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경기도 여주에 있는 '세종대왕릉'과 '괴테의 마을'을 찾았다.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면에 위치한 '세종대왕릉'(영릉, 英陵)은 조선 제4대 임금 '세종대왕'과 부인 '소헌왕후'를 함께 모신 조선왕릉 중 최초의 '합장릉'이다. 이곳에는 '효종릉'인 '영릉'(寧陵)이 산책로로 연결되어 있어, 한 번의 방문으로 '두 왕릉'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둘러볼 만한 포인트는 능침(봉분)과 정문, 재실, 석상문(돌사자·문인석 등) 등 조선왕릉의 정형적인 양식을 보여 준다. 세종대왕릉과 효종릉이 둘 다 '영릉'으로 '같은 한글 이름'이지만 쓰이는 '한자(세종대왕릉 영릉英陵과 효종릉 영릉寧陵)'가 다르니 구분해서 이해해야 한다.
여주 '괴테의 마을'은 여주시 강천면 걸은리에 위치하며,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를 중심에 두고 조성된 인문 문화 공간으로, 여주 보금산 자락에 있는 작은 마을(50여 세대 거주) 한 편에 자리 잡고 있으며, '전영애 서울대 명예교수'(독문학자, 괴테 연구가)가 10여 년 전부터 손수 조성해 온 공간이다. 마을 안에는 여백서원, 젊은 괴테의 집, 지관서가(북카페 겸 서가), 정원집 등이 자리해 '괴테의 삶과 작품을 체험'하는 복합 문화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세종대왕릉(英陵)
세종대왕역사문화관
여주 세종대왕릉 주차장에 도착하여 매표소로 향하는 길목 오른쪽에 위치한 '세종대왕역사문화관'은 조선 4대 임금 '세종대왕'과 '조선왕릉의 역사'를 종합적으로 소개하는 전시관으로, '국립박물관·문화관'이다. '훈민정음' 창제와 '과학' 업적뿐 아니라, '왕릉 제도'와 '조선 왕실의 의례'·'조선 후기 왕'(효종)까지 함께 다루는 점이 특별하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왕릉(조선시대 왕과 왕비 능 총 40기)
조선시대 왕과 왕비 능 총 40기와 함께 '조선왕릉'(세종대왕, 효종)은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2009년 6월 30일 등재'되었다.
세종대왕릉 재실(사진 상 신新 재실, 사진 하 구舊 재실)
'재실'(齋室)은 왕릉을 지키고 관리하는 '참봉(종9품)과 령(종5품)' 등이 지내던 곳이다. '제향'을 지낼 때는 '제관'들이 재실에 머물면서 제향에 관련된 일을 준비하였다. '신 재실'은 1971년 복원, 2020년 추가 복원으로 현재의 건물로 존재하고 있다.
위토답
'위토'는 '제사나 관리에 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조성한 '토지'를 말하며, 논은 '위토답'이라고 한다. 「조선왕조실록」과 「능지」 등에는 '능(왕이나 왕후 무덤)·원(왕세자나 왕세자비 또는 왕의 사친) ·묘(공주·빈·왕자 등 그 외의 왕족)'에 위토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2014~2020년 '종합정비사업'으로 조성되었으며, 규모는 1,300㎡(약 400평)이다.
내연지
'내연지'는 창경궁이나 창덕궁 연못처럼 '중앙에 인공 섬'이 있는 양식으로, 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 잡아 왕릉의 '자연스러운 조경'을 상징하며, 주변 소나무 숲과 어우러져 '운치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영릉(英陵, 세종과 소헌왕후)
'영릉'(英陵)은 조선 4대 '세종'(1397~1450, 재위 1418~1450)과 '소헌왕후'(1395~1446)의 능이다. 1446년 '소헌왕후'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세종이 미리 정했던 자리인 '헌릉' 서쪽에 있는 '인릉'(서울 서초구 내곡동) 자리에 처음 조성되었고, 4년 뒤에 '세종'이 세상을 떠나자 '합장릉'의 형태로 조성되었다. 그 후 풍수지리상 자리가 좋지 않다고 하여 '1469년'(예종1년)에 '지금의 자리'(여주)로 옮겼다.
