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1) 全國의 風景돌아보기, 全北 扶安 內邊山 梅窓公園 外
梅窓公園과 李梅窓 墓
梅窓公園 -扶安郡 扶安邑 西外里 -黃眞伊, 許蘭雪軒과 함께 朝鮮時代 女流文章家로 유명한 扶安名妓
李梅窓을 追慕해 조성한 공원이다. (*蘭: 난초 난 *妓: 기생 기 *窓: 창 창)
李梅窓(1573~1610)은 朝鮮 宣祖때의 女流詩人으로 이름은 癸生(桂生) 또는 香今이라했으며, 字는 天香,
號는 梅窓이다. 扶安縣吏 李湯從의 庶女로 일찍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한테 글을 배워 漢詩에 뛰어났으며
歌舞도 잘했는데 특히 거문고를 잘 탔다. 時調에도 능해 梅窓의 詩 여러 편이 전하는데
<梨花雨 흩날릴제…>는 代表的傑作이며 離別을 노래한 詩로 으뜸으로 꼽는다. 그의 詩文이 널리 알려지자
많은 文人, 豪傑들이 梅窓과 사귀기를 원했는데 延平府院君 李貴, 蛟山 許筠, 村隱 劉希慶 등과 깊게 사귀었다.
1610년 38세에 他界해 扶安邑 五里峴 [매창뜸]에 거문고와 함께 埋葬했으며, 墓碑와 床石이 있는 梅窓墓는
1983년 地方記念物로 지정되었다. (*湯: 끓일 탕 *庶: 여러 서 *蛟: 교룡 교 *筠: 대나무 균 *隱: 숨을 은)
李梅窓을 黃眞伊, 許蘭雪軒과 함께 朝鮮 三大女流詩人(梅窓 대신 申師任堂을 꼽기도 한다.)으로 꼽기도 하며,
黃眞伊·李梅窓·雲楚 金芙蓉을 조선시대 三大妓生으로, 高敞출신 詩人 辛夕汀은 梅窓, 詩人인 村隱 劉希慶과
直沼瀑布를 ‘扶安三絶’이라고 했다. 梅窓死後 1655년에 墓碑를 세웠으며, 그의 珠玉같은 漢詩 58편을 모아
開岩寺에서 1668년 <梅窓集>을 간행했다. <梅窓集>은 현재 세권이 남아있는데 서울 澗松美術館에 두 권,
美國 하버드大學圖書館에 한 권이 보존되어 있으며, 1956년 辛夕汀이 최초로 對譯한 <梅窓集>이 있다.
梅窓의 墓祭는 매년 음력 4월 5일 扶風律會 會員들이 지내고 있다.
(*芙: 연꽃 부 *敞: 시원할 창 *汀: 물가 정 *澗: 산골 물 간)
*梅窓集 -朝鮮中期의 女流詩人 梅窓의 漢詩集
口傳되던 梅窓의 漢詩集 58首를 모아 顯宗 9년(1668))에 板刻했다. 梅窓集에는 五言絶句 26首, 七言絶句 26首,
五言律詩 4首, 七言律詩 4首 등을 收錄했다.
(01) [매창공원] 標石
(02) 李梅窓 墓 -전라북도 기념물 제65호
1610년 38세에 他界해 扶安邑 五里峴 [매창뜸]에 거문고와 함께 埋葬했으며, 무덤 앞에는 床石과 香爐石이 있고,
상석 왼쪽에는 1917년에 세운 碑石, 오른쪽에는 現代에 세운 碑石이 있다. (*爐: 화로 로)
(03) 李梅窓 墓의 墓碣, [名媛 李梅窓之墓]
*墓碣: 무덤 앞에 세우는, 머리 부분이 둥그스름한 작은 돌 비석. (*碣: 비석 갈)
한국에는 墓碣·墓碑 등의 명칭이 있는데, 文體는 명확한 구별이 없다. 다만 모양이
묘비는 직사각형이고, 묘갈에 비해 규모가 크다. 특히 神道碑는 거북받침 위에
직사각형의 비석을 세우고 그 위에 비 갓을 올렸으며, 從二品 이상의 벼슬을 지낸
사람만 세울 수 있었다.
(04) 梅窓詩碑 [御水臺]
*御水臺는 新羅 敬順王이 물을 마시고 갔다는 곳으로 內邊山
쇠뿔바위봉 남동쪽 우슬재가 있는 扶安郡 上西面 靑林마을에 있다.
