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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文選 제17권
칠언율시(七言律詩)
1서회(書懷)
2담암 백 충간공 문보 만사(淡庵白忠簡公文寶挽詞)
3앙암(仰巖)에서 이첨(李詹)과 함께 지음[仰巖與李詹同賦]
4서강(西江)에 진수(鎭守)하면서[鎭守西江作]
5유 고주사(遊高住寺)
6유동암(遊東巖)
7병중에 안성립(安成立)의 집에 부쳐 있는데 가을비가 연일 오기에[得疾請寓安成立家秋雨連日]
8금주(錦州)로 부임하는 김시승(金寺丞)을 보내며[次金寺丞赴錦州韻]
9임인 청주작(壬寅淸州作)
10안정당(安政堂)의, ‘마을에 살며 한가히 읊음’을 차운하며[次安政堂村居閑詠]
11만 이밀직 창로(挽李密直彰路)
12제 유선암(題劉仙巖)
13임강(臨江)으로 가는 사람을 보내며[送人之臨江]
14유 자청궁(遊紫淸宮)
15경세(警世)
16여강 연집시(驪江宴集詩)
17사절로 왔다가 돌아가는 임행인(林行人)을 보내며[送林行人使還]
18항래 주해(航萊州海)
19금강산(金剛山)
20탐라(耽羅)
21차 송당 조정승 운(次松堂趙政丞韻)
22야박 금릉(夜泊金陵)
23원충갑(元衷甲)을 생각하며 원주(原州) 동헌(東軒)시운을 차한다[次原州東軒韻有懷元衷甲]
24강도 야박(江都夜泊)
25일월사(日月寺) 벽 위에 쓰다[日月寺壁上]
26각산(角山)에서 혼자 낚시질하며[角山獨釣]
27차 정선 객사 운(次㫌善客舍韻)
28사문도(沙門島)에서 벽상(壁上)의 시를 차운하며[次沙門島壁上韻]
29고성(固城)에서 아우에게 부치며[在固城寄舍弟]
30길재(吉再) 야은(冶隱)에 부쳐 쓰다[寄題吉再冶隱]
31제 남곡선생 시권(題南谷先生詩卷)
32신춘 감회(新春感懷)
33어옹(漁翁)
34아우 연수(延壽)가 강마을에 왔기에 기뻐서 짓다[舍弟延壽來江村喜而成詩]
35가을에 흥겨워서[高秋感興]
36차 청심루 운(次淸心樓韻)
37누항(陋巷)
38궁왕고도 유감(弓王故都有感)
39봄날 형과 아우에게 부침[春日寄昆季]
40봉천전(奉天殿)에 일찍 조회하며[奉天殿早朝]
41거듭 합포(合浦)에 놀며[重遊合浦]
42영월(寧越)로 부임하는 동년(同年) 곽정랑(郭正郞)을 보내며[奉送同年郭正郞赴寧越任]
43숙 멸포원루(宿滅浦院樓)
44한식(寒食)
45울주 잡제(蔚州雜題)
46제 선효원루(題宣孝院樓)
47신도(新都) 눈 오는 밤에 구양수(歐陽修)의 체를 본떠서[新都雪夜效歐陽體]
48산에 올라 혜상인(惠上人)의 원(院)에 쓰다[登山題惠上人院]
49촌거직사(村居卽事)로 서울 이선달(李先達)에 부치다[村居卽事寄京都李先達]
50서울로 가는 도중 장단(長湍)에서 정곡(鼎谷)에게 부치다[將赴京都長湍途中寄呈鼎谷]
51독곡(獨谷)의 시를 차운하여 길주서(吉注書) 시권(詩卷)에 쓰며[題吉注書詩卷次獨谷韻]
52강원도 도관찰(都觀察)로 가는 윤참찬(尹參贊)을 보내며[送尹參贊都觀察江原道]
53서북면(西北面)으로 출진(出鎭)하는 우정(雨亭) 조은문(趙恩門) 박(璞)을 전송하며[奉送雨亭趙恩門璞出鎭西北面]
54돈화문(敦化門)의 새벽 종[敦化門晨鍾]
55유의정 관 만장(柳議政 觀 挽章)
56봉사 일본 유감(奉使日本有感)
57즉사(卽事)
589월 9일에 느낌이 있어[重九有感]
59이중추(李中樞) 정간(貞幹)이 71세에 자친(慈親)의 90수연(壽宴) 차림을 하례하여[賀李中樞貞幹年七十壽九十慈親]
60동전(同前)
61기 양사군 여공 (寄梁使君 汝恭)
62차운(次韻)
63이이립(李而立)의 부친 시에 차운하여[次李而立見寄之韻]
64제 지평동헌(題砥平東軒)
65흥해(興海) 향교(鄕校) 달밤에 늙은 기생이 타는 거문고를 들으며[興海鄕校月夜聞老妓彈琴]
66차 강릉 동헌운(次江陵東軒韻)
67기 유태재(寄柳泰齋)
68차 밀양 영남루 운(次密陽嶺南樓韻)
69송경 회고(松京懷古)
70철원(鐵原) 취전주(聚錢州)에 당도하여[次鐵原聚錢州]
71하 이중추 연칠십 수구십 자친(賀李中樞年七十壽九十慈親)
72차 진남루 운(次鎭南樓韻)
73차 안동 영호루 운(次安東映湖樓韻)
74차 여강청심루 운(次驪江淸心樓韻)
75아들 안명(安命)에게 부침[寄子安命]
76강일용(姜日用)이 모란을 부(賦)한 고사를 써서 한원에게 부침[用姜日用賦牧丹故事寄呈翰苑]
77곡 윤대제학회(哭尹大提學淮)
78제 팔경도(題八景圖)
79어버이를 영화롭게 하려고 대구(大丘)로 돌아가는 서강중(徐剛中) 형제를 보내며[送徐剛中兄弟榮親歸大丘]
80차 무주 한풍루 운(次茂朱寒風樓韻)
81벽송정(碧松亭) 삼질놀이[碧松亭禊飮]
82병 요양(療養)차로 집에 있으며 회포를 써 인수(仁叟)에게[移病在家書懷寄仁叟]
83무현금(無絃琴)
84서재에서 황정(黃庭)의 내경(內景) 한 편을 읽어보니, 그 장생(長生)하는 법이 다만 세상의 누(累)를 떠나고 사람의 욕심을 끊는 두 가지 일에 있을 뿐이었다. 다시 앞의 운(韻)을 써서 경순(景醇)에게 부치다[齋室讀黃庭內景一篇其久視長生之術不過離世累斷人慾二事耳復用前韻寄景醇]
85양이(量移)의 명(命)을 듣잡고 우연히 읊음[聞量移之命偶吟]
86차 양양루 운(次襄陽樓韻)
87봉기 서강중(奉寄徐剛中)
88관서(關西)에 종사(從事)로 가는 구검상(具檢詳)을 보내며[送具檢詳從事關西]
89능성(陵城) 구좌상(具左相)께 올림[上陵城具左相]
90차 성천루 선시(次成川樓船詩)
91등 거제 무이루(登巨濟撫夷樓)
92길성(吉城)에서 현판 위의 시에 차운하여[次吉城板上詩韻]
93생각나는 대로[謾成]
94천사(天使) 김식(金湜)의 시에 차운하며[次金天使湜詩]
95귀양살이하면서 서강중(徐剛中) 학사가 부친 시에 차운하며[謫居次韻徐剛中學士見寄]
96제 창원 한벽루(題昌原寒碧樓)
97울진 동헌운(蔚珍東軒韻)
98도중 즉사(途中卽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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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서회(書懷)
윤소종(尹紹宗)
외로운 몸이 야복으로 임금님을 뵈었더니 / 孤身野服謁天門
옥음도 다사로이 정언 벼슬을 주셨더니라 / 玉色溫溫授正言
다시 무슨 마음 내 목숨 생각하리 / 更把何心謀性命
거듭 옛 의를 품고 천지에 맹세했네 / 重懷古義誓乾坤
국가 안위의 큰 상소를 못 올렸으니 / 未封社稷安危計
임금님 발탁하신 은을 크게 저버렸구나 / 大負君王眷拔恩
천 년 전에 하느님을 속이지 않은 분 / 千載不欺皇上帝
진탕과 유향 두 분의 충성된 혼 / 陳湯劉向二忠魂 공(公)이 정언(正言)이 되어 소(疏)를 초하여 행신(倖臣) 김흥경(金興慶)을 내치고 환관(宦官) 광대(廣大)를 베기를 청하고자 하니, 동관(同官)이 눈치를 알고 흥경의 뜻을 받아 다른 일로 공을 탄핵하여 상소하지 못하게 하였다. 생각하건대, 《한서(漢書)》에 왕봉(王鳳)이 진탕(陳湯)으로써 종사중랑(從事中郞)을 삼아서 막부(幕府)의 일이 다 탕에게 맡기어져 있었다. 유향(劉向)이 평소에 탕의 지혜와 용기를 기특히 여기고 함께 친하게 사귀었는데, 탕에게 이르되, “지금 외척(外戚)이 날로 성하여 반드시 유씨(劉氏)를 위태롭게 하리니 내가 다행히 동성(同姓)으로 한(漢)의 두터운 은(恩)을 입었은즉 내가 말하지 않으면 누가 말할꼬.” 하였다. 드디어 소(疏)를 올려 극히 간하였다. 공(公)의 뜻은 진탕이 이미 왕봉의 신임을 받았으니 만일 그가 한(漢)을 위하여 생각지 않고 유향의 말을 왕봉에게 누설했으면 봉이 반드시 먼저 향을 제거했을 터이니 향의 상소가 어찌 올려졌으랴 함이니, 지금 동관이 그렇지 않음을 깊이 탄식함이다.
2.담암 백 충간공 문보 만사(淡庵白忠簡公文寶挽詞)
윤소종(尹紹宗)
불법이 이 나라에 오래 크게 행해졌거늘 / 佛法東方久顯行
선생이 분기하여 주ㆍ정을 이었네 / 先生奮起接周程
개연히 성현을 끌어 사특한 설을 배척하고 / 喟然引聖排邪說
높직히 천리를 알아 천형을 논했도다 / 卓爾知天着踐形
천형은 담암이 지은 성리론 나라의 사명(외교문서)을 뉘 이제 윤색하리 / 爲命自今誰潤色
어둠을 깨쳐 주는 고명을 다시 우러를 데 없네 / 發矇無復仰高明
기나긴 만세 황천 밑 저승에서 / 悠悠萬世重泉下
옛 친구 좇아 놀 이는 우리 율정(윤택의 호)뿐이리 / 舊友從游我栗亭
율정(栗亭)과는 동방급제(同榜及第)였다.
[주-D001] 주(周)ㆍ정(程) :
송(宋)나라의 성리학자 주돈이(周敦頤)와 정호(程顥)ㆍ정이(程頤).
3.앙암(仰巖)에서 이첨(李詹)과 함께 지음[仰巖與李詹同賦]
윤소종(尹紹宗)
금성(나주)의 성이 남쪽 해변가에 있는데 / 錦城城在海南邊
오백 년 전에 국모가 예서 났네 / 大姒家邦五百年
한 척 배 타고 견훤이 이 길로 귀순해 왔고 / 一葦甄王歸命路
만 깃발로 현묘께서 예서 출진 맹세했네 / 萬旟顯廟誓師天
흥룡사 밖에 서기 아직 떠있고 / 興龍寺外浮佳氣
개계원 앞에 흰 연기가 나는구나 / 開界院前生白煙
성조(고려 태조)의 누선들 예서 맞았으니 / 聖祖樓船迎此地
동쪽으로 왜를 치는 오늘날 생각 그지 없어라 / 東征今日思悠然
[주-D001] 앙암(仰巖) :
나주(羅州) 금강(錦江) 남쪽 언덕에 있다.
[주-D002] 오백년 ……예서 났네 :
고려 태조의 장화왕후(莊和王后) 오씨(吳氏)는 목포(木浦)에서 났다. 태조가 수군(水軍)을 거느리고 나주로 출진하던 중 목포에 대었다가 후가 빨래하는 것을 보고 불러 관계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혜종(惠宗)이다. 뒤에 그 땅에 용흥사(龍興寺)를 지었다.
4.서강(西江)에 진수(鎭守)하면서[鎭守西江作]
정사도(鄭思道)
오뚝히 앉은 장군의 새하얀 머리 / 將軍兀坐鬢如絲
풍운은 강까지 휘몰아치고 밤은 오경 / 風雪連江五夜遲
하늘이 가까워 난새ㆍ봉새 날아 모이고 / 天近鸞鳳正翔集
길이 머니 천리마도 달리기에 지쳤네 / 路長騏驥倦驅馳
영윤이 세 번 쫓겨나도 노염 없기를 감히 바라리 / 敢希令尹三無愠
진평이 여섯 번 낸 기계만 노상 생각하네 / 每憶陳平六出奇
조두소리 뜸한데 잠 못 이루어 / 刀斗聲殘無夢寐
불 켜고 붓을 들어 새론 시를 쓰노라 / 呼燈援筆寫新詩
[주-D001] 영윤(令尹)이 …… 노염 없기 :
춘추 시대 때 초(楚)의 영윤(令尹) 자문(子文)이 세 번 벼슬에 올랐으나 기뻐하지 않고, 세 번 벼슬을 그만두게 되었어도 노여워하지 않았다.
[주-D002] 진평(陳平)이 …… 기계(奇計) :
한(漢)나라 진평(陳平)이 평생에 국가와 전쟁에 대해서 여섯 가지 기특한 꾀를 내었다.
5.유 고주사(遊高住寺)
정사도(鄭思道)
우연히 마을집을 나가 혼자 놀아 보려고 / 偶出村廬成獨遊
중 찾아가는 말 위에서 가을을 슬퍼하네 / 尋僧馬上更悲秋
솔은 일산을 벌이고 손을 맞고 보내는 듯 / 長松偃蓋如迎送
산들은 병풍을 치고 나를 만류하누나 / 疊嶂開屛解挽留
한참 앉았노라니 깊은 골짝에 저녁 그늘 생기고 / 坐久夕陰生邃壑
바람결에 낙엽은 빈 다락에 어지러운데 / 風來霜葉亂虛樓
차를 끓이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니 / 團欒煮茗同清話
나도 몰래 허튼 시름이 말끔 잊어지누나 / 忘却悠悠放逐愁
6.유동암(遊東巖)
정사도(鄭思道)
집도 없는 나그네가 산중에 몸을 부쳐 / 無家遠客寄山中
선가의 선정의 공부를 얻으려 하네 / 試得禪家定裏功
사다리로 절벽을 오르니 다리가 와들와들 / 脚困危梯緣絶壁
높은 각이 반공에 우뚝 눈이 아찔 / 眼明飛閣聳層空
종소리는 은은히 석양을 재촉하고 / 疎鍾隱隱催西日
풍경은 북풍에 댕그랑 댕그랑 / 高鐸鈴鈴響北風
밤 들어 방석에 앉아 마음도 고요한데 / 夜坐蒲團心正靜
노승은 말이 없는데 불등만이 붉구나 / 老僧無語佛燈紅
7.병중에 안성립(安成立)의 집에 부쳐 있는데 가을비가 연일 오기에[得疾請寓安成立家秋雨連日]
정사도(鄭思道)
가을비가 구슬피 오래 개지 않으니 / 秋雨淒淒久未晴
적막한 숲속에 인적이 끊이었네 / 煙林寂寞斷人行
마을 버들 뽀얀 빛에 시름이 더해지고 / 愁添巷柳空濛色
처마 끝 낙수소리에 잠이 깨누나 / 睡破茅簷點滴聲
홀로 집을 생각하는 먼 곳에 와 있는 몸 / 獨自思家嫌地遠
언제나 안개 걷히고 환한 하늘을 볼까 / 敢能披霧覩天明
길고 긴 추운 밤 지금이 몇시 쯤인고 / 漫漫寒夜知何刻
이웃에 닭이 있어 울어주니 고맙기도 하여라 / 喜有隣鷄不廢鳴
8.금주(錦州)로 부임하는 김시승(金寺丞)을 보내며[次金寺丞赴錦州韻]
강호문(康好文)
금계의 풍물이 주진촌과 비슷 / 錦溪形勝似朱陳
궁벽진 깊숙한 곳에 풍속도 순박하네 / 地僻天深俗亦醇
10리의 현가소리는 무성의 원님 / 十里絃歌武城宰
한 갈피 굴뚝 연기는 태고 적 백성들 / 一區煙火葛天民
곳곳마다 푸른 이끼 지나는 이가 적고 / 蒼苔到處經過少
붉은 살구꽃 필 무렵 농사 권장 자주 하네 / 紅杏開時勸課頻
요행 내 가난한 집이 추읍에 있으니 / 幸有貧居在楸邑
그대 정사보러 남으로 놀러 갈 때 봄 안 어기리 / 南遊觀政不違春
[주-D001] 주진촌(朱陳村) :
당(唐)나라 백락천(白樂天)의 주진촌(朱陳村)에 대한 시(詩)가 있는데, 그 마을에는 주(朱)ㆍ진(陳) 두 성이 살며 무릉도원(武陵桃源)처럼 깊숙하고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주-D002] 10리의 …… 원님 :
공자의 제자 자유(子游)가 무성(武城) 원[宰]이 되었는데 공자가 무성에 가서 현가(絃歌) 소리를 듣고 기뻐하였다.
