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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국도변 곳곳에 풋옥수수 좌판이 열린다. 나는 이 풋옥수수 좌판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맛있기 때문이다. 풋옥수수는 알갱이에 당을 듬뿍 지니고 있다. 옥수수는 딴 후 시간이 지나면서 당이 전분으로 급격히 변한다. 즉, 단맛이 사라지고 단단해지며 향도 죽어간다. 동네 마트에서 풋옥수수 사다가 찌면 그 맛이 안 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옥수수 맛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밭에서 따자마자 찌는 것이다. 그래서 국도변 옥수수가 맛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옥수수라고 하지만 쪄서 먹는 옥수수는 풋옥수수라고 하는 게 맞다. 아직 덜 익은 옥수수란 뜻이다. 다 익은 옥수수는 알맹이가 단단해져 푹 쪄도 씹을 수가 없다. 그래서 보통 가루를 내 가공용으로 쓴다. 풋옥수수로 먹는 옥수수는 크게 단옥수수와 찰옥수수로 나뉜다. 명칭에서 예상할 수 있듯 단옥수수는 당도가 높고, 찰옥수수는 찰기가 있다. 단옥수수를 개량해 당도를 더 높인 것을 초당옥수수라 부른다. 경상북도에서는 단옥수수와 초당옥수수를, 강원도에서는 찰옥수수를 주로 심는다. 그 중간 지역인 충청도에서는 이 두 옥수수를 반반 정도 재배한다. 설탕을 친 듯 달콤하고 씹을 때 알갱이가 쉬 뭉개지는 것이 단옥수수와 초당옥수수이고, 알갱이가 단단해 씹을 때 자루에서 알갱이 모양 그대로 쏙쏙 빠지는 것이 찰옥수수다. 강원도 국도변에서 주로 보는 것은 찰옥수수다. 쪄서 먹는 풋옥수수로는 최고의 맛을 낸다. 강원도 찰옥수수는 대부분 홍천에 있는 강원도농업기술원 옥수수시험장에서 개발한 품종이다. 옥수수는 전분이 주성분이다. 이 전분의 구조에 따라 찰옥수수와 메옥수수로 나뉜다. 전분이 아밀로펙틴 100%이면 찰옥수수이고 70% 선이면 메옥수수다. 옥수수시험장에서 육성해 농가에 보급한 찰옥수수 품종은 여럿 된다. 근래까지 재배된 것은 2000년대 초에 보급한 하얀색의 ‘미백찰’과 흰색과 검은색의 알갱이가 섞인 ‘흑점찰’이다. 강원도 찰옥수수의 명성을 가져온 품종이다. 3년 전부터는 흰색의 ‘미백2호’와 검은색(자주색에 가깝다)의 ‘미흑찰’을 밀고 있다. 이런 품종의 변화가 수확량과 재배의 용이성 때문만은 아니다. 맛의 차이도 따른다. 다 같이 아밀로펙틴 100%이고 당도도 비슷하지만 알갱이의 껍질에 미세한 차이가 있다. 옥수수 알갱이 껍질은 씹을 때 이물감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껍질이 얇을수록 옥수수는 부드럽게 씹히고 이빨 사이에 끼는 것이 없으며 목 넘김도 좋다. 그 껍질 두께의 개선이란 게 수치로는 겨우 몇 마이크로미터(㎛)다. 그러나 식감에서의 효과는 대단하다. ‘미백찰’과 ‘미백2호’를 같은 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예민한 사람은 쌀밥과 보리밥의 차이로 느껴질 듯했다. 올해는 ‘미백2호’가 주로 재배됐다. 강원도 여행길에 옥수수 살 일이 있을 때 ‘미백2호’인지 물으며 아는 체하면 판매 농민에게서도 대우를 받을 것이다. 강원도 국도변 옥수수판매장 운영자는 옥수수를 재배하는 농민일 확률이 높다. 대체로 해가 뜨거워지기 전 아침 일찍 밭에서 찰옥수수를 수확, 그 자리에서 쪄서 판매한다. 7월 중순부터 나오기 시작해 늦게는 10월 중순까지 밭에서 수확한 찰옥수수를 맛볼 수 있다. 만약 풋옥수수 생것을 사면 빨리 냉장 보관하고, 되도록 24시간을 넘기지 말고 찌는 게 좋다. 이미 찐 것은 랩에 돌돌 말아 공기가 안 통하게 한 뒤 냉동시켰다가 데우면 갓 찐 옥수수와 맛이 똑같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