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훈민정음 언해본》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행갈이를 하고 있다.

송대의 학자 소식(蘇軾)의 서예 작품
아래〈한식첩(寒食帖)〉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행갈이를 하고 있다.

가로쓰기와 세로쓰기는 문서에 문자를 써 나가는 방식이다.
세계에 존재하는 문서는 그 언어 및 표기 문자 체계의 조합에 따라 문자를 써나가는 방향(서자 방향(書字方向))이 다르다.
이 방법은 크게 가로쓰기〔횡서(橫書)〕와 세로쓰기〔종서(縱書)〕로 나뉜다.
가로쓰기에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좌횡서(左橫書)와 그 반대로 쓰는 우횡서(右橫書)로 나뉘고,
세로쓰기에는 행갈이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하는 우종서(右縱書)와 그 반대로 하는 좌종서(左縱書)로 나뉜다.
한국어·중국어·일본어·베트남어 등 한자 문화권의 언어는 전통적으로 우종서를 썼고, 간혹 간판과 같이 가로쓰기를 해야 할 때에는 우횡서로 썼다.
근대 이후 서양 문물이 동아시아에 전래한 이후에는 좌횡서도 도입되어 현재까지 병용되고 있다.
가로쓰기와 세로쓰기가 모두 가능한 문자는 현대에는 비교적 드물어, 문자가 정방형(正方形)의 네모 칸 안에 쓰이는 형태는 한자 문화권의 특징으로 자리하고 있다.
서양 언어들이 좌횡서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아랍어·히브리어 등으로 대표되는 중동권에서는 반대로 우횡서가 쓰인다.
독자적인 문자를 가지는 남아시아·동남아시아에서는 서양처럼 좌횡서가 많다.
몽골 문자로 표기되는 몽골어는 특이하게 좌종서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몽골 문자가 위구르 문자에서 파생한 것에서 유래한다.
고대에는 히에로글리프처럼 서자 방향이 꽤 융통성 있는 문자들은 행마다 방향을 반대로 바꾸는 우경식 서법(牛耕式 書法, boustrophedon) 등의 방법도 있었다.
또 아래에서 위로 행을 거듭하여 쓰는 가로쓰기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아래에서 위로 쓰는 세로쓰기는 아일랜드어의 오검 비문의 예 및 돌궐 문자가 드물게 그처럼 쓰이는 데, 역사적으로도 매우 드물게 존재한다.
가로쓰기와 세로쓰기의 차이점
초서체의 경우 가로쓰기는 다소 부적합한 면이 있기는 하나, 한글·한자·가나는 가로쓰기와 세로쓰기 모두 쓸 수 있다. 실제 표기에서 가로쓰기와 세로쓰기 간의 차이점이 다소 있다. 숫자의 경우, 인도-아라비아 숫자는 가로로 쓰고, 한자의 숫자는 세로로 쓴다. 구두점의 경우, 한국어와 일본어는 가로쓰기와 세로쓰기에 차이가 있다(아래를 보라).
또한, 가로쓰기와 세로쓰기에는 구두점·선·인용 부호의 방향에 차이가 있다. 괄호·인용 부호·선·물결표 등은 가로쓰기와 세로쓰기에서 서로 90도 회전한다.
가로쓰기(좌횡서)로 된 책은 서양 언어와 마찬가지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쪽수가 넘어간다.
세로쓰기(우종서)로 된 책은 그 반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쪽수가 넘어간다.
일본어의 후리가나나 중국어 번체의 주음부호와 같은 루비 문자는 세로쓰기일 경우 다음과 같이 본 문자의 오른쪽에, 가로쓰기일 경우 주로 본 문자의 위쪽에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루비 문자는 위와 같이 일반적으로 본문의 행과 행 사이에 적는데, 보통 본문의 글씨가 작으면서 줄 간격도 좁은 경우에는 적기가 매우 곤란하다. 이럴 때에는 루비 문자를 글자의 아래(세로쓰기일 경우)나 오른쪽(좌횡서일 경우)에 작은 글씨로 2줄에 걸쳐서 쓰기도 한다.
현대 한국어의 경우 중국이나 일본과 같은 방식으로 루비 문자의 사용이 드물다. 한글 전용일 경우에는 한글(한자)과 같이, 한자 혼용일 경우에는 식이나 한자(한글) 식으로 괄호를 사용하여 적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중국이나 일본처럼 괄호를 쓰지 않고 작은 글씨로 루비 문자를 쓰는 경우도 드물게 있다.
