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귀한 인생
시 49 : 1-20
본문 12절에 보면 인간은 존귀한 존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존귀한 존재가 된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격을 가지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감으로 존귀한 것니다.
그렇지 않으면 같은 날 창조된 짐승처럼 땅의 것만을 위해 살다가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제의 대상인 인간에게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 뜻을 받들어 살아감으로 존귀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본 말씀을 찬양하는 고라자손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의 엄중함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조상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당을 만들어 하나님이 세우신 모세와 아론을 대적 했는데(민 16:1-2) 이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가 되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고라의 자손들이 다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라의 자손들 중에서 악을 따르지 않는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살아남음으로
그때의 교훈을 자손들에게 가르침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성전에서 제사장들을 도우며 하나님께 헌신하며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래서 불의한 인생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으라는 것입니다.
모든 인생들이 귀담아 기쁘게 들어야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 말씀이 우리를 살리고 존귀한 존재로 만들어 주기 때문에 잘 청종해야 합니다.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부유한 사람도, 가난한 사람도, 모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남자나 여자나, 어린아이들도, 나이 든 어르신들도 다 들어야 성령의 역사로 거듭나서 존귀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더욱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55:2-3)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그런데도 듣지 않는 사람들이 많고,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듣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며 하나님께 속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들은 복된 사람이며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요 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겨야 하고,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하늘의 지혜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거룩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시고 인간의 본질을 알게 합니다.
그래서 인간들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더럽고 흉악한 존재인지를 보여 주시고
이 세상을 떠나면 영원한 천국과 영원한 지옥이 있음을 알게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이 죄인들을 사랑하사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알게 하셔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시고 존귀한 존재로 살게 하십니다.
구원을 받은 이후에는 어떻게 이 땅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시 1: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이것이 거듭남으로 존귀한 존재가 된 성도들이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어떤 인생이 될까요? 어리석은 인생이 됩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가 있는데 말씀을 듣지 않으니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니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죄와 지옥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세상 중심으로 살게 됨으로 어리석은 삶이 됩니다.
*그래서 자기도 구원받지 못하고 자기 형제도 구원하지 못합니다.
7-8절) 아무도 자기의 형제를 구원하지 못하며 그를 위한 속전을 하나님께 바치지도 못할 것은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
오직 인간의 죄는 예수님의 피가 아니면 대속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피흘리며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해야 모든 죄를 용서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는 죄를 용서 받을 길이 없고 구원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와야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야 예수님이 구주로 믿어집니다.
내가 먼저 예수님을 믿어야 가족들과 형제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형제에게 복음을 듣지 못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삽니다.(6절) 이 말은 세상 것을 의지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과 관계되어서 살아야 행복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 세상 헛된 것을 의지하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 합니다. 힘을 의지하고 권력을 의지 합니다.
돈을 의지하고 지식을 의지하고 자기 배경을 의지합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더 얻으려고 밤 낯없이 수고하며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자기 양심을 어기며 법을 어기면서 까지 많은 불법을 행하며 수고합니다.
이런 행위는 하나님 앞에 부지런히 자기 죄를 쌓으며 심판을 재촉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전능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 것을 의지하고 사는 자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 자기 자랑에 젖어 삽니다.
11절) 그러나 그들의 속 생각에 그들의 집은 영원히 있고 그들의 거처는 대대에 이르리라 하여 그들의 토지를 자기 이름으로 부르도다
18절) 그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
지금 이들에게 있는 것이 다 누구 것입니까? 다 하나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자기가 수고해서 얻은 것인냥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그것들을 영원히 소유할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하나님이 주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만 자랑해야 될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자기 이름을 높이고 자기를 자랑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어리석음을 어떤 부자를 통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눅 12:16-19)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의 영혼을 취하면 육신의 죽음, 인생의 끝이 오는 것입니다.
@모두 인생은 다 죽습니다. 10절) 그러나 그는 지혜 있는 자도 죽고 어리석고 무지한 자도 함께 망하며 그들의 재물은 남에게 남겨 두고 떠나는 것을 보게 되리로다.
