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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6장 3부 예수님 안에는 실패가 없다
요한복음 16장 28-33
요절 요한복음 16장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우리가 반복하여 실패하면 실패의식이 생깁니다. 실패의식을 가지면 또 실패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우리는 실패를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에디슨은 1200번 실패하고 백열전구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어떻게 실패의식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 안에서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실패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예수님의 십자가도 사실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사탄을 이긴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죄를 사하고 부활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 안에 있으면 실패가 없습니다. 다만 실패를 통해서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실패를 극복하고 승리의식을 갖고 살 때 승리의 삶을 살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갖고 담대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항상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1) 제자들은 예수님을 자신을 아시는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28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29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30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세상에 오셨다가 다시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도 자신이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라는 말을 부분적으로 말씀하셨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분명히 말씀하신 것은 처음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로서 왔다가 하나님께로 간다는 것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그리스도로서 자신들의 모든 것을 아시고 이해하시고 해결해주시는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무엇을 질문하면, 그제야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말씀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사주팔자를 질문하고 우리의 대답을 들으시고 우리를 아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질문하기 전에 우리의 근본적인 필요를 아시고 이해하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찾아왔을 때 그가 산헤드린 공회원이요, 바리새인이요, 이스라엘의 선생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가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하나님 나라에 가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이 독립을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니고데모가 거듭나야 하는 것임을 알려주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를 만났을 때 그녀가 다섯 남편과 결혼하고 한 남자와 살고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지금도 그녀가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가 영적인 만족을 갈망하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영원한 만족을 주시는 성령님을 소개하여 주셨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생수의 강물이 속에서 솟아났습니다.
예수님이 맹인을 보았을 때 그가 부모와 자신의 죄로 인하여 소경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운명주의에 빠져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운명주의에 빠져서 아무 일도 못하고 구걸하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맹인으로 태어난 것은 그의 부모나 그의 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비록 맹인으로 태어났어도 그에게 선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있으니 그 섭리를 믿고 열심히 일해야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는 이를 믿고 순종하여 눈에 바른 진흙을 실로암 못에 가서 씻었을 때 눈을 뜨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죽어도 예수님을 떠나지 않는다고 맹세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지 몰랐습니다. 하루 앞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가 예수님을 그 날 밤에 세 번 부인할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자신을 아는 것보다 베드로를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깨어 기도하고 고난을 준비하여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도록 도우셨습니다. 만약 부인했을 때는 그가 말씀을 기억하고 회개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였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회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에 세 번 부인한 베드로를 갈릴리 바다에서 만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자 사람들은 그를 배신자라고 욕하였습니다. 그도 자책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가 에수님을 마음 속으로는 변함없이 사랑하는 줄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질문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 앞에서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고백을 받으시고 그에게 예수님의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는 평생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의 양무리를 먹였습니다.
어떤 소설에 보면 우산 씌워주는 남자가 나옵니다. 한 여인은 어느날 비를 피해 처마에 있었습니다. 감기 기운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는 한 남자가 그런 그녀를 알고 집에까지 우산을 씌어주었습니다. 여인은 자신을 알고 배려해주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예수님께 질문하지 않아도, 예수님이 우리에게 묻지 않아도 예수님은 우리를 다 아십니다. 우리의 과거뿐 아니라 현재 내 마음도 아시고 미래의 가능성도 아십니다.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예수님은 나를 더 잘 아십니다. 톨스토이의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권력과 부를 가진 한 남자가 일년 동안 신을 수 있는 신발을 주문합니다. 그는 아주 비싼 가죽을 주면서 만약에 구두 제조공이 만든 구두가 일년 안에 헤어지면 구두제조공을 크게 책망하겠다고 호통칩니다. 그는 자신이 그날 밤 죽을 것을 알고 있지 못하나 하나님이 보낸 구두수선공은 그가 그날 밤에 죽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집에 가는 마차 안에서 죽습니다. 결국 그에게 필요한 것은 시체에 신을 부드러운 신빌이었습니다.
우리는 잘 아는 부부라도 서로를 잘 모릅니다. 상대방이 나를 잘 몰라줄 때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래도 나를 잘 알아주는 사람과 친구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를 정확히 아십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예수님은 나의 불안 두려움도 아십니다. 우리를 아시고 배려하시며 도와주십니다. 가장 정확하고 완전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나를 아시는 이 예수님을 안다면 우리도 그 예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장래를 온전히 예수님께 맡기고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처음에는 자신의 힘으로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부인한 후에는 자신을 아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였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예수님을 따를 때는 실패하였지만 은혜로 예수님을 따랏을 때는 변화되어 예수님을 담대히 전하고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2) 예수님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고독을 극복하였습니다.
