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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백성을 위로하라2
이사야서 풀이 1.. 信天함석헌
「이사야서」를 중심으로
양심을 때리는 무엇이 있어야
이 말을 왜 하는고 하니 나도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우는 사람의 대열에 섰는 사람으로서 근래 오다가 느끼는 건 뭔고 하니, 정부에 대해서 잘못했다고 자꾸만자꾸만 그러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지독해져요. 그것을 지쳤다고나 할까, 지치는 것의 전(前)과정인데, 더 지독해가요. 더 지독해가는 걸 두고 자꾸 싸움을 하면 민족이 지쳐버리고 말 거예요. 과연 싸우는 대열에서도 마지막까지 그렇게 싸우겠는지 그건 모르겠소마는, 이렇게 되면 책망보다는 양심을 때리는 무슨 그런 것이 있어야지. 그렇지 않고는 모처럼 옳은 말을 가지고도 나라를 바로잡아가는 데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점 좀 생각해보자는 것이 중 심 되는 생각이에요. 지금 이 단계에 있어서 얼마까지 그럴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점이 내가 보는 좀 다른 점인데…….
그러면 어떤 분들은 “에이, 그거 미운 거 어떻게 밉잖다고 그래요? 억울한 걸 어떻게 억울하지 않다고 그럴 수 있어요?” 그러고 “그럭하면 안됩니다. 이 사람들 막강하게 싸워야 됩니다” 그러고. 그네들은 그렇게 생각을 해 그러는지, “뭐 이제 잠깐이면 다 될 텐데” 그러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아요. 묵고 묵은 그런 거니까 그래 이사야 생각도 나고, 이번에 평화라고 그랬습니다만, 그런 생각이 있어서 이걸 택했던 겁니다.
그건 위로도 되겠지만 또 그 다음에는 사람인 다음에는 기분이 좋아 서도 달라지는 것도 있지요. 이치로도 세계 대세가 달라가지 않아요? 이제 우리 문제도 미·소의 태도가 달라진다면 훨씬 달라질 겁니다. 두 진영의 대립이 있는 한은 우리 문제 해결 안 납니다. 이게 해결 안되면 이 민족의 통일도 안됩니다. 될래도 될 수가 없습니다. 미·소 두 진영이 이렇게 있고, 중공이 저렇게 있고, 중공이 변해간다고 하지만 공산주의를 버린다는 말은 안하고 그러고 있는데, 이제 어떻게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디 문제가 쉽게 되겠어요.
38선이라는 건 다 까닭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인데, 누구의 힘으로 이걸 이렇게, 썩 잘 생각한다는 사람들이 무슨 재주를 부려서, 무슨 운동을 일으켜서, 그런 것은 대개 약책으로 무슨 조직을 가지고 하는 범위를 못 넘어가는데, 그런 것을 가지고 그 문제의 해결이 얻어질 수 있는 것일까? 그보다는 더 깊은 어떤 것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면, 우리의 실제에다 이걸 대면서 여러분이 읽어보시느라면 생각되시는 것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뭔고 하니 우리에게 지금 예정되는 것이 모르긴 몰라도, 지금 아무도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없어요, 하지만 새 시대가, 아까도 누가 과도기냐를 물었습니다만, 이게 참 과도긴데 말이오, 아마 과도기의 종점이 거의 가까이 오지 않았을까요. 요새 돼가는 일이 자기네도 모르고 돈 많이 벌기 위해 자꾸 석유값 올릴는지 몰라요. 오일 쇼크라고 두 번씩이나 이러지만 두 번만이겠어요. 또 뭣이 있고 뭣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자기네는 권력의 욕심 때문에 하느라고 하지만, 그럭하면 세계 대세는 엉뚱하게 어느 면으로 갈 거예요. 그건 반드시 사람의 판단으로, 재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게 아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힘이 복잡하게 복합되는 거니까, 그런 면을 종교적인 신앙에서 얘길 하면 “시대가 변천하는 건 하나님이 아신다”는 거고, 종교적으로 말하면, 믿는 맘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제 때 가면 회복하시는 시기가 올 거다” 하고 기다리는 거고, 인간적으로 하면 “우리가 어떡하면 이 난국을 여기서 깨치고 나갈 수가 있을까” 하는 거지요. 두 가지를 다 해가는 겁니다. 그게 믿는 바른 태도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 다음 중요하고 크게 힘 되는 것은 “우리 하나님이 정말 진짜 하나님이다. 세상에 종교 많이 있지만 그게 다 잡신이지 참 하나님 못 된다” 하고 강력하게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보라! 하나님을 보라는 말이 있지 않아요. 자기가 직접 일어나서 큰 권능을 가지고 우릴 건지기 위해서, 세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걸 여러 가지 말로, 더구나 시로 돼서 나오는 말이 많이 있으니까 주의해 보시오.
