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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_ 오순절 성령을 받은 조건과 준비
오순절에 제자들이 성령을 받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또한, 성령의 임재의 필요성을 깨닫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 있었다. 오순절 성령을 받기 위해 제자들이 겪었던 경험과 준비과정은, 두 번째 오순절 성령의 역사인 늦은 비 성령을 기다리고 있는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좋은 교훈을 주고 있다. 성령을 받기 위한 조건은 무엇이었는가?
1) 시련을 통해 성령의 필요를 느낌
제자들이 성령의 필요를 진정으로 알기 위해 겪었던 과정은 시련과 고난이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사건은 제자들의 일생일대의 시련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전토와 가족과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전도사업에 투신한 사람들이었다. 앞날에 대한 예언 성취를 알려주신 주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제자들은 그들의 주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는 사건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제 곧 영광의 왕국이 이 지상에 설 것이며 그 왕국에서 그들이 차지할 자리와 명예에 관심이 집중되어 다투던 그들에게 있어서 주님의 죽음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고 조롱하는 제사장들과 관원들의 말을 들으면서, 또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서 그들의 일생을 걸고 쫓던 희망의 태양이 저버리면서 제자들의 마음은 어두운 밤의 그늘로 덮여버렸다. 제자들은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눅 24:21)는 말을 입술로 되뇌며 외롭고 상처받은 마음으로 슬픔에 잠겨 울었다. 십자가는 그들에게 큰 시련과 시험이었다. 세상에 걸었던 그들의 인간적인 희망과 최대의 소망이 사라진 가운데 그들은 빈손으로 허허벌판에 남겨진 듯 허전하였다. 이제 누가 높은가 다투던 그들의 혈기는 사그라지고, 세상의 명예를 추구하던 헛된 욕심도 잦아들고, 눈앞에 닥친 시련 속에서 두려움에 떨며 자신들의 진정한 모습, 나약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자신들의 연약성과 부족함, 그리고 많은 허물과 부정함을 깨닫고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버리게 되었다. 낮은 곳으로 내려앉게 된 그들의 심령은 가난하게 되었고 빈 마음으로 주님의 임재와 성령의 도우심을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십자가는 그들에게 있어서 최대의 시련이었다. 그러나 그 시련은 그들 자신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하였고 성령을 받기에 적합한 겸손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 우리가 받는 교훈
때때로 시련은 우리 마음속에 큰 역사를 이루어낸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세속적인 것과 이기심과 조급함과 비 그리스도적 품성에서 깨끗함을 받고 정결하게 되도록 우리에게 시련을 허락하신다. 그 깊은 환난의 물결이 우리를 덮치도록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가 자신의 진정한 상태를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시기 위해서이다. 시련에 처하게 될 때에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며, 스스로 얼마나 연약하고 부정한 존재인가를 알게 되므로 더러운 죄악에서 깨끗해지고자 하는 깊은 갈망을 갖게 된다. 시련과 시험을 통하여 더 순결하고 더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시련의 연단의 풀무불에 들어갈 때에 이기심으로 어두워진 심령을 가지고 들어가는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에 그 어려운 시험을 참고 견딘다면 그 시험에서 나올 때에는 어두워진 심령과 눈이 밝게 되고 신의 성품을 더 반사하게 될 것이다. 시련은 우리의 눈을 뜨게 한다.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고통 속에 처할 때에 우리는 가난한 심령을 갖게 되고 자신의 진정한 상태와 처지를 깨닫게 되며, 그때에 치료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성령을 바라게 된다. 고난 속에서 주님께 부르짖으며 그것을 견딜 힘과 성령의 능력을 간절히 구하게 되며, 그때에 마음의 그릇 속에 주님의 성령을 담을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시련과 시험은 우리를 연단하여 주님의 가치 있는 일꾼으로 만들며, 성령의 임재를 간절히 구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2) 회개와 고백
시련을 겪은 후 제자들은 겸손하게 되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귀한 가르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변화되지 않은 모습과 고난당하시는 주님을 버리고 도망갔던 자신들의 비겁함을 보며 그들은 자신의 속절없는 상태를 발견하고 진정으로 슬퍼하게 되었다. 게다가 주님께서 모든 교훈을 다시 상기시켜 주시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렇게 부족한 자신들에게 진리를 위탁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시니 그들은 그 사업을 위해 전혀 준비되지 못했음을 느끼고 어쩔 줄 모르게 되었다. 그들은 진정으로 준비된 일꾼이 되기 위해, 하나님을 대표하는 자가 되기 위해 통회하며 엎드려 회개하였다. 그들은 참된 회개로 마음을 겸비하게 하고 불신을 자복하였다. 불화와 최상권을 잡으려는 모든 욕망을 버리고 그들은 서로에게 죄를 고백하고 자신들의 허물에 대한 용서를 빌었다. 끝없이 흐르는 눈물과 서로를 용서하고 받아주는 포옹과 따뜻한 용서의 말이 그들에게서 흘러나왔다. 진실된 회개로 비워진 제자들의 마음은 이제 성령을 받을 준비를 완전히 갖출 만큼 겸손하게 되었다.