9.임인 청주작(壬寅淸州作)
원송수(元松壽)
작년에 어가가 서울 떠날 때에 / 去歲鸞與出鳳城
구름 갈리 듯 비 흩어지 듯 눈물만 흘렸더니 / 雲離雨散淚盈盈
오늘까지 살아있을 줄 뉘 알았으리 / 誰知今日猶存喘
당시를 생각하니 전생일 같구나 / 却想當時似隔生
늙었단 말 들으니 머리 센 것 새삼 놀랍고 / 頭白忽驚聞老大
태평을 다시 보니 눈이 환히 기쁘네 / 眼明深喜見昇平
내 짓는 시 흥이 나서 짓는 것 아니고 / 作詩不是眞乘興
임진강 건너오던 일 적어 두려 함이로세 / 聊記臨津路上行
[주-D001] 작년에 …… 때에 :
공민왕(恭愍王)이 홍건적(紅巾賊)의 침입을 피해 송도를 떠나 복주(福州)로 향하던 때.
10.안정당(安政堂)의, ‘마을에 살며 한가히 읊음’을 차운하며[次安政堂村居閑詠]
원송수(元松壽)
조촐한 마을에 녹야당을 열었으니 / 綠野堂開洞裏天
세상 먼지인들 강가의 풍경 더럽히랴 / 世塵終不染江煙
새론 시가 눈에 가득하고 문전이 바로 산인데 / 新詩滿眼山當戶
온 집안에 기쁜 얼굴 논에 물이 질펀해라 / 喜氣渾家水瀲田
버들 늘어선 양 둑에 바람이 솔솔 / 兩岸微風楊柳外
연꽃 핀 못엔 달이 휘영청 밝아라 / 一池明月藕花前
그저 술 있고 몸 무사하면 족할 뿐인데 / 但敎有酒身無事
그까짓 이름자 남겨 만 년 간들 무엇하리 / 安用垂名動萬年
11.만 이밀직 창로(挽李密直彰路)
정도전(鄭道傳)
내 일찍 익재님 문하에서 공부할 때 / 憶曾受業益齋門
홀로 섰던 당시를 역시 들은 바 있었네 / 獨立當時亦有聞
아니나 다를까 적선한 집엔 여경이 있었고 / 積善盡知餘慶在
노성한 이는 갔으나 전형은 남았었네 / 老成雖遠典刑存
금준의 좋은 술은 봄향기 가득했는데 / 金樽美酒春長滿
옥자 널린 바둑판에 해가 또 어두웠네 / 玉子紋楸日又曛
가장 한스럽긴, 선장 이슬 한 잔 가져다가 / 最恨難將仙掌露
따라서 [注]병든 문원 구하지 못한 일이었어라 / 一杯救得病文園
[주-D001] 창로(彰路) :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의 셋째 아들.
[주-D002] 홀로 …… 있었네 :
공자(孔子)가 홀로 서 있을 때에 그의 아들 이(鯉)가 뜰 앞을 지나니 공자가, “너는 시(詩)를 배우고 예(禮)를 배우라.” 하였다.
[주-D003] 노성(老成)한 …… 남았었네 :
한(漢)나라 공융(孔融)은 채옹(蔡邕)을 좋아하였다. 채옹이 죽은 뒤에 얼굴이 채옹과 비슷한 늙은 병졸(兵卒) 한 사람을 불러 함께 술을 마시면서, “《시경》에, 노성한 이는 갔으나 전형은 남았구나 하지 않았는가.” 하였다. 여기서는 아들이 아버지를 닮았다는 뜻이다.
[주-D004] 선장(仙掌) 이슬 :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신선 되기를 원하여 구리로 신선의 손바닥을 만들어 세워 감로(甘露)를 받았다.
[주-D005] 병든 문원(文園) :
한(漢)나라 문인(文人) 사마상여(司馬相如)를 가리킴. 효문원령(孝文園令)을 지냈는데, 그는 소갈(消渴)병이 있었다.
12.제 유선암(題劉仙巖)
석굉연(釋宏演)
산이 뺑 둘린 외로운 마을의 작은 길 옆 / 山遶孤村小逕隈
먼 숲에 더위도 가셨는데 봉래를 찾아왔네 / 遠林暑薄訪蓬萊
신선이 온 줄 알고 학은 구름 낀 골에 날고 / 鶴飛雲洞知仙起
손님을 접대하려 동자는 현관을 쓰는구나 / 童掃玄關待客來
샘물은 돌시내에 와서 슬그머니 옥을 울리고 / 泉至石渠鳴暗玉
불이 단조에 남아 식었던 재 되살아나네 / 火存丹竈活寒灰
문득 들리는 공중의 철적소리 / 忽聞鐵笛空中響
10리의 솔나무꽃 하루밤에 피어나누나 / 十里松花一夜開
더위를 피하고 산도 볼 겸 석대에 올라오니 / 避暑看山上石臺
신선의 궁전이 일시에 활짝 열렸네 / 紫霞宮殿一時開
솔그늘이 자리를 둘러 푸른 기운 뫼에 어리었고 / 松陰圍座靑凝嶂
떡갈잎이 산을 이어 파란 빛 더미로 쌓았네 / 槲葉連山翠作堆
동자는 구름속에 약 캐러 가고 / 童子雲中採藥去
고인은 대밭에서 거문고 안고 오누나 / 高人竹外抱琴來
이윽고 샘물 길어다 산중의 차를 다리니 / 汲泉旋煮山中茗
그까짓 포도주잔 무엇에 쓰리 / 不用蒲萄浸酒杯
[주-D001] 현관(玄關) :
현묘(玄妙)한 도(道)의 문을 말하고, 또 도를 닦는 집의 문을 지칭하기도 한다. 당시(唐詩)에, “수풀 밑에 현관(玄關)을 닫았네.” 하였는데 이는 절[寺]을 말한 것이다.
[주-D002] 단조(丹竈) :
신선되는 단약(丹藥)을 만드는 아궁이.
[주-D003] 공중의 철적소리 :
철적(鐵笛)은 신선이 분다고 알려져 있다.
13.임강(臨江)으로 가는 사람을 보내며[送人之臨江]
석굉연(釋宏演)
바라보니 강 마을에 단풍잎 날리는데 / 擧目江村楓葉飛
서리는 땅에 가득 옷이 축축하구나 / 霜華滿地侵人衣
늙으신 내 어머님 방금 생각던 차 / 正憶慈親歲年老
그대 고향에 돌아간단 말 듣기도 두렵소 / 怕聞客子鄕里歸
바다의 어룡들은 가을 물이 써늘한데 / 湖海魚龍秋水冷
동남의 옛 친구들은 새벽 별처럼 드물구나 / 東南耆舊曉星稀
푸른 산 맑은 강이 즐길 만하거니 / 碧嶂淸江可行樂
어쩌다 고산 고사릴 내사 캐지 않으리 / 如何不採故山薇
14.유 자청궁(遊紫淸宮)
석굉연(釋宏演)
홍애(선인의 이름)선생이 옛날 숨어 살던 곳 / 洪崖先生舊所隱
뜰앞에 벽도화꽃 떨어지누나 / 階下碧桃花飄零
밤에도 우물에서 광채나니 단약이 남아있고 / 夜光出井留丹藥
봄 이슬이 솔을 적셔 복령이 생기네 / 春露浥松生茯苓
천녀들은 혹 녹옥장을 들고 있고 / 天女或携綠玉杖
선인은 저마다 황정경(선가의 경전)을 읽고 있네 / 仙人自讀黃庭經
5리도 못 되는 이웃 절로 돌아오니 / 隣寺歸來不五里
연기만 자욱하여라 바라봐도 안 보이네 / 回頭望斷煙冥冥
15.경세(警世)
석나옹(釋懶翁)
해는 동쪽에서 솟자 달은 서로 잠기니 / 金烏東上月沈西
인간의 죽고 삶이 천태만상이어라 / 生死人間事不齊
입안에서 세 치 기운을 토해 내다가도 / 口裏吐將三寸氣
산 머리에 한 더미 흙을 보태 놓을 뿐 / 山頭添得一堆泥
세상 인연 시끄럼을 뉘 먼저 깨달으리 / 塵緣擾擾誰先覺
업과 식이 망망하니 길 몰라 헤매네 / 業識茫茫路轉迷
윤회를 벗어나려면 다른 법이 없나니 / 要脫輪回無別法
조사의 주신 공안(참선하는 사람의 화두)을 잘 받들어 깨치소 / 祖師公案好提撕
추위ㆍ더위 번갈아 재촉, 그저 세월은 흐르기만 / 寒暑催人日月流
몇번 즐거움에 몇번이나 시름인고 / 幾多讙喜幾多愁
끝내는 백골되어 푸른 풀이 덮일 뿐 / 終成白骨堆靑草
아무리 황금으로도 검은 머리 살 수 없네 / 難把黃金換黑頭
죽은 뒤에 부질없이 천고의 한을 품나니 / 死後空懷千古恨
생전에 잠시인들 뉘 어이 쉬오리 / 生前誰肯一時休
성현들도 모두 다 범부가 이루는 것 / 聖賢都是凡夫做
그 분들 닦은 양대로 왜들 닦지 않는가 / 何不依他樣子脩
16.여강 연집시(驪江宴集詩)
권근(權近)
황려고을 산수가 워낙 맑고 기교한데 / 黃驪山水自淸奇
관개(옛날 귀족이 타던 수레)들 모이는데 앞서 기약 있은 듯 / 冠蓋相逢若有期
별원에 현가소리 자리가 질서 있고 / 別院絃歌筵秩秩
긴 강에 구름과 달 밤도 더디 가누나 / 長江雲月夜遲遲
띄운 배는 아득히 은하수로 통하고 / 浮査縹緲通霄漢
날리는 눈은 사뿐사뿐 술잔 위에 떨어지네 / 飛雪霏微落酒巵
다행 여러분을 모신 이 성한 모임 / 幸與諸公陪盛集
풍류랑 문채랑이 어느 때보다 낫구나 / 風流文彩勝當時
17.사절로 왔다가 돌아가는 임행인(林行人)을 보내며[送林行人使還]
권근(權近)
구리 기둥과 부상, 사해가 멀어도 / 銅柱扶桑四海遙
성대에 성교하니 문명이 찬란하네 / 盛時聲敎煥文昭
후손이 덕을 이뤄 탕이 태갑에 전하고 / 裕孫成德湯傳甲
임금 도와 거듭 빛나 순이 요를 이은 일 / 協帝重華舜繼堯
책력에 정월을 고침은 대통을 높임 / 曆改月正尊大統
하늘은 성상을 열어 중천에 이바지하네 / 天開星象供中霄
작별할 때 주는 말씀 별다른 것 없사오니 / 臨分贈別無長策
내 꾀가 요조같다고 행여 이르지 마옵소 / 莫謂吾謀似繞朝
[주-D001] 행인(行人) :
외교(外交)를 맡은 관명(官名)이다.
[주-D002] 구리 기둥 :
한(漢)나라 마원(馬援)이 교지(交趾)를 정복하고 구리기둥을 세워 한(漢)의 경계를 표시하였다.
[주-D003] 임금 도와 거듭 빛나 :
순(舜) 임금을 찬미하는 말인데, 소(疏)엔, “순(舜)이 요(堯)를 이어 그 문덕(文德)을 거듭 빛낸다.” 했다.
[주-D004] 책력에 정월을 고침은 :
하(夏)ㆍ은(殷)ㆍ주(周) 3대 이래 왕조가 바뀔 때마다 역서(曆書)의 정월이 달라졌다.
[주-D005] 요조(繞朝) :
춘추(春秋) 시대 때에 진(晉)나라 사회(士會)가 망명하여 진(秦)나라에 가서 벼슬을 하고 있었는데, 그 뒤 진(晉)나라에서 다시 사회(士會)를 불러 쓰려다가 싸움이 나서 두 나라 군수가 하수(河水) 양쪽에서 대진하게 되었다. 강화(講和)의 대표로 사회를 보내라고 청하니, 진(秦)나라 요조(繞朝)라는 사람이, “사회가 가면 오지 않을 것이니 보내서는 안된다.”고 하였으나 진(秦)나라에서는 마침내 사회를 보내기로 하였다. 출발할 때에 요조(繞朝)가 사회에게 채찍을 주면서, “자네는 진(秦)나라에 사람이 없다 하지 말라. 내 꾀를 쓰지 않았을 뿐이다.” 하였다.
18.항래 주해(航萊州海)
권근(權近)
열 길 돛대에 만곡들이 배 / 十丈風帆萬斛船
구름 활짝 열리니 창해 아득 가이 없네 / 雲開蒼海渺無邊
별이 물결에 드리워 서로 비치고 / 星垂雪浪相涵映
물이 은하에 부딪쳐 맞붙어 이었구나 / 水拍銀河共接連
가다가 대양 반쯤에서 장사를 슬퍼하리 / 可向半洋悲壯士
멀리 삼도에서 신선들을 물어 무엇하리 / 不須三島問群仙
배안에서 흥겨워 누운 채 우러러보니 / 舟中偃仰堪乘興
두둥실 띄운 이 떼 하늘까지 가는 듯 / 自是浮槎便上天
19.금강산(金剛山)
권근(權近)
눈같이 우뚝우뚝 선 천만 봉우리 / 雪立亭亭千萬峯
바닷구름 펼치자 드러나는 옥 연꽃 / 海雲開出玉芙蓉
늠실대는 신비한 빛 창해를 닮은 듯 / 神光蕩漾滄溟近
굼틀대는 아늑한 기운 조화를 모은 듯 / 淑氣蜿蜒造化鍾
오뚝 솟은 산부리는 조도를 굽어보고 / 突兀岡巒臨鳥道
맑고 깊숙한 골안에는 신선의 자취 감추었네 / 淸幽洞壑秘仙蹤
동국에 노는 분들 모두 절정에 올라서 / 東遊便欲凌高頂
우주를 내려다보며 가슴 한 번 씻으려네 / 俯視鴻濛一盪胸
[주-D001] 금강산(金剛山) :
이하 두 수는 작자가 명 태조(明太祖)에게 입조(入朝)했을 때의 응제시(應制詩)이다.
20.탐라(耽羅)
권근(權近)
파릇파릇 한 점 한라산이 / 蒼蒼一點漢羅山
만경창파 아득한 속에 멀리 있네 / 遠在洪濤浩渺間
사람이 별에 나타나서 바다 나라에 왔었고 / 人動星芒來海國
말은 용의 씨를 낳아 하늘 우리로 들어오네 / 馬生龍種入天閑
벽지마다 백성들은 업이 있어 살아가고 / 地偏民業猶生遂
바람편에 장사배가 겨우 오고 갈 뿐 / 風便商帆僅往還
성대의 직방에서 판적을 닦을 때 / 聖代職方修版籍
이 고장 누추하지만 부디 빠치지 마옵소서 / 此方雖陋不須刪
[주-D001] 사람이 …… 왔었고 :
응제시(應制詩) 본집(本集) 작자의 자주(自註)에 “옛날 탐라 사람이 신라에 내조(來朝)할 때 객성(客星)의 응(應)이 있었으므로 나왕(羅王)이 기뻐 성자(星子)란 호를 주었다.” 하였다. 탐라 시조 고을나(高乙那)의 15대손 고후(高厚)ㆍ고청(高淸) 등이 바다를 건너 탐진(耽津)에 도착했을 때 객성(客星)이 남쪽에 보였으므로 신라왕이 내조한 고후를 별한[星主]이라 일컬었다 한다. 《高麗史 地理志》
[주-D002] 하늘 우리[天閑] :
황제의 말 외양간. 제주도 목장에 말을 길러 그 중 뛰어난 말을 중국에 조공했다.
