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L.A. 폭동1년
재미 한국인
이 경수 (토리카 켄사스 거주 한국일보 주재기자)
5월의 훈풍이 불어오는 저녁, 텔레비젼의 화면을 가득 메운, 불타는 건물, 아우성치는 흑인 물결, 이곳 저곳에서 들려오는 총소리 그것들이 바로 우리와 관계있는 엄청난 사실이라는 것을 T V 아나운서의 "Korean Town"이라는 소리를 듣고서야 알았다.
그 순간, 저절로 벌어진 입을 다물 줄을 몰랐고 힘이 빠진 두다리 때문에 나도 모르게 털썩 주저 앉았다. 희망의 나라 미국에서 처참하게 좌절당한 "한국민족"이 슬픔과 고통은 나 자신의 것 일수도 있다고 미국에 살고있는 동포들 이라면 누구나 느낄수 있었으리라.
그래서 L.A. 흑인폭동피해 동포돕기운동에 미국의 한국동포들은 또 다시 커다란 실망감과 우리가 왜 "한국인"이어야 하느냐에 회의를 느꼈다. 고국에서는 미국의 동포를 "재미 동포"라고 부르며 비웃는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미국이라는 곳은 고국에서 사기치고 도망가는 사람들의 피난처 돈을 뭉쳐 떠나는 졸부들의 샤핑센터, 공부하기 싫은 학생들의 놀이터, $100이 아까워 쩔쩔매는 가난과 교포가 득실대는곳, 미국인에게 쩔쩔매며 식당구석에서 설것이하는 동포가 많은곳, 정말일까(?)
미국이 한국의 인간 난지도처럼 생각하는 고국의 그 사람들 집에는 변소의 화장지, 치약, 치솔, 비누 그리고 속옷까지도 외제가 아니면 쓰지 않는다는 약간은 이상한 사람들인것 같다.
갈증을 해소하려고 벌컥벌컥 마신 맛있던 간밤의 그물이 새벽에 깨어보니, 해골속에 고여있던 구정물 인줄안 후에 토약질을 하며 내장까지 씻어내듯이 다 토해낸후에도 마음이 편안하지 않은 인간의 마음장난을 느낀후에 깨달음을 얻은 후 "원효대사"는 그길로 당나라로 가서 불교공부를 하려던 생각을 버리고 신라로 돌아와, 중생들의 진실도니 마음을 이해하고 느끼며 생활하는 스님이요, 정신적인 지도자가 되어 몇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의 사상과 뜻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사라져도 역사는 남아서 진실된 정의가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흑인에게 짓밟히고, 동족이 동족을헐뜯고, 양육강식의 원칙대로 행동하시는"귀하신 분들" 한번쯤 따스한 차 한잔 마시며, "나"를 찾아보면 어떨가요. 거울속에 비치는 본연의 모습, 각본대로 움직이는 무대위의 연극의 소품이 아니라 무조건 질주하는 자동차가 아닌, "나" 말입니다.
한국의 정치에는 콩나오라, 팥나오라, 핏대를 올리면서도 정작 관심이 있어야 되는 미국의 정치에는 남의집 불구경이요, 자식에게는 값비싼 옷에 유행으로 감싸놓고, 자선단체 헌금에는 단돈 $10이 아까워, 자유의 나라 미국인데 어떠냐고 큰 소리치시는 농사 지을수없는 농민들 "아버지"대신 "대디"라고 불러도 별불만없이 대답하고, 자식에게 한국이름 대신에 미국이름을 붙여놓고 열심히 불러놓고, 너는 내 핏줄을 이어받은 한국사람이라고 한국의 풍습과 관례를 이야기 할수 있을까.
그런 자식이 어느날 갑자기 미국친구를 소개하면서 "결혼이야기"를 할 때 우리의 이민 1세들은 가슴을 치며 미국땅을 원망한다. 미국 땅은 죄가 없다. 우리는 이곳에 살면서 살아갈수 있는 방법을 배웠으며 노력의 댓가만큼 보상도 받았다. 정말로 기회와 균등의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런데 자기그릇 제대로 챙기지 못한 사람들이 이 미국사회가 순진하고 귀한 자식 버려논 양 원망을 한다.
우리나라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말이 있다. 자식 노릇 하기는 쉬워도 부모 노릇 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L.A.의 흑인폭동이 이유없이 시작된 흑인들의 반항이 아닌것처럼 우리 2세들의 불만과 반항도 이유없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부모의 권리와 권위만 강조 할 것이 아니라, 자식에게 의무만 강조 할 것이 아니라, 부모도 나의 의무가 무엇인지 진심으로 느끼며 대화를 한다면 우리 이민 2 세들이 한국을 이해하고 한국인 부모를 이해하는 폭도 넓어질 것이다.
또한 한국인과 흑인과의 갈등도 풀 수 없는 수학 방정식같이 어려운 것이지만, 무조건 배척하는 것 보다는 나의 생활방식에 알맞도록 적응해 나가는 것이 좋은 방법같다.
우리는 이 미국땅에 살려고 이민이라는 비행기를 타지 않았던가. 각자 사연이야 많겠지만 김포공항을이륙하는 비행기 속에서 "금의환양" 하리라 마음먹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으랴. 희망의 나라, 기회의 나라, 자유의 나라, 그것이 미국의 상징이요, 그것이 우리가 기대하던 것이 아닐까. 이제 미국속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동포라면, 돌아가야 하는 길이 멀기에 이땅에 묻힐 아늑한 "묘"자리를 보러 다녀야 하는 시간이 가까워 오고있다.
우리는 두개의 구멍뚫린 관 밖으로 두손을 내밀고 떠나야 하는 인간이다. 자동차 열쇠도, 다이야몬드 반지도, 밍크코트도, 호화 찬란한 집도 관 속에 넣어가지고 가기에는 자리가 너무 비좁다.
그러나 인간이기에 무엇인가 남기고 싶어 안타까워한다. 우리가 이승에 두고 떠날수 있는것은 자기의 발자취와 안타깝게 울어 줄 수 있는 진실된 친구일 것이다. 비록 몸은 미국땅에 있지만, 마음은 항상 고국산천을 애타게 그리는 어쩔수 없는 방랑자들이기에 방랑자답게, 나의 긍지와 한 민족의 피가 끓고 있는 자랑스런 한국인임을 정확하게 살아 간다면, 정신없는 고국의 나의 동포가 재미동포를 똥포라 발음하는 그런 비극은 없을 것이다.
1993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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