그렇게 하노라면 순서가 반드시 요렇게 된다는 말 아니에요. 그러니까 보기가 좀 힘이 들어요. 이런 것이 한번만이 아니고 이거 한 토막 나왔다 저거 나왔다, 마음속에 이런 것이 있으니까 내려가다가…… 한 사람이 이걸 순서적으로 다 썼다기보담도, 대개 지금 이를 연구한 사람들의 말은, 위대한 선생님이 한 분 있었고, 그 영향을 받은 여러 사람들이, 벌써 그때에는 제2이사야가 나고, 이때는 예언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아주 한 파라고 할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고 했어요. 그 증거로는 엘리야 엘리사 때 보면, 엘리사 얘기에 예언자의 학교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영어로 하면 Son of Prophet이라고 그랬는데, 예언자의 자제라고도 하고. 그런 거 있는 걸 보면, 또 직업적으로 하는 가짜 예언자가 있어서 진짜 예언자하고 쌈하기도 하고, 요새 신학교 모양으로, 어쨌거나 그런 것이 있던 것은 사실인 모양이에요. 그런데 벌써 역사가 오래 되니까 이게 되나오고 되나와 섞이고 그래요. 그러니까 순서를 그렇게 보질 말고 미리 이런 생각을 하고 보시면, 마음속에 정돈이 될까 하고 내가 이걸 말한 겁니다. 그러니까 같은 사상이 먼저 나오고 또 나오고, 두 번도 세 번도 나와요.
세계평화도 너를 통해 된다
대체로 하나님이 무조건 용서하실 거라고 하신 다음에, 예언자가 무리(衆) 가운데서 회개하는, 하나님이 그렇게 약속하고 그런 하나님인데 왜 우리가 그것을 몰라서 그랬겠나? 책망도 하고, 무리 가운데 나서 회개도 하고, 또 호소도 하고 그런 말이 여기저기 많이 나와요. 이 자식아 회개 안하겠냐, 그리고 채찍으로만 자꾸 때렸으면 지쳐서 망해버렸을는 지 모르겠는데, 하나님 편에서 무조건 풀어준다, 풀어주니까 우리가 과연 잘못됐습니다, 이 세상에 몰랐다면 우리 민족처럼 모른 민족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는 이때까지 너를 압박하던 것들이 늘 그럴 줄 아느냐? 그런 것 다 없어질 거다, 멸망할 거다. 그리고 제2이사야 읽어가는 데 중요한 것은「여호와의 종」이라고 하는 노래가 네 번 나온다는 거요. 지금 공동 번역에는 첫째 노래, 둘째 노래, 세째 노래, 네째 노래 그렇게 했으니 여러분이 보시기 좋을 거예요. 그거 아주 중요한 거예요. 그러니까 용서해놓고 이런 다음에는, 이 앞으로 세계문제가 돼가는 데는 네가 나의 종으로서 내 뜻을 실현하는 실현자가 된단 말이에요. 그리고 이제 예언자가 느낀 대로 종을 노래해요.
그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네째 노래 53장, 52장 끄트머리에서부터 53장에 걸쳐, 그것은 제법 예수님의 생애를 눈앞에서 본 것처럼 그린, 아주 유명한 건데, 여기만이 아니고 성경 전체를 통해서 아주 놀라운 사상이에요. 그리고는 이제 무너졌던 이스라엘을 재건한다. 이때 이스라엘이란 이름이 우리에게와는 달라요. 그 사람들에게는 가령 서울을 재건한다, 평양을 재건한다, 그런 말과 다르다 그 말입니다. 우리는 주로 정치적으로 하는 생각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이라는 것을 특별한 의미로 썼기 때문에 사실상의 정치적 독립은 다 없어진 다음에도, 요한이 묵시록을 받은 것처럼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말을 그래 하게 되는 거고, 지금은 종교의 말로 민족의 차별 없이 우리도 쓰게 됩니다만, 우리 보통 생각하는 그런 의미에서가 아니에요. 예루살렘을 다시 세운다, 불로 세운다는 건, 무너진 성을 다시 쌓고 거기 성전을 다시 짓고 한다는 말이지만, 거기에는 또 그러게 되면 이제 외국에서 우리를 압박하던 사람들이 모두 다 금도 가져오고 은도 가져와서 예루살렘으로 몰려든다 하는 그런 말이 있어요. 여기「이사야서」에서 놀라운 건 뭔고 하니 예루살렘만 재건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세계평화도 너를 통해 된다는 말, 이게 아마 제일 중요해요.