이처럼 죽음은 믿는 자에게도 불신자에게도 동일하게 찾아옵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하셨기 때문에 ...... 죽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기에 ......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셨기 때문에 (히9:27) ...... 이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죽음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어떻게 세상을 떠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죽음은 때와 장소와 시간에 관계없이,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이 동등하게 찾아옵니다.
죽음은 부자나 거지나, 노소나, 신자나 불신자를 가리지 않고 똑같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님 안에서 바르게 살다가 바르게 죽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며 묵상하고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사람은 바르게 살지도 못하고 죽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평생을 땀 흘리며 수고했지만 결국은 어리석은 인생으로 자기 생을 마감하는 것입니다.
@죽은 후에 어떤 일이 있습니까?
14-15절) 그들은 양 같이 스올에 두기로 작정되었으니 사망이 그들의 목자일 것이라 정직한 자들이 아침에 그들을 다스리리니 그들의 아름다움은 소멸하고 스올이 그들의 거처가 되리라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영접하시리니 이러므로 내 영혼을 스올의 권세에서 건져내시리라. 이처럼 죽은 후에는 악인과 의인이 천국과 지옥으로 영원히 갈립니다.
천국은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 받은 자만이 들어가며 영원히 위로받는 곳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면 주님이 우리를 영접해 주십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영원한 위로를 받으며 영생을 즐겁고 기쁘게 누리는 곳입니다.
그곳은 (계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그러나 지옥은 영원히 형벌을 받는 곳입니다.
원래 지옥은 하나님을 대적한 마귀와 그 사자를 위하여 예비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끝가지 악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거부함으로 지옥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막 9:48-49)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계 21:8절에서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옥은 계속되는 고통으로 밤낮 쉼을 얻지 못하고 탄식하며 소리만 질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부자와 나사로를 통해 지옥의 실상을 확실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눅16:22-24)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 죽을 땐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고
죽은 후에는 반드시 천국과 지옥으로 분리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 있을 때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해야 합니다.
그리고 구원 받은 이후에는 성도답게 회개에 합당한 삶을 살며
선한 일에 힘쓰며 충성함으로 하늘에 보화를 쌓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이 재림하실 때 칭찬과 존귀와 상을 받고 영생을 누립니다.
결론 : 이 땅에서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은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 참된 믿음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읽어드리며 말씀을 마칩니다.
전12:13-14>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라.
출처: 창골산 봉서방 글쓴이: 주달영
(2)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같다.
시 49: 1-20
우리들 주변에서 함께 호흡하면서 살아가던 정다운 사람들이 한 사람 두 사람 우리 곁을 떠나가는 것을 봅니다. 70-80이 넘어 호상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눈물이 나오지 않는데 어린 자녀들은 부인에게 남겨두고, 홀로 계신 어머님보다 앞서 가는 사람을 보면 집례하는 목사도 눈물이 앞을 가려 예배드리 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장례를 지난주간에 모셨습니다# 서울여대 기독교학과 교수이신 장경철 목사님이 {주어진 순간을 사랑하라}는 제하의 기고문이 기독신문에 있었습니다. 그는 학교에서 [죽음과 종교]에 관한 자료를 모으던 어느 날 우연히 볼펜의 심을 바라보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고 합니다. "나의 운명은 볼펜의 심과 비슷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용할 수 있는 양이 제한된 가운데 하루하루 사용된다고 하면 볼펜의 심은 그의 인 생을 연상케 해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 저도 그런 순간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볼펜 한 자루를 가지고 기도원에 가서 어떤 글을 쓰다가 잉크가 다 떨어져서 그만 글을 쓰는 것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컴퓨터에서 설교문을 작성하고, 이제 설교문을 프린트하여 가지고 나가야 하는데 그만 프린터에 잉크가 다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사무실에서 가서 원하는 프린트를 계속할 수 있습니다만, 이렇게 제한된 양을 다 사용하고 이 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경우를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여기서 한가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죽음이란 어느날 갑자기 나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장 교수는 이런말을 쓰고 있습니다.