서양으로부터 괄호 문자가 도입되기 이전인 전근대 시대에는 한자 다음에 훈민정음으로 발음을 단 문헌이 간행되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대표적이다. 이 책에서는 큰 글씨로 씌어진 본문의 경우, 한자마다 각 글자 다음 칸에 작은 글씨로 훈민정음을 써서 발음을 표시하였다. 그리고 작은 글씨로 씌어진 주석의 경우, 각각의 한자가 적힌 칸 다음에 훈민정음 발음을 적은 것은 본문과 동일하지만 가독성과 인쇄상의 편의를 위하여 글씨 크기를 더 줄이지는 않았다.
물론 《훈민정음》혜례본은 전통적인 세로쓰기 서적이므로, 일반적으로는 한자 아래에 훈민정음 발음 표기가 위치하게 된다. 하지만 한자가 줄의 마지막 칸에 적혀서 더 이상 그 줄에 글씨를 쓸 수 없는 경우에는 그 다음 줄 첫 칸에 훈민정음 발음을 표기하였다.
근대 이후에 동아시아 문자 표기에서 로마자나 아라비아 숫자 등 가로쓰기에 적합한 글자가 혼용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이 때 가로쓰기 문서에서는 그대로 좌횡서로 적는다. 세로쓰기 문서에서는 시계 방향으로 90도 회전한 형태로 쓰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이 경우 읽기가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다. 세로쓰기에서 로마자나 아라비아 숫자를 회전시키지 않고 그냥 매 글자를 순서대로 적는 경우도 있으나, 이 경우는 대개 글자 수가 적은 경우(두문자어 등)에만 한정된다. 간혹 한 칸(한글, 한자, 가나, 주음 문자 기준) 안에 로마자나 아라비아 숫자 2~3개를 좌횡서로 쓰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세로쓰기 안의 가로쓰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표기는 대개 아라비아 숫자가 2~3개만 연이어 나오는 경우에 많고, 그 이외의 경우에는 드물다.

위 독립신문 창간호. ‘독닙신문’이라는 제목이 우횡서로 적혀 있다
동아시아에서 역사적으로 세로쓰기는 표준 체계로 자리 잡아, 가로쓰기는 오로지 공간이 가로로만 한정된 간판 등에서만 사용되었다. 사실 이 가로쓰기는 각 행에 한 글자만 들어갈 수 있는 ‘특수한 세로쓰기’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제2차 세계 대전 종료 이전의 일본에서는 이런 간판들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혔다.
오늘날 동아시아에서는 서자 방향이 왼쪽에서 오른쪽인 것이 가로쓰기에서 일반적이다. 이것은 영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특히 컴퓨터에서 그런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우횡서 가로쓰기는 여전히 쓰이고 있다. 정체자가 쓰이는 중국어권 지역이나 일본의 경우, 간판이나 차량의 오른편 등에 우횡서 가로쓰기가 사용되고 있다.
한국어
한국어도 다른 한자 문화권 언어와 마찬가지로 전통적으로 우종서를 써왔고, 간혹 간판 등에서 우횡서를 썼다.
광복 이후 한국의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일본과 마찬가지로 가로쓰기(좌횡서)가 적극적으로 도입되게 되었다. 서적도 점진적으로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 변모해 갔다. 다만, 대한민국의 신문 대부분은 오랫동안 세로쓰기를 고수하였는데, 1988년 창간된 중앙 일간지 《한겨레신문》은 창간 때부터 가로쓰기를 도입하였다.
그리고 1990년대 들어 《중앙일보》를 필두로 하여 세로쓰기를 하던 대한민국의 다른 중앙 일간지들도 가로로 쓰기 시작했다. 현재 대한민국의 중앙 일간지 가운데 세로쓰기를 쓰는 신문은 없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건국 이후 가로쓰기가 일반적이었다. 《로동신문》을 비롯한 주요 일간지들은 가로쓰기이며, 조선말규범집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조선글은 왼쪽으로부터 오른쪽으로 가로쓰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특수하게 내려쓸 때에는 오른쪽으로부터 왼쪽으로 내려쓴다. 그러나 가로쓰는 글과 배합하여 내려쓰는 경우에는 왼쪽으로부터 오른쪽으로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내려쓸 때의 맞춤법, 띄어쓰기, 부호 등은 다 가로쓸 때의 규칙을 그대로 적용한다.