* 우리가 받는 교훈
그리스도인 생애에서 회개의 경험은 매우 중요하다. 죄를 위한 경건한 슬픔이라고 불리는 회개는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참된 회개, 곧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고후 7:10)의 경험을 지속해야 한다. 우리가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우리의 부족과 죄 됨이 드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믿을수록 매일 점점 더 깊은 회개의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의 사본인 계명을 바라볼 때에 우리의 죄들이 밝히 드러나 양심을 깨우치게 되는데, 그럴 때에 우리의 유일한 안위와 소망은 갈보리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십자가 밑에 나아가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악함과 구주를 모욕하고 슬프시게 한 죄들을 통회하며, 우리의 죄 때문에 예수님께서 다시 못 박히시고 찔림을 받으시는 것에 대해 회개해야 한다. 어떤 사람도 자신이 알고 있는 죄를 여전히 행하며 알고 있는 의무들을 등한히 하면서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로 자신의 영혼을 가릴 수는 없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대로 개혁하고 배운 진리를 실천에 옮기지 않는 한, 그 진리로 변화되는 산 믿음이 계속하여 증가하지 않는 한, 우리의 회개는 감정적이고 한갓 아침 이슬과 같이 쉬 사라지는 것이 될 것이다. 의의 평온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강렬한 감정뿐인 회개는 믿지 않을 때보다 더 사람을 악화시킬 수 있다. 참된 회개에는 반드시 변화가 수반되는데, 죄에서 떠나는 변화, 생애를 개혁하는 변화, 원수가 친구로 변하고 오해를 이해와 화합으로 만드는 변화, 무정한 사람이 친절하고 애정 많은 사람이 되는 변화의 기적이 따른다.
우리는 참된 회개의 대표적인 예를 다윗의 회개에서 찾을 수 있다. 다윗의 회개는 성실하고 깊은 회개였다. 그는 자기의 죄악을 변명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의 기도에는 형벌을 피하려는 욕망이 없었다. 오히려 그의 범죄의 흉악함을 보고 그의 영혼의 더러움을 보고 자신의 죄를 미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그가 기도한 것은 용서만을 얻으려고 한 것이 아니고 마음의 정결을 위함이었다. 그는 사울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거나 그의 죄를 가볍게 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대신 자책과 진실된 슬픔으로 하나님의 선지자 앞에 머리를 숙이고 자신의 죄악을 시인했다. 그는 하나님께 용서를 탄원하면서 고관들과 심지어는 그의 부하와 종들에게도 그의 회개를 숨기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죄와 회개에 대한 참회의 시를 지어 사람들로 교훈을 얻게 하였다. 그의 보좌의 지위가 높았고 무제한적인 권세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탄핵받은 모든 죄를 겸손하게 인정한 것은 다윗이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의 회개는 하늘의 사하심을 받은 완전한 회개였다. 이렇게 회개에는 고백이 따라야 한다. 회개할 때에는 공중 앞에서 회개해야 할 죄와 개인적으로 회개해야 할 잘못이 있는데, 이것을 잘 구분하여 고백과 함께 겸손히 용서를 구해야 한다. 회개는 성령의 부으심을 받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경험이다. 회개하고 정결하게 된 사람, 죄를 미워하고 멀리하는 사람, 혹시 실수하고 쓰러지더라도 낙심하지 않고 다시 회개의 경험으로 재빨리 들어가는 겸손한 사람들만이 성령의 선물을 받을 것이다. 참된 회개의 기적이 우리 삶에서도 일어나고 있는가?
