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복음화를 향하여] ‘사회적 사랑’을 위한 순교복자,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성령께서는 담대하게, 큰 소리로, 언제 어디서나, 또한 시류를 거슬러, 복음의 새로움을 선포할 힘을 불어넣어 주십니다”라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 259항에서 기도했다. 복음은 우리가 텔레비전을 켜면 늘 듣던 이야기와 다른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그분이 마태오 복음 5장 산상설교에서 “복되다”고 말한 이들은 한결같이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이다. 아니면 세상의 평화를 위해 일하다 박해받는 의로운 이들이다. 이들은 결코 해피(happy)한 사람들이 아니다. 백화점에서 마음껏 물건을 고르고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다. 권력의 중심에서 칼을 휘두르는 자도 아니고, 그냥저냥 살만한 사람들도 아니다. 세상에서 고통받거나,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행복(happiness)하지 않지만, 하느님의 축복(blessing) 가운데 있다. 그들은 지금 하느님의 거룩한 영 안에 머물기 때문이다. 행복은 그때그때 다르다. 그러나 축복은 고난 속에서도 언제나 충만한 기쁨 가운데 있다. 그 기쁨을 나누어 가진 사람이 곧 성인이다. 순교자다. 예언자다.
교황은 어떻게 이런 삶이 가능할까? 물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님 그분의 사랑의 눈길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예수님과 눈길이 마주친 뒤로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는 게 그들의 고백이다. 그분은 매력적이고, 그분의 말씀은 아름답다. 그분이 가난한 이들의 몸을 어루만지실 때, 우리도 그분처럼 가난한 이들에게 한걸음 다가설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가 그분처럼 살아서 그분의 제자가 되는 방법은 그분을 어디서든 만나는 도리밖에 없다. 1980년 3월 24일, 엘살바도르 군사정권이 보낸 암살단의 총격에 죽은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역시 그분을 만나 영원한 살아나신 분이다.
로메로 대주교(Romero, Oscar Arnulfo, 1917~1980)는 “폭력이 숨쉬기처럼 일반화되어 있는 나라”에서 불의한 정치권력에 맞섰다. 당시 엘살바도르는 14가문의 지주들이 전체 경작지의 60퍼센트를 소유했으며, 이 지주들을 대통령과 국회의원, 국가방위군과 경찰이 보호했고, 방해가 될 만한 이들은 무참하게 학살당하거나 실종되었다. 그중에는 가난한 소작농들과 심지어 사제와 수녀들도 포함되었다. 그러나 로메로 대주교는 아주 특별한 사건을 경험하기 전까지 이러한 비참한 현실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1977년 산살바도르 대교구의 대주교로 임명된 지 3주만에 자신과 오랜 우정을 나누었던 예수회의 루틸리오 그란데 신부가 아길라레스 성당에 미사를 봉헌하러 가다가 암살단에게 피살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란데 신부가 공공연히 지주들을 비난하고 소작농들을 변호했기 때문이다. 이 바람에 로메로 대주교의 눈을 덮고 있던 비늘이 떨어져 나갔다. 동료 사제의 억울한 죽음을 통해 고난받는 땅에서 과연 ‘복음’이란 무엇인지 새삼 알게 되었다.
가난한 이들을 변호하다가 살해당한 그란데 신부의 장례미사가 열리던 날, 교구에서는 단 한 대의 미사만 봉헌되었다. 모든 산살바도르 사제들과 신자들이 주교좌성당에 모였다. 이 자리에서 로메로 대주교는 “이 사제 가운데 한 명이라도 건드리는 것은 곧 나를 건드리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정부의 면담 제의도 거부했고, 전국에 방송되는 라디오를 통해 매 주일마다 고문당한 이들과 살해당한 이들, 투옥된 이들과 고통받는 백성들을 위해 강론을 했다. 이후로 나바로 신부가 암살당하고, 아길라레스 성당이 군용막사가 되고, 가톨릭 선교사들이 군사정권의 조직적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로메로 대주교와 교회는 압제 받는 엘살바도르 국민들에게 ‘피의 바다 위에 떠있는 희망의 섬’ 같은 존재였다.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목소리 없는 자의 목소리’였다.
로메로 대주교는 두려워하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이 세상의 예언자입니다. 여러분은 성령께서 기름 부어 뽑아 세우신 예언자로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세상에서 일어난 선한 일을 자랑하고, 성심을 다해 악을 고발해야 합니다.” 로메로 대주교는 평화를 위해 일하다 살해당한 사제와 불의로 고통받는 가난한 이들의 얼굴에서 그리스도를 거듭 만났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이 먼저 누구에게 전한 복음인지 물었다.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는 말이 로메로 대주교의 입술에서 다시 생명을 얻었다.
부활이란, 죽은 목숨이 다시 호흡하기 시작하고, 그 입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정치권력의 위협을 받을 때마다 로메로 대주교는 “만일 그들이 나를 죽이면 나는 다시 엘살바도르 민중 속에서 솟아오를 것”이라고 했다. 암살단에게 살해당하기 전날인 3월 23일은 사순 첫 주일이었고, 이날 로메로 대주교는 군인들에게 탄압을 중지하라고 요청했다.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우리와 같은 민중입니다. 그대들은 그대들 형제인 농민을 죽이고 있습니다. … 어떤 군인도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명령에 복종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이야말로 그대들은 양심을 되찾아, 죄악으로 가득 찬 명령보다는 양심에 따라야 할 때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아울러 날마다 더한 고통을 받아 그 부르짖음이 하늘에 닿은 민중들의 아픔으로, 나는 그대들에게 부탁하고 요구하고 명령합니다. 탄압을 중지하시오.”
로메로 대주교는 돈과 정치적 이해, ‘국가안보’라는 우상을 계속 숭배하면서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신 그리스도를 박해하는 이들을 단죄했다. 그리고 “참된 교회는 예언자들처럼 불타오르는 말씀을 선포하고 불의를 고발할 때 드러난다”면서 “이 때문에 박해받지 않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2015년 5월 23일 로메로 대주교는 25만 명이 모인 가운데 산살바도르에서 시복되었다. 이날 프란치스코 교황은 “순교한 (로메로) 대주교가 사람들의 고통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페루의 해방신학자 구스타보 구티에레즈는 이렇게 말했다. “로메로가 나타나기 전에 가톨릭교회는 수많은 이들이 정치적 이유로 죽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로메로가 죽은 이유는 정치적 이유나 교회를 수호했기 때문이 아니라 가난한 이들의 권리를 지켰기 때문이다.” 그의 사회적 사랑이 그의 영혼을 현양했다.
[2016년 3월 27일 예수 부활 대축일 의정부주보 7-8면, 한상봉 이시도로(가톨릭뉴스 지금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