세종대왕 능침
'세종대왕 능침'의 모습이다. '능침'은 '왕과 왕비의 무덤'으로 '봉분'이라고도 한다. 능침 둘레로 '난간석'이 둘러쳐져 있다.
수라간
'수라간'은 제향 때 필요한 '음식을 준비'하는 건물이다. 수려한 '소나무'와 함께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왕의 길
'왕의 길'은 '세종대왕릉'과 '효종릉'을 연결하는 약 700m 길이의 숲길로, 조선 시대 '왕들이 실제로 행차'했던 역사적인 도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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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寧陵)
영릉(寧陵, 효종과 인선왕후)
'영릉'(寧陵)은 조선 17대 왕 '효종'(1619~1959, 재위 1649~1659)과 '인선왕후' 장씨의 능이다. '동원상하릉'의 형태로 되어 있으며, '위쪽'이 '효종'의 능이고, '아래쪽'이 '인선왕후'의 능이다. 효종은 '인조'의 둘째 아들로 1646년 왕위에 올라 10년간 재위하면서 '대동법'을 실시하고, '군제를 개편'하여 군사 훈련 강화에 힘썼으며 청나라를 치려는 '북벌 계획'을 세웠다. '인선왕후'는 아들 '현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대비'가 되었다. 영릉의 '금천교'는 조선 왕릉 중 유일하게 '홍살문 안쪽'으로 배치되어 있어 특이하다.
*** 동원상하릉 : 풍수지리상의 이유로 왕과 왕후의 봉분을 같은 언덕의 위쪽과 아래쪽에 조성한 무덤 ***
효종 영릉 재실
'효종 영릉 재실'은 1659년에 경기도 양주군(현재의 구리시)에 처음 '영릉을 조성할 때 지었던' 것을 1673년(현종 14) '왕릉을 옮길 때 함께 옮겨' 왔다. 조선 왕릉의 재실 대부분은 '일제 강점기'와 '6.25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원형이 훼손되거나 일부만 남아 있던 것을 '복원'한 것이다. 하지만 영릉의 재실은 조선시대 왕릉 '재실의 기본 형태가 가장 잘 남아' 있으며, 공간 구성과 배치가 뛰어난 대표적인 조선시대 재실 건축으로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높아 2007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영릉에서 주차장으로 나오는 길 역시 잘 조성되어 있다.
여주 괴테의 마을
여백서원
'여백서원'은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에 있는 '문학·인문·예술' 공간으로,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 '전영애'(독문학자) 선생이 설립한 사유지 서원으로, '맑은 사람들을 위한 책의 집'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2005년 작은 시정(詩亭)으로 시작해 한옥, 도서관, 정원, 괴테길, 갤러리, 어린이도서관 등을 갖춘 공간으로 성장했다.
여백 어린이 도서관과 시(詩) 도서실 - 상시 개방
'여백 어린이 도서관'은 '어린이들이 스스로 관리'하는 공간으로, 인근 마을의 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찾아온다. 먼 학교에서 오거나 부모를 따라 온 어린이들도 '함께 어울려 책'을 읽는다. '어른'들은 어린이 도서관 한 켠의 '시(詩) 도서실'에서 시를 읽는다.
여백재
'여백재'는 여백서원의 '본관'이다. 한국, 독일을 비롯하여 다양한 국가의 '문학작품' 및 '관련 서적'과 20세기 초반 영남반가에서 내려오던 규방가사 필사본 등 '한서(漢書)가 보관'되어 있다. '일반공개'는 '매월 마지막 토요일'(월마토) 오전 9시~6시까지이다.
정원집
'정원집'은 젊은 괴테가 첫 '홀로 서기의 6년을 보낸 집'을 축소하여 그대로 따라 지었다. 이 작은 집의 위층 방에서 방문객들은 '괴테 관련 시설'들을 둘러본 다음, 자기 '자신의 삶을 생각하고 설계'해 본다고 한다.
