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27일 불날
날씨 : 아침엔 몰래 오던 비가 점심부터는 아는 척 하며 내린다. 기온이 많이 내려가 고무신 신은 발등이 시렵다.
으악! 눈을 뜨니 8시 15분이다. 8시 30분까지 학교에 가야 하는데. 이틀 잠을 못자고 7시 40분에 씻으려다 허리가 너무 아파 잠간 누웠는데 잠이 들었다. 토요일 늦게 백남기 어르신이 위독한 상황. 검찰이 돌아가시면 부검을 위해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신을 강제로 빼앗기 위해 서울대 병원에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가서 몸으로 막아야 하는데 가지 못하는 심정이 참 답답했다. 일요일 남편이 대전으로 내려가고 서둘러 서울대병원 기자회견장으로 갔다. 어르신도 고비는 넘기신 듯하고 경찰병력도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아 맘을 놓고 다시 집으로 왔다. 월요일 교육연구 모임 발제를 하려하는데 이런! 어르신이 돌아가시고 서울대병원에서는 시신을 빼앗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사람들이 서로 대치상황이란다. 책은 손에 들어오지 않고 맘은 줄곧 갈등을 하다 결국 새벽까지 발제를 했다. 월요일 연구모임이 10시 30분이 되어도 끝나지 않는다. 마음은 콩밭에 가있어 10시 30분이 되어 먼저 일어났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많은 젊은이들과 어르신의 뜻을 기리는 사람들이 밤을 지새우고 여전히 지켜드리고 있다. 장례식장 들어오는 곳에는 경찰병력들이 있다. 다행히 시신부검 영장은 기각이 되었지만 여전히 경찰, 검찰은 한통속이 되어 때를 보고 있다. 마음껏 애도할 시간도, 권리도 주지 않는 뒤가 구린 것이 많은 이 나라 권력자들. 학교에 가야 하니 늦은 밤 발길을 돌린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영장을 청구를 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새벽 다섯 시가 고비라는 소리를 들으니 잠이 오지 않았다. 여기 저기 소식을 기다리다 보니 그렇게 밤을 새게 되었고, 깜박 잠이 들었다. 국민이 준 권력으로 국민을 살해하고도 진상규명도 없고 책임자 처벌도 없고 대통령의 사과도 없는 말도 안 되는 오늘, 그 속에 우리 아이들이 살고 있다. 세월호 817일 째, 경주 지진과 핵발전소 위험, 그리고 공권력 아래 숨도 못 쉬는 민중들... 그 속에 우리 아이들. 심난한 맘과 우리가 무엇으로 어떻게 아이들에겐 다른 세상을 줄 수 있을까 가슴을 치고 또 치는 밤들, 무겁게 어깨를 누른다.
씻지도 못하고 후다닥 옷만 걸치고 뛰어가니 다행히 수업시간은 늦지 않았다. 부끄럽고 미안한 아침이다. 요번 주부터 주마다 불날 4학년 아이들과 함께 악기 수업을 하기로 했다. 난 악기 다루는 것이 많이 어렵다. 지난해 1학년들과 살 때야 아주 쉬운 곡들을 1학년 수준에 맞게 하면 되니 어려움이 없었지만 이미 담임이 가르칠 수 있는 실력을 훨씬 뛰어넘어 버린 아이들에게 내가 음악적으로 줄 수 있는 것이 턱 없이 모자라다. 노래실력 악기 다루는 실력이 뛰어난 아람 선생님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이다. 더불어 옆에서 나도 배우고^^ 첫날 함께 하는 수업은 나쁘지 않다. 5학년 아이들은 몇 번 하지 않았는데 악보를 제법 읽고 있어 형님으로 체면을 세웠고 4학년 아이들은 5학년과 함께 하니 수업시간에 좀 더 차분하게 집중을 했다고 한다. 아이들은 잘 따라 하는데 나는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악기 앞에서는 한 없이 긴장하는 내 손가락과 내 가슴이 안쓰럽다.
지난주 내 나무를 정한 아이들, 비오는 아침나절 우산 쓰고 나가 저마다 나무와 이야기를 나누고 살피고 짧은 글을 쓴다.