"오늘도 나는 하루를 살아가면서 죽음에 가까이 한 발자국을 내디뎠던 것이다. 죽음은 늘 나와같이 호흡하다가 그 순간이 오면 죽음을 완성시킬뿐이다. 사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은 내가 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오늘 하루도 죽음을 향하여 한걸음 더 다가간 것입니다. 그리고 죽음은 나를 떠나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하는 모든 일들은 나는 죽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해야만 합니다
죽음이라는 것을 가지고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아무리 미화시키려고 노력해도 슬픈 경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은 죽음 앞에 할 말을 잊어버리고 숙연해지는 것은 죽음이란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침통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두려운 죽음이 나에게 찾아온다고 하면 어쩔 수 없어 받아들이는 것이지, 기쁘게 받아들일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을 식탁의 화제로 삼는 사람이 없으며, 공동묘지를 유쾌한 소풍의 장소로 삼지않는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마치 가브리엘 천사나 미가엘 천사를 맞이하는 것처럼 감사와 즐거운 마음으로 맞이하는 사람 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 사람은 자기 홀로 죽음을 맞이해야 하기에 죽음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기에 무척이나 힘든것이 사실입니다. 죽음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사건이기에 두려운 것입니다. 인간을 말할 때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데 왜 한 천년 살아가게 하시지 않고, 겨우 100년 미만 살다 죽게 하셨는지 모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원하신 속성처럼 우리도 영원한 존재로 지으셨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세계를 만들어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이 땅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으로 충분하고 족한 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신 하늘나라가 없다고 하면------------ 이 세상에 사는 것으로 참으로 부족하고 형편없는 창조라고 할 것입니다
성경에는 죽음을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건강한 것 같지만, 나이가 많고 기운이 진하면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창25:8) "그가 수가 높고 나이 많아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 (창35:29) "이삭이 나이 많고 늙어 기운이 진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고 하셨습니다. 노아도 나이 많고 기운이 진하여 죽었고 아브라함도 나이가 많고 기운이 진하여 세상을 떠나야 했습니다. 우리도 나이가 많아지고 기운이 진하면 죽어야 합니다. (히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죽음은 인생의 공도요, 누구나 가야 하는 길입니다. 세상의 모든 권세를 누리고 살았던 다윗도 마지막에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왕상2:2)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흙으로 육신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셨습니다. 그 생기는 하나님에게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을 찾아가시는 날이 반드시 오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라고 하셨습니다. (눅12:20) 우리도 오늘이나, 아니 내일 밤에 우리의 영혼을 찾아 가실지 모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나라에 당당히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우리 주님이 우리의 모든 더러운 죄를 다 깨끗이 씻어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엡3:12에서-------------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또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고백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나아갈 때 당당히 나아감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부터 죽음이란 생명의 종식이 아니라, ---형태의 변화이며 장소의 이동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이후부터 죽음은 슬프거나 흉하고 불길한 것으로 받아들 이지 않고 천국으로의 이민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것을 장막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고후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라고 하셨습니다. 육신을 입은 채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 육신의 장막 집이 무너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권속들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식구들이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아버지 하나님과 영원한 교제가 이루어지는 -------그 집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요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성도들이 죽는 것을 아주 귀하게 보시고 있습니다.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시 116:15)라고 하셨습니다.
의인은 죽음에도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정복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믿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집에 모여들고 살아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보시고 돌아오신 사도 요한이 기록하신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3-4) 구원받은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흔들며 보좌를 향하여 나아가며===찬송을 부르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죽음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서야하는 심판이 있습니다. 영생이라는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생명을 말하는 것이지, 지옥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것은 영생이 아닙니다. (요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일5:12-13)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요10:28-29)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 고하셨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감격을 새롭게 합시다.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인생을 오래 살았고, 또 일찍이 살았던 옛날 성도들은 우리에게 아주 귀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시49:1-4)---------------- "만민들아 이를 들어라 세상의 거민들아 귀를 기울이라 귀천 빈부를 물론하고 다 들을지어다 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내 마음은 명철을 묵상하리로다 내가 비유에 내 귀를 기울이고 수금으로 나의 오묘한 말을 풀리로다"고 하셨습니다.
