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1 - 류블라냐에서 기차로 들판을 달려 8시간만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가다!
2022년 5월 6일 슬로베니아 의 수도 류블라냐 Ljubljana 의 시티 호텔에서 부페식 아침
을 먹고는 체크 아웃 후에 걸어서 5분 남짓 걸리는 류블라냐 기차역 으로 갑니다.
류블라냐 Ljubljana 역 에서 9시 35분에 출발하는 IC 247 기차는 평원이
이어지는 동쪽으로 달려서 국경을 지나 7시간 24분 만인 16시 59분에
헝가리 의 수도 부다페스트 델리역 Budapest-Déli 에 도착할 예정 입니다.
우리 부부기 탄 기차는 차량에 6인실 컴파너먼트 가 10개쯤 들어 있는데 오래토록
기차를 타야 하니.... 다른 승객 한명에 우리 부부 3명이라 편하게 갈수 있을
것 같은데 함께 탄 사람은 서툰 영어로 물으니 슬로베니아인으로 교수 라고 합니다.
Ljubljana 역에서 9시 35분 출발한 기차는 12시 30분 국경도시 무르스카 소보타 Murska Sobota
역에 선 후에는 국경을 지나 13:01 헝가리 서쪽 변경 도시인 호도스 Hodos 역에 도착 합니다.
그후 13:07 Öriszentpeter 13:16 Zalalövö 13:49 Zalaegerszeg 14:00 Zalaszentivan
14:11 Zalaber-Batyk 14:23 Ukk 14:29 Janoshaza 15:00 Ajka 15:32 Veszprem
15:49 Petfürdö 15:54 Varpalota 16:12 Szekesfehervar 16:52 Budapest-Kelenf
그리고 16시 59분에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델리역 Budapest-Déli 에 도착할 예정 입니다.
기차는 산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너른 들판 을 3시간 가량 달려서 호도스 Hodos 라는 역에서는지라
통로로 나가 역의 사진 을 찍는데 옆 컴파너먼트에서 할아버지가 나오더니 거칠게 제지 하니
기분이 나빠져서 왜 그러냐고 물으니 이 분이 영어를 하지 못하는지라 의사소통아 제대로 안됩니다.
하지만 손가락으로 바깥을 가르키며 안된다고 거듭 말하는 것으로 보니.... 아하! 우리 기차는 지금 국경
역 에 도착한 것인가 본데 컴파너먼트로 들어오니 승객이 국경 이라고 확인해 주는데....
어느나라나 국경에서 사진을 찍으면 조사대상이 되는지라 할아버지가 걱정이 돼서 말렸던 모양입니다?
15분 이상 오래 정차하던 기차는 차장의 기차표 검사 가 끝난후에 드디어 출발하고 또 다시 기차는 끝도
없이 너른 들판 을 동쪽으로 달리니 물끄러미 산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초원 을 바라보다
보니 문득 여긴 기마민족의 땅이니 오래전 여기 정착해 로마제국과 싸웠던 훈족의 아틸라 가 떠오릅니다.
아틸라 (Attila : 406년 ~ 453년)는 훈족 최후의 왕이며 강한 왕이었으니 5세기경 게르만 민족 대이동기에
동유럽 북부 헝가리등 넓은 지역을 지배하는 대제국 을 건설하였으니 “신의 채찍” 이라 불릴 정도로
동서 유럽의 국가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인물로 453년 아틸라가 죽은후 훈제국은 붕괴되어 버립니다.
아틸라 는 434년부터 죽을 때까지 18년 정도 유럽에서 최대의 제국 을 지배했으며, 그의 제국은 중부 유럽
부터 흑해, 도나우강 부터 발트해 까지 이어졌는데 그는 삼촌 루아가 죽자 형 블레다(Bleda) 와 공동
으로 왕위에 올랐다는 설과 블레다가 실질적인 왕이고 아틸라는 2인자에 머무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443년 형인 블레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후에 아틸라는 훈족의 유일한 왕 으로 인정받게 되니
그는 동로마를 공격해 콘스탄티누스의 고향인 나이서스를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하는 한편..... 동로마의 수많은 도시를 침공하여 동로마에게서 막대한 돈을 공물 로 받게 됩니다.