10시 30분에 수업을 하겠다 했는데 교실에 올라가니 모두 자리에 앉아있다. 한주가 아주 대견하다는 듯이 “우리, 모두 다 수업준비 잘했지요.”하며 어깨를 으쓱한다. 아침나절 공부는 수학, 지난주에 이어 분수의 덧셈을 준비했다. 다섯 아이지만 수학을 하는 빠르기는 다섯 단계다. 저마다 빠르기가 다르다. 본디 5학년 아이들은 수학이 많이 느렸다. 사실 걱정이 많았다. 이미 많이 놓쳐버린 것들을 1년에 어떻게 따라가나? 선생이 너무 다그치면 아이들이 재미를 잃어버릴 테니 적정한 선을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 봄, 여름 학기 아이들이 흥미를 잃지 않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활동과 더불어 수학공부를 했다. 가을, 겨울학기는 좀 더 집중이 필요한 시기다. 학습지로 된 수학 문제를 조금 많이 준비해 들어갔다. 힘들어 할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그런데 교실 상황은 무척 달라져 있다. 놀랍다. 수학적으로 많이 어려워하던 지안이가 수업에 설명하는 것을 굉장히 빨리 받아들인다. 집중을 쉽게 놓치던 한주가 수업시간에 다른 아이들과 발을 맞춰 문제를 풀어낸다. 현서는 본디 자기 빠르기대로 잘 간다. 본준이는 나눗셈을 굉장히 어려워했고 방학 때 방학 숙제로 접했다. 수학 시간이 되면 자신 감이 없고 선생이 질문을 하면 아는 것도 모두 잊고 머리가 하얘지는데 오늘은 숨을 쉬고 천천히 생각하면 곧잘 이해하고 조금 느리지만 모든 것을 수행한다. 그러면서 재미를 깊이 느낀다. 본디 화요일 수학은 모든 아이들이 함께 하는 수학이어 활동 위주로 했지만 가야할 길이 멀어 지은이도 교실에서 지은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따로 준비해서 했다. 본디 둘레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자기 것보다 다른 사람 것에 관심을 많이 갔던 편인데 오늘은 자기 것에 집중중을 많이 한다. 다섯 아이, 다섯 설명, 다섯 빠르기. 본준이가 조금 천천히 문제를 이해하고 푸는 동안 다른 아이들은 심화 문제를 저마다 푼다. 서로 더 깊은 문제를 풀려고 한다. 한주는 지안이와 현서가 빨리 푸는 것을 보고 자신도 그만큼 풀고 싶어 장난도 하지 않는다. 배움 열기로 불붙은 누리샘 교실, 땀이 날만큼 후끈후끈하다. 아이들을 너무 쉽게 보고 심화꼭지를 적게 준비했더니 아이들이 더 달라고 아우성이다. 수학을 굉장히 싫어하던 지안이는 “봐라~ 나는 천재다”를 외치며 가장 빨리, 또 정확하게 문제를 풀어간다. 교실 가득 아이들 자부감이 들어난다. 다음 수업부터는 더 깊은 문제와 여러 가지 상황의 것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문제와 씨름하는 시간을 1시간 30분이나 가졌으니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 현서의 어깨를 만지며 “현서야, 너무 길게 공부해서 힘들었지요. 미안해요. 선생님이 욕심을 부린 것 같아요.” 했더니 “아니, 아주 재미있었어~.” 하며 콧소리까지 날려준다. 한주는 내 팔에 매달려 “봐라~ 나 아주 잘하지^^” 하고는 환하게 웃는다. 일찌감치 자기 것을 끝내고 10분쯤 먼저 쉬게 된 지은이도 덩달아 “나도 더 해요.” 한다. 천천히 하지만 다른 아이들과 같은 것을 이해하고 문제를 푼 것이 대견하기만 한 본준이는 “선생님이, 최고! 나 송쌤이 좋아.” 1학년 아이 같은 소리를 한다. 본준이 송쌤이 좋아가 진심이길 살짝 바래본다. 아이들이 신나게 공부하니 이틀 밤잠을 못잔 내 몸이 각성제 먹은 것 마냥 붕붕 날아다니고 목소리에도 신이 난다. 욘석들이 사는 세상 이대로 맘껏 자기를 들어내고 스스로 뿌듯하게 살 수 있도록 지켜줘야 하는데... 점심을 먹으러 내려가라고 해도 책상을 붙잡고 있는 녀석들을 어렵게 설득해서 내려 보냈다.
