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발도인들’(Waldenses)과 개혁참교회 신앙인들
(이후 ‘개혁’은 ‘참교회’로 정정함-요약자 주)
프랑스 동남쪽, 그리고 이탈리아의 북쪽 끝 알프스 산맥에 면하는 산악 지역인
피에몽(Piemont, 이탈리아로는 Piemonte) 계곡을 중심으로 그 일대 지역은
그동안 알려져 왔던 바와는 조금 다르게, 어느 단일한 특정 참교회 집단만의 집중 거주지가 아니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오히려 이 지역은 참교회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로마 교회와 그 세력으로부터 핍박을 당하던 여러 지역의 참교회 교인들이 ‘피난처’로 알고 몰려들던 곳이었다. 이 산악으로 몰려든 참교회 교인들은 지역별로, 시기별로, 또 여러 가지 기준들과 공통성에 따라, 각각의 공동체를 형성하면서도 서로 유사하거나 공통적이거나 혹은 동일한 신앙을 제각각 유지하였다. 그리하여 그런 이들을 통칭하여 불렀던 이름이 우선 ‘발도인들’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이를테면 이 지역에는 ‘알비인들(Albigeois)’, ‘바울인들(Paulicians)’ 같은 구별된 이름의 공동체들도 유입되었으므로, ‘알비 지역 출신의 발도인들’, 또는 ‘바울인들 계열의 발도인들’처럼 구분하여 지칭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그럼에도 상당한 기간 동안 신앙 공동체로서 교제를 나누며 함께 섞여서 특정한 지역에 조화롭게 머물 수가 있었고 그러는 동안에도 비판적 분쟁이나 분열에 기인한 갈등, 알력이나 차별이 야기된 흔적이 없는 공동-공통의 동질, 동일한 신앙을 가지고 함께 거주하는 하나의 커다란 지역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조금만 비껴서 살펴보면,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이 시대에 종교적 신앙적 구분, 논쟁, 타협 등과 같은 첨예한 이슈를 생명과 생존을 걸고 다루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충돌하고 격동이 극도로 처절하던 시대였던 점을 심각히 고려하면서 이 시기, 이 지역의 상황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각 그룹들이 불렸던 그 고유한 이름들은 희미해지거나 서서히 사라졌다. 그래서 로마 교회를 중심한 대적자들은 이 지역의 개혁 신앙이들을 지칭하여 ‘보두아’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보두아!’
이 ‘보두아’라는 호칭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간단하고 명료하다. ‘계곡에 거주하는 이단들’이라는 의미였다. 호칭 속에 그들이 거주했던 구체적인 장소의 특징들을 덧붙여서 각 그룹들을 경멸하려고 했음이 강하게 나타나 있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 지역의 참교회 신앙인들은 시 형식으로 그들 자신의 신앙 고백과 신앙 활동 규정집이라 할 책을 만들었는데, 그 제목ㅈ이 ‘고귀한 교훈’(La Noble lecon,1100)이다. 이 책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이렇게 분명히 밝히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분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들로서
고난 받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보두아이다.’
즉, 대적들이 힐난하기 위해 붙인 이름을 취하여, 그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스스로 ‘보두아’라 불리는 것을 감수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러고 나서, 이곳으로부터 전파된 참교회 신앙을 수용한 전 유럽의 참교회 신앙인들에게 자연스럽게 ‘발도인들’(Valdenses 혹은 Waldenses)이라는 명칭이 부여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런 발도인들이 자리를 집고 공동체를 형성하여 머물게 된 지역들의 본래 지명들을 따라 이제는 ‘알비인들’, 혹은 ‘툴루즈인들’ 또는 ‘피카르디인들’ 등의 다른 이름들로 다시 분화되어 불리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3. ‘알비인들’과 참교회 신앙인들
약간의 차이들과 이견들에고 불구하고 특별하고도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교황과 로마 교회 교권의 사악함과 가증함에 반대하는 입장에는 결코 흐트러짐 없이 일산분란한 일치를 견지하였다는 점이다. 그들 참교회 신앙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로마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여겼고, 로마 교회는 계시록에 나오는 바 그 ‘바벨론’, ‘땅의 음녀들’, ‘가증한 것들의 어미’(계17:5)라고 믿었다.