유럽을 휩쓴 저 훈족 은 한나라의 고조 유방을 백등산에서 포위했다가 풀어주고는 금은
과 비단에 처녀를 조공을 받으며 한나라를 괴롭혔던 흉노족 이 그후 한무제
에게 패하자... 서쪽으로 이동해 고트족을 쳐부수고 여기 헝가리 평원 을 차지했습니다.
훈족과 흉노 를떠올리다 보니 문득 동아일보에 경희대 사학과 강인욱 교수가 세상만사의 기원이라는
칼럼에 올린..... “2300년 전 거대 제국 이룬 흉노, 비밀병기는 메신저” 라는 글이 떠오릅니다.
"까똑."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모바일 메신저의 알림, 귀찮지만 우리 삶은 이 메신저가 없이는 살수
없게 됐다. 몇년전만 해도 상장, 합격통지서등 붉은 도장이 찍혀 있는 문서 가 있었지만 지난
몇년사이 우리 삶에서 메신저가 그 모든 결정을 대신하니 백신 접종을 비롯한 병원 예약,
결혼과 부고에 나라 중대사를 결정하는 선거에서도 메신저를 통한 연락은 선택아닌 필수 가 되었다.
때로는 우리의 모든 순간을 결정하는 메신저의 등장 이 두렵기도 하지만 메신저로 나라를
움직인 것은 지금만의 일은 아니니.... 2300년 전 중국의 북방과 몽골 일대를 호령
하던 유목 제국 흉노는 글자 없이 메신저 로만 거대한 제국을 일궈냈는데 중국과
맞서 거대한 제국을 일사불란하게 메신저로 다스렸던 모습이 현재 스마트 사회 와 유사하다.
흉노와 적대적이던 중국은 그들의 야만성을 기록했으니... “그들은 글자가 없고 나무에 새겨 표시
하거나 끈을 꼬아서 뜻을 전한다” 글자도 모르는 일자무식 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천하의 진과 한나라는 수백년간 글자도 모르는 그들에게 쩔쩔매고 살았다니,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사실 흉노는 간결한 메시지로 통치 했으며, 국가 조직을 최대한 단순화 해서 조직을 정비
했고 법률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수 있도록 단순화했으며 흉노 정부조직은 왕의
왼쪽과 오른쪽에 측근을 배치 하는 식이었으니 마치 사람에게 두 팔 이 있는 것 과 같다.
하부조직은 손가락처럼 십진법에 근거해 5명 또는 10명 단위로 조직 을 만들었으니 인간의 신체적
인 특징 과도 잘 부합돼 가르침이 필요없이 쉽게 이해할수 있었으며 조직의 규모가 커지면
그 밑에 하부조직 을 만드니 아무리 세력이 커져도 자신이 상대하는 이는 10명 내외의 사람들 이다.
그렇게 간결하되 엄정한 원칙 은 유목민들이 순식간에 초원, 나아가 세계를 정복하는 기반이 됐고 집
없이 사방을 다니는 신속성에 간결한 정보력 까지 갖춘 흉노는 이후 유목국가들의 롤 모델 이
되었으니 흉노 이래 초원에서는 새로운 국가들이 발흥하며 끊임없이 역사를 바꾸는 주체가 됐다.
급기야 흉노 등장 후 1300년이 지난 시점에 등장한 칭기즈칸의 몽골 제국 도 기본적으로 흉노와
비슷한 조직이었으니, 아시아는 물론 러시아 모스크바, 유럽까지 정복한 몽골 제국
에서 메신저는 빠르게 정보를 이동시키는 역참 으로 이어졌고, 몽골 제국의 성공의 비결이 됐다.