(05) 梅窓詩碑, 贈 醉客(증 취객)/취하신님께. (*醉: 취할 취)
(06) 梅窓詩碑, 梨花雨
*梅窓이 돌아오지 않는 村隱 劉希慶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이다.
劉希慶은 庶民출신의 風流詩人으로 當代의 文士들과 詩를 주고받으며 지냈다. 유희경이 梅窓을 만난 것은
壬辰倭亂때 高敬命이 主唱해서 궐기한 義兵에 참여하기 위해 光州로 내려가던 길이었다.
扶安에서 기생 매창을 만나 시와 노래를 주고받으며 사랑이 싹텄는데 그때 劉希慶의 나이 48세, 梅窓은
스무 살 꽃다운 나이였다.
(07) 梅窓詩碑, 憶故人/옛 님을 생각함.
村隱 劉希慶이 서울로 돌아간 뒤 아무런 소식이 없자 梅窓은 失意에 잠겨 삶의 의미마저
잃어버렸다. 돌보아 줄 임이 없기에 자신의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아 이제는 몸에 病만 남았다.
임과 이별한 뒤 인생의 無常함과 孤獨에 밀려 눈물로 지내는 여인의 哀想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憶故人 외에도 다음과 같은 시도 있다. (*憶: 생각할 억)
病中愁思(병중수사)
空閨養拙病餘身(공규양졸병여신)/홀로 사는 몸 제대로 돌보지 못해
몸엔 병만 남고, (*閨: 안방 규 *拙: 옹졸할 졸)
長任飢寒四十春(장임기한사십춘)/오랜 동안 굶주리고 추웠는데 마흔 살이네. (*飢: 주릴 기)
借問人生能幾許(차문인생능기허)/묻노니 인생이 얼마나 되는가,
胸懷無日不沾巾(흉회무일불첨건)/가슴에 맺힌 마음 하루도 눈물 거둘
날 없네. (*胸: 가슴 흉 *懷: 품을 회 *沾: 다할 첨 *巾: 수건 건)
(08) 梅窓詩碑, 病中/님 그리워 병났어라.
[病中]은 梅窓이 壬辰倭亂直後 劉希慶을 그리워하며 쓴 漢詩이다
病中 外에 ‘故人’이라는 詩도 있다.
故人(고인)
松栢芳盟日(송백방맹일)/송백처럼 푸르자 맹세하던 날 (*芳: 꽃다울 방)
恩情與海深(은정여해심)/사랑은 바다같이 깊었는데
江南靑鳥斷(강남청조단)/멀리 떠난 임 소식 끊어졌으니
中夜獨傷心(중야독상심)/한밤중에 홀로 마음 아프네.
(09) 梅窓의 죽음을 슬퍼하며 -許 筠
許筠과 梅窓이 처음 만난 것은 1601년으로 그 해 7월, 허균은 轉運判官이 되어 漕運을
감독하기 위해 全羅道로 내려왔는데 이때 비가 많이 내려 扶安에 머물게 되고, 이곳에서
梅窓을 만나게 되었으며, 그 당시의 상황이 許筠의 文集에 남아 있다고 한다. (*漕: 배로 실어나를 조)
‘23일(壬子). 부안에 도착하니 비가 몹시 내려 머물기로 했다. 高弘達이 인사를 왔다.
倡妓(*노래와 춤을 업으로 하는 기생) 桂生이 거문고를 뜯으며 詩를 읊는데 생김새는
시원치 않으나 재주와 情感이 있어 함께 이야기할 만해 종일토록 술잔을 놓고 詩를 읊으며
서로 和答하였다. 밤에는 桂生의 조카를 寢所에 들였으니 혐의를 피하기 위해서이다.’
(*倡: 광대 창 *桂: 계수나무 계 *寢: 잘 침)
-許筠, <惺所覆瓿藁> 卷18, 文部15, 紀行 上 <漕官紀行> 중에서-
(*惺: 깨달을 성 *覆: 깨달을 복 *瓿: 단지 부 *藁: 짚 고)
매창공원에는 다 보지도 못하고 보고도 올리지 못한 梅窓詩碑가 있으며, 이외에도 梅窓을
기리는 가람 李秉岐의 <梅窓뜸>, 소설가 鄭飛石의 <梅窓墓를 찾아서>, 송승권의 詩
<李梅窓의 무덤 앞에서> 등 많은 碑가 있다.
(10) 名唱 李中仙의 墓. 梅窓公園에 있다.
