만, 무작정 떠나게 되면 좋은 점도 있지만
대부분 헛된 시간과 쓸데없는데 낭비를 많이 하게 된다.
등산을 더더욱 사전에 지도 공부도 하고 그 산의 특징과 비상 탈출로 등을 익혀
두면 긴급한 상황에 곧바로 대처할 수가 있다. 이번 백두산 등정과 연변 지역을
둘러보는 여행은 특별히 사전에 준비한 것은 없었으나
다행히 우리 언어가 통하는 지역이라 고생은 덜했다.
서파 주차장서 오르는 계단길 2,200계단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지난 6일이 언제 지나갔는지 모르게 쉽게
흘러 버린 것 같다. 세월은 정지하지 않고 흘러가고 있지만 너무 빨리 지나간다.
아침 6시에 기상하여 호텔식 뷔페로 식사를 했다. 머리가 다소 띵하다.
시내를 구경하니 지금까지 본 중국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걷는 사람과 자전거로 이동하는 사람들도 표정이 밝고 도시에 차들이 많이
다니고 활기가 넘쳐 보인다.
지금까지 우리가 본 중국은 아주 낙후된 농촌지역만 본 것이었다.
심양의 도심은 고층빌딩과 상점들 즐비하고 다양해 세계 속의 여느 도시와
같이 살아 숨쉬는 도시로서 꿈틀거리고 있다.
이곳의 지명은 여러번 바뀌었지만, 그 중에서 우리에게는 “만주봉천”
(흔히 농담으로 하는 봉천상고, 봉천개장사 등등)이라고 널리 알려진 곳이다.
송강하 계곡아래 야생화꽃 평원에서 휴식하면서...
공항으로 이동하면서 차창에 스치는 도시를 바라보니 주변에는 전혀 산이 없다.
끝없는 지평선만 펼쳐져 있어 어찌 보면 지루한 감이 없지 않는 곳이다.
공항 가는 길가에 LG전자 공장이 세워져 있어 반갑고 이곳에서 생산되는 전자제품이
현지인에게 인기가 좋단다. 그 외에도 우리나라의 300여개 중소기업이 현지에
공장을 세워 잘 운영하고 있단다.
심양공항까지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고, 들판에는 옥수수가 바람 따라
흔들거리면서 안녕히 잘 가라고 인사를 한다. 이곳은 봄철에 황사가 불면 먼지가
엄청나게 심해서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하며 시내를 다니기가 힘들단다.
심한 날에는 전방주시가 전혀 안되어 고속도로까지 폐쇄를 한다고 가이드가 설명해 준다.
19명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5박6일의 짧은 기간동안 중국의 단면을 보고 각자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면서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 안에서는 내년에는 3000고지가 넘는 일본의 북알프스 등정을 꿈꾸면서
그동안의 여독이 한꺼번에 밀려오는지 모두가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나름대로 보람이 있고 의미가 있는 여행이었다.
다음에는 꼭 가족들과 함께 와 보리라고 마음속으로 약속해 두었다.
작성자:- 길따라 마음따라
옛 그시절에 1년에 3~4회씩 가이드로 백두산 서파~북파 종주을 50번
이나 인솔했던 메아리朴은 그시절이 많이 그립습니다.
★ 그시절에 항단했던 사건하나 소개 ★
마지막날에 심양공항에서 기후관계로 비행기가 들오지 않아서 항공결항 사건이 생겨다,
나는 현지 책임소장을 민나서 내일아침 나오면 심양~부산을1순위로 준다는 각서을 받고서, 호텔로 돌아와 쉬였다가, 다음날 공항 나가더니 이게왠일~? 밤새 지리산여행사 사장이 소장께 돈을 집어주고, 우리자리을 뺏어,그들은 부산행 타고,우리팀은 인천으로 경유 부산으로 돌아 내려갈수 밖에, 방법이 없었다.일단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회원들 인솔하여 아시아나 사무실로 찾아가서책임소장께 각서을 보여드리고, 따지니 인천소장~심양소장 통하하여 확인후 판단후 김포서 부산행 항공은 좌석이 없고, 대신 관광버스(28인승)편으로 부산까지 모시겠다해서, 우리회원들은 그렇게 하기로하고, 중간 휴계실서 중식후 부산귀대함.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