정말 새 시대라고 하는 ‘새’자는 이렇게 생각해야 돼요. 세계문제가 너로 인해서 해결된다, 그런 것을 너무 단순하게 해서 이사야 때 해결이 됐습니까? 못됐습니까? 그렇게 물어서는 못써요. 그렇게 근시안적으로 할 것이 아니고 스케일을 크게 두고 할거니까, 2천 년이 왔어 도 못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도 말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사상으로 볼 때에는 놀라운 사상이에요. 사람들이 지치고 지쳤던 사르곤 1세의 제국이라든지 네브가드네잘의 제국이라든지 지글랏드 필라잘의 앗시리아라든지 이집트의 파라오라든지, 그런데 비긴다면 생각이 뛰어넘어 그것보다 정신적으로 높은, 그런 데를 말하는, 바로 그러한 곳에 마지막으로 민족적인 사명이 있단 말이에요. 이걸, 세계평화 된다는 것과 민족 사이에 이걸 강조하는 대목을 읽으면서 여러분의 눈에서 눈물이 안 난다면 겉으로 본 겁니다. 마음이 그냥 있을 수가 없는 것, 언제 읽어도 그냥 있을 수가 없는 것, 세계에 뛰어난 글, 사람이 보기만 하면 그 마음을 그냥 두지 않는 글입니다.
국가주의 청산 못하면 구원 없다
그랬는데 연전에도 얘기했지만 세상이 이렇게 되니까 시를 쓰고 소설을 쓰는데 종교적으로 쓰면 못 쓴다고 하는 그런 심리가 당초에 유럽으로부터 왔어요. 도리어 동양에서는 어린애들보고 옛 얘기 하나를 해도 마지막에는 도덕적으로 끝을 맺도록 그러는데, 그런 거 유치한 거. 예술이 뭐 도덕의 종이냐? 이런 따위 소리, 그런 걸 내놓고 해요. 그런데 그걸 감히 평하려고 하는 용기를 못 내요. 나는 처음으로 우치무리 선생한테서 들었어요. “문학이 그렇기 때문에 못쓴다, 그런 문학 어디 있냐?” 이런 점이 우리가 깊이 생각할 것이에요. 그럴 자신이 없으면 아직은 글을 쓰지 마세요. 채 되지도 못한 걸 어디서 조금 얻어들었다고 그러면 못써요! 적어도 그것이 나에게서 확신이 될 때까지, 활을 당길려면 다시 더 할 수 없이 된 다음에 놔야지. 조금 당겨서 툭툭 하는……,정말 그러진 마시오. 믿는 사람의 나쁜 건 그거예요. 조금 얻어들은 다음에 헤프게 해보고 해보고. 나도 죄 중에 그런 따위 죄를 제일 많이 짓는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마는, 그러지 않아야 된다고 하는 것을 알면서도 이립니다만. 예레미야 모양으로 “내가 이 말을 안 할려면 속에 불같은 것이 있어서 견딜 수 없다, 내가 왜 세상에 났나? 우리 엄마 왜 날 낳았나? 왜 첫날밤에 탯집 닫아버리지 않았나?” 그런 아주 극단의 소리 하지 않아요? 얼마나 괴로워서 그랬겠어요. 그렇게 된 다음에 나는 소리가, 그게 정말 남의 마음을 그대로 안 두는 소리가 될 수 있지요. 너무 급히 그러질 말고, 시간은 늦어도 괜찮아요. 이제부터라도 시작해서, 우리 민족의 장래는 어떻게 되는가? 세계 전체를 생각하지 않고 이 민족의 장래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건 이다음에 언제 얘기할 거지만, 나는 국가주의 아주 반대하는 사람인데, 세계 국가라는 것 때문에 이렇게 잘못되고 있어요. 이 국가주의, 이걸 청산하지 못하는 한은 인류의 구원 아마 없을 거예요.
지금까지는 나라 없이는 사람이 살 수가 없었지만, 지금은 나라 때문에 사람 살 수가 없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런 점을 믿음으로 어떻게 극복을 하느냐, 그런데서 아마 이게 많이 참고 될 수 있는 말씀 아닐까 합니다.
씨알의 소리 1979. 9 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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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집; 11-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