고고학자들의 발굴로 글자를 모른다는 중국 기록은 잘못된 것으로 밝혀졌는데, 흉노는 한문을 잘 알고 있었고
효과적으로 이용했으니, 2020년 몽골 울란바토르대 발굴팀은 2200년전 흉노 성터를 발굴했는데 ‘하늘의
아들인 선우(흉노의 왕), 영원히 복을 받으라’ 는 글자 11자가 새겨진 기왓장(막새기와) 이 대량으로 발견됐다.
집 담벼락이나 처마 끝을 둥글게 장식하는 막새기와 는 중국인의 전통이지만흉노인들이 만든 기와에 새겨진
글자는 11자 인데 중국에서는 이런 식으로 글자를 넣은 적이 없고 내용도 흉노인들을 위한 맞춤형 이니
‘하늘의 아들 선우’ 라는 구절은 흉노인들이 왕인 선우를 부를 때 외치는 ‘텡그리 후 샤뉘’ 를 번역한 것
이며 여기에 중국 사람들로 부터 빌려온 길상어(축복의 말) 를 적절히 조합해서 흉노인의 기개를 드러냈다.
사실 흉노인들은 유목을 하고 한문을 널리 쓰지 않았으며 게다가 유목을 하면서 사방을 다니는 흉노에게
성(城)은 별로 필요가 없는지라 성터의 기와 는 흉노인들이 중국이나 다른 외국에서 온 사신들을 맞이
하는 용도 였을 것이며 외교사절단이 오면 보란 듯이 마치 플래카드를 걸듯이 명문의 글자를 걸어놓은 것이다.
그뿐 아니다. 흉노는 글자를 영악하게 외교전술 에도 사용했으니 흉노인은 자신들의 메시지와 메신저
를 적절히 이용해 중국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었는데..... 한나라 고조 유방 이 섣불리
흉노를 정벌하려다가 되레 크게 패하고 난 후에 중국은 저자세 를 취했고, 흉노 역시 적절하게 대응했다.
당시 두 나라는 목간에 글자를 적어서 뜻을 주고받았으며 한나라의 고조 유방이 죽고 난 후에
그의 부인 여후(呂后) 가 정권을 잡았는데 수많은 부인들과 피비린내 나는 권력투쟁
끝에 얻은 자리였으니 동양의 ‘블러디 메리’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기세가 등등했다.
그런데 권력자 여후를 흉노의 왕인 묵특선우(모둔선우) 는 글자 그대로 음당패설 같은 메시지로 도발
했으니... “듣자 하니 그대는 과부라 하고 나도 홀몸 이라 재미없고 우울하니 우리 만나서 외로움
을 달랩시다” 는 내용이었다. 좋게 말하면 러브레터요, 나쁘게 말하면 저열해 보이는 외교적 도발 이다.
사신의 목을 치고 흉노와 전쟁 을 벌이고 싶었겠지만, 당시 한(漢)나라는 흉노를 당해낼 수 없었으며
상대방은 북방에서 글자도 없이 사는 유목민의 왕이니 글자도 모르는 흉노의 왕이 ‘러브레터’
를 만들어 보냈는데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여후는 분통을 억누르고 “내가 나이가
많아서 연애는 어렵고, 대신에 마차와 말 을 보내니 즐겁게 노십시오” 라고 달래는 편지를 보냈다.
흉노의 계책은 그뿐이 아니었다. 묵특선우의 다음 흉노왕 노상선우가 중국에 보낸 죽간은 길이가 1척 2촌
(약 27cm) 이었는데 그런데 당시 중국에서 황제가 보내는 메시지를 담은 죽간은 1척 1촌 이었으니
흉노는 얄밉게도 중국의 황제가 쓰는 것보다 약 2.5cm 가 긴 1척 2촌의 목간에 메시지 를 써서 보낸 것이다.
