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기본 원리 무시” VS “악의적인 구당 죽이기”
김남수 옹 故 장진영 침뜸 시술 놓고 “전문의료영역 vs 전통의학” 논란 가열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2009년 9월1일 위암 투병 중 사망한 영화배우 장진영 씨에 대한 구당 김남수(95) 옹의 침뜸 시술을 놓고 논란이 거세다. 최근 MBC 이상호 기자는 2004년부터 김옹의 침뜸 시술을 취재해 정리한 저서 ‘구당 김남수, 침뜸과의 대화’를 펴냈다. 그중 “김옹의 침뜸 시술이 장진영 씨의 위암 치료에 큰 도움을 줬다”는 내용에 대해 갑산한의원 이상곤 원장이 2009년 12월23일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www.pressian.com)의 기명 칼럼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을 통해 정면 비판하고 나선 것.
‘구당 김남수, 침뜸과의 대화’에 따르면 위암 4기로 대학병원에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장씨는 김옹에게 침뜸 시술을 받았다. 이 책에는 “82회에 걸쳐 자침 2500회 이상, 뜸 시술 1만회 이상이 이뤄졌고, 그 결과 치료 시작 3개월 만에 장씨는 위장 일부를 제외하고는 몸속 암세포가 모두 사라지는 극적인 효과를 보았다. 하지만 침뜸 치료 사실을 뒤늦게 안 병원 측이 시술을 중단시킨 이후 병원 치료에만 의존하게 됐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고 적혀 있다(126~130p).
이에 대해 이 원장은 ‘장진영의 봄날은 왜 갔는가’ 제하의 칼럼에서 “양의 성질을 가진 쑥으로 뜸을 떠 음의 성질을 가진 ‘암’(한의학에서는 ‘적취’)을 치료한 것은 옳지만, 김남수 옹이 큰 실수를 했다”고 지적했다. 몸이 허약할 때는 함부로 뜸을 떠서는 안 되는 게 한의학의 기본 원리인데, 김옹이 침과 뜸을 무려 각각 2500회, 1만회 이상 시술하면서 가뜩이나 투병생활로 허약해진 장씨의 몸이 더 나빠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기명 칼럼으로 포문 연 이상곤 한의사
이 원장은 “더구나 장씨가 피를 응고하는 혈소판이 부족해서 혈소판 수혈을 받았다(184~186p)고 나와 있는데, 그런 상태의 장씨에게 뜸 시술을 한 것은 더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인체의 혈관이 뜸과 같은 열에 풍선의 고무처럼 확장한 상태에서 1만회 넘게 뜸을 뜨게 되면 혈관이 늘어나 얇아지면서 잘 터지게 되고, 혈소판이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심지어 혈소판이 줄어드는 것조차 뜸으로 극복할 수 있다며 새로운 혈 자리를 찾아 뜸 치료에 박차를 가한 건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이라는 주장이다.