[주-D003] 직방(職方) :
벼슬 이름. 《주례(周禮)》천관(天官)의 하나. 천하의 지도(地圖)를 맡아보고 사방의 조공을 주장했다.
21.차 송당 조정승 운(次松堂趙政丞韻)
권근(權近)
모래 뚝이 예와 같이 문앞에 비꼈는데 / 沙堤依舊倚門鈄
삼한의 교목(대를 이어 벼슬한 집안)으로 적선해온 가문 / 喬木三韓積善家
길 가다 소를 물으니 나라 근심 간절하고 / 道上問牛憂國切
조정에 독수리를 천거하여 어진 이를 많이 나게 했네 / 朝中薦鶚進賢多
훈신으로 철권이 두 축을 이었고 / 勳臣鐵券聯雙軸
재상의 백마서(관상서)에 오화를 겹쳤네 / 冢相麻書疊五花
노론을 이미 반 부씩 갈랐다 했으니 / 已道魯論分二半
다시 반 부에 일 시작함이 어떠하리 / 更加一半著功何
[주-D001] 모래 뚝 :
당나라 때에 정승이 새로 임명되면 그 집 문앞에서부터 모래를 쌓아 새 길을 만들었는데 그것을 사제(沙堤)라 하였다.
[주-D002] 길 가다 소[牛]를 물으니 :
한(漢)나라 병길(丙吉)이 승상(丞相)이 되었을 때에 어떤 사람이 소를 쫓아가는데 소가 헐떡이며 혀를 내뽑는 것을 보고 하인을 시켜, “소를 몇 리나 쫓아왔느냐.” 물어보았다. 그 까닭을 물으니, 그가 말하되, “삼공(三公)은 음양(陰陽)의 조화(調和)함을 맡았으니 지금 보니까 소가 헐떡이니 혹시 음양이 고르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여 물었노라.” 하였다.
[주-D003] 조정에 독수리를 천거하여 :
후한(後漢) 공융(孔融)이 명사 예형(禰衡)을 조정에 천거하는 표(表)에 형을 찬양하여, “어느 지조(鷙鳥)가 비록 백이라도 악(鶚)하나만 못하다.” 하였다. 즉 현사(賢士) 인재를 조정에 천거한다는 뜻.
[주-D004] 철권(鐵券) :
옛날 공신(功臣)에게 내려주던 쇠로 만든 문권. 붉은 글씨[丹書]로 적었으며, 반쪽을 주고 반쪽을 나라에 보존해 두었다.
[주-D005] 오화(五花) :
당나라 때에 여러 재상이 함께 결재할 것에 서명(署名)하는데, 글자의 모양이 꽃처럼 되었으므로 이를 오화판사(五花判事)라 한다.
[주-D006] 노론(魯論) :
《논어(論語)》에 노론(魯論)과 제론(齊論)이 있는데, 지금 전하는 것은 노론(魯論)이다. 송나라 조보(趙普)가 항상 논어를 읽으면서 송 태조(宋太祖)에게 말하기를, “신이 《논어》반부(半部)로서 폐하를 보좌하여 천하를 얻었고, 다시 반부로서 폐하를 보좌하여 천하를 다스리겠습니다.” 하였다.
22.야박 금릉(夜泊金陵)
조준(趙浚)
목난주를 댄 푸른 물에 철 늦은 붉은 연꽃 / 蘭舟綠水晩荷紅
금릉 밤 바람에 하룻밤을 묵어가네 / 夜泊金陵一夜風
늙은 버들 긴 뚝은 양자강 나루터 / 老柳長堤楊子渡
시들은 꽃 가는 풀은 관왜의 옛 궁 / 寒花細草館娃宮
백 년의 영욕으로 사람 장차 늙는구나 / 百年榮辱人將老
6대의 흥망은 새가 공중으로 사라지 듯 / 六代興亡鳥沒空
천하의 제일 강한 것은 오직 인일 뿐 / 天下莫强仁可結
종산(자금산)이 은은하고 달은 어른어른 / 鍾山隱隱月朦朧
[주-D001] 관왜(館娃) :
궁(宮) 이름. 오왕(吳王) 부차(夫差)가 서시(西施)를 총애하여 거처하게 했던 궁.
[주-D002] 6대의 흥망(興亡) :
지금의 남경인. 금릉(金陵)은 오(吳)ㆍ동진(東晉)ㆍ송(宋)ㆍ제(齊)ㆍ양(梁)ㆍ진(陳) 여섯 조(朝)가 도읍했던 곳이다.
23.원충갑(元衷甲)을 생각하며 원주(原州) 동헌(東軒)시운을 차한다[次原州東軒韻有懷元衷甲]
조준(趙浚)
오랑캐의 말이 바람치 듯 횡행하는데 / 鐵關胡馬若風行
한 칼로 공이 높은 백면서생 / 一劍功高白面生
나라에 허락한 충성은 응당 해를 꿰겠고 / 許國孤忠應貫日
몸을 잊은 대의는 곧 장성일세 / 忘身大義便長城
지금토록 부로들은 남은 덕택을 입었고 / 至今父老蒙餘澤
후세의 영웅들 그 성명에 절하오리 / 後世英雄揖盛名
나 역시 오랑캐를 쓸어 임금께 아뢰고서 / 我亦掃淸敷奏已
살구꽃 봄비 올 때에 짝 지어 밭 갈려네 / 杏花春雨耦而耕
[주-D001] 원충갑(元衷甲) :
충렬왕(忠烈王) 때 진사로 원주 별초(別抄). 합단적(哈丹賊)의 침공을 막아 큰 공을 세웠다. 《여지승람》
[주-D002] 짝 지어 밭 갈려네 :
춘추 시대 때 은사(隱士) 장저(長沮)와 걸익(桀溺)이 짝지어 밭을 갈았다.
24.강도 야박(江都夜泊)
조준(趙浚)
산빛과 강물소리 모두 다 고요한데 / 嶽色江聲共寂寥
어느 주루 위에서 밤에 피리를 부는고 / 朱樓何處夜吹簫
달 밝은 회수 위에 서리가 갓 내리고 / 月明淮水霜初落
가을도 다한 강도에 버들 시들지 않았네 / 秋盡江都柳未凋
서울 떠나 좋은 철이 자주도 지나가네 / 去國頻驚佳節過
배를 대니 먼 고향이 다시금 그리워라 / 擊舟還憶故園遙
가엾어라, 양제가 봄 놀이 하던 곳 / 可燐煬帝春遊處
갈꽃이 새하얀데 늦조수만 밀려드네 / 一色蘆花欲晩潮
25.일월사(日月寺) 벽 위에 쓰다[日月寺壁上]
조준(趙浚)
평생 놀이를 즐기고 말쑥한 경치 사랑하여 / 平生疏蕩愛淸幽
가을에 멀리 싸늘한 산, 옛 절에 올라왔네 / 遠上寒山古寺秋
전조를 생각하고 눈물을 닦나니 / 一望前朝仍抆淚
만사를 모두 잊고 홀로 다락에 오르네 / 都忘萬事獨登樓
송악산 겨울 비는 찬 소리도 급한지고 / 崧巒凍雨寒聲急
자하동 가는 구름은 푸른 빛이 떠있구나 / 紫洞歸雲翠色浮
내 구구히 명리에 살아 무엇하리오 / 安用栖栖居寵利
표연히 다 떨쳐버리고 적송자와 놀리라 / 飄然欲與赤松遊
[주-D001] 표연히 …… 놀리라 :
적송자는 신선인데 한(漢)나라 장량(張良)이, “인간 일을 버리고 적송자를 좇아 놀고자 한다.” 하였다. 《漢書 張良傳》
26.각산(角山)에서 혼자 낚시질하며[角山獨釣]
조준(趙浚)
서리 내리자 강은 차갑고 기러기는 나는데 / 霜落江寒雁正飛
천 폭 돛이 모두 석양 빛일세 / 千帆一色夕陽時
높은 갓으로 나라를 부축하니 영욕이 있었는데 / 高冠扶國有榮辱
작은 배에 고기를 낚으니 시비가 없네 / 短棹釣魚無是非
만 이랑 벼는 누른빛 세계 / 萬頃稻梁黃世界
반강의 가을 물결은 새파란 유리 / 半江秋浪碧琉璃
갈꽃은 눈 같고 산은 그림 같은데 / 蘆花如雪山如畫
해질 무렵 돌아오느라니 비가 옷에 가득차네 / 薄暮歸來雨滿衣
27.차 정선 객사 운(次㫌善客舍韻)
조준(趙浚)
계산에 첫눈 오자 행인도 적은데 / 溪山初雪少人行
흥에 겨워 높이 읊으며 이 성에 이르렀네 / 乘興高吟到鳳城
첩첩한 물은 뇌성처럼 땅을 치며 들어오고 / 水疊雷犇衝地入
봉은 층층 병풍을 묶어 반공에 비꼈구나 / 峯層屛束半天橫
잔 들고 검을 보며 내 뜻을 위안하고 / 引杯看劍寬吾志
고삐 잡고 풍속 보며 인심을 점검하네 / 攬轡觀風檢俗情
동해를 말끔히 씻을 날이 있으리니 / 滌蕩東溟當有日
백성들 다 눈을 씻고 맑아질 때를 기다리네 / 居民洗眼待澄淸
[주-D001] 맑아질[澄淸] :
한(漢)나라 범방(范滂)이 지방을 안찰(按察)하러 나갈 때에 수레에 올라 고삐를 잡고 천하를 맑힐 뜻이 있었다.
28.사문도(沙門島)에서 벽상(壁上)의 시를 차운하며[次沙門島壁上韻]
박의중(朴宜中)
새벽 해 떠오르고 밤 안개가 걷히니 / 曉日初昇宿霧收
신선 궁궐의 금빛 벽이 모랫가에 번쩍이네 / 仙宮金壁耀沙頭
세 모퉁이에 솔밭처럼 산들이 벌여 있고 / 三隅鼎峙山朝拱
사면에 빙 둘러 바닷물이 흐르누나 / 四面環回海漫流
돌에 물결이 부딪쳐 늘 눈이 솟는 듯 / 激石驚濤常湧雪
빈 각에 바람이 써늘, 절로 가을이 생기네 / 含風虛閣自生秋
끝없이 시원한 경치 말로 다할 수 없으니 / 無窮爽槪應難盡
새론 시를 지어 좋은 놀이 적을 밖에 / 故作新詩記勝遊
29.고성(固城)에서 아우에게 부치며[在固城寄舍弟]
성석린(成石璘)
눈을 들어 보니 강산이 깊고 또 깊은데 / 擧目江山深復深
집의 편지는 한 자가 천 금 값일세 / 家書一字抵千金
밤중에 달을 보면 부모 생각 눈물이요 / 中宵見月思親淚
대낮에 구름 보곤 너를 그리는 내 마음 / 白日看雲憶弟心
두 눈으로 꽃을 보니 봄 안개가 어린 듯 / 兩眼看花春霧隔
비녀꽂은 화사한 머리엔 새벽서리 나리네 / 一簪華髮曉霜侵
봄바람이 어느덧 수심을 스쳐가니 / 春風不覺愁邊過
푸르른 나무 꾀꼬리 울음 문득 숲에 가득했구나 / 綠樹鶯聲忽滿林
30.길재(吉再) 야은(冶隱)에 부쳐 쓰다[寄題吉再冶隱]
성석린(成石璘)
산밑 시냇가의 두어 간 초가집 / 山下數閒溪畔廬
손수 심은 솔과 대의 새파랗게 성긴 가지 / 手栽松竹碧翁疏
마누라는 잔을 씻어 새 술독을 열고 / 細君洗爵開新醞
어린 아들은 등불을 돋우고 옛 글을 읽네 / 稚子挑燈讀古書
세상을 우습게 보는 중산처럼 풀무질이나 하리 / 玩世肯爲中散鍛
빛을 감추니 자릉(후한 엄광의 자)의 낚시질 비슷하구나 / 韜光正似子陵漁
문앞 행길에 수레들 많이 지나건만 / 門前官道多冠蓋
누워서 바라보나니 엎어지거나 말거나 / 高臥從渠自覆車
[주-D001] 중산(中散) :
진(晉)의 혜강(嵇康). 그가 중산대부(中散大夫)를 지냈다.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 그는 대장장이의 풀무질을 좋아하여 벗 상수(向秀)와 더불어 마주앉아 풀무질을 하며 방약무인(傍若無人)했다. 여기서는 특히 야은의 야(冶) 자를 두고 쓴 말이다.
31.제 남곡선생 시권(題南谷先生詩卷)
성석린(成石璘)
나라 위한 높은 뜻이 북두 남쪽에 비치건만 / 許國孤標映斗南
돌아와 골짜기에 세 길을 열었구나 / 歸來谷口逕開三
만년의 신세는 날기에 지친 새처럼 / 晩年身世鳥飛倦
젊은 시절 공명은 개미 싸움이 부산했네 / 少日功名蟻戰酣
봄바람에 거닐면서 만물의 변화를 관찰하고 / 步屧春風觀物化
달 밝은 밤 풀 깔고 농사얘기 주고 받네 / 班荊月夕聽農談
강호에서나 조정에서나 마음이야 다르리만 / 江湖廊廟心何異
내 집을 사랑하여 조는 맛이 달겠네 / 爲愛吾廬睡味甘
[주-D001] 북두(北斗) 남쪽에 비치건만 :
북두성(北斗星)은 하늘의 북쪽에 있으므로 북두의 남쪽이란 천하를 말하는 것이다.
[주-D002] 개미 싸움 :
송나라 구양수(歐陽修)가 과거(科擧)의 시관이 되었을 때에 시를 짓기를, “1만 개미 다툴 때에 봄날이 따뜻하다[萬蟻爭時春日暖].” 하였다. 여러 선비가 과거보는 것을 개미의 싸움에 비유한 것이다.
[주-D003] 내 집을 사랑하여 :
도연명(陶淵明)의 〈독산해경(讀山海經)〉에 “뭇 새는 의탁할 곳 있음을 기뻐하거니, 나도 또 내 집을 사랑하노라.”
32.신춘 감회(新春感懷)
설장수(偰長壽)
새해에 만물이 모두 새로움을 머금는데 / 新年萬物俱含新
아홉 번이나 송악ㆍ용수의 봄을 본단 말인가 / 九見鵠峯龍岫春
지당의 풀이 안 푸르니 꿈을 아직 못 꾸었고 / 草池未碧不成夢
매화 꽃이 가지에 가득 사람보고 웃는 듯 / 梅花滿枝如笑人
중원의 늑대와 범들을 어쩌면 쉬게 하고 / 中原安得息豺虎
북궐엔 어느 때나 봉과 기린이 오겠는가 / 北闕幾時來鳳麟
녹록한 신세를 되는 대로 두고 / 形迹從敎猶碌碌
이웃과 어울려서 탁주나 기울이세 / 謾傾濁酒偕比隣
[주-D001] 지당(池塘)의 …… 꾸었고 :
동진(東晉)의 시인 사영운(謝靈運)이 말하기를, “매양 시를 지을 때에 혜련(惠連 사영운의 족제)을 대하면 문득 아름다운 귀절을 이루었다. 일찍 영가(永嘉)가 서당(西堂)에서 시를 생각하다가 온종일 못 지었는데, 문득 혜련을 꿈에 보고 지당생춘초(池塘生春草)라는 구를 얻었는데, 그것은 신공(神功)이지, 내 말이 아니다.” 하였다.
