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게의 교훈
삼일 이재영
“어! 저게 뭐지?”
바닷가 모래톱을 거닐다가 작은 소라고둥이 살금살금 기어가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기도 한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소라가 아니고, 빈 소라고둥의 껍데기에 들어가 집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집게, 즉 소라게다.
모래나 진흙 바닥, 드물게 땅과 나무 근처에 사는 소라게는 게, 가재, 랍스터, 새우처럼 몸체의 표피가 칼슘이 풍부한 키틴질의 딱딱한 껍질인 갑각(甲殼)으로 덮인 갑각류이다.
소라게의 몸은 크게 머리와 가슴이 붙어 외부로 노출되는 갑각의 두흉부(頭胸部)와 갑각 없는 맨살의 복부(腹部)로 구성된다.
길고 부드러운 복부는 비대칭이며, 소라 껍데기의 나선형 내부에 맞추기 위해 보통 오른쪽으로 뒤틀려있다.
두흉부에는 2쌍의 촉각과 5쌍의 다리가 있는데, 다리 중 첫 번째 쌍은 굵게 발달한 집게발로 보통 오른쪽 것이 더 크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쌍의 긴 다리로 걸으며, 짧은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쌍의 다리는 은신처가 되는 고둥 껍데기 내부에서 중심 원추를 움켜잡는 데 사용한다.
소라게는 물이 빠져나간 갯벌 등의 수심이 얕은 곳에서부터 수십, 수백 미터의 깊은 곳에서 생식하며, 종류에 따라 바닷물과 민물이 섞인 강어귀의 기수 지역, 물가, 암초, 산호초, 모래 바닥 등의 환경으로 나뉘어 서식한다.
번식 시, 포란낭(抱卵囊)은 매우 작으며 부화한 개체는 조에아(zoea)라고 부르는 유생기를 거친 다음에 작은 소라게의 모습으로 변태한다. 육상 생활을 하는 소라게류도 유생 시기는 바다에서 성장한다.
식성은 잡식성으로 해조류, 생물의 유해, 플랑크톤의 사해 같은 유기물 쓰레기(detritus)를 먹는다.
두흉부를 은신처인 소라 껍데기에서 꺼내어 깃털 모양으로 생긴, 2쌍의 촉각 중에 상대적으로 긴, 더듬이를 움직여 주변의 플랑크톤이나 디트라이터스(detritus)를 입으로 닦아내며 먹는다.
평소에는 두흉부를 내놓고 다니지만, 위험을 느끼면 재빨리 껍질 속에 들어박혀 커다란 집게발로 입구 부분을 막는다.
소라게가 성장하면 새 껍데기로 옮겨 살아야 하는데, 빈 고둥 껍데기의 입구에 집게발을 대고 내부 크기를 가늠하여 알맞은 껍데기를 선택한다.
껍데기가 몸에 꼭 맞아야 좋고 너무 크면 곤란하므로, 주변에 비어있는 소라 껍데기가 귀할 경우, 크기가 다른 여러 마리의 소라게가 모여서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는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보인다.
어떤 소라게가 자기 것보다 훨씬 큰 껍데기 옆에서 그 크기에 맞는 소라게가 오기를 기다리면, 그보다 작은 녀석들이 몰려와 크기대로 줄을 서서, 앞에 있는 소라게가 껍데기를 바꿔서 빈 껍데기가 나올 때까지 자기 순서를 기다린다.
우리는 이런 소라게의 모습을 보면서 월셋집, 전셋집, 자기 소유 주택으로 점차 생활공간을 키워나가는 인간의 주거 생활과 비교하기도 한다.
나는 신혼 시절을 경기도 오산읍에 있는 단칸 월세방에서 시작했다.
천 리나 먼 고향 진주시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이불 보따리와 수저 두벌 및 간단한 식기만 챙겨서 밤중에 서울로 화물 싣고 가는 8톤 트럭의 운전석 뒷줄 좌석에 쪼그려 앉은 채 타고 왔다.
결혼 휴가 4박 5일 동안 결혼식 후 부산 태종대 신혼여행 1박 2일, 합천 처가에서 1박 2일을 보내다 보니 5일째 되는 날 밤에 올라오게 된 것이다.
그렇게 맞벌이로 시작해서 세월이 지나면서 전세방, 전셋집을 거쳐 단독 아파트인 내 집을 마련해 살게 되었다.
소라게가 껍데기를 키워 나가는 과정과 너무도 흡사했다.
또한, 사람은 소라게처럼 자신의 수준과 지위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올바른 처세에 대한 따끔한 교훈을 얻기도 한다.
소라게가 너무 큰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낑낑대는 모습을 보면, 자기 분수를 모르고 지나친 허욕에 빠져 사는 덜떨어진 사람을 떠올리며 비웃게 된다.
24평 아파트면 충분할 사람이 괜히 대출을 받아서 32평 아파트에 입주하며 허세를 부리다가 돈에 쪼들려 헉헉대는 모습을 가끔 보게 되니 하는 말이다.