중국어
최초로 가로쓰기로 인쇄된 중국어 텍스트는 1815~1823년마카오에서 출판된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의 《중국어 사전(Dictionary of the Chinese language)》이다.
가로쓰기로 된 중국어 출판물 중 널리 알려진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잡지 《과학(科學)》이다. 1915년 1월에 발행된 이 잡지의 첫 호는 당시에는 생소했던 판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本雜誌印法,旁行上左,並用西文句讀點之,以便插寫算術及物理化學諸程式,非故好新奇,讀者諒之。
본 잡지의 인쇄법은 위 왼쪽에서 옆으로 가는 방식에 서양문의 구두점을 병용하였습니다. 이것은 산술·물리·화학의 여러 공식을 삽입하기 편리하게 하기 위함이며 새로움을 추종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독자들께서는 이를 양해해 주십시오.
가로쓰기의 증가와 더불어, 가로쓰기와 세로쓰기 모두 동시에 사용되게 되었다. 가로쓰기 지지자들은 우종서는 글을 쓸 때 때 묻기 쉽다고 주장하였다. 반대로 세로쓰기 주장자들은 가로쓰기는 확립된 전통의 파괴라고 생각하였다.
1949년 공산 혁명의 성공 이후에 중화인민공화국은 간체자를 제정하면서 또한, 가로쓰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중국 전역의 모든 신문은 1956년 1월 1일에 세로쓰기를 가로쓰기로 바꾸었다. 이후에 간체자를 도입한 싱가포르에서도 세로쓰기는 희귀해졌다. 타이완 및 홍콩, 마카오와 오래된 화교 사회에서는 기존의 방식을 이어오다가 1990년대에 들어와 점진적으로 가로쓰기가 도입되게 되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이 지역의 신문 대부분은 좌횡서로 대체하거나 좌횡서 제목에 세로쓰기를 결합한 형태로 바꾸었다.
일본어의 가로쓰기와 세로쓰기
1938년 일본의 한 잡지 광고. 우종서와 미기 요코가키(右橫書き)로 쓰여 있다. 다만 상품 레이블에는 영어와 같이 좌횡서로 쓰여져 있다.
일본어의 가로쓰기는 원래 메이지 시대에 일본인들이 서양어 사전의 인쇄를 시도한 데에서 유래한다. 최초에는 가로쓰기로 된 서양어 텍스트와 세로쓰기로 된 일본어 텍스트를 혼합한 형태로 인쇄되었는데, 이것은 일본어 텍스트를 읽으려면 책을 90도 돌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것은 다루기 어려웠기 때문에 ‘요코가키(橫書き: 가로쓰기) 사상(思想)’이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일본어에 가로쓰기를 부분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출판물 중 하나는 1885년(메이지 18년)에 출판된 《수진삽도독화사서(袖珍揷圖獨和辭書)》이다.
가로쓰기 배열로 이행하던 초기에 잠깐 유행한 ‘미기 요코가키(右橫書き)’가 있었다. 이것은 아랍어와 비슷한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널리 사용되지 못하여 살아남지 못했다. 현재도 일본은 신문과 출판물이 대부분 세로쓰기를 사용한다.
서예
동아시아의 서예에서 세로쓰기는 주요한 서자 방향으로 남아 있다. 물론 전통적인 우횡서도 쓰이며, 최근에는 좌횡서도 사용된다.
만화
일본 만화(만가)는 세로쓰기를 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만가의 컷과 말풍선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한다. 네 컷 만화는 세로로 컷이 이동한다. 페이지도 세로쓰기 서적의 순서대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어간다. [1]
대한민국의 만화는 일본 만화와 달리 좌횡서가 압도적이며 컷과 페이지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한다. 일본 만화의 한국어 번역본은 좌횡서로 만들려고 좌우를 바꾼 판으로 나온 것도 있고, 원본을 유지한 것도 있다. 원본을 유지한 것은 일본 만화처럼 컷과 페이지, 말풍선의 이동이 오른쪽에서 왼쪽이다. 다만, 말풍선 내의 글은 가로쓰기에 익숙한 독자의 편의를 위해서 좌횡서로 바꾼 경우가 많다.