33.어옹(漁翁)
설장수(偰長壽)
뜬 이름에 매어 구질구질 바쁘지 않고 / 不爲浮名役役忙
생애를 찾아 물 구름 고장에 오락가락 / 生涯追逐水雲鄕
따뜻한 봄 질펀한 호수에 안개가 천 리 / 平湖春暧煙千里
가을 경치 한창인데 달 아래 외로운 배 / 古岸秋高月一航
자맥ㆍ홍진에는 꿈조차 없고 / 紫陌紅塵無夢寐
푸른 도롱이 부들삿갓으로 평생을 짝하누나 / 綠蓑靑蒻共行藏
어여차 한 마디 노래 속의 그 멋이 / 一聲款乃歌中趣
인간의 높은 벼슬을 부러워나 할소냐 / 那羨人閒有玉堂
34.아우 연수(延壽)가 강마을에 왔기에 기뻐서 짓다[舍弟延壽來江村喜而成詩]
설장수(偰長壽)
삼 년 동안 동생 생각 얼마나 했나 / 三年費我鶺鴒思
하루에도 열두 때 견디기 어려웠네 / 一日那堪十二時
몸과 그림자만 마주 보니 외롭기도 하였지 / 形影自憐孤且弱
빨리 가는 세월에 늙기도 많이 했네 / 光陰還覺老將衰
자형꽃같이 즐김을 같이 하지 못하고 / 紫荊花樹歡娛阻
푸른 풀 연못에 꿈만이 오갔지 / 靑草池塘夢寐隨
뜻밖에 만나니 슬프고도 기쁘이 / 邂逅相逢悲喜處
이 봄날 한강 가에서 술이나 흠뻑 마시세 / 春風尊酒漢江湄
[주-D001] 자형(紫荊) 꽃 :
자형화(紫荊花)는 곧 상체화(常棣花)인데, 꽃이 서로 뭉쳐 피므로 형제에게 비유된다.
35.가을에 흥겨워서[高秋感興]
설장수(偰長壽)
거용관 밑 예전 창평 고을 / 居庸關下古昌平
용호대 앞의 옛날 황제의 서울 / 龍虎臺前舊帝京
한밤중 서늘한 바람이 가죽 장막에 불고 / 半夜涼風吹毳帳
한 잔 맑은 이슬이 금경에서 나왔구나 / 一杯淸露出金莖
3천 무사들의 호위도 장했을씨고 / 三千武士嚴輿衛
열 여섯 천마도 성미에 다 맞았네 / 十六天魔適性情
만 리 밖에 와서 행락하던 곳 슬퍼하노니 / 萬里却嗟行樂地
빈 성엔 연기만 자욱, 풀조차 시들었구나 / 淡煙衰草滿空城
[주-D001] 창평(昌平) :
현 북평(北平)의 북쪽 고을. 북평 북방의 첫째 요해지.
[주-D002] 금경(金莖) :
한 무제(漢武帝)가 감로(甘露)를 받으려고 세웠던 선인장(仙人掌) 두 기둥.
[주-D003] 천마(天魔) :
불가어(佛家語). 욕계(欲界) 제6천(天)의 파순(波旬)을 위주한 16 마군(魔軍)들.
36.차 청심루 운(次淸心樓韻)
도원흥(都元興)
10년 만에 또 다시 이 난간에 의지하니 / 十載還憑此檻端
내 젊은 얼굴 변한 것을 미인도 물론 웃으리 / 美人應笑變朱顔
두어 장대 지는 해는 외로운 탑에 밝고 / 兩竿落日明孤塔
한 오리 긴 강은 뭇 산을 안고 있네 / 一帶長江抱衆山
단풍잎 건너편에 보라매가 서리고 / 野鶻遠盤紅樹外
벽공 아득한 사이로 가는 기러기 사라지네 / 征鴻高沒碧虛閒
익히 전배들이 이 호수에 놀았음을 들었더니 / 飽聞前輩遊湖事
이제는 여울 녘에 그림배만 한가하구나 / 今見灘頭畫舸閑
[주-D001] 두어 장대[竿] 지는 해 :
해가 지려면 아직도 한 장대만큼 거리가 남았다는 것이다.
37.누항(陋巷)
정총(鄭摠)
누항의 생애는 표주박 하나뿐 / 陋巷生涯只一瓢
참새 그물을 칠 만큼 문전이 아주 쓸쓸하네 / 門堪羅雀轉寥寥
나무 끝의 병든 잎은 가을을 알아 떨어지고 / 樹頭病葉知秋下
섬돌 위의 새 이끼는 비를 맞으며 으시대네 / 階面新苔挾雨驕
게으르고 느리기야 혜숙야(혜강의 장가숙야)도 있었지 / 懶慢有如嵆叔夜
깨고도 어린 듯하긴 개관요 비슷할까 / 醒狂或似蓋寬饒
이즈음 세 길에 솔과 국화가 거칠어도 / 邇來三徑荒松菊
닷 말 쌀에 지금 사람은 상기 허리 굽히데 / 五斗令人尙折腰
[주-D001] 개관요(蓋寬饒) :
한(漢)나라 사람 개관요(蓋寬饒)는 강직한 사람인데 당시의 귀족인 허백(許伯)의 새 집 낙성식에 가서 술을 마시다가, “이 집이 객관과 같으니 주인이 갈리겠구나.” 하였다. 옆의 사람이 민망하여, “차공(次孔 개관요의 자)은 술만 취하면 미친다.” 하니, 주인이, “차공은 깨어있으면서도 미쳤구먼.” 하였다.
[주-D002] 이즈음 …… 거칠어도 :
〈귀거래사(歸去來辭)〉에 “세 길이 비록 거칠었으나, 솔과 국화는 아직 있네[三徑雖荒 松菊猶存].”라는 말이 보인다.
[주-D003] 닷 말 쌀에 :
도연명이 팽택령(彭澤令)으로 있다가, “내 어찌 녹쌀[祿米] 닷 말 때문에 허리를 굽혀 독우(督郵)에게 절을 할 것이냐.” 하고 벼슬을 버리고 돌아갔다.
38.궁왕고도 유감(弓王故都有感)
강회백(姜淮伯)
황폐된 외로운 성이 성긴 숲 가운데 / 孤城蕪沒帶疏林
꺾어진 비석도 불에 탄 지 세월이 오랬구나 / 斷碣燒殘歲月深
고각소리 높은데 바람이 휘몰아치고 / 鼓角聲高風不止
해도 넘어가려는데 깃발만 펄렁펄렁 / 旌旗影動日將沈
산은 고국의 천 년 한을 머금었고 / 山舍故國千年恨
구름은 장공 만 리의 마음을 가졌구나 / 雲抱長空萬里心
예로부터 흥망이 다 까닭 있나니 / 自古興亡皆有致
전철을 보고 장래를 경계하고저 / 願因前轍戒來今
[주-D001] 궁왕고도(弓王故都) :
강원도 철원(鐵原) 북쪽 27리의 풍천원(楓川原). 태봉(泰封) 궁예(弓裔)의 도읍터.
[주-D002] 유감(有感) :
“제군(諸軍) 도총병(都摠兵)으로 공(公)이 거기 주둔(駐屯)했다.”라는 제주(題註)가 있다.
39.봄날 형과 아우에게 부침[春日寄昆季]
강회백(姜淮伯)
여관 처마끝 빗소리 차마 어이 들으랴 / 旅牕簷雨苦難聽
때때옷 입고 부모님 앞에 춤 못 추는 서글픔 / 況復萊衣隔鯉庭
마음은 저녁 구름 함께 그저 돌아갈 생각 뿐 / 心與暮雲歸不駐
시름은 봄 술 따라 취해 깬 때 없구나 / 愁隨春酒醉無醒
강산에 오늘 내 머리 먼저 희었네 / 江山此日頭先白
골육들은 언제 눈이 다시 푸르리 / 骨肉何時眼更靑
벼슬길이 험한 줄 익히 겪어 아는 일 / 宦路險夷曾歷試
이 몸은 천지간의 한낱 부평초로구나 / 是身天地一浮萍
40.봉천전(奉天殿)에 일찍 조회하며[奉天殿早朝]
강회백(姜淮伯)
어구의 버들개지 하늘하늘하는데 / 御溝楊柳正依依
전각엔 달이 걸리고 옥루소리 느릿느릿 / 月上觚稜玉漏遲
환패가 쟁그렁쟁그렁 백관들 모여들고 / 環佩丁當鵷鷺集
우림군 저벅저벅 무장들 달려오네 / 羽林磨戛虎賁馳
용의 머리 어두워지자 향연이 풍겨오고 / 螭頭忽暗香煙動
봉미부채 천천히 열려 채장이 갈라서네 / 鳳尾徐開綵仗移
붉은 구름 절하옵고 엄숙히 바라보니 / 稽首紅雲瞻肅穆
햇빛이 만년지에 맨먼저 비치옵네 / 日光先照萬年枝
[주-D001] 용(龍)의 머리 :
대궐 계단의 돌로 새긴 용의 머리[螭頭]. 한유(韓愈)의 〈원일조회(元日朝會)〉시에, “금로의 향이 움직이니 용의 머리가 어두워지네[金爐香動螭頭暗].”라는 구절이 있다.
41.거듭 합포(合浦)에 놀며[重遊合浦]
이첨(李詹)
천기와 인사가 서로 엇갈리지만 / 天機人事兩參差
성곽은 그대로 옛 모양 같구나 / 城郭依然似舊時
가는 대는 다시 새 순이 나오고 / 細竹更長新出筍
늦 꽃은 아직도 안 핀 가지가 있네 / 殘花還有未開枝
강호 한밤에 외로운 배의 꿈이여 / 江湖半夜孤舟夢
막부 10년에 남은 건 천 수시 뿐 / 幕府十年千首詩
남루 이 날에 풍경이 하도 좋은데 / 此日南樓風景好
원수는 어디쯤에서 깃발들을 멈췄나 / 元戎何處駐旌旗
[주-D001] 합포(合浦) :
마산(馬山)의 옛 이름.
42.영월(寧越)로 부임하는 동년(同年) 곽정랑(郭正郞)을 보내며[奉送同年郭正郞赴寧越任]
이첨(李詹)
쓸쓸한 성안 돌길이 비낀 곳 / 城郭蕭條石逕斜
아전과 백성의 집이 반반씩 여남은 집 / 吏民相半十餘家
시냇가에 밤새껏 물레방아 소리에 동이 차차 트이고 / 溪舂夜急天初曉
가을 벼랑에 벌꿀은 듬뿍 국화가 한창 피네 / 崖蜜秋深菊正花
풍속은 이따금씩 고로들에게 물어보고 / 風俗有時咨古老
관가 일은 한산하여 아침 좌아도 폐하리 / 官曹無事廢朝衙
작은 고을을 누워 다스리는 그대 경홀히 마소 / 臥治小郡君休薄
죽마들 와서 맞으니 또한 자랑스러우이 / 竹馬來迎亦可誇
[주-D001] 작은 고을을 누워 다스리는 :
한(漢)나라 급암(汲黯)이 동해 태수(東海太守)가 되었을 때에 문밖에 나가지 않고 누어서 다스렸는데도, 1년이 넘어 고을이 크게 잘 다스려졌다.
[주-D002] 죽마(竹馬)들 :
후한(後漢)의 양리(良吏) 곽급(郭伋)이 부임하니 어린 아이들 몇백이 각기 대말[竹馬]을 타고 길 가에 나와 맞으며 절하였다.
43.숙 멸포원루(宿滅浦院樓)
이첨(李詹)
긴 강이 출렁출렁 동쪽으로 흐르는데 / 長江袞袞向東流
넓은 들 트인 산 하늘 끝 닿은 곳 / 野闊山開天盡頭
배들은 몇 해나 사람을 건네었나 / 舟楫幾年人渡水
풍진 만 리에 나그네는 다락에 올랐구나 / 風塵萬里客登樓
연기는 자욱해 두목의 진회의 밤인가 / 煙籠杜子淸淮夜
달은 자그마해서 소선 적벽의 가을이로세 / 月小蘇仙赤壁秋
갈림길 남으로 가면 큰 진으로 통하나니 / 岐路向南通巨鎭
가는 손 이따금 예 와 묵어 가는구나 / 征驂時到此中留
[주-D001] 연기는 …… 밤인가 :
두목(杜牧)의 〈야박진회(夜泊秦淮)〉시에, “연기는 찬물에 자욱, 달은 모래에 휘영청. 밤에 진회에 대니 술집이 바로 옆에 있네[煙寒實水月籠沙 夜泊秦淮近酒家].”라는 구절이 있다.
44.한식(寒食)
이첨(李詹)
금년 한식을 서울서 묵느라니 / 今年寒食滯京華
철이 쉽게 갈수록 집 생각이 간절하이 / 節序如流苦憶家
버들은 시름 옆에서 가지를 하늘거리고 / 楊柳愁邊初弄線
다미는 비 온 뒤에 꽃이 피려는구나 / 茶蘼雨後欲生花
봄을 찾아 동산엔 말 탄 이들 오가고 / 尋春院落多遊騎
성묘 가는 들판엔 떼 가마귀 모였네 / 上墓郊原集亂鴉
물색은 새롭건만 몸은 차차 늙어가니 / 物色漸新人漸老
어드메 신선따라 단사를 만들꼬 / 慕眞何處鍊丹砂
45.울주 잡제(蔚州雜題)
이첨(李詹)
분분한 구름비 흐릴락 맑을락 / 雲雨紛紛作晦明
태산은 홍모같이 가벼워라 / 鴻毛直似太山輕
하늘 가 외로운 베개는 고향 가는 꿈 뿐인데 / 天涯孤枕故鄕夢
달 아래 뉘 집에서 저 부는 소리 / 月下誰家長笛聲
한평생에 골육은 세 번 먼 이별하였구나 / 骨肉百年三遠別
만길 파란에 한 부생이로세 / 波瀾萬丈一浮生
돗자리 만한 땅이 남쪽으로 끝났다 탓하지 마소 / 莫嫌席地南來盡
눈 앞에 다시 질펀한 바다 있지 않나베 / 還有滄溟眼底平
46.제 선효원루(題宣孝院樓)
이첨(李詹)
고달픈 생 먼 길과 어느 편이 더 지루한가 / 勞生孰與道塗長
구름 끝으로 동으로 흘러도 그저 아득하네 / 雲際東流各杳茫
역사는 가고 강산은 모두 적막한데 / 事往江山皆寂寞
가을이 맑아도 풍물은 벌써 처량하구나 / 秋晴雲物已凄涼
유공은 이날 넓적다리에 살이 생겼네 / 劉公此日髀生肉
두자는 금년에 귓머리에 서리 빛을 띠었는데 / 杜予今年鬢帶霜
필경은 공명 두 글자 때문 아닌가 / 畢竟功名惟兩字
다락서 혼자 바라보며 하염없이 방황하네 / 登樓獨眺久彷徨
[주-D001] 유공(劉公)은 …… 생겼네 :
유비(劉備)가 형주(荊州)에 머물을 때에 유표(劉表)의 자리에서 일어나 뒷간에 갔다가 넓적다리에 살이 찐 것을 보고 개연히 눈물을 흘리고 돌아와 앉았다. 표가 괴이하게 여겨 물으니 비가 말하되, “내가 항상 몸이 말 안장을 떠나지 않아 넓적다리 살이 다 스러졌더니, 이제 다시 말을 안 타 넓적다리에 살이 생겼는지라, 세월은 달리는데 공업(功業)을 세우지 못했으니 그러므로 슬퍼하오.” 하였다.
47.신도(新都) 눈 오는 밤에 구양수(歐陽修)의 체를 본떠서[新都雪夜效歐陽體]
정이오(鄭以吾)
훈훈한 수병풍 안에 술이 갓 거나한데 / 繡屛圍暖酒初酣
뜰에는 나도 몰래 눈이 대단한 모양 / 不覺庭除勢已嚴
고요한 밤 땅을 쓸 바람도 없고 / 夜靜更無風掃地
창문이 훤하니 달이 처마를 엿보는 듯 / 窓明疑有月窺簷
만 채 초가 지붕에 한결같이 덮였고 / 茅茨萬屋平初合
외로운 배의 도롱이 삿갓은 무거움을 더했으리 / 蓑笠孤舟重乍添
새벽에 남산 바라보면 모두 한 빛 / 曉望終南渾一色
아마도 마이산(중국에 있는 산 이름. 말귀처럼 두 봉우리가 쫑긋하다.) 두 말귀 끝만 뾰죽 드러 났으리 / 應餘馬耳出雙尖
[주-D001] 구양수(歐陽修)의 체 :
구양수(歐陽修)가 여러 사람과 함께 눈[雪]을 두고 시를 지으면서 옥(玉)ㆍ는(銀)ㆍ경(瓊)ㆍ가(梨) 등 눈에 대하여 늘 쓰이는 여러 글자를 쓰지 못하도록 하였다.