흉노가 중국 보다 우위 에 있다는 의미를 메시지에 담아 전한 것이니 이렇듯 흉노인들은 글자
를 몰라서 안 쓴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효율적인 국가 통치를 위해서 쓰지 않았을
뿐이며 대신에 글자의 효용 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적절히 사용했으니 한나라가
200년간 흉노에게 쩔쩔매고 매년 엄청난 양의 공물과 공녀를 바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어느덧 종이가 사라지고 우리 모든 일이 메신저와 온라인 으로 이루어지는 시대에 연락은 구두로 명령을
내리고 전령이 전하는 유목민 시대와 달라 보이지 않으니, 십진법에 기초해서 운용되는 유목민 조직
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그룹의 소위 ‘단톡방’ 으로 정보를 공유 하는데 하지만 차이도 있으니
과거 유목민의 메신저와 달리 현대 사회에서는 대량 정보 가 메신저를 타고 넘나들며 사람들을 현혹한다.
이제 메시지는 부차적인게 아닌, 우리 삶의 중심에 있으니 우리가 얼마나 건전하고 올바른 메시지
를 받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며 글자 대신 메시지로만 유라시아
를 제패했던 흉노에서 칭기즈칸에 이어지는 유목민의 지혜를 다시 돌아볼 때가 됐다.
메신저를 잘 알고 메시지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는 사람들 이 진정한 21세기 승자가 될 것이다.
이런저런 옛날 생각을 하는새에 제법 큰 역에 도착하고 일반 승객과 학생들이 많이 타니
수도에 가까워짐을 알겠는데.... 그때 할아버지 한분 이 우리 컴파느먼트에 도착해
지폐를 꺼내면서 환전 을 하라고 하는데 미심쩍은지라 선뜻 응하지 않으니 가버립니다.
종점 한 정거장을 두고 우리 컴파너먼트에 함께 타고온 승객으로 교수라는 신사분이 내리기에 함께 사진
을 찍는데 저 신사도 자기 휴대폰으로 다시 한 장을 더 찍네요? 그러고는 한정거장을 더 달려서
드디어 우리 기차는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의 남역인 델리 푸역 (메트로 2호선 종점) 에 도착합니다.
이제 급한게 헝가리 돈으로 환전 하는 일인데.... 여기부다페스트 델리푸 Budapest
-Déli pu 역은 매우 큰 역이기는 하지만 환전소가 없고 해서 둘러보니
ATM 조차도 없는지라..... 지하철을 타자니 잔돈 이 있어야 하는데 참 난감합니다?
해서 여러차례 여행을 다니며 익힌게 요령인데... 오래전 옛날에 늦은 밤에 유로 이전에 리라를 쓰던 이탈리아
로마의 테르미니역에서 모나코로 가는 기차를 타려고 코인로카 에 가서 동전을 넣으니 열리지가
않는데 보니 시간 초과 라? 해서 원래 넣은 요금 만큼 동전을 모두 넣어도 열리지 않으니 그럼 “벌금” 개념이라!
너무 늦은 시간이라 역 구내의 가게들도 문을 닫은지라 급한 김에 광장으로 뛰어나가서는 대기
중인 택시 기사에게 돈을 환전 했는데... 오늘은 어느 가게 에 들어 유로를 내미니 받지
않는다기에 다음 가게로 가서 다시 시도를 해서 10유로를 3,000 헝가리 포린트 로 교환 합니다.
이 돈으로 300포린트 하는 지하철 표 2장 을 구입해 지하철을 타는데 에스컬레이트는
지하로 엄청 깊게 내려가니.... 예전에 스웨덴의 스톡홀름 정도로 깊은데 더 깊게
내려간 것은 러시아 전국 일주 배낭여행 때에 모스크바 지하철 이었다는 기억이 납니다.
4정거장을 가서 Deak -Ter 역 에 도착하면 1호선 및 3호선과 만나니 다시 3호선으로 횐승해 호텔에
가서 체크인한 다음에 다시 나와 세계에서도 유명하다는 야경을 구경하기로 예정했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오래토록 고민한다가 그만 3번째 Kossuth-Ter(국회의사당)역 에서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