젊은 괴테의 집 / 지관서가(카페)
'젊은 괴테의 집'은 독일 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젊은 시절 삶을 기리는' 주제로 지어진 '2층 건물'로, '전영애' 선생이 주도해 '2013년 10월 28일' 개관했다. '1층'은 괴테 작품과 다양한 도서를 비치한 도서관 '지관서가'(止觀書架)와 '카페'로, '극복'(Resilience)을 테마로 한 휴식 공간이다. '2층'은 괴테의 프랑크푸르트 '생가를 재현한 전시실'로, 그의 초상화·편지·조각 등이 전시되며 숲속 정원과 산책길이 어우러져 문학적 분위기를 더한다.
입구 카페
지관서가
2층으로 오른다. '2층'에는 실내 좌·우측 끝에 괴테의 방인 '노란색' 방과 (괴테)아버지의 방인 '초록색' 방이 있다.
노란색 방(괴테의 방)
2층으로 올라와 왼쪽에 있는 '노란색 방'(괴테의 방)은 '젊었을 때의 괴테'가 지향했던 '에너지와 낙관, 열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공간으로, 벽체와 소품 배색을 노란 계열로 잡아 '독창적이고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고, 청년기 괴테의 작품과 그의 사유가 잠긴 '책, 유품, 메모' 등을 함께 전시해 방문자가 '젊은 태도'를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다.
괴테의 책상
독일 프랑크푸르트 '괴테 생가'의 '괴테 방'을 조금 따라한 방이다. 괴테 생가의 책상을 가져올 수 없어 비슷한 모양의 고가구 책상을 '독일 뮌헨 근처에서 구해서 공수해 온 것'이라고 한다. 그의 책상 위에서 쓰인 가장 중요한 작품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다.
라오콘 상
'라오콘 상'은 괴테 생가의 '책상 위'에 놓여 있었기에 여기에도 놓아둔 것이다. 괴테는 1798년 로마에서 바티칸의 '라오콘 군상'을 직접 관람하며 깊은 감동을 받았고, 이후에도 이 조각을 예술의 이상형으로 자주 언급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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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과 칠현금
'별과 칠현금'은 1749년 괴테가 '태어난 방에 걸려 있던' 것으로, 그의 '탄생과 죽음'을 상징하는 대표적 유물로, '별'은 괴테의 '탄생'을, '칠현금'은 그의 '죽음'을 상징한다. 이는 괴테의 '삶 전체'를 암시하며, 단순한 장식이 아닌 '생로병사의 철학적 표현'으로 여겨진다.
'초록색' 방(괴테 아버지의 방)
인형극 파우스트
초록색 방 입구에 있는 '인형극 파우스트'는 독일 바이마르 출신 화가·조각가 「발터 작스」가 제작한 '인형극 조각 작품'이다. 오석으로 조각된 이 작품은 '곰(또는 요정)같은 귀여운 형상과 인간 얼굴이 결합'된 독특한 디자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작가는 전영애 선생의 '괴테 연구'와 '바이마르 교류'를 기리는 선물로 이 작품을 제작해 여주로 보내왔는데, 2024년 바이마르에서 완성 후 운송되었다.
괘테 아버지의 서재를 '재현한 공간'이다. 아버지의 방에는 부모 사진과 함께 "부모가 자식에게 꼭 주어야 할 두 가지는 뿌리와 날개다"라는 문구가 걸려 있다. 이는 괴테가 남긴 아주 유명한 격언으로, 자녀에게 '안정적인 기반'(뿌리)과 '자유롭게 꿈을 펼칠 수 있는 능력'(날개)을 주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60년을 고치고 고쳐 쓴 괴테의 필생 대작 '파우스트 2부'의 최종 원고 '영인본'(원본을 복사한 고증본)이 놓여 있다. '파우스트 1부'는 생전 출간, '2부'는 사후 출간된 괴테의 역작이다.
괴테 '아버지와 어머니의 초상화'가 창가 옆의 둥근 '액자'에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