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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딤후3:14-17)-2022.12.11
성경은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성경은 어느 시대를 망라하고 한번도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빼앗겨 본적이 없는 책이지요. 아마도 그 기록은 절대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기독교인이 아닐지라도 지성인이라면 자신들의 서재에 성경 한두 권쯤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성경은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 책이요, 흔한 책입니다. 물론 안타깝지만 아직도 성경이 없는 종족이나 민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한번도 성경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지구촌에 여전히 많다는 것입니다.
위클리프 성서번역회에 따르면 지구촌에 대략 6,900개의 언어가 있는데 그중에 번역성경을 갖고 있는 언어가 2,500개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나머지 4,400개의 언어는 아직도 성경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번역은 교회시대 초기로부터 2천년동안 진행되어 왔지만 아직도 지구촌 언어의 절반이상은 성경이 없다는 것이지요. 다만 번역성경이 없는 언어는 소수언어이기 때문에 성경을 본적이 없는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 소수민족에 국한되어 있다는 말이지요. 분명한 것은 성경은 지구촌에서 가장 넓게 퍼져 있는 책입니다.
하지만 그렇게도 많이 보급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게 그렇게 많이 읽혀진 책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가장 많이 보급된 책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이 읽지 않는 책 중에 하나라는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 신앙을 갖지 않는 사람이라면 크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겠지요. 문제는 기독교인들입니다. 과연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얼마나 읽을까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가정마다 몇 권의 성경을 소장하고 있을 것입니다. 특히 성경번역본도 많기 때문에 성경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최소한 몇 권 내지는 십 수권 혹은 수 십권의 성경책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그만큼 성경을 사랑하고 많이 읽는 것일까요?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말고 나를 보면 됩니다. 내가 얼마나 성경을 사랑하고 가까이하는지를 생각해 보라는 말입니다. 물론 여러분 중에는 성경을 남다르게 사랑하고 많이 읽고 상고하는 사람들이 있을 테지요. 그러나 대부분 성경이 책꽂이의 빈자리를 메꿔주는 역할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혹은 양심상 버릴 수 없는 애물단지처럼 여기는 사람은 없을까요? 성경이 너무 보물이라서 신주처럼 모시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예배 나올 때 성경위에 쌓인 먼지를 털고 나오는 것은 아닐는지요? 한번쯤 우리 자신을 생각해보십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은 단지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만의 경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성경이 필요한 사람들만 읽어야하는 경건서적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닐는지요? 예를 들어 설교자들이나 신학자들, 혹은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들이나 성경과 관련된 사람들만의 필독서 정도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편견으로부터 성경이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성경은 어느 특수한 사람들만의 책이 아닙니다. 성경은 남녀노소 유무식자를 떠나서 누구나 읽을 수 있고, 누구나 깨달을 수 있는 책입니다.
(1) 성경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입니다
오늘은 성서주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성경에 대해 상고해보고자 합니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성경을 바탕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기독교의 경전이지요. 성경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배우며,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성경은 우리 믿음의 시작이요, 믿음의 근거요, 믿음의 전부인 것입니다. 성경을 떠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주전1500년경부터 주후100년 사이 1600년에 걸쳐 대략 40명의 기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입니다. 알다시피 성경은 한권의 책으로 되어 있는 것 같으나 신구약66권의 책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신구약 66권의 성경을 정경으로 받아들입니다. 더 이상 66권의 성경이 부족해서 덧붙일 성경이 없고, 불필요해서 빼야할 성경도 없습니다. 66권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인간이 인위적으로 더하거나 빼거나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 성경에 뭔가를 더하거나 빼는 것은 안됩니다. 성경에 가감하는 자는 저주를 받습니다. 요한계시록22장18절과 19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오직 신구약66권의 성경만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성경 밖으로 넘어가면 안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성경은 읽으라고 주신 책이 아니라 믿으라고 주신 책입니다. 성경을 읽고 깨달아서 말씀대로 살라고 주신 책이지요.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가진 것으로 만족합니다. 마치 성경을 부적같이 소장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성경을 머리맡에 두고 잔다고 말합니다. 어떤 이는 성경을 가슴에 안고 다닙니다. 어떤 이는 운전할 때도 성경을 차에 태우고 다닙니다. 물론 그런 자세가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렇게 성경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것을 아무도 나무랄 수 없습니다.