3) 연합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조건 중에 매우 중요한 한 가지는 그들이 하나로 연합하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마음을 같이 하”고, “한 마음과 한 뜻이 되”(행 2:46, 4:32)었다. 제자들은 그들 사이에 있는 차이를 없앴다. 회개했다고 하여 그들의 개성과 성격이 똑같아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달라진 점은 상대방의 개성과 성격을 존중해주고 이해해 주었다는 것이다. 서로 다르던 그들이 하나로 연합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한 목적과 한 소망이었다. 그들의 생각은 그리스도로 가득 찼고, 그분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 되었다. 그들의 마음과 품성은 주님과 같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들이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행 4:13) 을 알았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신 형제들은 서로 불목할 수 없다. 그들의 친구요 맏형이신 예수님을 함께 모시고 동행하면서 어떻게 서로 불화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통을 하면서 그와 함께 하늘에 앉아 있었다. 그들의 심령은 매우 충만하고, 깊고, 넓은 자비와 사랑으로 넘쳐 흘러서 서로를 귀하게 여기며, 함께 힘을 합하여 세상 끝까지 나아가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시작하신 사업을 추진시키려는 강렬한 열망으로 충만하여 하나가 되었다. 하늘에 대해 그들이 진 큰 빚과 그 사업에 대한 그들의 책임을 깨달았기 때문에 사소한 일은 그들에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성령의 부음을 받아 힘을 얻은 그들은 십자가의 승리를 널리 증거하려는 뜨거운 열성으로 나아갔다. 성령께서 그들에게 생기를 주셨고 또 그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그들의 얼굴에서 빛났으며, 자신들의 삶을 봉사 사업을 위해 연합하고 바친 제자들의 그러한 모습에서 그들이 하나님께 굴복한 사람들이란 증거가 나타났다.
* 우리가 받는 교훈
제자들에게 오순절 성령을 받기 위한 준비로 연합이 중요했다면, 마지막 시대에 늦은 비 성령을 받아 복음 사업을 마쳐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연합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마지막 때에는 한 성령께서 한 백성을 인도하실 것인데, 그들의 특징은 진리 안에서의 연합과 화합이다. 제자들이 서로 판이한 성격과 기질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전의 편견을 버리고 진리 안에서 서로 연합되고 조화되었던 것처럼, 한 진리 안에 모인 마지막 성도들도 서로의 이견과 대립과 주장들을 버리고 뜨거운 사랑으로 연합하여야 할 것이다. 사탄은 이 연합이 성도들 속에 계속 존재하는 한, 복음의 진리가 널리 보급되는 것을 막을 수 없음을 알고 형제들 사이에 불화의 요소들을 끌어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1, 17)라고 간구하신 예수님의 기도가 우리 가운데 성취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참된 연합은 각 개인이 예수님 안에 감추어질 때에만 가능하다. 그리스도와 먼저 연합된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조화와 화합의 하모니가 울려 퍼질 것인데, 이런 아름다운 성도의 연합은 하늘의 정신으로 고무된 사람들 사이에 항상 존재할 것이다.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는 겸손과 예수님께서 위하여 생명을 바치신 다른 영혼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정신을 가진 곳에 주님께서 거하기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의 권능과 성령의 능력과 거룩한 천사들의 도움을 힘입어 세상 앞에 연합 전선을 펴서 끊임없이 흑암의 권세들과 싸우며 마지막 복음을 전해야 할 일꾼들은 먼저 서로 연합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러면 진리가 승리하게 될 것이며, 이 연합된 수고와 역사가 계속될 때에 하늘의 사자들은 앞서 가서 길을 열 것이며 영혼들이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어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께 인도될 것이다. 이 아름다운 연합을 이룬 교회를 가리켜 “달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고 기치를 벌인 군대같이 엄위”(아 6:10)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성경은 가리키고 있다. 이 연합된 교회는 승리에 승리를 더하며 전진하여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는 그 거룩한 사명을 영광스럽게 성취할 것이다.
**마치면서
하늘은 마지막 시대에 늦은 비 성령을 받고 복음을 들고 나아가 세상을 뒤흔들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 이 세상은 회복된 진리의 빛으로 다시 한 번 환해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바벨론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진실된 자녀들이 그 진리의 외침을 듣고 죄악 가운데서 나오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짐승의 표의 환난에도 굴하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고 세상에 복음을 큰소리로 외치는 사업은 성령의 능력이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이 일은 성령의 능력을 받은 사람들이 없으면 또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늦은 비 성령 운동이 일어나기를 고대하고 계십니다. 두 번째 오순절의 풍성한 성령을 받고 세상을 복음으로 뒤흔들 사람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나아가 세상을 뒤흔들고 역사를 새롭게 썼듯이,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듯이, 마지막 늦은 비 성령이 임할 때에 우리도 성령을 풍성히 받고 나아가 복음의 빛을 비추면서 세상을 뒤흔들어야 합니다. 이 영광스러운 일에 모두 참여하시는 독자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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