*李中仙(1901 또는 1903 ~1932)
南道名唱으로 當代 최고의 女流名唱 李花中仙(1898~1943)의 동생으로 1920年代 李花中仙과 함께 高敞郡의
律會會員으로 활동했으며, 당시에 유행했던 ‘육자배기’와 ‘흥타령’을 잘 불렀다. 大東唱劇團에서 李花中仙·
朴初仙 등과 함께 주로 三南地方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1930년대 ‘육자배기’, ’흥타령’, ’성주풀이’, ’농부가’,
’자진농부가’, ’새타령’, ’珍島아리랑’, ‘개구리타령’ 등 南道民謠를 音盤에 취입했다.
(11) 扶士의 塔 -2001.04 건립. *扶士: 扶安出身 人士
扶安 東門안 堂山 -국가민속문화재 제19호 -扶安郡 扶安邑 東中里
堂山·上元周將軍·下元唐將軍 등 3基가 있으며, 扶安 西門안 堂山(중요민속자료 18)과 거의 같은 由來를 지닌다.
東門안堂山의 主神인 堂山은 높이 3.20m의 화강암기둥에 碑文이 있다. 上元周將軍은 ‘할아버지堂山’으로
‘上元周將軍’이라고 하며 특별한 祭祀는 없으며, 마주보고 있는 下元唐將軍은 東中里와 仙隱里의 경계에 堂山木
바로 옆에 있는 돌장승은 ‘할머니堂山’이라고 하며 ‘下元唐將軍’이라고 陰刻했다. 主神 堂山의 附隨神이며
특별한 제사는 없다. 堂山祭는 陰曆 正月 대보름날에 隔年으로 지내는데, 堂山木을 감아 올린 묵은 동아줄을
벗겨내고 새것으로 감아준다. (*附: 붙을 부 *隨: 따를 수 *隔: 사이 뜰 격)
(01) 할아버지 장승. ‘堂山하나씨’ 또는 ‘문지기將軍’이라고도 한다.
[上元周將軍]이라고 陰刻하고, 磐石이 있고 갓을 썼으며 특별한 祭祀는 없다.
높이 180cm, 얼굴 길이 50cm이다. 벙거지를 쓴 모습이 ‘濟州島 돌하르방’과 비슷하다.
(*磐: 너럭바위 반)
(02) 할머니 장승.
[下元唐將軍]이라고 음각했으며 높이 223cm, 얼굴 길이 52cm이다.
(03) 솟대堂山. 石鳥神竿으로 ‘당산 하나씨’, ‘짐대 하나씨’라고도 한다.
東門안 당산의 主神으로 높이 320cm의 花崗岩기둥으로 碑文이 있으며 기둥 위에는
길이 59cm의 돌로 만든 새가 머리를 北西쪽으로 向하고 있는데 이는 마을의 火災를
예방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04) 堂山옆 民家의 멋진 돌 담장
優齋 金基炳 行蹟碑 -扶安郡 上西面 甘橋里
優齋 金基炳(1831~1895)은 甲午年(1894) 東學農民運動때 500여명의 農民軍을 지휘해 扶安城을 無血占領하고
扶安 白山城에서 全琫準 將軍과 合勢해 黃土峴戰鬪, 全州城占領, 牛金峙戰鬪에 參戰했으나 구체적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 우금치전투에서 慘敗後 地下農民 革命運動을 계속하다 체포되어 1895.02.10 扶安 東門밖 刑場에서
處刑되었다. (*炳: 밝을 병 *琫: 칼집 장식 봉 *峴: 고개 현 *峙: 언덕 치)
邊山半島國立公園의 古刹 開巖寺입구의 개암사주차장 맞은편 남쪽 산자락의 優齋 金基炳의 墓앞에
[동학농민혁명군 대장 우제 김기병 행적비]를 세워 優齋 金基炳의 憂國衷情과 甲午年 東學農民革에 관한 敎訓을
전해주고 있다.
(01) 東學革命 農民軍隊長 優齋 金基炳 行蹟碑
(02) 優齋 金基炳 墓. 墓碑에는 [優齋 扶寧 金公 基炳之墓]라고 陰刻했다.
(03) 優齋 金基炳 行蹟碑에서. 저 앞에 禹金山울금바위가 보인다.
(04) 自然保護憲章塔. 開巖寺진입로 옆에 있다.
