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10:11-21 /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요한복음 10장)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19.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20.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그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21.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맹인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
(묵상/요 10:11-21)
◆ 선한 목자 되신 주님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라는
아름다운 다윗의 시가 양의 입장에서 고백한 것이라면,
요한복음 10장은 목자의 입장에서 한 아름다운 선언이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죽는다. '
중국 형제들과 성경 공부를 하는데, 통역하는 형제가 갑자기 통역을 더듬었다.
이상해서 보니 울먹이고 있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주님의 말씀에 감격한 것이다.
목자가 양을 위해 죽는 것은 현대 사회에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너무 황당해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기 집 강아지를 사랑한다고 해도 강아지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주인은 없다.
그런데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말씀은
일반적인 상식을 너무나 초월하는 말씀이기에 오히려 와닿지 않을 수 있다.
당시에는 사자나 이리가 덤비면 용감하게 목숨 걸고 싸워서 양들을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
다윗이 목자 시절에 그러했다(삼상 17:35).
그러나 사자나 이리를 이길만한 하다고 여겼기에 위험을 무릅쓴 것이지,
정말 양을 위해 죽으려고 한 목자는 없다.
가령 저 양을 구하려면 자신이 죽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모두가 양을 포기하지,
자기 목숨을 버리고 그 양을 구하는 목자는 없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양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버리시겠다고 하셨고, 진짜 목숨을 버리셨다.
'선한 목자'란 바로 그러한 목자다.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선함이다.
'선한 목자 되신 우리 주'라고 고백하고 찬송하지만, 그게 어떤 의미인지 정말 피부로 못 느낀다.
마치 사랑하는 아내가 죽었고, 분명히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여전히 믿기지 않아서 식사 때마다 아내를 찾는 사람과 같다.
생활하면서 아내가 죽었음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하는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선하심을 처음에는 지식으로 받아들이지만, 삶 속에서 피부로 느끼기 시작하게 될 것이다.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15)
선한 목자는 양이 너무나 미숙하고 부족할지라도 양을 탓하지 않는다.
그게 양의 특징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경고하는데도 잘못된 길로 갔느냐고 야단치느라 시간을 소모하는 분이 아니시다.
네가 잘못 선택한 탓이니 고생 좀 해보라 하며 고소해하는 분이 아니시다.
오히려 내 모든 잘못과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죽으시는 분이시다.
어떤 사람은 너무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면, 사람들이 방자해진다고 경고한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복음을 지식으로는 접했지만,
진짜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 바 되면 견딜 수 없게 된다.
역사적으로 주님을 위해 기꺼이 헌신하며 아름답고도 풍성한 열매를 맺었던 사람들은
모두가 예외 없이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한 자들이다.
만일 어느 병사가 전쟁터에서 죽을 뻔했는데, 왕이 자기를 살리기 위해 팔 하나를 잃었다고 하자.
병사가 왕의 희생을 보고 스스로 대단한 사람인 양 자만에 빠질까? 아니면 감격과 사랑으로 충성을 다할까?
만일 그 병사가 자만하고 방자해진다면 그는 왕과 자신의 신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깨닫게 되면, 가만히 있기 힘들다.
바울은 성도가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온 천하에서 열매를 맺어 자라게 된다고 말한다(골 1:6).
그리고 성령께서 오신 이유 중의 하나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다(고전 2:12).
우리 주님은 선한 목자다.
양을 위해서 기꺼이 죽으신 분이시다.
그리고 일회성 선한 목자가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선한 목자가 되셔서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우리 주님께서 선한 목자 되심이 어떤 의미인지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무슨 행위로 하나님의 호감을 살 것인가를 생각하지 말고 우리 주님께서 선한 목자이심을 깨닫고 감사하며,
선한 목자가 되신 주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된다. 내 비전과 진로가 거기에서 시작된다.
선한 목자 되신 주님,
저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며, 영원히 주님을 찬양합니다.
[출처] 요 10:11-21 /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작성자 야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