다만 그것으로 끝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소유함으로 정신적인 만족을 삼지 말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소유하는 것이 중요함이 아니라 성경을 상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을 상고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도행전17장11절에 보면,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이 2차전도 여행을 다니면서 경험한 일입니다. 화려한 도시 데살로니가에서는 복음을 전하는데 많은 핍박을 받았는데 비하여 조그만 언덕에 위치한 베뢰아 지역에서는 복음의 열매를 풍성히 맺었습니다.
그 이유는 베뢰아 사람들이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신사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신사적이라는 근거는 말씀을 대하는 자세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자는 신사가 아닙니다. 말씀 앞에서 겸손한 자가 신사입니다. 영적신사가 진짜 신사이지요. 베뢰아 사람들은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상고했습니다. ‘상고’라는 말의 원어적인 뜻은 탐색하다는 것입니다. 탐색하는 것은 진지한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성경의 진위를 가리기 위하여 진지하게 탐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상고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읽는 것에 착념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몇 독 하는 것을 마치 자기신앙의 훈장이나 자랑거리로 여깁니다. 물론 성경은 많이 읽어야 합니다. 읽을수록 좋습니다. 하지만 읽는 것이 목적이 되면 안됩니다. 읽은 만큼 깨달아야하고, 깨달은 것만큼 믿어야 하며, 믿는 것만큼 살아야 합니다. 아마도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일 것입니다. 이른바 성경은 소유하라고 주신 책이 아니요, 많이 읽으라고 주신 책도 아닙니다. 성경을 상고하여 성경대로 믿고 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노골적으로 말씀드리면 예수님의 책입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을 향하고 예수님께 맞추어진 책이지요. 구약은 오실 예수님의 관한 책이요, 신약은 오신 예수님의 책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성경에 계시된 사건들을 통해 예수님의 마음을 보고, 성경에 계시된 인물들을 통해 예수님의 성품을 보아야 합니다. 이른바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을 그리스도로 영접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를 우리에게 소개하려고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2) 성경을 주신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먼저 성경을 주신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주신 목적을 가장 선명하게 말씀하시는 곳이 요한복음20장31절입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한마디로 성경이 기록된 목적을 우리에게 가장 확실하게 증거해 주시는 것이지요. 가장 으뜸된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 이른바 믿음과 믿음으로 인하여 주어지는 선물, 영생을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 우리는 예수를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을 통해 하나님의 생명을 얻어야 합니다. 영생을 취하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성경을 대하는 목적이 다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성경을 자기 양심을 씻어내는 도덕교과서로 생각합니다. 어떤 이는 착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윤리교과서로 생각합니다. 또 어떤 이는 성경을 자기 종교심을 드러내는 율법교과서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 자기가 얻고 싶어 하는 지식과 정보를 얻으려고 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성경을 다른 사람을 가르칠 용도로 읽습니다. 어떤 이는 다른 종교와 논쟁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기도 합니다. 이른바 비교종교학을 위해서 말입니다.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성경은 그런 모든 것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입니다. 그러나 그런 목적으로 성경을 대하면 안됩니다. 성경을 상고하는 바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요한복음5장3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제자들에게 성경을 상고하는 자세에 대하여 주님이 직접 가르쳐주시는 말씀입니다.