[주-D002] 외로운 배의 도롱이 삿갓 :
“외로운 배의 도롱이 갓 쓴 늙은 이 홀로 찬 강 눈에 낚시질하네[孤舟簔笠翁 獨釣寒江雪].”라는 시가 있다.
48.산에 올라 혜상인(惠上人)의 원(院)에 쓰다[登山題惠上人院]
변계량(卞季良)
까마득히 반쯤 산길이 구름에 들었으니 / 山徑迢迢半入雲
이번 놀이는 시끄런 티끌 세상 피할 만하네 / 玆遊足可避塵喧
백 년 신세는 나그네가 길을 헤매는 것 / 百年身世客迷路
골 가득한 연하 속에 중은 문을 닫았구나 / 滿壑煙霞僧閉門
시냇가에서 촌 늙은이와 나뭇단을 묶기도 하고 / 晴澗束薪隨野老
숲에서 잔나비와 함께 열매를 따먹기도 하고 / 秋林摘實共寒猿
선방에 들어가 능가자(불경 이름)를 물으려 하니 / 我來欲問楞伽字
스님은 눈 감고 머리 숙여 한 말씀도 없구나 / 合眼低頭無一言
49.촌거직사(村居卽事)로 서울 이선달(李先達)에 부치다[村居卽事寄京都李先達]
변계량(卞季良)
겹겹 봉우리 앞에 쓸쓸한 촌집 / 村居寂寞亂峯前
밭 두 이랑에 뽕나무가 몇 그루 / 數樹柔桑二頃田
약을 캐다 수풀 밑에 매양 거닐고 / 斸藥每從林下步
책 말리다 햇빛 아래 졸기가 일쑤 / 曬書偏向日中眠
강 하늘에 구름 걷히자 가는 기러기 보이고 / 江天雲盡見歸雁
멧대에 달 밝은데 뻐꾸기 소리 들리네 / 山竹月明聞杜鵑
두 곳에서 서로 바라는 그지없는 뜻 / 回首兩鄕何限意
시 한 수 새로 지어 그대에게 전하네 / 新詩一首爲君傳
50.서울로 가는 도중 장단(長湍)에서 정곡(鼎谷)에게 부치다[將赴京都長湍途中寄呈鼎谷]
변계량(卞季良)
동남에 표랑해 온 외로운 신세 / 蓬轉東南影與身
그 누구의 옛 정이 뇌ㆍ진과 같을까 / 舊情誰復似雷陳
병이 깊으니 약이 통 효험 없네 / 病深藥物渾無效
애써 읊으니 시는 혹 신이 시키는 듯 / 吟苦詩篇頗有神
허연 기운 하늘에 닿았으니 강변 고을 새벽이요 / 虛白連天江郡曉
누런 빛이 땅에 떴으니 들 버들의 봄이로고 / 暗黃浮地柳郊春
이 좋은 철에 회포가 얄궂어서 / 自憐令節情懷惡
글귀 짓기만 하면 곧 친구에게 부치네 / 題句時還寄故人
[주-D001] 뇌(雷)ㆍ진(陳) :
동한(東漢) 뇌의(雷義)와 진중(陳重)이다. 뇌의가 무재(茂才)로 천거되자 진중에게 사양했으나 자사(刺史)가 들어주지 않자, 의는 거짓 미친 체하고 머리를 풀어 헤치고 나아가 명(命)에 응하지 않으니 삼부(三府)에서 동시에 두 사람을 다 불러 벼슬주었다.
51.독곡(獨谷)의 시를 차운하여 길주서(吉注書) 시권(詩卷)에 쓰며[題吉注書詩卷次獨谷韻]
변계량(卞季良)
야은 선생이 옛집에 돌아가니 / 冶隱先生歸弊廬
구름 정은 세상 정과 멀어졌네 / 雲情自與世情疏
문에 드리운 건 팽택의 다섯 그루 버들 / 門垂彭澤五株柳
시렁에는 노동의 천 권 책이 얹혀있네 / 架有盧仝千卷書
진작 이명일랑 초개처럼 보고서 / 早把利名同草芥
즐겁게 심사를 어초에 붙이었네 / 好將心事付樵漁
한편으로 옛 나라 계산 좋은 경치에 / 一區古國山溪勝
쪽배를 타기도 하고 달구지를 타고 / 或棹孤舟或命車
[주-D001] 문에 …… 버들 :
진(晉)나라 도잠(陶潛)이 문 앞에 다섯 그루 버들을 심고 살면서 호를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했다.
[주-D002] 쪽배를 …… 타고 :
전구(全句)가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의 귀절. “혹명건거(或命巾車), 혹도고주(或棹孤舟).”의 ‘건거(巾車)’는 씌우개 있는 수레이나, 농촌의 달구지로 번역한다.
52.강원도 도관찰(都觀察)로 가는 윤참찬(尹參贊)을 보내며[送尹參贊都觀察江原道]
진의귀(陳義貴)
소년 적부터 두각에 청풍을 날렸으니 / 少年杜閣揭淸風
국가의 안위가 오로지 당신에 달렸었네 / 注意安危獨在公
사당 나무 그늘에 몇 번이나 절월을 잡았던고 / 棠茇幾回持節鉞
버들 영에 이제 또 영웅을 통솔하네 / 柳營今復駕英雄
꾀꼬리 우는 밖에 꽃이 난만한데 / 煙花爛熳鶯啼外
물새 사라지는 동쪽에 물결이 아득하구나 / 雪浪滄茫鳥沒東
고삐 늦추고 시 읊으며 모랫길로 가노라면 / 攬轡行吟沙路永
성긴 비 하얀 갈매기 복사꽃이 붉었으니 / 白鷗疏雨小桃紅
[주-D001] 버들 영[柳營] :
한(漢)나라 주아부(周亞夫)가 장군이 되어 세류(細柳)에 군사를 주둔하였다.
[주-D002] 성긴 비 …… 붉었으니리 :
작자 불명의 옛 시조에, “묻노라 저 선사야, 관동 풍경 어떻더니, 명사십리(明沙十里)에 해당화는 붉어 있고, 원포(遠浦)에 양양백구(兩兩白鷗)는 비소우(飛疎雨)를 하더라.” 하였다.
53.서북면(西北面)으로 출진(出鎭)하는 우정(雨亭) 조은문(趙恩門) 박(璞)을 전송하며[奉送雨亭趙恩門璞出鎭西北面]
윤회(尹淮)
옛날부터 기자 구주 예의의 고장 / 前古箕疇禮義邦
아직도 유속이 순박하다네 / 至今遺俗尙淳厖
누대는 아득하게 평야에 임했고 / 樓臺縹渺臨平野
성벽이 우뚝 긴 강에 비쳐있네 / 雉堞巍峨映大江
분곤하는 영특한 재주 누가 감히 맞서리 / 分閫英材誰與竝
운주하는 기묘한 솜씨 워낙 쌍이 없구나 / 運籌長策固無雙
부임해서 돌쯤이면 은위 두루 미치리니 / 也應期月恩威遍
성대에 수항성을 꼭 쌓고야 말리로다 / 會見明時築受降
[주-D001] 수항성(受降城) :
한 무제(漢武帝)가 장군 공손오(公孫敖)를 시켜 새외(塞外)에 항복받는 성[受降城]을 쌓았다.
54.돈화문(敦化門)의 새벽 종[敦化門晨鍾]
윤회(尹淮)
만호 장안에 새벽을 알리는 종 / 閶闔鍾鳴夜向晨
닭 울기 전 주상께선 벌써 일어나셨네 / 宵衣元不待鷄人
천문의 금 자물쇠가 잠깐 사이에 열리고 / 千門金鎖須臾闢
오색 구름ㆍ깃발이 차례로 펼쳐지네 / 五彩雲旗次第陳
용안이 다사로이 보좌에 납시고 / 日表溫溫臨寶座
조신들 엄숙히 뜰에서 절하옵네 / 朝儀濟濟拱楓宸
공을 새길 장상들이 모두 충성을 품고 / 勒功將相懷忠藎
다투어 정책내어 임금님을 돕사옵네 / 爭進謀猷補聖神
55.유의정 관 만장(柳議政 觀 挽章)
윤회(尹淮)
여회의 청풍 부열(傅說)의 별 타고 나서 / 如晦淸風傅說星
누른 문과 초가집 10리 길 되었네 / 黃扉白屋短長亭
조정엔 당당히 원로 한 분 계셨네 / 堂堂朝著有元老
상문에 주렁주렁 공경들이 났도다 / 袞袞相門生列卿
국론을 정할 땐 점괘 필요 없다 하더니 / 國論不須稽卜筮
태산이 무너지고 나자 의용을 다시 볼 길 없네 / 山頹無復見儀形
더욱 임과 가숙과는 동년의 오랜 친교 / 曾叨家叔同年契
영여를 끌어 잡으니 늙은 눈물 쏟아지네 / 執紼難禁老淚傾
[주-D001] 부열(傅說)의 별 :
은(殷)나라 어진 재상 부열(傅說)이 죽어서 하늘에 별이 되었다. 《莊子》
56.봉사 일본 유감(奉使日本有感)
박서생(朴瑞生)
끼니 때마다 드리옵는 축수의 한 마디 / 一飯聊申一祝辭
멀리 노니 임금님 은혜 더욱 무거워라 / 君恩偏重遠游時
반찬은 날마다 여러 가지 / 盤飱日日多兼味
술도 이따금 곱배기 술잔에 가득하구나 / 尊酒時時滿大巵
기이한 풀 그윽한 꽃이 곳곳마다 좋고 / 異卉幽花隨處好
둘린 산 굽은 물이 가는 곳마다 기특해라 / 回山曲水到頭奇
봉명 사신으로 동쪽 나라 안 왔던들 / 不因奉使來東域
천하의 이런 기관을 통 모를 뻔하였네 / 天下奇觀總不知
57.즉사(卽事)
유방선(柳方善)
첩첩 산중 솔나무, 참나무 사이 한 초가 / 四山松櫟一茅廬
담 등지고 해바라기, 졸음 솔솔 오누나 / 坐負墻暄睡味餘
옷 꿰맨 데선 노 왕맹처럼 이를 잡고 / 衣縫每捫王猛蝨
낚싯대론 부질없이 강태공처럼 고기 낚기 / 漁竿空釣呂望魚
높은 벼슬은 하마 얻을 마음 없으니 / 軒裳已是無心得
금과 옥을 욕심 부려 저축해서 무엇하리 / 金玉何須滿意儲
토란이랑 밤이랑 날 보내기 넉넉하니 / 芋栗自堪謀送日
반찬에 하필 게장을 먹어 무삼하리 / 盤飱不必蟹爲胥
58.9월 9일에 느낌이 있어[重九有感]
조서(曺庶)
한가한 중에 문득 가절 놀이를 생각하여 / 閑中忽念趁良辰
동양에 달려와서 주인과 함께 노니네 / 走到東陽共主人
누대를 두른 시내는 지는 해를 비치고 / 溪繞樓臺涵落照
남북으로 갈리는 역엔 행인의 먼지 이는구나 / 驛分南北動行塵
연기가 죄 걷히니 산이 그림 같을시고 / 風煙凈盡山如畫
초목이 시들어지니 국화가 더 말쑥해라 / 草樹彫零菊更新
주객이 함께 올라 감개가 많으이 / 與客登臨多感慨
가을 경치에 늙을 줄 모를 한병 술의 봄이여 / 秋光不老一壺春
59.이중추(李中樞) 정간(貞幹)이 71세에 자친(慈親)의 90수연(壽宴) 차림을 하례하여[賀李中樞貞幹年七十壽九十慈親]
설순(偰循)
높은 댁의 오랜 적경을 모두 부러워 하노니 / 共羨高門積慶長
알락 옷, 흰 머리로 자당을 받드누나 / 斑衣皓首奉萱堂
부드러운 얼굴로 조석 효도를 극진히 하고 / 怡愉志篤晨昏念
빛나는 임금 은혜는 우로의 향기를 받자왔네 / 烜赫恩承雨露香
해를 비춘 옥잔의 술은 두둥실 철철 넘고 / 映日玉杯浮瀲灔
지나는 구름 멈춰 금루(노래 곡명) 노래가 아양곡을 섞는구나 / 過雲金縷雜峨洋
이 자리에 마땅히 당계곡을 이어 지어 / 會須續製唐鷄曲
만고의 삼한 악부도 두고두고 전해야 하리 / 萬古三韓樂府藏
[주-D001] 지나는 구름 멈춰[過雲] 금루(金縷 노래 곡명(曲名)) :
옛날 진청(秦靑)이 노래를 잘 불러, 그 소리가 가는 구름을 멈추게 하였다.
[주-D002] 아양곡(峨洋曲) :
춘추(春秋) 시대 때 거문고의 명수 백아(伯牙)가 지음(知音) 종자기(鍾子期) 앞에서 뜯은 곡. 백아가 거문고를 뜯고 자기가 듣는데, 백아의 뜻이 태산에 있으면 자기는 하는 말 “높디 높구나[峩峩].”라 하였고, 뜻이 흐르는 물에 있으면, “출렁출렁 하는구나[洋洋].” 하였다.
[주-D003] 당계곡(唐鷄曲) :
고려가요 중의 효자 문충(文忠)이 지은 유명한 목계가(木鷄歌), 곧 오관산곡(五冠山曲). ‘오관산’은 효자 문충이 지은 것이다. 충이 오관산 밑에 살았는데, 어머니를 지극히 효성스럽게 섬겼다. 그가 서울에서 벼슬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오관산과 서울과의 거리가 30리나 먼길이었는데도 어머니를 봉양코자 아침에 나갔다가 저물면 돌아오며 정성(定省)이 조금도 쇠하지 않았다. 그 어머니가 늙어감을 탄식하여 이 노래를 지었다. 이제현(李齊賢)이 한시로 번역하되, “나무조각으로 조그마한 수탉을 만들어서 젓가락으로 집어다 벽의 홰에 앉혔네. 이 새가 꼬끼오 울어 때를 알릴 때, 어머님 얼굴에 주름살이 하나 더 생기누나.” 하였다. 《高麗惡史 樂志》
60.동전(同前)
정초(鄭招)
아흔 살에 아직도 강녕하신 어머님 / 慈親九十尙康寧
맑은 날 높은 집에 그림 병풍 펼쳤네 / 晴日高堂敞畫屛
몸에 입은 채의들은 모두 다 기쁨 일색 / 身上彩衣浮喜色
손에 든 금잔으로 오래 삶을 축복해 올리누나 / 手中金盞進遐齡
능라 입은 기악은 앞 자리에 가득하고 / 羅紈聲色盈前席
잠이 차림 손증들이 뒤 뜰에 늘어섰네 / 簪履雲仍列後庭
나는 일찍 어버이 잃고 이제 머리 세었거니 / 惆悵早孤今白首
그대의 이 일을 보고 눈물 금치 못하네 / 看君此事涕頻零
61.기 양사군 여공 (寄梁使君 汝恭)
정초(鄭招)
내 워낙 어리석어 세상과 등졌으나 / 戇也端宜世我疏
하늘가에서 편지를 받아보니 기쁘외 / 天涯且喜故人書
꼬치꼬치 여윈 모양은 집 잃은 개와 비슷 / 羸形有似喪家狗
한 방울 물로 누가 마른 수레바퀴 자국의 고기를 동정하리 / 濡沫誰憐涸轍魚
좋은 모임은 부질없이 몽상으로나 달리고 / 良會謾勞馳夢想
궁한 신세에 말동무는 나무꾼과 고기잡이 / 窮愁唯有話樵漁
어느 날에 특사로 홍은을 받자와서 / 金鷄何日流洪澤
필마로 서로 좇아 평소 회포 풀어볼까 / 匹馬相從展素攄
[주-D001] 사군(使君) :
어사(御使)나 지방장관의 존칭을 말한다.