직장에서의 승진도 지나치게 욕심내지 말고, 자기의 적성과 능력에 맞는 자리에 있으면서 편히 지내는 것이 무난하다.
뒷배경이나 비열한 처세술에 의해 고속 승진을 했다가, 주어진 업무가 감당이 안 되어 일찍 자리에서 물러나는 경우도 종종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 소라게처럼 자연히 높은 자리에 앉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미리 깨닫고, 평소 자기계발에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서, 어느 날 승진되어 주어질 직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일찍이 대비해야 할 것이다.
야행성인 소라게의 천적은 묘하게도 척추 없는 연체동물이면서 딱딱한 갑각류와 조개를 먹이로 삼는 같은 야행성 동물 문어이다.
그래서 소라게 중 대부분은 자포(刺胞) 동물인 말미잘과 공생을 한다.
소라게는 바닷가 바위에 붙어사는 말미잘을 집게다리로 떼어내 자기 소라 껍데기에 옮겨 붙인다. 말미잘은 소라게 덕분에 어디든 갈 수 있고, 소라게가 먹다 남은 찌꺼기도 얻어먹을 수 있다.
문어가 덮치면 소라게는 얼른 집 안으로 숨고, 말미잘은 독이 있는 촉수를 끄집어내 문어를 찌른다. 덩치 큰 문어도 말미잘의 독침은 참을 수 없어 소라게를 움켜잡았던 다리를 풀고 달아난다.
소라게는 껍데기를 바꾸게 되면 옛 껍데기에 있던 말미잘을 새 껍데기에 옮겨 놓는다. 두 마리씩이나 붙이고 다니기도 하지만, 말미잘이 마음에 안 들면 매몰차게 뜯어내 버리고 다른 말미잘로 교체한다.
사회적 동물인 사람도 홀로 잘난 체 독불장군식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 지연과 학연으로 맺은 친구는 물론이고, 동호회나 친목회 등에 가입하여 상부상조할 우군(友軍)을 많이 형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말미잘 같은 수호천사 두셋만 있어도 이 각박한 사회에서 힘들이지 않게 살아갈 수 있으련만.
육지 소라게는 애완용으로도 널리 사육되고 있다. 주로 판매되는 종은 인도소라게, 딸기소라게, 피피소라게, 캐비소라게, 푸르푸르소라게 등이다.
소라게를 키우고 싶으면 청계천 애완동물 거리에 가서 구할 수 있고, 인터넷에서 소라게 닷컴(sorage.com)을 쳐도 되며, 이마트나 학교 근처 문방구에서도 살 수 있다.
자라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소라게를 관찰하면서 집 갈이, 천적, 공생 등 여러 자연생태를 배웠으면 좋겠고, 훗날 바다같이 넓은 세상에서 독립적으로 꿋꿋이 살아갈, 큰 삶의 지혜를 깨우쳤으면 하는 작은 염원을 가져 본다.
[ 종합문예지 『한국 예인 문학』 2021년 봄호 (창간 10주년 특집) 등재 ]
첫댓글 말미잘이 소라게의 수호천사였군요.
전혀 관련이 없는 걸로 알았는데 신기합니다.
네, 개동 고문님 댓글 감사합니다.
말미잘과 소라게가 공생관계라고 합니다. 사람도 서로서로 도우면서 살면 좋겠습니다.
소라게도 줄 서서 집을 분양 받는군요.. ㅎ
소라게처럼 자기 몸에 맞는 생활양식이 절실히 필요하지요..
탐욕스런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투기로 인해 국민들의 심기가 불편한데...
소라게의 철학을 닮았스면 좋겠습니다. 즐감합니다.^^
네, 회장님 댓글 감사합니다.
그러게요. 소라게는 불필요하게 큰 껍데기에 투자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ㅎ
국가 정책도 중요하지만, 모든 국민이 너무 큰 불로소득은 탐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소라게의 삶이었던 날들이 있었지요.
단칸방에서 연탄불 살피던 그 시절이 행복했습니다.
많은 것을 얻은만큼 웃음은 잃었지요.
네, 윤슬 강순덕 국장님 감사합니다.
어쩌면 그런 시절이 있어 지금 행복을 느끼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땐 일부러 궁핍한 궁상을 떨어보고 싶기도 합니다.ㅎ
소라게들이 그러고 사는 군요. 신기하면서도 자연의 섭리가 그렇구나 하게 됩니다. 자연이 진정한 스승이라는 걸 아이들이 알기 바라는 마음 저도 공감합니다.
네, 신이비 작가님 감사합니다.
자료 조사하면서 여러가지 웃기는 장면을 봤습니다. 마치 소라게가 지능이 있는 것 같았어요.
소라게의 생태를 관찰하면서 우리네 삶을 지혜를 깨우칠 수 있군요.
소라게와 사람의 집 구하는 방식을 비교해보니 참 재미있습니다.
네, 화원 안영신 작가님 댓글 감사합니다.
소라게가 빈 집을 찾는 동영상을 보면 하찮은 미물이 아니고 마치 지능이 있는 동물처럼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