또 김옹이 창안했다는 ‘무극보양뜸’은 1934년 일본군이 만주침략과 함께 보급한 ‘국민보건구(뜸)’의 일종이며, 김옹의 침사 자격증 및 시술 기간, 임상에도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상호 기자는 다음 날인 24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 원장의 칼럼을 반박하는 글 ‘장진영의 봄날이 간 진짜 이유’를 올렸고, 이는 프레시안에도 게재됐다. 그는 자신의 반박 글을 통해 “허위 사실을 담고 있는 이상곤 원장의 글이 독자들로 하여금 ‘김남수 옹이 장진영을 죽게 만들었다’고 오해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이 기자는 “김옹이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장씨를 거절하지 못하고, 82일간 피 말리는 치료를 했던 것”이라며 “치료비를 받지 않았고, 개인적인 이익을 위한 언론 플레이도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또 “장씨의 치료 과정에서 침뜸 치료의 결과로 암 덩어리가 줄어드는 것과 구토, 어지럼증 등 항암제 치료의 부작용이 없어지는 것을 확인했으며, 임상자료는 모두 공개할 수 있다”면서 “‘구당이 마치 장진영을 꼬드겨 엉터리 치료를 하던 중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여타 한의사들의 악의적 주장을 반복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이 원장과 이 기자의 글은 12월29일 현재 각각 조회 수 60만 건과 50만 건 이상을 올리며 누리꾼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이렇듯 장씨의 위암 치료 문제로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긴 했지만, 한의사로 이뤄진 (사)대한한의사협회(이하 한의사협회)와 김옹은 그전부터 침뜸 치료를 둘러싸고 대립각을 세워왔다. 김옹 측은 “침뜸 치료는 의료인만 할 수 있는 전문 영역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전통의학”이라고 말하는 반면, 한의사협회 측은 “침뜸 시술이 국민 건강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전문가인 의료인의 손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12월28일 기자와 만난 이 원장은 “한의사협회와는 무관하게, 이 책을 읽고 장진영 씨 사례를 포함해 전반적인 침뜸 치료법에 문제가 많다고 느껴 관련 글을 쓰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원장은 “장씨 같은 암 환자에게 쑥뜸을 뜨는 게 한의학적으로 틀린 건 아니다.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고, 항암제의 부작용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 장씨 역시 초기에 도움을 받았을 수 있다. 하지만 쑥뜸 치료를 받기 힘든 상태의 환자에게 지나치게 많이, 오랫동안 시술했다는 게 문제다. 이는 ‘동의보감’ ‘상한론’ 등 의서에서도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김옹이 자신의 ‘무극보양뜸’이 누구에게나 좋은 ‘영양제’ 같은 것이라고 강조한 부분에 대해서도 이 원장은 “그렇지 않다”고 단호히 말했다. 모든 시술에는 음양이 있고, 사람의 체질이나 상황에 따라 약을 써야 할지, 뜸이나 침을 써야 할지, 그리고 뜸이나 침을 어떻게 얼마나 써야 할지 등이 다 달라진다는 것. 즉, 어떤 사람에게 좋은 뜸이 다른 사람에게는 안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그는 “김옹의 치료법 중 상당 부분이 한의학 관점에서 옳지 않으며, 그가 말하는 침뜸의 역사나 철학도 왜곡된 부분이 적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미국 애틀랜타에 머물고 있는 김옹은 12월30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상호 기자가 쓴 책의 내용은 한 치의 거짓도 없다. 반면 이상곤 원장의 글은 잘못된 주장일 뿐 아니라 내 명예와 평생의 침뜸 철학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누가 옳고 그른지는 국민이 알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옹은 “이상곤 원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상곤 원장과 이상호 기자의 글은 엄청난 조회 수를 올리며 누리꾼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김옹 “누가 옳은지 국민이 알 것”
남수침술원과 의료봉사단체 ‘뜸사랑’을 운영하면서 침뜸 치료를 해온 김옹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2008년 9월 KBS에서 ‘구당 김남수 선생의 침뜸 이야기’가 방송되면서부터다. 하지만 방송 후 김옹의 침뜸 치료 적합 여부에 대한 논란 또한 확산됐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침과 뜸을 시술할 수 있는 사람은 한의사 등 의료인뿐이기 때문이다. 김옹은 일제강점기에 침사 자격증을 따 침을 놓을 수 있지만, 구(뜸)사 자격증이 없어 뜸은 놓을 수 없다. 또한 ‘뜸사랑’을 통해 김옹에게 침과 뜸을 전수받은 회원들이 침뜸 시술을 하는 것 자체가 의료법 위반이다.
이에 서울시는 김옹이 뜸 시술을 한 것은 의료법 제27조 1항을 위반한 것이라며 2008년 10월1일부터 11월15까지 자격정지처분을 내렸고, 이에 김옹은 12월10일 서울행정법원에 자신의 침사 자격정지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침사 자격으로 침과 뜸 치료를 하는 것은 수십 년간 이어져온 전통이라는 것. 하지만 2009년 5월20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는 “구사 자격증 없이 뜸 시술을 한 침사에게 자격정지처분을 내린 것은 정당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럼에도 뜸사랑 회원들은 침뜸 무료봉사활동을 계속해왔고, 이에 2009년 8월3일 한의사협회 산하 대한개원한의사협의회가 무면허 의료행위 혐의로 이들을 고소했다.