[주-D002] 꼬치꼬치 …… 비슷 :
공자가 정(鄭)나라에 가서 혼자 성(城) 동문에 서있는데 어떤 사람이 자공(子貢)에게 말하기를, “동문에 어떤 사람이 어릿어릿 집 잃은 개 같더라.” 하였다.
[주-D003] 한 방울 …… 고기 :
《장자》 〈외물(外物)〉 편에 나오는 말로, 수렛바퀴 자국에 괸 물에 있는 붕어처럼 곤경에 처하여 애타게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을 비유함.
62.차운(次韻)
양여공(梁汝恭)
서북쪽에 음신이 드물다고 서러워 말 것이 / 莫嗟西北信音疏
한 달에 세 번이나 부친 편지 뜯어 봤네 / 一月三回坼寄書
사람들은 말하데 새옹이 말 잃은 것 아니라고 / 人訝塞翁非失馬
세상에선 전하긴 장수(장자)가 곧 물고기를 안다고 / 世傳莊叟卽知魚
하늘가에 가서 수졸이야 되었지만 / 雖然去作天邊戍
못가에서 읊는 어부 같지는 않네그려 / 不似行吟澤畔漁
조서를 날려 환을 주실 날 있으리만 / 飛詔賜環應有日
객중의 쓸쓸한 회포 누구에게 펴는고 / 客中懷抱向誰攄
[주-D001] 못가에서 읊는 어부 :
굴원(屈原)의 〈어부사(漁父辭)〉에, “어부(漁父)가 보고 말하기를, 굴원이 이미 쫓겨나자 못가에 다니며 읊는데 모양이 초췌하였다.” 하였다.
[주-D002] 조서를 날려 환(環) :
옛날에 대부(大夫)가 임금에게 죄를 얻고 국경에서 처분을 기다릴 때에 임금이 환(環)을 주면 그것은 돌아오라는 뜻이었다. 환(環)과 환(還)의 음이 같기 때문이다.
63.이이립(李而立)의 부친 시에 차운하여[次李而立見寄之韻]
양여공(梁汝恭)
평생의 교분이 옛날 뇌ㆍ진과 같아 / 平生交契卽雷陳
출처가 제 몸 위함 아님을 늘 논했었지 / 出處常論不爲身
워낙 조정에야 간할 만한 잘못이 없는 것을 / 自是朝廷無闕失
지금 풍속은 벌써 순진해졌다네 / 況今風俗已眞淳
내 어찌 궁궐에 소장 올리던 손으로 / 敢將梨掖封章手
차마 이끼 긴 돌에 나가 낚시줄을 잡을까 / 忍向苔磯把釣綸
인자한 아버지가 자식 허물 잊거니 / 慈父由來忘子過
마침내 성주께서도 우신 아니 버리시리 / 聖明終不棄愚臣
64.제 지평동헌(題砥平東軒)
석정근(釋丁近)
산악이 하늘에 닿아 엎은 동이 같은데 / 巨嶽撑天似覆盆
인가가 억덕을 끼고 물을 갈랐구나 / 居民挾岸水平分
창을 여니 낙엽이 바람 앞에 춤추고 / 臨窓赤葉風前舞
골을 나니 종소리가 달 아래서 들리네 / 出谷疏鍾月下聞
고요한 속의 졸졸 시냇물 소리 가엾고 / 靜裏有聲憐石澗
한가한 중 구름의 다사함이 우습네 / 閑中多事笑山雲
주인의 맑은 절개를 누구에다 비길꼬 / 主人淸節將誰比
동헌에 이군(대의 애칭) 없음 한이로세 / 却恨鈴齋欠此君
65.흥해(興海) 향교(鄕校) 달밤에 늙은 기생이 타는 거문고를 들으며[興海鄕校月夜聞老妓彈琴]
박치안(朴致安)
옛날 칠보 방안에서 노래하고 춤출 때 / 七寶房中歌舞時
어이 알았으리 이 벽지에 와 늙을 줄을 / 那知白髮老荒陲
돈 없으니 장문부 살 길이 없고 / 無金可買長門賦
꿈에나 금자시를 헛되게 전하누나 / 有夢空傳錦字詩
눈물은 몇번이나 비단 소매를 적시었소 / 珠淚幾霑吳練袖
훈향은 아직도 비단 치마에 배어있네 / 薰香猶濕越羅衣
깊은 밤 창달 아래 애를 끊는 그 가락 / 夜深窓月絃聲苦
평생에 자기 없음을 한하는 듯하구나 / 只恨平生無子期
[주-D001] 금자시(錦字詩) :
전진(前秦)의 두도(竇滔)가 양양(襄陽)을 진수(鎭守)할 때 총희(寵姬) 조양대(趙陽臺)를 데리고 부임하여 그 처 소씨(蘇氏)와 소식을 끊어버렸다. 이에 소씨가 한스러워하고 슬퍼하여 비단에 회문시(廻文詩)를 짜넣어 두도에게 부치니, 도가 그 비단 글자를 보고 감복하여 수레를 갖추어 소씨를 맞아왔다. 《侍兒小名錄》
[주-D002] 자기(子期) :
종자기(鍾子期). 백아(伯牙)의 지음(知音). 자기가 죽자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
66.차 강릉 동헌운(次江陵東軒韻)
유효통(兪孝通)
아가위 집 그늘에 돌아다닌지 1년 남짓 / 棠茇奔馳足一年
구구한 결재가 사람과 하늘에 부끄럽네 / 區區裁決愧人天
부상의 해는 고래 물결속에 솟아 오르고 / 扶桑日出鯨波裏
대관령 구름은 안문 변새로 이었구나 / 大嶺雲連雁塞邊
경포의 밤엔 신라 적 달이 머무르고 / 鏡浦夜涵羅代月
한송정 아침은 예(강릉의 옛이름) 적 연기를 띠었네 / 寒松朝帶濊時煙
앉아 보니 경치가 인간 것은 아니어니 / 坐來景物非塵世
내 문득 열자를 좇아 바람타고 노는 듯 / 疑是從遊禦寇仙
[주-D001] 열자(列子) :
그는 바람을 타고 공중에 다녔다고 전해진다.
67.기 유태재(寄柳泰齋)
김구경(金久冏)
그대는 남쪽 가에, 나는 북쪽 가에 / 君在南邊我北邊
옛날 함께 놀던 일이 꿈에도 선하네 그려 / 昔年同戲夢依然
눈물은 오랜 이별에 은하수 되어 떨어지듯 / 淚因別久成河落
맘은 깊은 시름에 장작불을 지피는 듯 / 心爲愁深貯火燃
따스한 노래에 해당화가 비단보다 더 붉고 / 沙暖海棠紅勝錦
갠 날에 강 버들은 연기마냥 푸르네 / 日晴江柳綠如煙
언제 우리 손 잡고 멋지게 만나볼까 / 何時握手成佳會
두 지방에서 서로 생각 길이 2천 리 / 兩地相思路二千
68.차 밀양 영남루 운(次密陽嶺南樓韻)
김구경(金久冏)
구중 궁궐에서 어명 받잡고 왔던 차 / 承綸來自九重天
문득 보니 앞에 우뚝 선 영남루 / 有嶺南樓忽在前
갠 날 햇살에 푸른 기와가 영롱하고 / 碧瓦玲瓏晴日表
채색 노을가에 붉은 난간이 번쩍이네 / 朱欄照耀彩霞邊
자리에 가득 써늘한 소리는 강이 눈을 뿜고 / 寒聲滿座江噴雪
발에 엉긴 푸른 빛은 대가 연기에 휘늘어졌네 / 翠色凝簾竹嚲煙
이 좋은 경개를 몇 해째 들었더니 / 勝槪遙聞年已久
올라와 보니 더구나 화려한 연회 자리 / 登臨更踏雨雲筵
69.송경 회고(松京懷古)
이맹균(李孟畇)
5백 년 내려오다가 왕기가 끝났으니 / 五百年來王氣終
닭을 잡고 오리를 친 공은 어디 갔는고 / 操鷄摶鴨竟何功
영웅들 한 번 가니 호화도 다했구나 / 英雄一去豪華盡
인물이 남[한양]으로 옮겨 저자도 텅 비었네 / 人物南遷市井空
가랑비 내린 뒤의 상원(궁궐에 속하는 비원)의 연하여 / 上苑煙霞微雨後
석양 비낀 적에 모든 능의 초목들 / 諸陵草樹夕陽中
가을 바람에 지나는 손 한이 얼마뇨 / 秋風客恨知多少
지난 일 유유하여라, 물만 동으로 흐르누나 / 往事悠悠水自東
[주-D001] 닭을 잡고 오리 친 :
태봉(泰封) 말년에 당상(唐商) 왕창근(王昌瑾)이 궁예(弓裔)에게 바친 옛 거울에 새겨 있었다는 도참문(圖讖文) 중의 일절. 먼저 닭을 잡고 뒤에 오리를 친다는 것은 고려 태조 왕건이 먼저 계림을 정복하고 뒤에 압록강을 취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70.철원(鐵原) 취전주(聚錢州)에 당도하여[次鐵原聚錢州]
이맹균(李孟畇)
학과 돈과 양주를 세상에 겸하기 어렵거니 / 世上難兼鶴錢州
이 다락의 좋은 경치 사람의 시름을 풀어주네 / 此亭形勝解人愁
청산이 그림처럼 평야를 둘렀고 / 靑山似畫圍平野
녹수가 바람을 풍겨 가을 기운 움직이네 / 綠樹含風動素秋
용을 탔던 여조는 지금 어디 있는고 / 麗祖乘龍何渺渺
사슴을 잃은 궁왕도 길이 가고 말았네 / 弓王失鹿亦悠悠
난간에 의지하니 활짝 트이는 가슴 속 / 憑闌賸得胸中豁
구태어 저 구름밖에 신선놀이 해 무엇하리 / 雲表何須汗漫遊
[주-D001] 학(鶴)과 돈과 양주(楊州) :
옛날 사람들이 모여 각기 소원을 말하는데, 혹은 양주 자사(楊州刺史)가 되고 싶다 하고, 혹은 돈을 흠뻑 가지고 싶다 하고 혹은 신선이 되어 학을 타고 하늘에 오르고 싶다 했다. 그 중 한 사람이 말하되, “나는 허리에 10만 관 돈을 차고 학을 타고 양주에 올라가고 싶네.” 하였다. 이곳 지명에 따라 인용한 것이다.
[주-D002] 사슴[鹿]을 잃은 :
임금이 나라를 잃은 것을 비유하였다. 진(秦)나라의 간신(奸臣) 조고(趙高)가 임금 앞에 사슴을 끌고 와서 말[馬]이라고 한 일이 있었으므로, 진나라가 망한 것을 사슴을 잃었다고 말하는 이가 있었다.
71.하 이중추 연칠십 수구십 자친(賀李中樞年七十壽九十慈親)
황현(黃鉉)
자친께서 90 노년에 아직 평안하오신데 / 慈顔九袠尙平安
70 하얀 수염이 기쁨을 받드시네 / 七十霜髥爲奉歡
자리 가득 귀한 손님은 모두 다 국족 / 滿座佳賓皆國族
뜰에 늘어선 여러 아우들은 모조리 고관 / 趨庭群季盡朝官
금준에 넘치는 술 봄이 한창 따스하고 / 金樽酒冽春方暖
봉관의 높은 가락 해도 더디 기우네 / 鳳管聲催日未殘
고문에 경사가 그지없이 있사오리니 / 世世高門知有慶
대대로 지초와 난초가 무럭무럭 자라리 / 更看奕葉長芝蘭
72.차 진남루 운(次鎭南樓韻)
허조(許稠)
맑은 경치에 끌려 새 다락에 올랐더니 / 爲緣淸景倚新樓
바라보니 아아 벌써 잎이 지는 가을 / 縱目初驚一葉秋
집마다 밥 짓는 연기가 퍼렇게 자욱하고 / 萬戶炊煙靑靄靄
사면 산의 아름다운 기운은 새파랗게 떠오르네 / 四山佳氣碧浮浮
병부 나눈 유수는 벼슬이 2천 석 / 分符留守二千石
도끼 짚고 민풍을 살핀 곳 50고을 / 杖鉞觀風五十州
어허 대견한지고 이때가 태평 성대 / 自幸此時當盛際
닭 울음 개 짖는 소리가 벽지에도 사무치네 / 鷄鳴狗吠達窮陬
[주-D001] 닭 울음 개 짖는 소리 :
《맹자》에 “닭의 울음, 개짖는 소리가 사정에 사무친다.”는 말이 있는데, 인구가 번성한다는 말이다.
73.차 안동 영호루 운(次安東映湖樓韻)
최수(崔脩)
강다락에 봄이 가득, 경치가 하 많으니 / 春滿江樓景氣多
시인의 맑은 흥이 더하여지네 / 詩人淸興向來加
온 성 중의 복사ㆍ오얏은 반안인의 골이런가 / 一城桃李潘安縣
두 기슭의 동산과 못은 습씨의 집인 듯 / 兩岸園池習氏家
목은 이색의 글은 교주가 달을 울리고 / 牧隱新文珠泣月
양촌(권근의 영호루 시제)의 고운 귀는 봄에 꽃이 피었네 / 陽村麗句筆生花
남순했던 지난 일 물어서 무엇하리 / 南巡往事何須問
늙은 나무이 물에 잠겨 떼가 되었구나 / 老樹潮侵臥作査
[주-D001] 반안인(潘安仁) :
진(晉)나라 시인 반악(潘岳). 그의 자가 안인(安仁)이다. 하양현(河陽縣)의 수령으로 있을 때 온 고을에다 도리(桃李)를 심었다.
[주-D002] 습씨(習氏) :
진(晉)나라 습욱(習郁). 그의 저택과 정원이 화려했고 특히 양어지(養魚池)가 있어 습가지(習家池), 일명 고양지(高陽池)로 유명했다.
[주-D003] 목은 이색 :
영호루의 유대와 공민왕(恭愍王)의 글씨. 영호루 평악을 찬양한 목은 이색(李穡)의 찬(讚)과 서(序).
[주-D004] 교주(鮫珠) :
바다에 교인(鮫人), 즉 인어(人魚)가 있는데 울면 눈물이 구슬이 된다.
74.차 여강청심루 운(次驪江淸心樓韻)
신석조(辛碩祖)
시끄러운 세상일 하루에도 몇 가진고 / 世事紛紜日幾端
오늘 이 다락에 우연히 얼굴 펴네 / 登臨此夕偶開顔
강가의 늙은 나무는 나이도 모르겠네 / 江邊老樹不知歲
하늘 끝 먼 봉은 어느 곳의 산인가 / 天末遙岑何處山
선경을 삼도 밖에 찾아서 무엇하리 / 仙境肯尋三島外
풍류는 오호보다 예가 더 낫구나 / 風流却勝五湖閒
총총히 도끼 짚은 사신의 몸 / 怱怱仗鉞皇華使
내 어이 뛰어다니며 잠시도 한가하지 못한가 / 胡奈奔馳未暫閑
75.아들 안명(安命)에게 부침[寄子安命]
이나(李那)
북풍이 몰아치고 눈이 휘날리는데 / 朔風號怒雪飄揚
네 기한을 생각하니 서글픈 맘 그지없노라 / 念汝飢寒感歎長
색은 몸을 망치나니 모름지기 삼갈 것 / 色必敗身須戒愼
말이 저를 해치거니 다시금 조심하여라 / 言能害已更詳量
난봉 친구 사귀면 끝내 무익한 법 / 狂荒結友終無益
교만하여 남 업신여기면 되려 제가 상하느니 / 驕慢輕人反有傷
만사를 충성과 효도 밖에 구하지 말라 / 萬事不求忠孝外
일조에 빛난 이름이 임금님께 달하리라 / 一朝名譽達吾王
76.강일용(姜日用)이 모란을 부(賦)한 고사를 써서 한원에게 부침[用姜日用賦牧丹故事寄呈翰苑]
권제(權踶)
몇달 앓던 몸이 겨우 되살아나서 / 沈痾數月殆將蘇
걸음 아직 비틀비틀 지팽이 붙들고 다니네 / 行步欹斜信杖扶
눈에는 까마귀와 꽃이 물색을 따르고 / 眼底鴉花隨物象
귓가엔 개구리 노래가 피리소리와 섞이네 / 耳邊蛙樂雜笙竽
옥당(중서성, 봉황지라고도 한다.)의 여러분들은 봉처럼 솟아 날고 / 玉堂群彦褰高鳳
금궤(귀중한 국가의 문서를 넣는 궤.) 천추에 동호를 잇네 / 金匱千秋繼董狐
3년 동안 대제로 제 구실을 못했으니 / 待制三年慙不分
아마도 호로를 그린 것 사람들이 웃으리 / 傍人應笑畫葫蘆
[주-D001] 동호(董狐) :
춘추 때 진(晉)나라의 사관(史官)으로 직필(直筆)로 유명하다.