성경에 영생이 있음을 생각하고 상고해야 합니다. 성경에 구원의 진리가 있다는 사실을 믿고 성경에 접근하라는 말이지요. 오직 성경말씀에 영생이 있음을 믿고 상고하라는 말이에요. 그렇습니다. 영생은 성경에 있습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생명이지요.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영생을 예수님께 맡겨주신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이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 성경 안에 있는 말씀을 믿어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주신 목적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독교인들이라고 하면서도 성경을 주신 목적을 모르니까 성경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을 가진 것으로 만족하고, 성경을 많이 읽는 것으로 자랑하는 것이지요. 물론 성경은 할 수만 있으면 많이 읽어야 합니다. 읽다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이요, 믿음의 높은 경지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가까이하고 사모하며 많이 읽어야 합니다. 또한 성경은 읽기도하고 듣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을 통해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하게 됩니다. 예수님과 친근해집니다. 왜냐면 성경은 하나님의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으로 성경도 살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다면 당연히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도 살아 있음을 믿어야 하는 것이지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의문에 새겨진 말씀으로 끝나면 안됩니다. 반드시 살아 있는 말씀이어야 합니다. 살아 있는 말씀이라는 것은 성경에 계시된 모든 말씀이 지금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습니다. 운동력이 있다는 말씀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인격적인 소통이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이른바 역사하는 능력이 있다는 말씀이지요.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말씀은 운동력이 있습니다. 운동력은 단순한 에너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능력으로 역사하신다는 말이지요.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말씀 안에 있습니다. 못 고칠 질병이 없는 하나님의 능력이 말씀 안에 있습니다. 더러운 귀신을 좇아내는 능력도 말씀 안에 있습니다. 능치 못하심이 없는 능력도 말씀 안에 있습니다. 이것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운동력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도 내 눈으로 읽는 것 같지만, 깨달음은 성령을 통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조명하심이 없으면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어도 깨달음이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경은 성령을 통해서만 해독이 되는 책입니다. 성령을 통해 성경을 읽을 때 내 영안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닫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어도 깨달음이 없다면 성령 안에서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이 내 영을 만지고 만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내영으로 더불어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케 하시는 것이지요.
만일 성경을 읽어도 깨달음이 없다면 오히려 예수님을 비난하는 칼이 됩니다. 기독교를 비난하는 화살이 되지요. 그래서 반드시 성령의 조명하심을 통해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성령의 조명하심을 반드시 간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경 한 구절을 읽어도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조명하심이 없으면 자기 상식과 자기 지식으로 읽는 것이기 때문에 깨달음은 없고 종교적인 지식만 쌓여갈 뿐입니다. 마치 율법주의자들처럼 말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성경을 자기들의 의를 드러내는 검으로 사용한 것이지요.
그러므로 성경을 아는 것만큼 독이 되는 것입니다. 아는 것이 오히려 자기들의 의를 드러내는 도구가 되고,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무기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경을 알되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자기들의 이성이나 지성으로 알면 안되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을 읽되 특수한 목적을 갖고 읽으면 안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이는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 읽습니다. 심지어 목회자는 성경을 설교하기 위해서 읽습니다. 혹은 어떤 이는 성경을 사업하기 위해서 읽고, 어떤 이는 정신수양을 위해서 읽는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자기 교양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읽기도 합니다. 이것은 성경을 대하는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더 깊이 교제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목적은 오직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기 위함입니다. 때문에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마음으로 성경을 대하고 읽어야 합니다. 이른바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역사해주시기만 바라고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해줄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도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로 전달해주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이 없으면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깨달음이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읽을수록 어려운 책입니다. 성경은 알수록 어려운 책입니다. 그것이 성경의 신비입니다. 그만큼 인간의 이성이나 지성으로 알 수 있는 책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만일 내 이성이나 지성으로 성경을 이해할 수 있다면 성경은 그냥 세상의 잡학서적과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성경을 보는 마음을 주셔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조명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이지요.