그들의 유산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신앙의 핵심들을 열거할 수가 있다. 당대 교회는 교세의 확장을 위해 이교도들에게도 별 절차 없이 세례를 주고 교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인 것과는 달리, ‘참 교회’는 오직 ‘신자들’로만 구성된다고 주장하였다. 12세기에 들어오면서는 성경을 당시 자신들이 쓰던 현대어로 번역하여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읽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해서 일고 공부하므로, 많은 이들이 성경의 여러 부분을 암기하였고, 그 말씀의 진리들을 설명함에 능숙하였다. 그리고 성경에서 적절하게 본문을 이용하여 신조와 신앙을 변호하였다.
성수를 뿌리는 일이나 향을 쓰는일, 성상 앞에 무릎을 꿇거나 종을 울리거나 하는 로마 교회의 예식들을 하나같이 조롱하고 외면하였다. 그들은 주교들의 권위, 사제들 사이의 수많은 계급 구분, 과장된 교회 명칭의 합법성을 부인하였다. 사제들의 착복에 활용된 십일조 혹은 교회와 수도원 확장을 위한 기부, 교회에 대한 유산 증여를 반대했다. 공의회를 거부했다. 성화상과 성유물 숭배를 몹시 싫어하여 경멸하였고, 화체설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사제들에게 지를 고백하지 않았으며 죄 고백은 하나님께 직접 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여러 가지 미신적인 의식을 조롱하였고 연옥을 우화로 여겼다.
이들을 로마 교회가 어찌 이단으로 정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이 정도에서 우리는 이미 놀라운 사실 하나를 정리하게 된다. ‘카타르인들’이라는 명칭은 어떤 특정 이단을 가리키지 않ㄹ는다. 오히려 ‘카타르인들’이라는 명칭은 그러니까, 순수한 교회와 순전한 신앙을 구했던 참교회 신앙인들을 통칭하여 부를 때에 로마 교회가 사용했던 그들의 이디엄(idium), 그들이 의도를 가지고 불렀던 것이다.
카타르인들의 유럽 분포도를 보면, 아주 보라는 듯이 정확하게, 이 지역들은 중 개혁주의자들이 활동한 지역들, 피에몽을 비롯한 ‘발도인들의 지역’에 그대로 오버랩 되고 있다.이것은 대체 무슨뜻일까?
둘 중의 하나다. 이는 ‘우리의 참교회 선배들이 열심히 이단 신앙을 퍼뜨리고 다녔다’라는 말이거나 ‘그들은 언제나 어떤 심각한 허점을 보이면서 활동하였으므로 그들이 가는 곳마다 이단들이 쫓아와서 자기들의 색깔을 덧입히고 다녔다’라는 말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 교회와 역사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카타르인들은 곧 이단이다’라는 로마 교회의 의도 짙은 프레임이 적어도 지금까지는 꽤 먹혀들었다.
이런 불공평한 견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필자는, 프랑스 개혁 교회가 알비인들을 자신들 신앙의 직접적 선조들 가운데 있음을 인정하고 수용했음을, 더 나아가서는 ‘알비인들’이라는 이름 자체가 때로 발도인들의 다른 명칭에 불과하다는 ‘발도인들의 알비인들에 관한 주장’을 근거로 이들 시대의 교회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하고자 노력하였다.
처음부터 알비인들을, 혹은 발도인들까지도 이단으로 여기고 있는 종래의 개신교 역사학계나 학자들의 맹렬한 반대와 저항에 마주치게 될 것이다. 필자는 그동안 역사학계가 거의 언급하지 않고 제외시켜 왔던 발도인들의 역사적 진술들, 프랑스 개혁 교회의 의견을 강력하게 대변하고 있음을 먼저 밝혀 둔다. 2021-10-24,
권현익, '16세기 종교개혁 이전의 참 교회 역사', P 38-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