아침나절 아이들이 주는 감동으로 붕붕 날았던 몸이 점심을 먹고 나니 또 갈아 앉는다. 수업을 챙겨 올라가니 아이들이 그 10분 사이에 놀이를 시작했다. 우리 나라 알기를 하려 하니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한다. 다시 10분 쉬는 시간을 갖기로 한다. 교실 안에서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함께 노는 모습^^ 아웅다웅하다가도 서로를 살펴 노는 아이들, 아이들은 그렇게 어른들과 다르게 유연하게 자신들 관계를 만들어간다. 교실에 있는 아이들 표정이 참 맑고 밝다.
교실이 답답해 보여 책상 하나를 빼고 책상 배치를 다시 했다. 교실이 여유로워 보인다. 재판 놀이를 신나게 한 아이들이 물을 먹고 화장실을 갔다가 빠르게 자리에 앉는다.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역사를 사회과 부도를 보며 다시 되돌아보았다. 남북시대까지는 배웠지만 쭈욱 한 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다. 그렇게 3시 30분까지 역사 공부를 하고 있으니 정일 선생님이 아이들 오늘 해야 할 영어를 가지고 왔다. 정일 선생님은 오늘 성미산에 우리말글 연수를 해주러 가야 해서 아이들이 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러 온 것이다. 숫자를 읽고, 문장을 읽고 쓰는 것! 문장을 다섯 번씩 쓰고 가는 것이 조금 무리가 돼 보이긴 했지만 정일 선생님이 할 수 있는 것이어서 줬을 것이기에 모두 하자고 했다. 조금 있다 한주가 내려와 “아, 선생님 이거 너무 한 것 아녜요. 너무 많아요. 팔이 아파요.”한다. “한주야, 너희가 할 수 있는 것이니 전선생님이 주셨겠지. 올라가서 해요.” 하고 돌려보냈다. 조금 있다 교실에 가보니 팔이 아프다면서도 아주 조용히 하고 있다. 선생들 마침회를 하다 보니 다섯 시가 넘었다. 그때까지도 아이들은 끝내지 못했다. 너무 늦었다 싶어 올라가 아이들에게 “얘들아, 선생님이 전선생님에게 이야기할 게. 너무 늦어서 안 되겠다. 집에 가서 나머지는 해오세요.” 그러자 아이들이 모두 싫단다. 집에 가면 하기 싫어진다고 남아서 다 하고 가겠단다. 그렇게 현서가 가고, 지안이가 가고, 한주가 간다. 한주는 자신의 성과물을 한 움큼 들고 와서는 보란 듯이 내 앞에 내민다. “보세요. 이걸 오늘 다 했다는 게 말이 돼요?” 의기양양한 얼굴, 행복한 미소, 든든하게 올라가는 어깨, 온 몸으로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한다. 아프다는 작은 손을 꼭꼭 주물러 집으로 보냈다. 한참 뒤 본준이가 부엌으로 뛰어내려온다. “선생님, 나 다했어요.” 사실 본준이가 그렇게 오래 남아있는 줄 몰랐다. 아이들이 다가고 혼자 남아서 천천히 끝까지 다한 본준. 그 오동통한 몸으로 안긴다. 눈물이 핑 돌 것 같다. “생님아, 생님아 다하니까 기분이 좋아요. 집에 가면 못했을 거예요.” 뿌듯함이 수호천사처럼 본준이 몸을 감쌌다. 아이들은 긍정의 기운으로 저마다에게 영향을 주며 서로를 잇고 이어 서로를 키우고 있다. 아, 가슴으로 온 감동을 글로 다 적어내지 못하는 내 짧은 글솜씨가 원망스럽다. 그렇게 아이들은 남아 저마다 빠르기로 자기 것을 마무리 하고 집에 갔다. 스스로 선택하고 마무리 하며 기쁨을 느끼는 녀석들^^ 이 사랑스런 아이들이 날마다 가슴으로 더 들어온다. 봄 여름학기 줄곧 바깥 활동을 더 하자고 조르던 녀석들, 이제 원 없이 놀았나? 가을 학기 엉덩이 붙이고 안에서 하는 공부에도 크게 재미를 붙였다. 실력을 높이려 자신을 챙기고 격려한다. 아이들이 돌아가고 난 교실에는 녀석들의 뿌듯함이 남아있다.
아이들이 돌아간 뒤 교실엔 아이들이 남긴 뿌듯함으로 가득하다^^
첫댓글 감동적이에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