[주-D002] 호로(葫蘆)를 그린 것 :
모방해 본뜬다는 말. 송(宋)나라 도곡(陶糓)의 문한(文翰)이 당대의 으뜸이었는데, 어떤 사람이 그를 철거하니 태조가 웃어 이르되, “듣건대 한림의 제서(制書) 초학이 다 전의 사람들의 옛 초본을 검사하여 사구(詞句)만 바꾼 것이라 하니, 이는 소위 본[樣]대로 호로박을 그린 것이다.” 하니 도곡이 시를 짓되, “우스워라, 한림 도학사는 해마다 본[樣]대로 호로박만 그리누나.” 하였다.
77.곡 윤대제학회(哭尹大提學淮)
박팽년(朴彭年)
율의 손자, 동의 아들로 대대 기구를 이어 / 孫桐祖栗繼箕裘
나라를 빛낸 문장이 과연 제일류러니 / 華國文章第一流
양자는 꿈에 흰 봉을 토했고 / 楊子夢中成吐鳳
포정의 눈에는 온전한 소가 없더라 / 庖丁眼底欠全牛
인간에서 아직 금궤를 다 펴보지 못했는데 / 人閒未畢抽金樻
하늘에서 누가 옥루에 기문 짓기 재촉했나 / 天上誰催記玉樓
애달파라 지하에서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니 / 惆悵九原難可作
남긴 글은 응당 무릉 구하시리 / 遺書應傍茂陵求
[주-D001] 율(栗)의 …… 아들 :
회(淮)는 동헌(桐軒) 윤소종(尹詔宗)의 아들이며 윤택(尹澤)의 손자이다.
[주-D002] 양자(揚子)는 …… 토했고 :
한(漢) 양웅(揚雄). 양웅이 《태현경》을 지을 때 꿈에 흰 봉을 토했다.
[주-D003] 포정(庖丁)의 …… 없더라 :
소를 가르는 신기(神技)를 가진 포정(庖丁)이 위(魏)나라 문혜군(文惠君) 앞에서 그의 기술 연마(鍊磨)의 과정을 술회한 말. “처음 신이 소를 기를 때엔 보는 바가 소아닌 것이 없었지요. 그러다가 3년 뒤에는 일찍이 ‘온전한 소’를 본 적이 없나이다.” 하였다. 보는 대상(對象)이 모조리 짝짝 갈려[分析] 보였다는 말.
[주-D004] 인간에서 …… 못했는데 :
금궤에 있는 책을 펴보고 국사(國史) 짓는 것을 마치지 못했다는 말이다.
[주-D005] 하늘에서 …… 재촉했나 :
당(唐)나라 이하(李賀)에게 낮에 어떤 붉은 옷 입은 사람이 와서, “옥황상제가 백옥루(白玉樓)를 지었는데 당장 그대를 불러 기문을 지으려 한다.” 하더니, 이하가 곧 죽었다.
[주-D006] 지하(地下)에서 …… 못하리니 :
한 무제(漢武帝)의 능이다. 여기서는 사마상여(司馬相如)가 병으로 벼슬을 그만두고 여기와 살고 있어, 무제가 말하되, “상여가 병이 심하다 하니 가서 그가 저술한 글을 모두 가져오라.” 하니, 상여의 처인 탁문군이 상여가 남긴 봉선문(封禪文)을 바쳤다.
78.제 팔경도(題八景圖)
안지(安止)
건주의 기이한 경치를 내 일찍 몰랐더니 / 虔州異景未曾知
한 폭 생초에 황홀히 옮겼구나 / 一幅生綃恍惚移
달 밝은 밤 총소리는 골짝에 은은하고 / 殷壑鐘聲明月夕
비 갠 날 이내가 수풀에 아롱졌네 / 傍林嵐彩雨晴時
포구 비낀 해에 돛은 나는 듯 빠르고 / 日斜浦口帆飛疾
사장 가득한 눈에 기러기 천천히 내리누나 / 雪滿沙頭雁下遲
뜰안을 안 나가도 모조리 다 구경하니 / 不出戶庭看盡處
그윽한 흥 절로 일어 새 시에 들어가네 / 渺然幽興入新詩
79.어버이를 영화롭게 하려고 대구(大丘)로 돌아가는 서강중(徐剛中) 형제를 보내며[送徐剛中兄弟榮親歸大丘]
하위지(河緯地)
한 가문에 문과 무로 꽃다운 이름 날려서 / 一家文武姓名香
형은 집금오(한나라 벼슬이름)이고, 아우는 옥당에 앉았네 / 兄執金吾弟玉堂
북당의 학발을 효도로 봉양하니 / 鶴髮北堂膺孝養
남국에 비단옷이 벌써 빛을 내리도다 / 錦衣南國已輝光
할미새 앞뒤에 그대가 부럽고야 / 鴒原先後君堪羨
자형 나무 갈렸으니, 나 홀로 맘 상하네 / 荊樹參差我獨傷
고개 돌려 바라보니 월파정 아랫길에 / 回首月波亭下路
산 가득히 솔과 잣나무 빽빽이 늘어섰으리 / 滿山松栢鬱蒼蒼
80.차 무주 한풍루 운(次茂朱寒風樓韻)
김담(金淡)
반은 산 벼랑에 걸치고, 반은 물 가에 / 半在山崖半水邊
가시 사립문, 초가지붕 세월이 지났구나 / 柴門茅屋度年年
지적엔 세상밖이 땅도 들었는데 / 版籍未刪方外地
찾아서 놀러오니 별유천지에 노니는 듯 / 巡遊如入洞中天
태수의 단하주를 부질없이 기울이면서 / 浪傾太守丹霞液
여러분의 백설편을 그릇 회답하네 / 錯和諸公白雪篇
같은 막부의 두 낭관이 먼저 시를 지으니 / 共幕二郞先占句
그 재명 노조린 앞에 있을 만도하구나 / 才名定合在盧前
[주-D001] 노조린(盧照隣) :
당(唐)나라 왕발(王勃)이 양형(楊烱)ㆍ노조린(盧照隣)ㆍ낙빈왕(駱賓王)과 더불어 문장으로 이름을 날리니 세상에서 사걸(四傑)이라 일컬었다. 양형이 일찍이 말하되, “내가 노의 앞에 있음이 부끄럽고 왕의 뒤에 처함이 창피하노라.” 하였다.
81.벽송정(碧松亭) 삼질놀이[碧松亭禊飮]
권채(權採)
벽송정 아래 삼각산 밑에 / 碧松亭下華山陲
맑은 구름 가벼운 바람 해도 더디게 가네 / 雲淡風輕日正遲
왕희지 계를 닦던 곳과 똑같은 모임 / 宛似羲之脩禊處
증점이 읊고 돌아오던 바로 그때 / 還如點也詠歸時
석양 그림자 속에 술잔 돌리기 급하고 / 斜陽影裏傳觴急
긴 젓대소리에 춤추는 소매가 너울너울 / 長笛聲中舞袖垂
나는 글재주도 없이 자리 끝에 참여하여 / 嗟我不才參席末
선배들 높은 모임에 함께 시를 논하누나 / 斯文高會共論詩
[주-D001] 벽송정(碧松亭) :
서울 성균관(成均館) 북쪽에 있었던 정자. 소나무가 울창했다.
82.병 요양(療養)차로 집에 있으며 회포를 써 인수(仁叟)에게[移病在家書懷寄仁叟]
이영서(李永瑞)
나 같은 우활한 선비를 뉘라서 기억하리 / 有誰能記一迂儒
친구를 떠나 혼자 살기 벌써 오래네 / 久矣離群獨索居
창려는 우습구나, 민기부를 짓다니 / 笑殺昌黎閔已賦
혜강은 맘대로 절교서를 보내라지 / 任他中散絶交書
가난한 살림에 현인주를 못 마련하니 / 家貧未辦賢人酒
궁벽한 곳에 장자 수레를 어이 맡을까 / 地僻難邀丈者車
청운에 붙어 오름이 내 분수에 없으니 / 攀附靑雲旣無分
녹문에 돌아갈 준비 내사 어이 늦추리 / 鹿門歸計可虛徐
[주-D001] 창려(昌黎) :
당(唐)나라 한유(韓愈). 그는 자기 신세를 탄식한 〈민기부(悶己賦)〉를 지었다.
[주-D002] 혜강은 …… 절교서(絶交書) :
진(晉)나라 혜강(嵇康)이 벗 산도(山濤)가 자기를 벼슬에 천거함을 못마땅히 여겨 그에게 절교서를 보냈다.
[주-D003] 현인주(賢人酒) :
맑은 술을 ‘성인(聖人)’이라 하고 탁한 술을 ‘현인(賢人)’이라 하는데, 위(魏)나라 때에 금주령이 내려 주객(酒客)들이 쓴 은어(隱語).
[주-D004] 궁벽한 …… 수레 :
한(漢)나라 진평(陳平)은 집이 가난하여 거적으로 문을 만들었으나 문밖에 점잖은 이의 수레 바퀴 자국이 많았다.
[주-D005] 녹문(鹿門) :
산이름. 후한(後漢)의 고사(高士) 방덕공(龐德公)이 약을 캐며 은거했던 곳.
83.무현금(無絃琴)
이영서(李永瑞)
도연명이 거문고 하나 가지고 / 淵明自有一張琴
줄을 매지 않았으니 뜻이 더욱 깊었도다 / 不被朱絃思轉深
진정한 취미를 어찌 소리로 얻을 것인가 / 眞趣豈能聲上得
천기는 고요한 속에 찾아야 하네 / 天機須向靜中尋
곤어 줄, 쇠 채가 다 부질없는 일 / 鯤絃鐵撥渾閑事
유수ㆍ고산곡도 헛 애만 쓰는 것 / 流水高山謾苦心
옛 곡조가 속인의 귀에 어울림이 없으니 / 古調未應諧俗耳
기나긴 천 년 동안에 그 지음이 없구나 / 悠悠千載少知音
84.서재에서 황정(黃庭)의 내경(內景) 한 편을 읽어보니, 그 장생(長生)하는 법이 다만 세상의 누(累)를 떠나고 사람의 욕심을 끊는 두 가지 일에 있을 뿐이었다. 다시 앞의 운(韻)을 써서 경순(景醇)에게 부치다[齋室讀黃庭內景一篇其久視長生之術不過離世累斷人慾二事耳復用前韻寄景醇]
강희안(姜希顔)
선경을 어찌 세상에 비할 것인가 / 仙境何曾比世閒
경루랑 옥전 좌중이 써늘한걸 / 瓊樓玉殿坐中寒
닭의 울음 들으며 길 달리기 사람들은 지치겠지만 / 聽鷄馳道人應倦
주미를 두르며 경을 설하기 나는 한가하네 / 揮麈談經我則閑
침수향을 사르니 연기가 뭉게뭉게 / 沈水香燒煙矗矗
보허성 끊어지니 이슬이 축축 / 步虛聲斷露漙漙
태상노군(천상의 신선)이 푸른 하늘에 높이 앉아 / 老君高拱靑冥上
인간의 정성을 보고 빙긋이 웃으시리 / 俯鑑丹忱始破顔
신선들의 생애는 샘이랑 돌이랑 사이 / 羽客生涯泉石閒
깊은 산 퍼렁빛이 옷에 스며 써늘하리 / 山深空翠滴衣寒
천지간의 묘한 작용은 이와 감뿐 / 乾坤妙用離和坎
선약 만드는 공부는 바쁘고 한가함에 달렸나니 / 藥餌功夫忙與閑
신수와 화지가 처음으로 배합하고 / 神水華池初合配
황아와 백설이 오래라야 뭉쳐지네 / 黃芽白雪久成漙
나도 옛날 그때 났더라면 요동의 학 / 吾生當日遼東鶴
천년 뒤 집에 왔건만 옛 얼굴 그대롤세 / 千歲歸家依舊顔
머리 갑자기 센 것을 놀리지 마소 / 莫怪蒼華忽滿顚
자넨 수련할 줄 아니 오래 살 것이로세 / 子能修煉可長年
갈홍은 수령을 자청하여 도를 이루었고 / 葛洪求令因成道
매복은 벼슬을 쉬고 신선되기 공부했네 / 梅福休官便學仙
뼈 바꾸고 양돌림이 응당 비결있을 터 / 換骨廻陽應有訣
죽지않고 세상에 삶이 어찌 인연 아니리 / 留形佳世豈非緣
들으매 청학동이 내 고향에 있다 하니 / 已聞靑鶴是鄕洞
부곽전 없다손 쳐도 돌아가서 숨으리라 / 歸隱河須負郭田
늘그막에 사람들이 날 미쳤다 하지만 / 晩歲人皆笑我顚
나는 미침으로 오래 살려하네 / 我顚將欲制頹年
전부터 알았었네 세상의 허영꾼들 / 久知世上夸仳子
임간에 자재한 신선보다 못한 줄을 / 未及林閒自在仙
대낮에도 이따금씩 늘 도인하면 / 白日有時常導引
푸른 산 어느 곳엔들 올라가지 못하리 / 碧山無處不攀緣
끝내는 밀혜의 기묘한 방법 / 終然密盻成奇妙
장가의 밭갈기에 힘쓰리라 / 一以張家力服田
[주-D001] 이(離)와 감(坎) :
불과 물. 양생(養生)의 요체(要諦)는 수화(水火), 음양(陰陽)의 배합에 있다.
[주-D002] 신수(神水)와 화지(華池) :
도가서(道家書)의 양생술에서 신체의 각 수분 분필의 조절을 비유로 말한 은어(隱語)들.
[주-D003] 황아(黃芽)와 백설(白雪) :
도가 양생술에서 비약(秘藥)으로 쓰는 연분(鉛粉) 등의 약물.
[주-D004] 갈홍(葛洪) :
진대(晉代) 사람. 호는 포박자(抱朴子). 도적을 평정한 공으로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졌으나 신선의 도양술(導養術)을 좋아하여 교지(交趾)에 단사(丹沙)가 난단 말을 듣고, 그 영(令)이 되기를 자원하여 나부산(羅浮山)에 들어 연단(煉丹)하였다.
[주-D005] 매복(梅福) :
한대(漢代) 매복(梅福)이 남창위(南昌尉)로 있다가 벼슬을 버리고 구강(九江)에 가 신선의 도를 얻었다 한다.
[주-D006] 청학동(靑鶴洞) :
지리산(智異山)의 가장 깊숙한 골. 신선들이 산다 한다.
[주-D007] 부곽전(負郭田) :
전국 시대 때의 소진(蘇秦)은 집이 가난하여 고향을 떠나 육국(六國)의 왕을 유세(遊說)하다가 육국의 정승이 되었다. 고향에 다니러 와서 탄식하기를, “내가 성밑 논[負郭田] 수경(數頃)만 있었더라면 어찌 육국 정승의 인(印)을 찰 필요가 있었겠느냐.” 하였다.