표준새번역 성경에는 ---"만민아, 이 말을 들어라. 이 세상에 사는 사람아 모두 귀를 기울여라.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모두 귀를 기울여라. 내 입은 지혜를 말하고, 내 마음은 명철을 생각한다. 내가 잠언에 귀를 기울이고, 수금을 치면서 내 수수께끼를 풀 것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만민들아 이를 들으라 세상의 거민들아 귀를 기울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세상의 거민이라고 한 것은 이 세상이란 잠시 잠깐 있다가 가야하는 곳이기에 덧없고, 아주 짧은 인생이라는 의미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빈부 귀천을 가리지 않습니다.
(시49:12)----------------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치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같도다" (시49:20)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여 모든 생물중에서 존귀하지만, 오래 살아가지 못하는것을 볼때 멸망하는 짐승같은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인생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정말 멸망하는 짐승에 불과하다고 노래 하였습니다
시인은 한가지 사실을 알았습니다. 재물이라는 것, 그것을 가지고는 생명을 위한 속전이 되지 못하고, 한 시간도 생명을 연장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재물을 많다고 해도 그는 그 재물을 가지고 자기의 생명을 한 순간도 더 연장하거나 영원한 나라를 사들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7절의 말씀에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갑부라 하여도 사람은 자기의 생명을 속량하지 못하는 법, 하나님께 속전을 지불하고 생명을 속량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뜻은 본 구절이 의미하는 바는========== 사람이 아무리 재물이 많던 지식이 많던지 다른 사람을 죽음으로부터 구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속전이란 사람의 생명을 사오는 것을 말합니다. 노예의 값을 지불한다는 말이 ---구속, 대속, 속량이라는 말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7-9입니다.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저로 영존하여 썩음을 보지 않게 못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생명은 오직 생명으로 속하는 것이지, 어떤 물질을 가지고 사고 팔 수 있는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속하기 위해서는 아들 예수님이 대신 죽어야 했던 것입니다
10-11절입니다.---- "저가 보리로다 지혜있는 자도 죽고 우준하고 무지한 자도 같이 망하고 저희 재물을 타인에게 끼치는도다. 저희의 속 생각에 그 집이 영영히 있고 그 거처가 대대에 미치리라 하여 그 전지를 자기 이름으로 칭하도다"라고 했습니다.
"누구나 볼 수 있다. 지혜 있는 사람도 죽고, 어리석은 자나 우둔한 자도 모두 다 죽는 것을 ! 평생 모은 재산 마저 남에게 모두 주고 떠나지 않는가! 사람들이 땅을 차지하여 제 이름으로 등기를 해 두었어도 그들의 영원한 집, 그들이 영원히 머물 곳은 오직 무덤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16절입니다. (시49:16-20) -------------------"사람이 치부하여 그 집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 말지어다 저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 영광이 저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 저가 비록 생시에 자기를 축하하며 스스로 좋게 함으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을지라도 그 역대의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영영히 빛을 보지 못하리로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같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사람은 존귀하나 장구치 못함이여 멸망하는 짐승같구나"라고 탄식하였습니다.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같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부귀 영화를 누리는 존귀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가 깨닫지 못하면 멸망하는 짐승 같을 뿐이라고 하셨 습니다. 인생에게 깨닫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창1:26-27).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을 해석하려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한마디로 우리는 하나님에게 응답하면서 살 수 있는 관계성을 부여받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응답할 수 있는 관계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우리 사람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부여받았습니다. 전3:11에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사람은---- 인격적이며, 이성적이며, 도덕적 책임이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파스칼이---- "사람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하고 "사람은 생각하기 위하여 태어났으며, 따라서 사람은 한시도 생각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고 말하였는데, 사람은 과연 생각하면서,그리고 생각하는 중에 깨달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좀 생각이 있는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람이 생각하는 중에 무엇을, 어떻게 깨달으면서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 로 오늘은 우리가 꼭 깨달아야 할 중요한 몇 가지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 그러한 깨달음을 어떻게 얻을 것인가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1.사람은 ----하나님이 계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말씀은 하나님이 계심을 새삼스럽게 따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말씀은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창조하신 만물을 붙드시고 계시며, 마지막에는 심판도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창1:1,히11:3,1:1-3,행17:31).