月明庵 아래 內邊山의 蓬萊九谷에도 자연보호헌장탑이 있다. (*蓬: 쑥 봉 *萊: 명아주 래)
(05) 善山 柳氏 世阡碑 (*阡: 무덤 천)
水聖堂(水城堂)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58호 -扶安郡 邊山面 格浦里
水聖堂(水城堂)은 西海를 다스리는 바다의 女神 개양할머니와 딸 8姉妹를 함께 모신 祭堂이다. 전설에 따르면
바다의 女神은 우리나라의 各道에 한 명씩 딸을 시집보내고 막내딸만 데리고 살면서, 西海의 깊이를 재 漁夫들의
생명을 보호해 준다고 한다. 朝鮮 純祖 4년(1804)에 건립한 것으로 이 건물은 數百年을 이어온 祭堂으로 1칸 규모의
기와집이다. 해마다 正月대보름에 格浦마을에서는 3가지 색깔의 과일과 술·포 등의 간단한 祭物을 차려 놓고
豊漁와 無事故를 祈願하는 祭祀를 올린다. (*格: 격식 격)
(01) 水聖堂으로 가는 길의 赤壁江海岸絶壁
(02) 水聖堂 입구
(03) 水聖堂(水城堂)
水聖堂(水城堂)의 최초 建築年度는 文化財廳 자료에는 純祖 4년(1804)인데 純祖 1년(1801)이라 했으며,
현존건물 건축도 1973 년과 1996년으로 되어 있어 헷갈린다. 최초 건축은 ‘崇禎紀元後 四甲子 朝鮮 純祖 四年
六月’이라고 했으니 1804년이 맞는 것 같다. (*崇: 높을 숭 *禎: 상서로울 정)
*崇禎: 中國 明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崇禎帝때의 年號(1628~1644).
明나라의 제1代 皇帝인 毅宗 崇禎帝 朱由檢때의 年號이다. 1628년을 元年으로 1644년까지 17년 동안 사용했다.
실질적으로 明나라의 마지막 年號이며, 숭정 17년(1644년)은 淸나라 世祖 順治帝때의 연호인 順治 元年이기도 하다.
그러나 朝鮮의 士大夫들은 ‘親明排金思想’으로 明나라가 멸망한 뒤에도 ‘崇禎紀元後 〇〇년’ 등으로 ‘崇禎’年號를
오랫동안 사용했다. 朝鮮王의 年號가 있는데 ‘崇禎’을 쓴 것은 士大夫들의 事大思想이 밑바탕으로 보인다.
(04) 水聖堂(水城堂) 內部
(05) 水聖堂옆 亭子와 돌탑
亭子에서 祭物을 차리고 간절하게 비는 마음, 무엇을 빌고 있을까?
赤壁江 -名勝 제13호 -扶安郡) 邊山面 格浦里에 있는 경승지.
扶安 彩石江·赤壁江 一圓 -名勝 제13호
부안 채석강·적벽강 일원은 邊山半島에서 西海바다 쪽으로 가장 많이 돌출된 지역으로 강한 파도로 만들어진 곳이다.
높은 海蝕崖 및 넓은 波蝕臺, 數萬券의 책을 정연히 올려놓은 듯한 層理 등 해안지형의 自然美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海岸段丘, 火山巖類, 褶曲 등과 함께 火山의 活動時期에 대한 硏究資料로서도 가치가 높다. 또한 天然記念物인
후박나무群落, 史蹟 扶安竹幕洞祭祀遺蹟, 문화재 水聖堂 등 잘 보존된 自然遺産과 文化遺産이 어우러져 있다.
이곳은 숲과 西海岸바닷가의 絶景을 즐길 수 있는 곳이며 水聖堂과 같은 民俗資料와 과거 닭이봉에 설치되었던
烽火臺와 같은 歷史資料가 가치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彩: 채색 채 *壁: 벽 벽 *蝕: 좀먹을 식 *崖: 언덕 애 *褶: 주름 습 *烽: 봉화 봉)
(06) 水聖堂쪽에서 본 赤壁江
(07) 赤壁江 海邊
(08) 赤壁江 海邊 波蝕臺의 바위 (*波: 물결 파 *蝕: 좀먹을 식)
(09) 赤壁江 海邊 波蝕臺의 바위
(10) 赤壁江 海邊 波蝕臺의 바위
(11) 海邊의 자갈
(12) 赤壁江의 絶壁
- (6-7-2) 全國의 風景돌아보기, 全北 扶安 邊山 觀音峰-蓬萊九曲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