85.양이(量移)의 명(命)을 듣잡고 우연히 읊음[聞量移之命偶吟]
성희(成熺)
명시에 쫓겨나 늙었으니 어이하리 / 見逐明時乃老何
4년 동안 고생에 백발도 많이 났네 / 四年憔悴二毛多
한성 사람이 분성사람 되었으니 / 漢城客作盆城客
은해(도가에서 눈을 말한다) 물결이 금해 물결 더했네 / 銀海波添金海波
초택에 읊는 굴원으로 자처했건만 / 自擬屈原吟楚澤
장사에 귀양간 가의를 누가 동정했던가 / 誰憐賈誼謫長沙
성은이 이미 귀전을 허락했으니 / 聖恩已許歸田去
공산(공주의 진산)에 내 돌아가서 술부대나 되오리 / 應向公山作酒魔
[주-D001] 양이(量移) :
“공(公)은 병자년에 종질 삼문(三問)의 연루로 김해(金海)에서 귀양살이하다가 기묘년에 편의를 좇게 하여 공주(公州)로 돌아왔다.”라는 제주(題註)가 있다. 양이(量移)는 귀양간 사람을 조금 나은 곳으로 작량(酌量)하여 옮겨 주는 것이다.
86.차 양양루 운(次襄陽樓韻)
김예몽(金禮蒙)
천하를 맑히기야 범공보다 앞서기 바라랴만 / 澄淸敢望范公前
구경 다니기는 한창 때처럼 하는구나 / 遊賞猶能及壯年
그림자는 현산길에 달을 쫓고 / 影逐峴山官道月
꿈은 서울 어로의 연기를 따르네 / 夢尋華岳御爐煙
성은이 깊으신데 갚을 턱 바이 없고 / 恩深欲報嗟無地
짐 무거워 난감하니 하늘이 부끄럽네 / 任重難堪愧有天
좋은 경개 만나면 흥만은 넘쳐서 / 佳境逢來饒逸興
미친 흥이 마치 광천물을 마신 듯하여라 / 興狂還似飮狂泉
[주-D001] 범공(范公) :
후한(後漢)의 범방(范滂). 그는 지방 수병들의 탐오(貪汚)를 적발하는 임명을 받고 수레에 올라 고삐를 잡으며 개연(慨然)히 천하를 맑힐 뜻이 있었다.
[주-D002] 광천(狂泉) :
옛날 어느 나라에 광천(狂泉)이 있어 그 물을 마시는 사람은 미치지 않는 이가 없었다. 《南史》
87.봉기 서강중(奉寄徐剛中)
송처관(宋處寬)
일장성(광주 남한산성의 옛 이름) 밑 낡은 초가집에 / 日長城下古茅廬
돌아와 나는 이미 나 살 곳을 정했네 / 歸去吾今已卜居
늙고 병든 유마는 잠자기만 즐기고 / 老病維摩空愛睡
청빈한 두보는 책 읽기를 좋아하네 / 淸貧杜甫酷耽書
가을 수저엔 장요미(좋은 쌀의 일종)가 미끄럽고 / 匙秋流滑長腰粒
날마다 밥상엔 아가리 큰 농어가 오르나니 / 盤日行鳞巨口魚
어느 저녁 광나루 윗길로 / 何夕廣津津上路
술 한 병 차고 취한 채 당나귀를 찾아가 탈까 / 一壺相訪醉騎驢
[주-D001] 유마(維摩) :
불교의 《유마힐경(維摩詰經)》에, “유마힐 거사(居士)는 병으로 늘 누워 있으면서도 문병(問病)하러 온 문수보살(文殊菩薩) 등 여러 보살에게 설교하였다.” 하였다.
88.관서(關西)에 종사(從事)로 가는 구검상(具檢詳)을 보내며[送具檢詳從事關西]
박중손(朴仲孫)
출처와 행장은 기필할 수 없는 것 / 出處行藏不可期
문무를 겸전함이 곧 남아일세 / 一文一武是男兒
배승상은 원수로도 명망이 높았거늘 / 元戎望重裵丞相
한퇴지는 사마로도 재주가 뛰어났었지 / 司馬才雄韓退之
성덕이 원래 이역에까지 미쳤으니 / 聖德自來覃異域
오랑캐들 어이 변방을 침범하리 / 天驕那得犯邊陲
조용히 담소하는 중 요괴로운 연기 그치리니 / 從容談笑妖煙熄
관서로 떠나는 이별 섭섭하다 마옵세 / 莫向關西惜別離
[주-D001] 배승상(裴丞相) :
당(唐) 배도(裴度). 그는 문무를 겸전하여 승상(丞相)으로서 회채(淮蔡)를 토평하고 진국공(晉國公)에 봉해졌다.
[주-D002] 한퇴지(韓退之)는 사마 :
한퇴지는 당나라 한유(韓愈). 배도(裴度)가 회서(淮西)를 칠 때에 한퇴지(韓退之)가 행군사마(行軍司馬)의 직책으로 종군(從軍)하였다.
89.능성(陵城) 구좌상(具左相)께 올림[上陵城具左相]
최사로(崔士老)
낙백한 이내 신세 공명이 섶 쌓은 것 같네 / 落魄功名似積薪
밝은 창 만권서를 다시 누가 친하오리 / 晴窓萬卷更誰親
쓸 데 없는 재목은 허튼 나무로 만족할 밖에 / 材無適用還宜散
술도 못 사오니 가난한 줄을 알괘라 / 酒不能賖始覺貧
늘그막에 객이 된 몸이 슬플만 하나 / 末路堪悲身作客
이 마음은 아직도 초목과 함께 봄이 되네 / 此心猶與物爲春
누항이 적막하다고 말하지 말자 / 莫言陋巷常岑寂
상상이 자주 찾으니 바로 친구라네 / 上相頻過是故人
[주-D001] 누항(陋巷) :
공자(孔子)의 제자 안회(顔回)가 누항(陋巷)에 살았다. 누항은 누추한 골목이란 말이다.
90.차 성천루 선시(次成川樓船詩)
박원형(朴元亨)
강 건너 뭇 봉오리 칼처럼 뾰족하고 / 江上群峯劍樣尖
봉 앞의 강물은 쪽 푼 듯 푸르구나 / 峯前江水正挼藍
앵무주의 꽃다운 풀은 바람에 쓰러졌고 / 鸚洲芳草嫌風亞
등왕각의 긴 하늘은 거울 속에 잠겼네 / 滕閣長天對鏡涵
늦봄의 버들엔 파란 가지 더하였고 / 春老柳堤添綠線
비 갠 산성엔 푸른 이내 뭉쳤네 / 雨晴山市蔟青嵐
사군의 배가 마침내 크게 쓰이리니 / 使君舟楫終收用
지금 베푼 정화가 이남 못지않구나 / 政化如今見二南
[주-D001] 등왕각(滕王閣)의 긴 하늘 :
왕발(王勃)의 〈등왕각서(滕王閣序)〉에, “가을 물은 긴 하늘과 한 빛이로다[秋水共長天一色].”란 말이 있다.
[주-D002] 이남(二南) :
《시경(詩經)》의 〈주남(周南)〉ㆍ〈소남(召南)〉 두 편. 주(周)의 문왕(文王)과 소공(召公)의 교화로 백성이 잘 다스려져 읊어진 시들.
91.등 거제 무이루(登巨濟撫夷樓)
권반(權攀)
어진 성군이 이으시와 사해를 진정하시니 / 聖聖相承鎭四溟
오랑캐랑 왜랑들 절로 와서 복종하네 / 戎夷賓服自來庭
창ㆍ칼을 아니 쓰니 국경이 조용하고 / 戈鋋不用封疆靜
싸우는 소리 없으니 강산이 편안하구나 / 戰伐無聲海岳寧
넓기도 넓은지고 천 길 물결 희게 솟고 / 千尋浩浩鯨濤白
망망한 가운데 대마도인 듯 푸르네 / 一點茫茫馬島靑
다행히 천하가 태평 아무 일도 없으니 / 幸是大平無一事
원수가 아부영 안에 한가로이 누웠네 / 元戎閑臥亞夫營
[주-D001] 아부영(亞夫營) :
한 문제(漢文帝) 때에 흉노(凶奴)가 침범하므로 세 장군을 보내어 방어하게 하였다. 다른 장군은 극문(棘門)과 패상(㶚上)에 병영(兵營)을 쳤고, 주아부(周亞夫)는 세류(細柳)에 병영을 쳤다. 문제(文帝)가 친히 군사들을 위로하러 갔는데, 아부(亞夫)의 영문(營門)에 이르러 전구(前驅)가 먼저 가서, “천자(天子)께서 곧 오시니 병영의 문을 열라.” 하니 문을 지키는 군사가 말하기를, “군중(軍中)에서는 장군의 영(令)만 듣지 천자의 명령은 듣지 않는다.” 하였다. 조금 후에 천자가 이르러 장군에게 전달한 뒤에야 영문을 열고 영접하는데, 군령이 매우 엄숙하였다. 문제(文帝)는 나오면서 감탄하기를, “패상(㶚上)과 극문(棘門)의 병영은 여기에 비하면 아이의 장난과 같다. 아부(亞夫)는 참다운 장군이다.” 하였다. 여기서는 병영을 아부영(亞夫營)에 비한 것이다.
92.길성(吉城)에서 현판 위의 시에 차운하여[次吉城板上詩韻]
김수령(金壽寧)
깊숙한 마운령 상상봉 꼭대기에 / 窈窕磨雲最上端
비틀비틀 늙은 말이 안장을 못 이기네 / 竛竮老馬不勝鞍
조도 3천 리를 옛말로 들었더니 / 舊聞鳥道三千里
양장 108구비를 이제 올랐구나 / 今陟羊腸百八盤
안개와 이내에 옷이 반이나 젖었는데 / 宿霧輕嵐衣半濕
낭떨어지 벼랑에 두 눈이 아찔하네 / 懸崖絶壁眼雙寒
여보게 동정 일을 말하지 말게 / 憑君莫話東征事
서풍에 귀밑머리가 또 세려고 하옵네 / 鬢髮西風又欲斑
93.생각나는 대로[謾成]
김수령(金壽寧)
동ㆍ서로 떠다니는 몸 얼굴에 가득한 먼지 / 蓬轉東西滿面塵
흰 구름 높은 데선 고향만 바라보네 / 白雲高處望鄕頻
나라 은혜 못 갚았으니 수고를 사양하리 / 未成報國寧辭勩
전원에 일찍 못 감은 가난의 탓이로세 / 不早歸田正坐貧
삼경(은자의 집)엔 아직도 대 옮길 흥이 깊은데 / 三徑尙深移竹興
청문에 외 심는 사람 감사하네 / 靑門多謝種苽人
세상일을 마치고는 물러가리니 / 世間事了終須退
봄날에 청려장 짚고 녹야의 봄을 찾으리 / 藜杖相尋綠野春
[주-D001] 청문(靑門) :
소평(召平)이 진(秦)나라 때에는 동릉후(東陵侯)로 봉하여졌다가 진나라가 망한 뒤에는 청문(靑門)에서 외를 심으며 생활하였다.
94.천사(天使) 김식(金湜)의 시에 차운하며[次金天使湜詩]
김수령(金壽寧)
바닷가에 역마를 달려 혼자 누에 오르니 / 海天飛馹獨登樓
원룡 같은 그 호기 걷잡을 수 없사외 / 豪氣元龍浩不收
가물가물 긴 하늘에 나는 새 아득하고 / 漠漠長空迷去鳥
깊은 풀에 가는 소가 빠지네 / 深深芳草沒行牛
시내를 가른 흰 돌엔 여울 소리 급하고 / 分溪白石灘聲急
길 양쪽 푸른 산에 나무가 울창하네 / 夾路青山樹影稠
좋은 비가 수레 따라 이르니 / 好雨已隨車馬至
5월 연못 언덕이 가을처럼 서늘해라 / 陂塘五月欲先秋
95.귀양살이하면서 서강중(徐剛中) 학사가 부친 시에 차운하며[謫居次韻徐剛中學士見寄]
윤자영(尹子濚)
귀양온 뒤 머리가 모두 다 세었는데 / 謫來雙鬢白無餘
시골서 말을 몰고 가는 대로 다니네 / 驅馬鄕關信所如
한가로운 구름에 잠긴 산은 자취를 감출 만하고 / 偃蹇雲山堪晦迹
늘그막의 세월 속에 그저 글이나 쓰네 / 衰遲歲月謾成書
노목이 되살아나기 어려운 줄 내 아노니 / 自知老木難重活
찬 재도 두 번 불면 불이 인단 말을 말게 / 休道寒灰得再噓
그대 후일에 남국에 안절하거든 / 爲報他時按南國
성초(봉명사신(奉命使臣)의 수레)로 삼려대부를 한 번 찾아 와 주소 / 星軺肯許訪三閭
96.제 창원 한벽루(題昌原寒碧樓)
이석형(李石亨)
평생에 샌님같이 졸한 생활 안 배워서 / 平生不學冷儒酸
매양 높은 누에 올라 난간을 의지하네 / 每上高樓便倚欄
산은 연기를 띠고 파랗게 발로 들어오고 / 山帶煙光入簾碧
시내는 대를 비춰 싸늘히 사람을 적시누나 / 溪涵竹影浸人寒
학의 등에 삼천이 가까운 듯 / 還疑鶴背三天近
자라 머리 위엔 사해가 없음을 보려노라 / 試見鼇頭四海寬
우스워라 늙을수록 미친 흥은 더하니 / 自笑老來狂更甚
이 풍정 이 시흥이 언제 가라앉으리 / 風情詩興幾時闌
높디 높은 연봉이 바다로 닥쳐와 / 山勢岧嶢控海來
하늘 끝 승경이 한 눈에 열리누나 / 際天形勝望中開
구름은 만고에 얼마나 남았는가 / 雲飛萬古曾何限
학은 천추에 가고 다시 안 오네 / 鶴去千秋不復回
벼랑의 대엔 흰 달만 비칠 뿐 / 斷岸有臺空皓月
잔비엔 글자 없이 푸른 이끼만 끼었네 / 殘碑無字秖蒼苔
기나긴 지난 일을 누구에게 물어볼꼬 / 悠悠往事憑誰問
고풍을 사모하여 술 한 잔을 붓노라 / 長揖高風酹一杯
97.울진 동헌운(蔚珍東軒韻)
이석형(李石亨)
높은 성이 우뚝 변경에 버티고 서서 / 高城越絶鎭邊陲
창해를 누르나니 형세가 기이하구나 / 直壓滄溟勢最奇
물결 쫓는 웅장한 바람은 바다를 뒤엎을 듯 / 逐浪雄風吹海倒
하늘 찌르는 늙은 나무 구름에 기대어 늘어졌네 / 干霄老木倚雲垂
고향 생각하나 등루부(왕찬(王粲)의 부)를 왜 지으랴 / 思鄕肯作登樓賦
술잔을 들고 문월시나 읊어보네 / 把酒聊吟問月詩
뜻밖에 만나니 평수 같은 신세들 / 邂逅相逢盡萍水
바쁘게 돌아가려나 가기가 도리어 더디네 / 欲忙歸去去還遲
[주-D001] 술잔을 들고 문월시(問月詩) :
이백(李白)의 시로, 술잔을 잡고 달에게 묻는다는 시가 있다.
[주-D002] 평수(萍水) :
물에 뜬 부평초처럼 정처없이 떠다니는 신세.
98.도중 즉사(途中卽事)
이석형(李石亨)
오랜 세월을 말 위에서 보내노라니 / 悠悠馬上送烏蟾
인간의 철 바뀜이 바쁘기도 한지고 / 忽忽人間換冷炎
산 중턱에 떠도는 구름은 파란 띠를 감은 듯 / 山腹雲歸橫翠帶
바다 입술을 솔이 가리워 푸른 수염이 길구나 / 海唇松掩長蒼髯
넋이 떨리는 잔도에 진흙이 미끄럽고 / 魂驚絶棧泥仍滑
병중에 겁나는 찬 바람 눈까지 겹쳐오네 / 病怯寒風雪更添
날 적부터 진작 호시를 뜻했던 것 / 弧矢當年曾結意
신고가 백ㆍ천이라도 내사 싫지 않노라 / 百千辛苦也無嫌
[주-D001] 호시(弧矢) :
‘상호봉시(桑弧蓬矢)’의 준말로 남자를 낳으면, 뽕나무 활과 쑥대 화실로 동서남북 사방으로 쏘는데, 그것은 장래에 사방으로 다니면서 대업을 이루기를 축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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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권 끝.
첫댓글 오늘도 좋은 자료 잘 가져 가겠습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