“3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가족도 예수님을 버리고 제자들도 예수님을 버립니다. 종교지도자 로마 군병도 예수님을 버립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 혼자입니다. 심지어 하나님도 잠시 예수님을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고독하셨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계시는 것을 믿음으로 고독을 극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잠시 버리는 것도 온 인류와 함께 하기 위해서 잠시 버리는 것임을 아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 하시기 위해서 잠시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과 자신을 믿는 온 인류와 영원히 영원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신과 영원히 함께 하시는 것을 믿음으로 고독을 극복하십니다.
우리 인간은 외로운 존재입니다.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존재입니다. 어린 시절 함께 하시던 부모도 떠나고 젊은 시절 함께 하던 친구들도 떠납니다. 배우자도 한 사람이 먼저 떠납니다. 온라인의 발달로 연결되는 사람은 많지만 진정으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서 마음은 고독합니다. 사람들은 군중 속에 고독을 느낍니다. 우리가 어떻게 고독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나를 아시고 영원히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나의 마음 속에 들어와 영원히 함께 하시고 어디를 가든지 나와 동행하여주십니다. 십자가에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은 나의 고통을 아시고 함께 하여주십니다.
하나님은 누구와 함께 하실까요? 시편 68편 5에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요 과부의 재판장이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고아와 같이 고독한 자의 아버지요 과부와 같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과부의 재판장이십니다. 이들은 자신의 고독함을 알고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의 남편이요 아내요 아버지요 어머니가 되어 우리를 외롭지 않게 하십니다.
욥기에 보면 욥은 가난하고 병이 들자 가족과 친지와 친구들에게 버림 받았습니다. 심지어 가족도 그를 벌레같이 바라보고 소외시켰습니다. 아내는 그에게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자살하지 않자 그의 숨결도 싫어하였습니다. 종들 어린아이도 욥을 조롱하였습니다. 욥은 고독하였습니다. 욥은 이 때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때 대속자 하나님은 그런 욥과 함께 하시며 그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차 투옥 되었을 때 다 바울을 떠나고 누가만 그 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의 투옥이 길어지자 그와 함께 하던 자들이 다 바울을 버리고 갔습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과 같이 다 떠나고 그는 오랜 감옥생활에서 혼자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의 곁에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주님이 그의 곁에 서서 그에게 힘을 주시고 계셨습니다. 바울은 곁에 서 계시는 주님을 보고 고독을 극복하였습니다.
카프카의 변신을 보면 그레고리 잠자는 어느날 벌레로 변합니다. 가족들조차 그를 징그러워하고 피합니다. 나중에는 사과를 그에게 던져서 그를 죽게 합니다. 그리고 가족들은 자기들끼리 소풍을 갑니다. 사람들은 늙고 병들고 장애를 갖고 가난하고 못 생기면 버리고 벌레처럼 여깁니다. 심지어 가족도 버립니다. 우리가 병들고 약할 때 우리는 사람들에게 버림 받고 고독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독한 그때 하나님을 의지하면 하나님은 연약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돌봐주십니다. 우리의 고독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할 때만이 해결할 수 있습니다.
