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추하는 즐거움
김 선 구
칠월칠석날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산책길에 나섰다가 못 뚝 위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사이로 상현달이 외로이 떠 있는데 별빛은 희미했다. 별을 헤이던 시절을 떠 올리며 그때 불렀던 노래 몇 곡을 읍 조려 보았다. 나이가 들다보니 미래지향적 사고보다는 과거로 회귀하는 심리가 앞서는 것 같다.
요새 들어 살아 온 날들을 되돌아보는 일이 많아졌다. 젊었을 때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뛰었던 일들, 직장을 얻어 일에 종사하고, 가정을 이루어 가족들을 건사하고, 명예를 쫒아 동분서주 했던 일들이 일련의 시리즈로 점철되어 떠오른다. 지식을 탐구하고 학술을 연구하며 이리저리 방황했던 일들도 이제 생각해보니 마치 허겁지겁 풀을 뜯기에 여념이 없는 소들의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들은 날이 밝아지면 기지개를 한 번 켜고 풀을 찾아 움직인다. 풀이 무성한 곳에 이르러 냉큼 풀 한입을 혀로 감아 삼키고 나서는 쉬지 않고 풀을 뜯기에 열중한다. 그러한 모습을 보노라면 열심히 일에 몰두하는 집념으로 비춰 진다. 한참 후 물가로 이동하여 물을 마시고 나면 그 곳에 주변에 주저앉아 위 속에 챙겨 두었던 풀들을 뱉어내어 야금야금 씹어 삼킨다.
흔히 소들을 반추동물이라 부른다. 그 이유는 삼켰던 사료를 뱉어서 천천히 되씹어 삼키기 때문이다. 비축해두었던 음식을 다시 꺼내어 즐기는 듯 이때가 가장 흡족한 모습이다. 아마도 반추하는 그 맛이 그만일 것 같다. 반 쯤 감긴 눈은 꿈이라도 꾸는 것처럼 보이고, 쇠파리가 날아들어도 꼬리 한 번 휘 두르는 것이 고작이다. 이처럼 유유자적한 행동에서 사람들은 물욕을 초월한 군자 상을 그려보게 한다.
철학자 니체가 ‘소에게서 반추하는 법을 배우라’고 했던 뜻이 이를 빗대어 하는 얘기인 듯하다. 소들의 반추행위처럼 과거의 행적들을 되씹어 볼 기회를 가져보는 것도 나쁠 것이 없다. 지난날의 아련한 추억을 더듬어 보고 더 성숙된 모습으로 정리할 수 있으니 사람에게도 반추가 필요하다.
얼마 전 동료 3인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으로 초대했다. 같은 대학에서 근무하며 깊이 인연을 맺었던 친구들이다. 전공이 각각 달랐지만 의기가 상통하여 말이 잘 통했었다. 그렇지만 퇴임 후 정착한 곳이 각각 다르다보니 만남이 쉽지 않았다. 오래 동안 소원한 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만남에 더 의의가 컸다.
어쩌면 모두가 고집 센 인간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살아 왔으므로 그것이 습관화 되어 남에게 먼저 고개 숙이는 법이 없다. 명분 없이 남에게 다가가기를 꺼리게 되다보니 옛 동료들과도 담 싸고 살기가 일수이다. 그래서 퇴임을 하고나니 고독한 신세가 되는 것 같다. 아집을 버리지 못한 죄과인지도 모른지만 오래 만에 만남이라 기쁨이 더했다.
우리들은 먼저 경산시립박물관을 방문했다. 경산은 삼국시대 신라영역이었지만 부족국가시대 압독국이라는 독립국가 형태로 유지되어 고유의 문화유적들을 간직하고 있었다. 최근 이 지역에서 발굴된 인면토기가 관심의 대상이었다. 토기 3면에 사람의 얼굴을 조각해 넣은 것이 국내에서 처음 발굴품이라 했다. 그곳 문화해설사로 부터 경산의 역사와 유적과 유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이어서 삼성현 역사문화공원으로 이동했다. 그 곳 전시관에는 경산이 낳은 3명의 성인 원효, 설총, 일연의 기록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원효는 신라의 고승으로 해골에 고인 물을 마시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도리를 깨달았다는 설화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설총은 원효와 요석공주 사이에 태어난 인물이다. 설총을 얻기 위하여 원효가 불렀다는 노래 “誰許沒柯斧爲斫支天柱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빌려 주겠는가. 내가 하늘 떠받칠 기둥을 깎으리” 도 전시되고 있었다. 이로 인하여 파계승이 된 원효가 대중 속으로 들어가 계율에 얽매이지 않고 행동하는 모습에서 그의 무애(無碍)행을 엿보게 했다.
설총은 문장가요 유학자로서 이두를 집대성하였다. 또한 화왕계를 지어 유교적 가르침을 전한 위업을 이루었으니 하늘을 떠받는 기둥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 셈이다. 일연은 삼국유사의 저자로 유명하다. 삼국유사를 집필함으로써 고대 한국사의 숨결을 되살리는 역할을 했다.
방목하는 소들이 한가롭게 노니는 것처럼 답사를 대강 마치고 우리는 반곡지로 자리를 옮겼다. 반곡지는 풍치가 아름다워 전국 사진작가들이 모여드는 곳으로 유명하다. 못가에 마련된 카페에서 찻잔을 기우렸다. 수려한 풍경을 머금고 있는 반곡지를 내려다보며 앉았으니 우리도 반추하는 소들처럼 물가에 자리 잡은 셈이었다.
자연히 아까 보고 온 답사내용들을 입에 올렸다. 역사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것은 언제나 흥미로운 일이다. 마침 한국사를 전공한 친구가 있어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몇 년 만에 대하고 보니 자연히 지난날들의 회고가 곁들여 졌다. 이야기마다 향기가 피어오르고, 각자가 뱉어내는 추억들을 되새기며 삼키고 또 삼켰다. 소들은 혼자서 반추를 즐긴다. 그러나 사람들은 함께 해야 반추에 제 맛이 나는 것 같다. 남이 몫까지 반추하며 함께 즐겼다. 우리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오후 내내 반추에 취해 있었다.
첫댓글 우리 생활이 반추 하는 시간이 있어야 반성하는 시간입니다. 소만 반추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도 뒤돌아봐야 후회를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