김옹을 비롯한 ‘뜸사랑’ 측은 “침뜸 치료, 특히 뜸은 누구나 생활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전통의학”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민주당 김춘진 의원은 2009년 2월21일 한의사나 구사가 아닌 사람도 뜸 시술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을 위한 뜸 시술 자율화법’ 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양측 모두 “명예훼손 고발하겠다”
하지만 한의사들의 얘기는 전혀 다르다. 한의사협회 홍보위원인 레인보우한의원 하성준 원장은 “인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뜸을 뜨는 기술만 배운 사람들이 실제로 국민을 대상으로 시술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라며 “무분별한 침뜸 시술로 인한 피해 때문에 한의원을 찾는 환자들도 적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한 논의는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겨진 상태. 현재 헌재는 무면허 의료행위를 금지한 의료법 조항과 관련해 1건의 위헌법률심판 사건, 2건의 헌법소원 사건을 각각 심리 중이다. 2009년 11월12일에 공개변론을 갖기도 했다.
한편 대한개원한의사협의회는 조만간 김옹과 ‘구당 김남수, 침뜸과의 대화’의 저자인 이 기자를 허위사실 유포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할 계획이다. 한의사협회 홍보실 이상용 차장은 “책을 낱낱이 살피면서 학술적으로 잘못된 내용과 한의사의 명예를 훼손하고 한의학 역사 및 철학을 왜곡한 부분을 찾아서 정리하고 있다. 현재 법률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장씨 남편 김영균 씨는…
“처음엔 의사가 허락, 병세 악화 후 병원서 중단시켜”
‘구당 김남수, 침뜸과의 대화’는 “장진영 씨의 치료를 담당한 병원은 장씨가 침뜸 시술을 받는다는 걸 뒤늦게 알고 시술을 중단시켰으며, 그래서 2008년 12월 크리스마스 이후부터 침뜸 시술을 포기하고 병원 치료에만 의존했다”고 적고 있다.
하지만 이 대목과 관련해 장진영 씨의 남편 김영균 씨가 쓴 책 ‘그녀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에서는 다르게 기술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아래는 이 책의 내용을 요약 발췌한 것.
△침뜸 치료를 병행하면 괜찮은지 담당 의사에게 물었더니 의사는 본인이 원한다면 침뜸 치료를 하라고 했다(188p).
△항암치료로 암세포가 줄어들자 수술 전문의는 2009년 1월쯤 위 절제수술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건의했지만, 진영이는 자신은 배우이기 때문에 수술만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 어떻게든 수술은 피해 침과 뜸으로 병이 낫도록 해보겠다는 것이었다(198~199p).
△우리는 위암 수술을 받고도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암환자 3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모임 후 집으로 돌아와 완치에 대한 희망과 수술에 대한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그렇게 결심하고 기다린 지 한 달, 안타깝게도 상황은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다(209p).
△2009년 2월 초, 아침 일찍 침뜸 치료를 하러 간 진영이가 토하기 시작했다는 연락이 왔다. 위 부위에 침을 놓자 경련을 일으켰다는 것. 병원으로 데려가 검사를 했고, 이때 병원 측에서 “내성이 생겨 항암제를 바꿔야 할 것 같다. 침으로 인한 감염 우려가 있으니 더 이상 침뜸을 병행하지 말라”고 했다. 내성이 생겨 암이 다시 활동하는데 침뜸을 병행하다 위에 탈이 생긴 것 같았다. 우리는 이 일을 계기로 항암주사를 바꾸고 병행하던 다른 치료를 접기로 했다. 전이가 진행돼 수술은 불가능해졌다. 침뜸이 전이를 막지 못했다는 사실에 진영은 크게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209p).
관련 내용에 대해 장씨의 암 치료를 맡은 서울대병원 측에 확인을 요청했지만, 병원 측은 “내부 논의 결과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