(3) 환난을 당하나 담대해야 합니다.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를 앞두고 있습니다. 제자의 배신과 이스라엘 종교지도자들의 시기심과 군중들의 부정적인 여론과 로마정부의 잘못된 판결에 의해서 십자가에 죽으십니다. 그 뒤에는 사탄이 일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죽이면 자신들의 세상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죽으실 때 12시에서 3시까지 어둠이 세상을 덮었습니다. 그것은 사탄이 잠시 예수님을 이긴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도 그 순간만큼은 사탄이 예수님을 이긴 것처럼 보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기뻐하고 제자들은 슬퍼하였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라 승리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십자가에 죽지 않는 것이 패배입니다. 십자가에 죽지 않으면 사탄을 이길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 죽어야 십자가의 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실 수 있습니다. 죄를 근거로 우리를 공격하는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2장 15에 보면 예수님은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승리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로 승리하여 사탄을 이기고 사탄을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삼으셨습니다. 우리가 고통을 참고 견디는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라 승리입니다. 사탄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피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후에 부활하여 죄의 삯인 사망을 제거하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 천년 왕국에서 사탄을 무저갱에 가둘 것입니다. 새하늘과 새땅에서는 사탄을 영원히 지옥 불에 넣을 것입니다. 그 날에 완전한 승리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영원한 승리한 것을 바라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이길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이미 이겼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인 지금도 이기고 있는 것이고, 십자가로 죽는 순간에도 계속 이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로 이기고 재림하여 이기실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처럼 환난을 당합니다. 출교를 당하고 십자가에 죽는 순교도 당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패배가 아닙니다. 그들이 예수님 안에만 있다면 그들도 이미 승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박해를 통해서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복음이 전해집니다.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갖는다면 그들은 이미 이긴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처럼 이기고 있는 것이고 앞으로도 이길 것입니다.
말자쇼에서 대학에 떨어지고 재수하는 한 사람이 고민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곳에 서경석씨가 있다가 자신도 재수했다고 말했습니다. 서경석씨는 재수는 집을 짓는데 기초 공사를 일년 더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재수하는 것이 패배가 아니라 기초공사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기초공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앞으로 더 높고 큰 집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재수생과 같이 우리가 실패할 때가 있고 질병을 앓을 때도 있씁니다. 우리가 실패할 때는 패배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 패배는 아닙니다. 실패할 때 하나님을 의지하면 기초공사를 하고 뿌리를 깊이 더 내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실패할 때 예수님 안에 있으면 승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 밖으로 나가면 패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떠나지만 않으면 그들은 이기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이기고 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첫째, 마음에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이미 이긴 사람은 마음이 평안합니다.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평안은 승리를 얻은 자만이 누리는 것입니다. 시편 3편에 보면 다윗이 압살롬에 의해서 피난가면서도 승리를 확신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죄사함을 주시고 함께 하시는 것을 믿고 단잠을 잤습니다. 다윗은 마음에서 이미 승리를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피난에서 돌아오면 다시 왕이 되고 죽으면 천국 갈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살아도 승리한 것이고 죽어도 승리한 것입니다.
둘째, 담대햐야 합니다. 담대한 것은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대장부처럼 담대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전쟁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는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너는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시고 승리를 주시니 담대하라고 하셨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패배의식을 심어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합니다. 두려움과 불안을 심어서 삶을 포기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의 확신이 있다면 우리는 담대할 수 있습니다. 담대함을 가지고 사탄과 싸울 수 있습니다. 담대할 때 사탄을 이길 수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심어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도망가게 하여 우리를 죽이고 지옥에 데려가고자 합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면 사탄에게 패배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등을 보이면 공격합니다. 우리는 담대함을 가지고 사탄과 맞서서 싸우면 이길 수 있습니다. 꾀를 부리지 말고 담대하게 사탄과 정면 승부를 하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담대해야 사탄을 이길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에 보면 고린도 교회에 많은 문제가 나옵니다. 바울은 결론적으로 고린도 성도들에게 너희는 대장부처럼 담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그들은 이미 이겼으므로 담대하게 싸우라는 말씀입니다.
결론 승리의식이 승리를 가져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은 우리를 아십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아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아십니다. 내가 나를 아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아십니다. 그 분이 나와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때 불안과 두려움과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승리를 확신하고 패배의식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십니다. 제자들은 출교를 당하고 순교를 당할 것입니다. 우리는 질병과 시험 실패와 여러 경제문제와 인간관계 앞에서 고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실패의식에 시달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는 것도 승리요 부활도 승리요 재림도 승리입니다. 우리도 예수님 안에 있다면 제자들도 항상 승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하는 것도 말씀에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면 죽어도 승리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다윗이나 솔로몬 때만 승리한 것이 아닙니다. 바벨론의 때도 말씀에 뿌리를 내리고 승리한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승리를 주시는 예수님 안에서 승리의식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실패의식을 갖고 살면 실패합니다. 그러나 승리의식을 갖고 살면 승리합니다. 승리가 승리의식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승리하신 예수님이 승리의식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승리의식을 갖고 살아서 항상 승리를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16장 강해 3부 예수님 안에는 실패가 없다
요한복음 16장 28-33
요절 요한복음 16장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한복음 16장 강해 3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