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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八公山) 1,193m/블랙야크 100명산 & 대율리 전통한밤마을 |
팔공산은 삼국통일의 도장이며 대구의 진산이다.
비로봉(毘盧峰)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로 16km에 걸친 능선 경관이 아름답다.
대도시 근교에서는 가장 높은 산으로 도시민에게 휴식처를 제공하고 1980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하였다.
동화사(桐華寺), 은해사(銀海寺), 부인사(符仁寺), 송림사(松林寺), 관암사(冠岩寺) 등 불교문화의 성지로 유명하다.
신라의 중악(中岳) 팔공산은 대구산악인의 모산이며 약사신앙의 1번지다.
이름은 대구, 칠곡, 인동(현 구미 인의동 일대), 신녕, 의흥, 영천, 하양, 경산 등 여덟 마을에 걸쳐 있어 붙여졌다.
가산에서 갓바위까지 주릉만 26km다.
기슭에는 파계사, 부인사, 동화사, 은해사, 제2석굴암 등 이름난 절이 많다.
출발 장소 |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5번출구 150미터 앞 좌측 독립공원주차장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옆 독립공원주차장 안쪽 지도검색주소 : 서대문 독립공원 주차장 ☜ 클릭 |
산행출발 경유지 시 간 | 출발-11월17일 토요일, 아침 6시 40분 서대문독립공원 주차장 출발 (3호선) (10분 전 까지 도착하세요) *6시 50분 : 시청역 9번 출구(지하철 1호선, 2호선) *7시 10분 : 교대역 11번 출구, 50미터 앞,땅끝마을 식당 앞(지하철 2, 3호선) *7시 30분 : 죽전 고속도로 간이주차장(신청 있을 경우만) |
산행 일정 |
_ 1주차장-청운정-오도암-714계단(사자굴,원효굴)-청운대-하늘정원-팔공산 비로봉 -하늘정원-1주차장(약7.5km) (비로봉에서 동봉은 발빠른 분만 다녀오세요)
(산행후 대율리 전통한밤마을 들러 옵니다) |
서울도착 예정시간 | 저녁 8~9시 예정 (교통상황에 따라 변동 있슴) |
산행 회비 | 산행 회비 23,700원 * 예금 계좌 농협 352-0938-6874-03 이지은 * 은행입금 하지않고 당일 현장 입금시 25,000원 (당일 빈좌석 있는 경우만) * 회비 입금 시, 금액과 입금계좌를 잘못 입금 하실 경우 산행에 참석하실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 100원 단위 까지 정확히 입금하세요. * 회비 포함사항-왕복교통비,통행료,주차비 |
안내 사항 | * 휴대폰 문자 문의 시 답변이 불가능하오니, 이메일이나 전화, 게시판 글쓰기로 문의 바랍니다. (좌측 게시판 상단의 공지사항 규정 참조하세요) * 입금 후 취소는 공지사항 게시판 참고하세요. - 본인취소 환불 : 입금액의 10% 공제 후 환불 - 이월하는 경우 : 입금액의 20% 공제 후 이월 - 인원미달 취소 : 입금액의 100% 환불 *본 산악회는 산행중, 또는 산행버스 이동 중 발생하는 부상이나 사고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으니 안전을 위해 개별적으로 일일여행자보험 가입을 권유합니다. |
준 비 물 | * 점심 도시락 * 충분한 식수 * 간단한 행동식 (초코파이,육포,사탕, 등등) * 스틱을 사용하는 편이 산행이 수월합니다. * 모자, 썬블록 준비하시면 좋습니다 * 장갑은 항상 배낭에 넣어두는게 좋습니다. * 가벼운 1회용 비닐 우비를 비상용으로 가방에 넣어두면 좋습니다. 가져오시면 유용합니다. |
문의 사항 | 운 조 (010 2252 7100) , 애플트리(010 2554 5561), 고두용(010 9256 4077) 아름다운관계(010 4847 8918) |
대율리전통한밤마을은 위천강 줄기가 조화를 이루고 커다란 느티나무가 마치 이 마을을 지켜주는 듯 한 자태로 우뚝 서 있어 시원한 그늘과 함께 마을 어른들의 좋은 쉼터가 되고 있다.
마을중심에는 행주 은씨 재실 4개와 김해김씨 재실 1개가 있는데 각 재실에서는 매년 시사 때(음력 10월 15일)마다 모여 제사를 드리며 친목도 다진다.
특히 은씨의 재실은 군위에서는 보기 드문 크고 화려한 것으로 기둥과 기와 등이 옛날 행주 은씨 선조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을 짐작케 한다.
군위군 부계 쪽으로 굽이굽이 고개길을 팔공산의 힘을 느끼며 내려가면 오래된 마을의 정취를 풍기는 조용한 마을, 소나무로 둘러싸인 마을을 만나게 된다.
여기저기 웅장하게 솟아있는 소나무와 소담한 돌담들 사이에서 이 마을이 범상치 않은 마을임을 쉽게 느낄 수 있다. 행정명칭 대율리, 이보다 더 널리 쓰이는 명칭은 순수한 우리말 한밤마을, 부림 홍씨들의 집성촌이다.
대율이란 마을의 이름에서 마을의 내력을 읽을 수 있다.
처음 이곳에 터를 닥은 신천 강씨들이 '일야(一夜)'라 부르던 마을이름을 부림 홍씨들이 이사해 오면서 대야(大夜)라 부르게 되었다.
그 뒤 밤 야(夜)자가 좋지 않다고 해서 밤율(栗)자로 바꿔 대율(大栗)이란 지명으로 고쳤다고 한다. 이 대율이란 지명을 순수 우리말로 표현하면 ‘한밤’이 된다.