성령은 그 일을 위해서 우리에게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기 위하여 우리 가운데 보내심을 받은 또 다른 보혜사이십니다. 그래서 요한복음14장26절은 성령의 사역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생각나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 가운데 오신 영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지금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가르치심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하지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시라고 할 수 없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성경을 통해서 계시하시는 모든 것을 성령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며, 믿게 하시고 누리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결국 우리 믿음의 모든 것이 성령의 역사하심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성경을 보되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깨달음을 얻습니다. 성령의 조명하심이 없이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고 가까이해도 아무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 무엇일까요?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을 본문을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사람의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만일 우리에게 성경을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무엇으로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는 무엇을 믿을 수 있을까요? 설령 믿음을 가졌을지라도 무엇을 근거로 믿음의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요?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믿음으로 구원에 대해 어떤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아찔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음을 믿으십니까? 그런데 독생자를 주셨다는 확실한 근거가 무엇입니까? 성경입니다. 하나님이 성경에 기록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를 보고 예수를 만나고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의 보증서입니다. 만일 성경이 없이 믿음 좋은 사람들의 어떤 가르침이나 구전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졌다면 아무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을 것입니다. 변동치 않는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해주셨기 때문에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시대가 바뀌어도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수많은 지도자들이 가르칠지라도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성경은 절대적으로 안전하고 정확한 것입니다. 천지가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고, 변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3)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 무엇입니까?
본문에서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을 찾아보겠습니다. 본문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주는 편지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칭찬합니다. 디모데가 바울로부터 칭찬받는 근거가 무엇일까요? 성경입니다. 14절과 15절을 보십시오. 디모데는 성경을 어려서부터 배우고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경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지요. 그만큼 바울은 디모데의 믿음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유익은 구원을 주시는 책이라는 말입니다(15절하). 성경은 구원의 도리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구라도 성경을 통해 구원의 도를 배울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도 성경을 통해 구원의 도를 배웠습니다. 세상 어떤 책도 인간의 영혼구원에 대하여 역사적이고 사실적으로,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다룬 책은 없습니다. 오직 성경만 우리 인간의 죄와 심판과 구원의 도에 대하여 명확하게 다루어주고 있습니다. 왜냐면 그 모든 것의 권한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심판과 구원이 하나님의 주권에 있다는 말입니다.
구원은 아무나 다룰 수 없는 문제입니다. 어떤 종교나 어떤 신도 다룰 수 없는 것이지요.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구원의 도가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구원의 문제를 다루어주고 해결해주는 유일한 책인 것이지요. 아무도 성경을 떠나서는 구원의 문제를 다룰 수 없고, 구원받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심이 성경에 있고, 성경대로 되어집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방법과 목적이 모두 다 기록되어 있다는 말이지요. 다른 곳에서 구원을 찾으려고 시간낭비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구원의 모든 비밀이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유익은 영혼을 변화시키는 책이라는 말입니다. 16절을 읽어보십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네 가지 유익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전인적인 사람을 만들어가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인간을 전인적으로 회복하는 것입니다. 온전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성경을 모든 성경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성경을 한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성경은 한권으로 묶여있지만 한권이 아닙니다. 신구약 성경66권이 한권의 책으로 묶여진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모든 성경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 모든 성경이라고 말씀하는 것은 구약39권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는 말씀은 단순히 어떤 느낌이나 감화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동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호흡을 말합니다. 이른바 하나님의 숨결이요, 생기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엄청난 감동을 줍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유익 중에 하나는 교훈입니다. 교훈은 가르침이지요. 성경은 우리 인간을 교훈하는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모든 인간을 가르치는 교훈이 성경에 있는 것이지요. 이른바 사람의 사람됨을 위한 교훈이지요. 단순히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수준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대부분 하나님 앞에서 우리 인간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으로 볼 수 있지요. 그래서 성경은 우리 인생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하는 최고의 교훈서인 것입니다.
성경은 교훈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책망도 있습니다. 교훈이 소극적인 차원에서 우리를 가르치는 것이라면, 책망은 우리의 잘못을 지적하고 판결하는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훈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책망도 이미 행한 과거의 잘못을 지적하여 판결하는 것은 물론이요, 장차 일어날 수 있는 잘못에 대한 지적과 책망의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내 영혼의 문제를 전반적으로 다루어주는 책인 것이지요. 교훈과 책망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는 일의 모든 것까지 다루고 있는 것이거든요.