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그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말씀하시며 (잠1:7), 하나님께 나아갈 사람을 반드시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히11:6). 우리는 하나님의 눈동자 앞에서 사는 존재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믿고 의지하면서, 경건하게 살아가는 삶은 하나님께 정성스럽게 예배하는 생활로 나타나며, 크고 작은 모든 일을 하나님의 도우심과 복 주심을 바라면서 하나님을 중심하여 처리하는 생활로 나타나며,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생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은 하나님에게 영광과 기쁨을 드리게 될 것이며,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크신 축복속에 서 기쁨과 평안과 행복과 보람이 넘치게 하여 줄 것입니다
2. 사람은 ---- 인생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 중에서 영장의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창조주, 섭리주, 입법주, 심판주가 되시는 하나님도 깨달아 알아야 하지만, 인생 자체에 대하여서도 바르게 깨달아 알아서 인생을 바르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인생을 아무렇게나 살아 버릴 수 없는 너무나도 존귀한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바로 알려고 하여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말씀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가 되시며, --------------------------우리를 향하신 기쁘신 뜻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단 한번만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번 태어났다가 죽어서 세상을 떠나면 이 세상에는 영영히 다시 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인생은 되풀이되고 반복되 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사람이 치부하여 그 집 영광이 더할 때에 너는 두려워말지어다. 저가 죽으매 가져가는 것이 없고 그 영광이 저를 따라 내려가지 못함이로다"고 말씀하십니다 (시49:16-17).
어떤 사람은 이 땅에서 가난과 궁핍과 괴로움이 많은 인생을 사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가난과 궁핍과 고생이 죽음의 저 편에까지 꼭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3. 사람은 ---하나님이 마련하신 구원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짧은 인생을 살아야 하며, 그것도 수고와 슬픔이 있는 인생을 살게 된데는 까닭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에게 죄를 지어서 이 모든 것이 인생에게 오게 되었으며, 죽은 후에는 심판을 받아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불쌍한 처지에 있는 인생을 위하여 구원을 마련하셨다고 말씀하시며, 이 구원이 심히도 귀중한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시49:8)
4.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은 최후에 하나님께서 인생을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히9:27,롬14:10-12,계20:11-15).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한번은 서야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은 진리대로 될 것이며(롬2:2), 회피할 수 없으며 (롬2:6), 사람의 차별도 없이 공정하게 될것이며 (롬2:9-11). 은밀한 것 까지도 심판하실 것이며 (롬2:16), 예수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롬2:16). 우리들은 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의 행한 바 일들을 낱낱이 직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롬14:12).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믿는 사람에게는 정죄하여 심판은 없는 것입니다 (롬8:1).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정죄를 대신 받으셨으며, -----------죄의 문제를 온전히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나 믿지않는 사람에게는 어찌할수없이 정죄가 있고, 따라서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 인간됨이란 깨달음에 있고 그 행복과 가치는 인격에 있습니다.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인격은 그가 가진 깨달음과 그 베풀어주신 은혜를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아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적어도 아는 만큼은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재물이나 명예나 지식은 살아가는 수단이지, 결코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는 역으로 생각해서 죽음이 있기에 우리의 살아가는 인생은 더욱 소중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필요해서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고, 하나님이 예비해놓으신 그 나라를 후사로 받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날이며, 나의 생애에 있어 다시는 올 수 없는 중요한 날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은혜 안에 있는 것입니다. 주어진 우리의 시간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시간을 쪼개서 사용해야 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일들을 사랑합시다. -------"아이고, 이것 안 하면 굶어 죽는가!" 그래서 일하지 말고,
하나님이 인생을 지으실 때 일과 함께 일생을 살아가라고 지어주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은 다 소중한 사람들이기에------------- 주어진 순간을 사랑하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천국 네비게이션 글쓴이: Ge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