오래된 마을에는 오래된 나무가 있다고 했던가, 마을 초입에 청정한 솔숲이 우거진 한밤성안의 모습이 한밤마을의 얼굴이다.
200년 이상 된 늙은 소나무들이 수 백그루 숲을 이루고 있어 그 나무들 속에서 불어오는 솔바람 향내가 이곳을 언제 찾아도 즐겁게 해준다.
이 한밤성안에는 진동단이라는 돌솟대가 있다.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석물로 본래는 팔공산에서 자라는 나무로 일년에 한번씩 깎아 새우던 솟대를 돌로 만들어 세운 것이다.
그 옆으로 야외무대 겸이 돌로 만들어져 있다. 한밤성안을 벗어나 마을안길로 접어들면 예쁜 돌담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마을을 만나볼 수 있다. 이 길을 따라가면 마을 한가운데 있는 대청에 이른다.
사방이 훌훌트인 구조로 한때 학동들을 가르치는 서당으로 사용되다가 이제는 마을의 노인들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경로당으로 사용되는 곳이다.
한밤마을은 돌담이 유난히 많다. 돌담의 전체 길이를 합치면 수천 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모든 길은 대청으로 모여들고 또 대청에서 갈라지는 돌담길.
마을좌우로 비껴가는 개천에 지천으로 널린 냇돌을 주어다 솜씨대로 쌓아 마을을 구석구석 둘러친 돌담장은 옛 마을의 정취를 그대로 느끼게 해준다.
대율리 상매댁
대율리(大栗里)의 마을 형국은 선형(船形)으로 본 가옥은 마을의 중심부에 위치하였으며, 산세(山勢)에 따라 북향하여 양지산(필봉)을 바라보고 있다.
대율리는 부림 홍씨(缶林 洪氏)의 집성촌으로 상매댁은 문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집이다.
또한 당시 의흥현(義興縣)에서 최고(最古)의 가옥으로 전하며 '남천고댁(南川古宅)'이라고도 불렀다.
본 가옥은 250여년 전에 부림 홍씨 우태(禹泰)선생의 살림집으로 그 후 주손(胄孫)들로 이어지면서 수차에 걸쳐 중수하였으며, 사랑채 대청 상부에 '숭정후 상지즉위이년 병신삼월십칠일 신시 수주 상량'(崇禎後 上之卽位二年 丙申三月十七日 申時 竪柱 上樑)이라는 상량문으로 보아 이 시기는 헌종 2년(1836)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원래 이 가옥의 형태는 '흥'(興)자형의 독특한 배치형태를 이루고 있었으나, 해방 후 중문채와 아래채가 철거되어 현재의 모습만 남아 있고 대문채는 옮기면서 향(向)을 바꾸었다.
현재는 ∩자형의 안채와 一자형의 사랑채, 사당이 있고 주위는 자연석 돌담으로 경계를 이루고 있다.
대율리 대청
이 마을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이 건물은 원래 조선 전기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때 소실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1632년(仁祖 10)에 중창된 학사(學舍)이다.
1651년(孝宗 2)과 1705년(肅宗 32)에 각각 중수된 바 있으며, 1992년에 건물을 완전 해체하여 부식재와 기와를 교체하면서 기단을 보수하였다.
대율리는 부림 홍씨(缶林 洪氏)의 집성촌으로, 대청(大廳)은 이 마을에서 돌담에 둘러싸인 전통가옥들이 산재한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일설에 율리(栗里)라는 전 부락이 사찰지였고 대청은 대종각(大鐘閣) 자리였다고 한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건물로 서측 퇴칸에만 간주(間柱)가 서 있다.
현재의 바닥은 전부 우물마루를 깔았고 사면이 개방되어 있지만 중창 당시에는 가운데 마루를 두고 양 옆에 방을 둔 형태로 건축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단의 장대석을 쌓은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아 원주를 세웠다.
기둥위에는 주두와 초익공 위에 대량을 얹었다.
대량 상부는 5량가로 대량위에 포대공을 놓아 2중 보를 얹었다.
종대공은 판대공으로 사다리꼴로 된 것과 초각된 것 등 2종이 보이며, 모두 첨차를 직교로 끼워 종도리 장혀를 받았다.
동쪽 퇴칸에는 대량에 걸쳐 충량을 걸었다.
지붕의 양단 박공면에는 하면이 수평으로 된 풍판을 달아 놓았다.
조선 중기 건축으로 초익공의 수법이나 포대공 등에서 나름대로의 특징이 있다.
대율리 석불입상
이 불상은 대좌(臺座)위에 서 있는 높이 2.65m의 완전한 석불입상인데 광배(光背)는 없다.
낮고 넓은 육계(六繫), 둥글고 우아한 얼굴, 작고 아담한 눈과 입, 어깨까지 내려진 긴 귀 등 세련된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오른손은 외장(外掌)하여 여원인(與願印)을 짓고 있는 반면, 왼손은 내장(內掌)하여 가슴에 대고 있어 독특한 수인(手印)을 이루고 있다.
입석미륵불(立石彌勒佛)이 입은 옷은 어깨까지 드리워져 있고, 양 어깨에 걸친 통견(通絹)의 불의(佛衣)는 가슴과 배를 지나 무릎까지 얕은 주름을 이루고 있는데, 팔목의 옷주름이나 직립한 긴 하체와 함께 당당하지만 다소 경직된 인상도 보여준다.
이처럼 다소 딱딱한 면도 보여주고 있지만 세련되고 당당한 신라불상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는 귀중한 석불입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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