바르게 함은 뜯어 고치는 일이요, 의로 교육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데까지 책임을 져주시는 것이지요. 성화를 이루게 하신다는 말이에요.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자신을 발견하고 다듬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정과 끌로 내 자신의 모난 부분을 다듬어가는 것이지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닮아가는 거예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과연 우리가 거룩할 수 있을까요? 우리 힘으로 능으로는 안됩니다. 오직 성령 안에서 성경을 통하여 주시는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운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함을 이루는 데까지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본문17절을 보십시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성경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해 질수 있을까요? 그것은 본문에 답이 있습니다. 16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런 과정을 통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을 통해서 말입니다.
이것을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교훈을 받고, 우리가 저지른 잘못과 죄에 대한 책망을 받아 회개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바르게 하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으로 인정함을 받습니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말씀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된다는 말입니다. 온전함은 사람의 의지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온전함은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하시는 법적인 선언이거든요. 중요한 것은 우리를 온전하다고 선고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 근거가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를 교훈하심이 성경이요, 책망하심도 성경이며, 바르게 하심이 성경이고, 의로 교육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모든 것이 성경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모든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를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도록 인도하시는 목적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려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 되는 것에 어떤 부족함도 없다는 말입니다. 한치의 부족함이 없다는 말이지요.
이른바 성경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되는 것에 전혀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것은 우리 몫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함을 이루는 데까지 이끌어 가신다는 말입니다. 이른바 구원의 완성인 것이지요. 구원은 하나님과 우리의 온전한 관계회복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것이 성경이 우리를 이끌어가는 최종의 목적지인 것이지요.
물론 구원받은 백성이라 할지라도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른바 사명이지요. 사명은 하나님이 믿는 자들에게 맡겨주신 사역입니다. 우리는 그 일을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그 일을 위해 우리를 택하사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데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는 말이지요. 우리가 감당할 수는 없지만 우리 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사명을 능히 감당케 해주시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17절 후반을 읽어보겠습니다.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함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선한 일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착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입니다. 선한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선한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함을 이룬 사람들에게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해주신다는 말입니다. 온전케 해주신다는 말이지요.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시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소명으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을 주십니다. 그리고 사명을 맡겨주십니다. 소명이나 생명이나 사명은 다 하나님의 주권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모든 일을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중요한 것입니다. 한 젊은이가 디엘 무디를 찾아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왜 저는 성경을 붙들고 사는데 제 삶은 이렇게 변화되지 않습니까?’ 그러자 무디 선생이 말합니다. ‘이봐 젊은이, 자네가 성경을 붙들면 되겠는가? 성경이 자네를 붙들어야지’라고 말입니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우리의 잘못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붙들라고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붙잡고 살아보려고 합니다. 안됩니다. 절대 안됩니다. 우리는 절대 성경대로 살수 없습니다. 성경이 나를 붙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이 나를 이끌어갑니다. 그것이 기독교 복음의 원리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붙들고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야 살 수 있습니다. 성경주일을 맞이하여 성경을 상고해 보십시다. 성경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그 성경을 사랑하십니까?
정말 우리가 성경을 사랑해야 합니다. 성경을 사랑함은 성경을 가까이함이요, 성경을 가까이함은 성경을 많이 읽는 것입니다. 다만 성경을 읽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성경을 들어야 합니다. 성경을 듣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요, 선포되는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다만 말씀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말씀을 지켜 행하십시다. 그것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내안에서 나를 성전삼고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이 나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말씀하시므로 그분이 주는 마음과 생각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그분이 주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14절에서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당부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라는 말이지요.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큰 약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을 배우는 일에 부지런합니다. 말씀을 읽는 일에도 부지런합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도 부지런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지키고 행하는 일에 그다지 부지런하지 않습니다. 큰 관심도 없고 소극적이라는 말이지요. 성경이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되기를 원하신다고 말입니다. 그것이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입니다.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살라는 것이지요.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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